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316_수요일_05:00pm
기획 / 갤러리 도올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공휴일_11:30am~06:30pm
갤러리 도올 GALLERY DOLL 서울 종로구 팔판동 27-6번지 Tel. +83.2.739.1405 www.gallerydoll.com
일상의 채집자 ● 지난 십수년 간 송하나의 작업을 비교적 근거리에서 지켜보았다. 작은 수첩에 끊임없이 기록하고 드로잉 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일상생활에서 비롯된 단상, 눈에 띄는 사물, 사건들에 대한 기록이었다. 이를테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접한 각종 매체로부터의 정보, 스치게 된 사람들의 차림새와 행동 같은 것들이 작업의 소재가 되는 것이다. 쓸모를 다하고 버려진 사물들을 모으는데 집중하기도 했다. 빈 생수병을 모아 조형물로 만든 것이 대학 졸업 작품 중 하나였고, 이때 '채집'된 버려진 생수병은 '반짝거리는' 조형물로 다시 태어나 새로운 가치로 의미 전환했다. 대중이 공통으로 따르게 되는 유행 같은 것은 '희화戱化'해 작품화되고, 버려진 것들은 '숭고한'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인데, 송하나 작업의 아이러니한 속성은 이렇듯 유래가 있다.
'시작점'으로서의 콜라주(collage), '낯선' 진실 ● 송하나는 일상에서 '채집'한 이야기를 작업소재로 삼으면서, 콜라주라는 보다 '직접적인' 표현기법을 선택한다. 첫 개인전에서 여성잡지나 광고지, 순정만화 이미지를 골라 그림면에 부착시킨 후 물감과 붓으로 당시 유행하던 '곱창 끈'을 그렸다. 여성의 장신구에 곱창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기이한 것처럼, 유행이라는 것의 속성 역시 한 발 물러서면 참 기이한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이 동시에 행하면,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것도 유행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러워지는 상황이 그에게 흥미를 주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과 가전제품을 병치시켜, 의인화된 사물들을 그려냈다. '의자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앞치마, '스타킹을 신고 빗을 꽂은 채 걸레와 불판을 걸친' 헤어드라이어, '푹신한 베개를 안고, 다리미대를 다리 삼아 불안하게 서 있는' 다리미 등이 그것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가사노동에 대한 은유이자, 여성으로서의 '일인다역'에 대한 난처함으로 읽히기도 한다. 콜라주 기법이 직접적으로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이미지의 병치는 상호 이질적인 이미지의 충돌로, 콜라주 기법의 '낯설게 하기' 효과에 닿아 있다. 세 번째 전시에는 '선물과 포장의 모티브'가 사용된다. '선물보다 더 선물다운 포장'이라는 주제는, 내용보다 껍질을 전면에 내세워 내면보다 외면의 권위를 치장하는 부류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을 드러낸다. 소위 '가식적인 것'들을 대할 때 일상대화에서 내비치는 작가의 오히려 덤덤한 기술은 작품에서도 제법 풍자적으로 반영된다. 이때도 콜라주 기법이 사용되는데, 포장지를 회화 면에 붙여 페인팅 기법과 착시를 일으키며 조화 또는 부조화를 이끌어낸다. 심각해서 오히려 어색해질 수 있는 주제를 명랑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막상 사용하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사물들을 페인팅 기법으로 그린 후, 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의 늘씬한 다리를 콜라주해 의인화시키기도 한다. 되짚어보면 송하나가 작업의 소재로 삼은 것은 '여성'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 표준화된 여성의 아름다움과, 표준화된 여성의 역할에 대한 생각과 고민이 '일상생활'을 소재로 삼는 '여성' 작가 송하나의 작업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러 번의 전시에서 다루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일관되게 엮어내고 있는 것이 콜라주 기법이다. 작가에 의하면 콜라주는 "세상의 조각조각들을 모아 새롭게 교배하여 나오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다. 송하나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현실세계에서 집어든/채집한 파편들을 조합하여 낯설게 배치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가 속한 세상에 대한 일말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의 말처럼 "세상의 조각조각들을 모아 새롭게 교배하여 나오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이 오히려 현실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반영하는 역설이 있는 것이다. ● 송하나에게 있어 콜라주 기법은 작업을 향한 '시작점'처럼 느껴진다. 작업의 아이디어를 작품 활동으로 연결시킬 때, 작가들은 보통 갑작스럽게 새로운 재료를 쓰거나 전혀 다른 기법을 사용하게 되지 않는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어느새 자신이 출발한 지점에 서보게 된다. 그에게 있어 그러한 시작점이 페인팅과 콜라주 기법인 듯하다. 지난 해 갤러리 고도에서 있었던 그의 5번째 개인전에서는 독일 유학 당시 제작된 작업들이 전시되었다. 지난 전시들에서 그랬던 것처럼 역시 콜라주에 페인팅 기법으로 가필한 작업을 만날 수 있었다. 이국에서의 5년이라는 기간은 아주 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학생의 입장으로, 오로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의 양으로 따지면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현실의 파편들을 모아 콜라주 작업을 했다. 집으로 배달되는 광고 전단지를 모아 사진을 오려내고, 작업에 활용했다. 