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된 순간

필승展 / PILSEUNG / 鄭必勝 / sculpture   2011_0224 ▶ 2011_0314 / 일,월요일 휴관

필승_점자찻잔-관객과 차 마시기 프로젝트#3_백토,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초대일시 / 2011_0224_목요일_07: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월요일 휴관

아뜰리에 아키 ATELIER AKI 서울 종로구 혜화동 71-10번지 Tel. 070.7522.7713 www.atelieraki.com

체험된 순간, 그 힘을 역발산하다. ● 진정한 고수는 자신의 힘이 아닌, 상대방의 힘을 자신 안으로 받아들여 그것을 역발산한다고 한다. 그러나 몸의 한계에 도전하며 강한 파괴력과 공격성을 지닌 고수를 꿈꾸는 것은 사실 평생 동안 심신을 다스리는 수련의 과정이라 한다. 그럼에도 강력한 예술작품과 그에 대한 감식안을 자랑하는 예술의 고수들은 순간적 시각경험과 권위에 의해 부여된 해석을 통해 그것의 외피적 기표만을 읽어내며 표면적 가치를 결정짓는다. 현대미술에서 점점 증가하는 이러한 수다스러운 모습에 대해 작가 필승은 의구심과 질문을 던진다. 말하자면, 작가가 상상하는 고수는 사물을 어루만지며, 그 수많은 결의 사이사이에 힘들을 끌어내고 밀어내는 자이다. 때문에 그에게 있어 예술의 의미들은 관람객의 다양한 감각으로 예술을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의 힘을 작품 안에 투영시키고 발산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관람객이 온 몸의 감각으로 작품을 체험하여 모든 환경을 끌어안는 '의미있는 순간들', 바로 그 순간에 사물과 교감하는 체화의 과정을 경험토록 하고자 한다. 이는 바로 오랜 삶의 경험들이 배어있는 우리 안에 내재된 힘을 끌어내는 과정이자, 하나의 시선으로만 경험하는 것이 아닌 온 몸으로 체화하여 생성시키는 역발산의 힘인 것이다. 시각적 오브제들을 온 몸으로 체화하여 체험하다. ● 사전적 의미의 체험(體驗)이란 '자기가 몸소 겪음'을 말하며, 심리적으로는 '유기체가 직접 경험한 심적 과정', '경험과는 달리 지성, 언어, 습관에 의한 구성이 섞이지 않은 근원적인 것'을 이르며, 철학적으로는 '주관과 객관으로 나누기 전의 개인의 주관 속에 직접적으로 볼 수 있는 생생한 의식과정이나 내용'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작가에게 있어 체험이라는 의미는 '관람객 스스로가 모든 환경을 끌어들여 사물을 체화하며 서로의 힘을 투영, 그것을 다시 발산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작가의 정의에서 감지할 수 있듯이, 그토록 장황한 설명을 만들어낸 예술적 개념들은 단지 외피적 해석에만 좌우될 수 없는 내적, 외적 힘들이 교차하여 끊임없이 조우하는 것이다. 이전까지 작가는 대량 생산된 오브제를 새로운 맥락으로 재탄생시키는 행위를 통해 관람객에게 또 다른 가치 전달을 시도해왔다. 즉 작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사물의 표면적 진실이기보다는 관객에게 체화되어 체험된 사물의 의미들이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 역시 그러한 연속선상에서 서있지만, 이전과의 차이는 시각적 오브제들에 촉각, 후각, 미각 등의 체험하는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입한 점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전시기획 단계부터 공간구성과 동선까지 고려하여 하나의 공간 안에 세 가지 체험의 순간들을 얽어 놓았다.

필승_점자찻잔-관객과 차 마시기 프로젝트#3_백토, 혼합재료_가변크기_2011

첫 번째 공간에서 들어서게 들면, 관람객은 진열장 안을 빼곡히 채운 500여개의 찻잔들과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로 연출된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관람객은 수많은 컵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쥐게 되는 순간, 표면의 도드라진 점들을 손끝의 감각으로 느끼게 된다. 그 컵들의 표면에는 손가락으로 더듬어 읽도록 만든 시각장애인용 문자인 '점자'가 도드라진 것으로, 손가락 끝의 촉각으로 읽는 각기 다른 단어들이 볼록 튀어나와 있다. 이러한 컵을 손에 쥐게 된 관람객은 눈을 감고 이 도드라진 점들을 어루만지며, 마치 점자를 해독하는 맹인처럼 그 의미를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관람객은 바로 앞에 마련된 테이블로 이동하여 자신이 선택한 점자컵에 직접 차를 따른 후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차를 마시며 그 안에 담겨진 의미들을 음미한다. 여기서 관람객의 촉지적 감각은 시각 오브제인 점자컵을 통해 모아진 한 후 미각의 체험으로 의미를 배가시키려 한다. 그러나 점자를 해독할 수 없는 관람객에게 그 순간의 체험은 또 다른 장애로 다가오지만, 이는 시각적 오브제에 스며있는 촉각과 미각의 체험으로 사물의 의미를 체화하며 지금껏 알아왔던 외부에 대한 다른 힘들을 깨우는 과정으로 다가온다.

