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아이 GALLERY I 서울 종로구 낙원동 283-13번지 2층 Tel. +82.2.733.3695 www.egalleryi.co.kr
"호주 태즈매니아의 풍경, 빛의 울림을 그리다." ● 서양에서 풍경화(landscape painting)가 등장한 것은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초 스페인의 지배에서 벗어나 시민공화국을 성립시키고 상업의 발달로 경제적 풍요를 누리게 된 지금의 네델란드와 벨기에를 중심으로 한 플랑드르 지방에서다. 로마시대 벽화나 중세 종교그림의 배경을 위해 단색으로 칠하거나 실내가 아닌 장소의 경우 밋밋함을 채우려고 그린 환상적이고 관념적인 풍경에서 벗어나 사실성이 높은 풍경화가 이시기에 많이 제작되게 된다. 그 후 19세기에 들어오면 영국의 터너, 컨스터블과 프랑스의 루소, 밀레 등 바리비종(Barbizon)파 화가들이 대기의 흐름이나 빛의 변화 같은 자연현상을 예민하게 관찰해 근대적이고 과학적인 사실풍경을 제작하게 된다. 이 같은 흐름은 인상파에 영향을 끼쳐 빛의 순간적인 효과로 대상을 파악하는, 매우 밝은 풍경화를 그리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풍경화의 다양한 변화와 시도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풍경화란 말 그대로 풍경을 주제로 시간적으로 연속적인 자연의 정지된 단면을 포착하여 자연의 외관을 그린 그림이다. 객관적 관찰과 주관적 경험의 기록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과 자연의 재발견"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며 우리가 바라보고 해석한 자연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풍경을 사진기처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그릴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아름답게 미화시켜서 그릴 것인지, 빛에 따라 변화하는 그 순간의 풍경을 그릴 것인지, 추상적으로 구성해서 그릴 것인지는 자연을 바라보는 화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풍경화란 화가가 자연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조형적인 요소로 화면에 그린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성실하고 정확한 '자연의 모방', 더 나아가 그것의 '완벽한 이상화된 재현'으로서 사실성에 입각한 화가의 심미적 체험의 주관적 표현성을 의미한다.
작가 탁 현주는 2008년 새해 아침 호주 태즈매니아 호밧의 웰링턴 산 구름위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시작한 일주일 동안의 여행에서 보고, 느끼고, 감명 받았던 원시 자연그대로의 풍경을 화폭에 그려낸다. 가장 잊을 수 없었던 태즈매니아 러셀폭포 주위의 고사리나무숲에서의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 빛의 세례로 그 어느 색보다 화려했던 고사리나무 잎들과 폭포수의 영롱한 반짝임, 가슴 벅찼던 황홀감은 미세한 터치들의 조화로운 배열로 화면에 생동감을 준다. 작가의 감정이입이 전달된 것일까? 그녀의 풍경 앞에 서는 순간 마치 신비로우며 평화와 위안을 주는 숲속을 거닐고 있는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탁 현주는 태즈매니아 풍경에서 자연의 고유색을 그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19세기 인상주의 화가들처럼 광선의 변화에 따른 순간적인 색채들의 조합을 통해 고사리나무 형태의 강한 인상을 표현하여 고즈넉한 숲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러셀폭포 주위의 고사리나무숲의 형태는 색조가 단계적으로 변하여 형성되는 색의 조화로 이루어지며, 이것은 시간과 빛으로 다시 반복 될 수 없는 숲의 생생한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빛을 통한 숲은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형태도 일정하지 않으며 빛의 미묘한 조화를 쫓기 위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숲의 모습을 빠른 필치와 붓놀림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번 작품들을 통해 그녀는 현실의 기쁨과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자연의 격동하는 생명력을 통해 이상적인 인간사를 추구하려고 한 전모를 엿볼 수 있다. 절대적인 본질로의 환원, 순수한 정신적인 관념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려고 하는 의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정신적이고 창조적인 에너지는 태즈매니아 풍경을 빌어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묘사로 현실을 이상화하여 빛과 색, 관조의 예술세계를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빛에 의한 태즈매니아 풍경의 강렬한 명암대비는 강한 전율과 함께 시원한 대기의 흐름을 느끼게 한다. 밝은 면들과 강한 명암 대비를 이루도록 윤곽선과 배경들을 그늘지게 만드는 기법을 강조함으로서 빛과 그늘은 꿈과 현실 사이의 중간쯤 되는 어떤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 화면에 정신적이고 심리적인 뉘앙스를 부여하고 있다. 어둠을 나타낸 그늘 부분이 아주 짙어서 깜깜한 막을 드리울 때처럼 사물의 무 존재에서 문득 나타났다가, 다시 무 존재로 돌아가는 듯 강한 인상을 받게 된다. 마치 생명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작가가 태즈매니아 풍경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빛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색채들 간의 새로운 조화를 발견하는 것이며 치밀하게 계산된 구도와 배치, 정밀한 배경보다는 감각적으로 남기거나 생략적 표현을 통해 테마의 강함과 심리적 함축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심상적인 부분에서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결국, 태즈매니아 풍경이 형상의 기억에 의지하여 재현됨으로써 자연에 대한 감정을 이입, 동화가 되어 본질적인 정신에 접근하기 위한 조화를 위한 공간 개념을 표현하고 있다. 즉, 작가 중심의 세계관을 펼치고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느낀 바를 극대화하여 자연스럽게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빛의 존재를 활용하는 것으로 발현된다. 빛의 존재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면서 심상적인 표현을 강조한 것이다.
