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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소연 블로그_blog.naver.com/soyeun94 페이스북_www.facebook.com/soyeon.yoon.965 인스타그램_@soyeun794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가나아트 스페이스 GANAART SPACE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번지 1층 Tel. +82.(0)2.734.1333 gana.insaartcenter.com
비밀스런 일상과 현실적인 상상 ● 일상은 공평하다. 어느 누구도 일상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일상은 또한 반복이다. 나날이 일상의 세목을 채우는 것들이란 거의 같다. 자고 일어나 씻고, 먹고, 마시고, 입고, 신고, 걷는다. 중간에 화장실에도 들러야 한다. 이처럼 벗어날 수 없는 반복이라는 점에서 일상은 구속이며 감옥이다. ● 그런데 이따금 단정한 옷이 삐져나와 살을 드러내듯 그 반복에 균열이 생겨, 만나고 헤어지며 사랑하고 미워한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프랑스의 문예비평가 롤랑 바르트는 그것을 '옷이 하품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물론 우리는 결국 일상의 반복을 끊어내지 못하며 존재의 시원(始原)처럼 그리로 돌아가지만, 아니 늘 그 안에 있지만, 그래도 일상은 그 안에 하나의 '사건'처럼 반복과는 다른 생성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일상의 구속을 견디게 하는, 더 나아가 일상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신비다.
윤소연의 작업은 바로 그러한 자신의 일상을 조형의 대상으로 삼아 이루어져 왔다. 그것도 거의 실내를 벗어나지 않고서. 어쩌다 등장하는 창은 언제나 닫혀 있고, 드물게 열려 있는 순간에도 밖은 캄캄해서 마치 두터운 흑의 장막이 둘러쳐진 것 같다. 실내에서도 심지어는 셔터를 내리기까지 한다. 정신분석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실내는 엄마의 자궁으로의 회귀, 혹은 퇴행 욕구를 표상한다. 이때 바깥세계는 그만큼 두렵거나 내키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를 가질 것이다. ● 그런데 특이한 점은 그렇다고 윤소연의 작업에서 실내 공간이 꼭 밝고 따듯하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일상의 어질러진 사물들이 보여주듯 거기에는 기쁨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어떤 쓸쓸한 정서가 녹아 있다. 연극이 시작되기 전의 활기에 찬 질서라기보다는 연극이 끝나고 난 뒤의 적막과 같은 쓸쓸함. 그래서 옷은 그냥 벗어 내버려둔 채이거나 여기저기 무심하게 걸려 있고, 여러 켤레의 신발로 '왁자지껄'한 분위기조차 이상하게 정적(靜寂)을 동반한다. ● 무엇보다도 거기에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최고의 만찬'에서든, '우아한 한끼의 식사'든, '수다 중'인 식탁에서든 사람의 모습이라곤 전혀 보이지 않아서, 마치 실험영화의 정지 화면처럼 그러한 극적 상황이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제목을 배반하는 것 같다. 일상은 우아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별 볼일 없기까지는 아니지만 기껏해야 소박한 식사로 이루어져 있다. 바깥세계가 그러하듯 타인(他人)과의 관계 역시 불편까지는 아니라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다는 것일까.
윤소연의 일상의 이미지가 갖는 아이러니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공간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것이 꼭 만족스런 공감으로만 채워지지는 않는다. 그 한 예가 구두다. 그의 캔버스에서 구두는 거의 언제나 어딘가로 나가려는 느낌을 준다. 지극히 정적인 구도에서조차 그의 구두는 어떤 움직임을 안에 감추고 있다.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가고 싶은 것이다. 그토록 안에만 머물러 있으면서도 사실은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는 것. 즉, 안과 바깥, 자아와 타자의 어긋나는 관계처럼 현실과 꿈, 의식과 무의식이 일치하지 않는 데서 오는 역설적 긴장이 이전까지의 윤소연의 '삶의 풍경'을 채워왔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실제의 자아와 연극 무대의 배우가 같으면서 다르고, 다르면서 같듯이. ● 이 점에 대해 작가 스스로 다음과 같은 발언을 남기고 있다. "그동안 작업의 면면들을 보면 개인의 일상공간이나 생활, 생각들을 이야기를 풀어가듯 캔버스에 재현해왔다. 극히 주관적인 내용을 연극 무대의 뒷배경처럼 드라마틱하게 구성하여 올리고 그 가운데 나는 어느새 연극을 하는 배우가 되어간다."(2004년 12월 작업일지 중에서)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활짝 열어젖힌 문처럼 그의 작업이 바깥세계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그 문은 여전히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이제야 '수다'는 유쾌할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고택(古宅)의 정원, 단풍이 지는 가을 숲과 하늘, 바닷가의 모래사장, 파리의 건물 지붕, 런던 템즈 강의 다리 등등은 모두 그의 신발이 그토록 나가고 싶어 했던 바깥의 풍경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날아오르다」에는 암시처럼 그 신발의 구두코가 보인다. ● 게다가 이번 전시에는 꿈이라는 말이 들어가는 제목을 가진 두 개 작품이 있다. 「상상이 현실이 되고 현실은 꿈이 되다」와 「한 겨울날의 꿈」이 그것인데,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케이스에서 막 꺼낸 것으로 보이는 새 구두가 등장한다. 마치 작가의 꿈이 실내에서 걸어 나가 바깥세계와 소통하는 것임을 말하기라도 하듯. 이번 전시는 그래서 실내와 바깥세계가 만나는 어떤 경계처럼 보인다. 이것은 일상과 상상, 현실과 꿈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나는 종종 현실과 꿈 사이에서 방황을 할 때가 있다. 때론 꿈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꿈같은 나의 일상... 나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가끔은 꿈같은 일상을 원할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 꿈은 삶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 원동력이며 희망인 것이다."(2004년 12월 작업일지 중에서) ● 그런데 일상적 현실은 극사실에 가까워질수록 차라리 비밀스럽고, 작가가 꿈꾸는 상상의 세계는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이다. 여인의 속옷이나 침대, 일상용품이 등장하는 현실은 지극히 내밀한 반면, 상상의 공간에는 정원과 숲, 강과 같은 현실적인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윤소연의 세계가 갖는 아이러니의 연장일 것이다. 그의 공간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 동양과 서양, 바다와 육지, 부재이자 충만, 홀로이자 여럿인 세계다. ● 이렇게 보자면 그의 작업은 실내로부터 바깥세계로, 일상의 현실로부터 상상의 공간으로, 즉 자아의 내밀함이 타자(他者)와 만나는 어떤 풍경으로 할 수 있다. 내면의 자아가 그려나가는 '삶의 풍경'이라고 부를 그 세계는 이처럼 공간과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극히 사적이고 주관적인 일상의 단면들을 무대 위로 끌어냄으로써 특별하고 의미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2004년 12월 작업일지 중에서) 이러한 작업을 통해 윤소연 '일상의 변용', 혹은 '낯설게 하기'를 수행한다. 허구로서의 연극의 무대가 실제의 우리 삶을 돌아보게 하듯이. ● 그래서일까. 일상의 공간은 어느새 꿈이자 선물이며, 유쾌하고 좋은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니 옷이 하품하는 순간 맨살결이 드러나듯, 이 공간과의 조우(遭遇)에 어떻게 가슴이 떨리지 않을까. 마치 새 신을 신고 팔짝 날아오른 한 풍경이 여기에 있다.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 ■ 박철화
Vol.20110323a | 윤소연展 / YOONSOYEON / 尹素蓮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