필승_치유시리즈-Art바셀린덩어리_아낌없이 주련다_바셀린_18×8×3cm_2011
필승_치유시리즈_병아리_아낌없이 주련다_바셀린_5×2cm_2011
필승_향(香)이 나는 조형물_양떼_파라핀, 향료_40×100×15cm_2011

두 번째 공간에 들어선 관람객은 앞서 촉각과 미각의 힘을 후각의 감각으로 더욱 집중시키게 된다. 명확하게 눈에 들어나지 않는 시각적 오브제들은 강한 향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만, 이것들은 규격화된 견고한 사각의 틀 속에 박제된 채 벽에 걸려있다. 관람객은 희미한 오브제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그 앞에 다가서지만 오히려 강한 향에 눌려 시각보다는 후각적 감각을 더욱 발동시키게 된다. 그 향의 원인은 바로 부드러운 파라핀 젤리의 바셀린 덩어리들인데, 작가는 이것을 조각적 매체로 사용하여 예수상, 피에타상과 같은 강력한 의미를 가진 도상들의 형체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 숭배와 영원의 도상들은 부드러운 질료적 속성과 강한 외관의 틀로 인해 기존의 상징성을 혼란시킨다. 게다가 이들의 맞은편에는 동일한 재료의 바셀린으로 제작된 막대형태의 금괴들이 배치되어 있다. 공기나 물에서도 빛깔의 변화가 없는, 강한 산화제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 금은 바셀린으로 제작됨으로써 그 가치를 역설한다. 말하자면 작가는 예나 지금이나 강력한 숭배의 대상들을 작품으로 선택하여 바셀린이라는 부드러운 재질로 변화시킴으로써 그것에 부여된 견고하면서도 보편적인 의미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이러한 유형적인 사물의 경험은 우리의 관념과 인식을 비유형적인 향으로 부딪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에서 작가는 견고한 대상들을 바셀린으로 전치시킴으로써 권력적 힘이 지배하는 미학의 기준에 의해 예술성이 지시하는 지점과 교환적 성격의 가치가 투자적 대상으로 전이되고 있는 모습을 경계시키고자 한다. 마치 적은양의 바셀린이 약이 된다면 많은 양의 바셀린이 독이 되듯이, 예술의 과도한 의미부여에 대한 오용에 대한 경고이자 그러한 예술의 염증반응에 대한 보호와 치유의 의미로서 제시된다.

필승_만져도 되는 작품_말_점자_시멘트, 우레탄 코팅_2011

이러한 의미들은 마지막 세 번째 공간으로 귀결되는데, 이곳은 마치 권위적인 박물관과 같은 모습으로 연출되어져 있다. 고급 진열장 안에는 앞서 두 공간에서 관람객이 감각적으로 체험했던 시각적 오브제들이 시멘트로 제작되어 돌덩이에 불과한 것들로 전이되어 있다. 이러한 점은 작가가 관람객에게 역사라는 공적 승인들에 대한 견고한 해석틀을 부여받은 박물관의 풍경을 통해 자신의 예술작품에도 굳어질 기준들에 대한 거리를 갖게 한다. 즉 예술의 수직적 계열을 경계짓는 것들, 가격을 가치로 대체하는 자본주의에서 경제 가치로 예술품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있는 모습들을 관람객에게 재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즉 예술에 대한 과도한 의미부여에 대해 관람객의 비판적 재사유를 위해 작가 자신이 제시했던 의미를 찾아갔던 체험된 순간조차도 또 다시 의심하고 재관찰하도록 한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이전 작품에서 발동시켰던 육체적 감각들보다는 시각적 판단과 사유의 과정을 연결짓고자 감상대상과의 비판적 거리를 재설정한 공간연출을 고안한 것이다.

필승_체험된 순간展_아뜰리에 아키_2011

이렇듯 작가는 다양한 체험을 체화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며, 그 과정들을 한데 어울러 관람객과 자신의 힘을 받고 내보내며 다른 의미를 생성시켜 나가고 있다. 말하자면 작가는 단지 시각적인 감각만이 아닌 촉지적 감각을 미각과 함께 체화하고 후각으로 흡수하는 육체적 감각을 동원시키는 체험된 순간들, 그리고 다시 거리를 두고 그것을 사유하는 체험된 순간을 교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작가에게 시각적 오브제들은 관람객의 사적 체험의 관계를 통해 소통, 공감, 교감이라는 확장과 수축의 과정을 반복하며, 서로의 힘을 체험이라는 실천을 통해서 실험하는 것이다. 즉 작가에게 그것은 작품의 능력, 그 힘의 들고 나옴을 무한히 늘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오윤정

Vol.20110307h | 필승展 / PILSEUNG / 鄭必勝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