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숲 그리고 우리

임경미展 / IMKYUNGMI / 林敬美 / painting   2011_0319 ▶ 2011_0407 / 월요일 휴관

임경미_버드나무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0cm_2010

초대일시 / 2011_0319_토요일_04:00pm

후원/협찬/주최/기획 / 박수근미술관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 Park Soo Keun Museum in Yanggu County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 정림리 131-1번지 Tel. +82.33.480.2655 www.parksookeun.or.kr

자연으로의 회귀...나무를 꿈꾸다. ● 자연의 숭고한 기운을 상징하는 나무들이 있다. 나무는 잎과 열매를 상실한 채 높이도 너비도 가늠할 수 없는 상태로 공간에 버티고 서 있다. 단지 몇몇의 가지와 부러지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기둥, 그리고 거친 껍질의 질감만이 그것이 나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뿌리와 잔가지들이 쳐지고 계절을 가늠할 수 있는 이파리와 열매를 상실한 나무, 그리고 자연 속에서 시각적으로 관찰 되어지는 나무 고유의 색채를 발산하지 못하는 나무는 실제 물상의 존재인가? 아니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학습과 관찰로 길들여진 생각의 허상인가? 물상인지 허상인지 모를 임경미의 나무들은 원색의 공간에 무채색으로 존재하거나 무채색의 공간에 원색으로 존재한다. 자연의 빛인 초록 속에서 무리를 지어 있을 때에는 비로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그 역시도 나무 고유의 둔탁한 질감과 색채와는 달리 매끈함과 투명함으로 이내 나무의 성질을 위장해버린다.

임경미_yellow-드리우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50cm_2010
임경미_blue-내리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50cm_2011

이렇듯 임경미는 인간의 삶 속에서 발생하는 상실과 부조리, 위장과 개인소외 문제를 나무의 모습으로 은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나무는 자연을 상징하는 메타포다. 경험으로서의 나무와 인식으로서의 나무가 실제 보여 지는 물상의 이미지 외에 그것이 인간에게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때 묻지 않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거나 혹은 어떠한 시련에도 굳건히 버티고 서있는 강단을 대리만족하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 왜 그런 갈망을 하는가? 자연을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감정이 충족되지 않을 때 즉 상실감이나 자기소외가 극에 달할 때 인간은 자연으로의 회귀를 갈망하게 된다. 또한 그러한 감정이 자기회복을 실현하고자 노력할 때 나무의 내적인 견고성에 대해 동경하게 되는 것이다.

임경미_green-서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50cm_2011
임경미_red-물들이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72.5×50cm_2011

임경미는 특정한 나무의 이미지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일반적인 인간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나무의 이미지가 대변하는 내적인 의미만을 전달 할 뿐이다. 그렇다면 임경미의 작품 안에 존재하는 외형의 나무 이미지는 허상이라고 할 수 있다. 캔버스 올이 간간이 보일정도의 가벼운 붓 터치와 빛을 관통하는 아크릴의 투명한 느낌은 상통한다. 곧 사라질지 모를 허상의 이미지는 언제나 가볍고 투명하다. 실제 물상의 육중한 나무에 대해 무거운 매스를 실어 표현하지 않은 이유다. 색채의 강한 대비와 공간감을 배제한 화면 안에서 나무의 자유로운 배치는 어쩌면 임경미 자신을 포함한 인간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처음부터 시작도 끝도 없었고 앞도 뒤도 없었던 공간 안에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중심을 비껴나가 서 있다. 혼자서는 결코 살 수 없음에 서로 기대거나 겹쳐지거나 꼬아져 있기도 하다. 혹은 그림자처럼 뒤에 당당히 버티고 서 있다. 혼자인 듯 아닌 듯 위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임경미의 수많은 나무 드로잉에는 저마다 주인공이 있다. 하나 하나의 주인공은 인간의 감정 변이와 일상의 모습들을 말해주고 있다.

임경미_춤추다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0
임경미_붉은 숲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62cm_2010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역동하는 사회와 그 사회 속에서 길들여지고 길들여가며 살아가야하는 인간은 어쩌면 눈앞에 보여 지고 만져지고 누릴 수 있는 실체를 쫓아야하는가? 확연히 보여 지지는 않으나 만질 수 있을 것만 같고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상을 쫓아야하는가? 의 문제로 삶의 거반을 소진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개인의 선택과 판단이 문제의 길잡이와 해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고 있는 임경미의 나무 허상들은 동시대 삶의 문제 즉 안이한 일상 속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개인소외와 상실감, 사회 부조리 등의 문제를 인식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이를 극복해 나아가는 과정과 대안으로서의 대상이 된 나무는 작품 안에서 회화와 드로잉, 설치 등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허상의 이미지를 표출하고 있다. ■ 엄선미

Vol.20110319h | 임경미展 / IMKYUNGMI / 林敬美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