그에게 있어 콜라주는 그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방편이자, 손쉽게 획득할 수 있는 작업재료를 이용한 선택과 오리기, 붙이기를 통해 작가로서 의 긴장감을 유지시켜주는 매체이다. 이렇듯 송하나 작업에 있어 콜라주는, 그가 처한 환경의 이러저러한 변화와 상관없이 십수 년 전부터 일관되게 사용된 기법이자 작업의 시작점이다. 콜라주라는 시작점을 기반으로 크고 작은 형식적인 실험들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숨김과 드러냄의 아이러니 ● 지난 5년간의 독일유학 후, 그가 주로 사용해온 콜라주 기법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 작업에서 콜라주 기법이 대체로 이미지간의 직접적인 충돌효과로 사용되었다면, 유학이후에는 그 기법이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화면 안으로 숨어들어간다. 언뜻 보면 콜라주 기법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광고지에서 오려낸 종이조각은 섬세하고 정교하게 페인팅 이미지와 섞여있다. 거리를 두고 보면 꽃그림처럼 보이는 그것은 꽤 아름답기까지 하다. 식물지의 삽화처럼 조심스러운 붓질로 잎과 줄기를 그리고, 그 주변을 가볍게 떠다니는 나비를 그렸다. 그러나 그 모든 아름다운 풍경의 중심인 꽃, 그 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당혹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붉게 피어오른 것은 꽃이 아니라, 다져져 피를 머금고 있는 '고기들'이다. 작가는 기존 작업에서 이미지의 다양한 병치를 통해 시각적 충격을 야기하는 것에 흥미를 보였다. 서로 관계없는 이미지를 병치시켜 '충격효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굳이 보는 이들에게 이 콜라주 효과를 '숨길' 의도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최근의 콜라주-페인팅 작업에서는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가 콜라주 작업인지 페인팅 작업인지, 애써 잘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다. 꽃(고기 이미지) 부분은 콜라주 작업이고, 그 꽃과 이어진 잎과 줄기 등은 붓질로 그려, 콜라주와 페인팅 이미지가 화면에 뒤섞여 있다. 때문에 관람자는 익숙한 풍경 속에 숨겨진 또 다른 풍경을 발견하고 충격에 사로잡힌다. 놀라움의 강도는 배가된다. 그만큼 작가의 페인팅 기법이 정교해졌다는 의미일 수 있다. 기존 작업에서의 붓질이 콜라주에 이용된 광고지의 사진과 차이를 보이는 '투박한' 붓질이었다면, 이제 사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섬세한 붓질과 묘사력을 보여준다. 의미를 드러내는 방법이 보다 은밀하고 세련되어진 듯하다.
송하나가 작품 소재로 택한 꽃, 고기/소시지, 벌레 등을 서구의 정물화적 전통에서 본다면 또 다른 흥미를 준다. 17세기 이후 네덜란드에서 본격 발전한 정물화에 사용된 도상들이 전달하는 총체적 의미는 바니타스(덧없음, vanitas),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로 수렴된다. 인간의 삶 역시 죽음 앞에 헛되며, 아름다움과 사랑과 재물과 권력과 지위에 대한 탐욕 역시 헛되다는 것이다. 이 헛됨과 무상함 앞에서, 반드시 다가올 죽음을 기억하는 속에서, 존재의 겸손함을 깨닫고 주어진 삶을 아낌없이 즐기라는 뜻이 담겨 있다. '꽃'은 바니타스의 의미를 지닌 대표적 도상이다. 모든 생명체의 일생이 그러하듯, 무엇보다 화려하게 피었다 곧 지고 말 것이 꽃의 운명인 것이다. 꽃 정물화 주위에 있는 작은 동물이나 곤충들도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데, 예컨대 작은 동물들과 애벌레는 탐욕과 허무함, 죄에 얽매인 인간의 모습이며, 도마뱀과 나비는 죄와 부활을 나타낸다. 곤충들은 허물을 벗으며 변태의 과정을 겪기 때문에 죄를 범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발전적 유비가 성립된다.(최정은, 『보이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정물화』, 한길아트, 2000, p.74) '고기'는 바니타스의 의미와 더불어 육욕을 의미한다. 소시지와 고기종류가 대변하는 '기름진 요리'(부자의 음식)는 사치스럽고 육체를 만족시키며 죄를 범하기 쉬운 삶을 상징한다.(같은 책, p.147) 이처럼 네덜란드 정물화의 도상 해석적 관점에서 송하나의 그림에 사용된 도상의 의미를 따져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읽어낼 수 있다. 최근 '고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떠올려본다면, 송하나의 작업은 인간 삶의 보편적 진실을 드러내는 매개일 수 있다.
콜라주 기법을 이용한 작업 외에도 작가가 처한 나날의 풍경을 보여주는 작업이 있다. 작가는 요리할 때 생기는 양파껍질을 버리지 않고 모아서 섬세한 붓질로 그려낸다. 버려질 운명에 처한 껍질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려, 아름답고 유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낸다. 또한 배추 잎을 뜯어 한 장씩 그려낸다. 송하나가 그린 배추는 모두 서른여섯 장의 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값지지 않고 심지어 무용한 쓰레기에 불과한 것들을 모아, 관찰하고 그려내는 행위는 무의미하게 전락하기 쉬운 일상의 순간을 유의미하게 살아내려는 작가적 의지의 반영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은, 아름답다고 믿어지는 것들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순간을 대하는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덧없는 삶'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예술의 오래된 역할이기도 하다. 송하나의 작업을 통해 박제된 삶의 껍질을 벗고, '없는' 알맹이를 살아내려는 태도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된다. ■ 박미현
Vol.20110316d | 송하나展 / SONGHANA / 宋夏娜 / painting.coll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