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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가방을 열라"고 외치는 이유 ● 루이뷔통, 구찌, 샤넬, 프라다......그 매혹적인 모노그램들을 보고도 상기되는 감정이 없다면 당신은 이 시대의 진정한 스타일리스트가 아닐 지도 모른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등장하는 수많은 미인들의 매혹적인 모습들에서 보듯, 그 소품들이 어쩌면 그렇게 자연스럽게 매치되어 연출되는 것일까. 그 명품들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말하자면 현대사회의 미감으로 창출해낸 가장 세련되고 생생한 오브제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사용 가치와 심미적 요소들의 조합이 진화되어 이 시대의 기념비적 물신(fetish)들이 된 것이다. 요컨대 그것들은 나름대로 쓰임 속에 시대의 미감들이 모종의 결정체로 나타난 것이라 해도 지나칠 것이 없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고 있자면 가방은 더 이상 가방이 아니다. 오늘날 계급이 없어졌다지만, 명품은 단순히 사용이나 치장의 수준을 넘은 신분 과시의 대용물이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오늘의 소비는 상품 자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기호(sign)를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왜곡된 현실은 조금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다분히 코미디 같은 데가 있다. 우리의 소비현실에서 나타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이가 바로 화가 조미숙이다. 조미숙은 소위 말하는 명품 백을 주로 재현하는 가운데 현대인의 왜곡된 욕망의 허상들을 시닉하면서도 코믹 코드와 터치를 가미하여 재치 있게 표현해내는 작가이다. 소위 명품이라는 오브제들의 기호로 정착된 모노그램 가방들을 그린다는 것은 어쩌면 워홀의 팝 이미지들과 상통하는 데가 있다. 작가는 가방을 정물로 그렸다기보다 가방 '이미지를 그린 이미지'라는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명품백은 사물 자체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가공할 복제능력에 의해 편재하는 욕망의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 즉 하이퍼 이미지인 것이다. 고도소비의 현실과 그 현실의 배후에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디어를 통한 기호와 이미지의 편재를 주목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작가의 작업에는 이 편재성에 대한 암시이면서도 그것의 비이성적 행태에 야유가 섞여 있다. 강아지 목에도 모노그램 목걸이가 걸려 있는 대목에서는 가벼운 웃음을 주면서도 야유와 질타가 느껴진다. 워홀은 그 편재성을 무수한 반복이미지로 암시했지만, 작가는 그 문제를 보다 은유적인 방식으로 지적하고 있다. 핵심은 편재성이 아니라 왜 우리 현실이 이렇게 되고 있는지를 관람자에게 되묻고 있다는 점이다. 사용가치와 상징가치 간의 괴리와 불균형의 문제를 의외로 강하게 묻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유혹과 인간의 원초적 허영 사이의 기괴한 야합에 대한 보드리야르의 지적과 공감하고 있는 대목이다. 작가는 사용과 허영심의 괴리를 묻기 위해 의미 있는 장치를 설정하고 있다. 지퍼가 열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가방의 모습들이 그것이다. '무언가를 담는 용품'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서술적 명제를 강조하기 위해 사물들은 입을 벌린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심지어는 지퍼 오브제를 이용하여 캔버스에 입체적인 포켓을 직접 만들어 보이고 있다. '가방을 열라!'는 광야의 메시지와도 같은 외침을 담고 있다. 실제로 어떤 신문이나 잡지류를 직접 넣을 수 있는 용도성을 강하게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기호의 균형추가 브랜드라는 상징 내지는 기호적 가치로 옮겨져 있는 것을 다시금 사물 고유의 용도로 되돌리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신분적 차이를 강조하는 '기호성'으로만 치우쳐가는 우리 내면의 일그러진 자화상이 아닌가. 우리 모두 경청해야 할 일이다. "가방을 열라!" ■ 이재언
Vol.20110313f | 조미숙展 / CHOMISOOK / 趙美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