작가 탁현주의 태즈매니아 풍경 속엔 빛의 찬란함과 아름다움이 있다. 빛의 울림이 그려낸 태즈매니아 풍경은 그녀만의 내면세계 즉, 심상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동적인 빛은 태즈매니아 풍경 고유의 행태와 색채를 변형시키거나 해체 혹은 재구성하면서 평면에 깊이를 주고 있다. 빛의 강약에 따라 숲의 깊이와 이미지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작가 내면의 정신적 영역에 다다르게 하는 공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는 것이다. 윤곽선으로서의 선의 이미지가 사라지면서 신비스런 움직임을 통해 생동감이 부여되며 빛은 숲에 생명력을 주며 심상적인 표현에 도움을 주는 것이다.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느껴지는 무언가를 하얀 공간에 어떻게 표현해야만 그 느낀 바를 최대한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이런 고민 속에서 그녀는 사물의 본질을 자신의 내면세계를 통해 심상적인 방법으로 표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의 태즈매니아 풍경에는 소박함, 고요함과 강렬함있고 과장보다는 생략과 함축을 내포한 그녀의 의식 속에 담긴 심상을 표현한 것이다. ● "숲은 신세계이다. 살아있는 나무와 수명을 다한 나무가 순환의 고리를 이루는 자연그대로의 숲속으로 빛이 내려오는 순간을 목격하는 경이로움은 숨막히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빛은 고사리 나무들 잎 위에도, 물 위에도 보석처럼 반짝인다. 육천오백만년 이전부터 생성된 호주 태즈매니아 섬의 고사리나무가 빛으로 세례 받아 다양한 색으로 춤을 춘다. 자연그대로의 고사리나무들은 세월의 깊이는 다르지만 서로 조화를 이루어 원시적이며 강렬한 미적체험을 제공한다. 숲은 어둠과 빛이 상생하며 도시의 빌딩숲에 기대어사는 우리에게 위안이 되는 친화적인 공간이며, 소중한 희망의 생명체이다." 작가 탁 현주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소망했던 태즈매니아의 풍경은 이런 것이 아니였을까? ■ 차은영
입안 가득한 맛있는 커피 '히말라야의 선물'에 감사하며, 작업중인 그림을 본다. '왜 호주 태즈메니아의 풍경을 계속 그리고 있지?' 하는 뜬금없는 생각이 잠깐 스쳐간다. 히말라야 커피가 나를 행복하게 해주듯이, 몇년간의 힘든 시간을 보내고 2008년 새해아침 태즈메니아 호밧의 웰링턴산 구름위에서 일출을 기다리며 시작된 일주일동안의 여행은 원시 자연그대로의 풍경을 가족과 함께해서 행복했었다. 태즈메니아에서의 많은 기억들 중 러셀폭포 주위의 고사리나무숲은 빛의 세례로 그 어느 색보다 화려해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고,나는 그 황홀함을 잡아두고 공유하고 싶었다. 아마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캔버스의 풍경은 그냥 풍경이 아니라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일 것이다. ■ 탁현주
Vol.20110316f | 탁현주展 / TAKHYUNJOO / 卓賢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