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 사물을 이야기 하다

나현신展 / NAHYUNSHIN / 羅炫信 / painting   2011_0307 ▶ 2011_0317 / 일, 공휴일 휴관

나현신_푸른바니타스_아크릴채색_91×117cm_2010

초대일시 / 2011_0307_월요일_06:00pm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 공휴일 휴관

팝아트 팩토리 POP-ART FACTORY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82-17번지 Tel. +82.2.588.9876 www.pop-art.co.kr

욕망과 사물 ● 그림에서 일상의 재현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일상에서 흔하게 본 사물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의 소유를 연장한다. 주변의 평범한 것들이지만 개인의 경험에 의존하여 그것들을 오래 기억하고 간직하려는 욕망에서이다. 그림은 예전에 이루어 졌던 사건이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사물에 대한 향수를 현재와 미래에도 영속되는 것으로 보여주면서 시간을 넘어서게 한다. 초기 그림은 특정한 사물들이나 인물들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숭배하려던 의도에서 종교적 대상으로 묘사하였었다. 대부분 예술이 그러하듯이 그림도 종교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사물을 일상적인 목적으로 묘사한다. 정물화에서 작가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바라보면서 가치를 부여한다. 사냥에서 잡아온 것, 정원의 꽃, 책상 위의 잡동사니, 집안의 그릇 등 주변의 관심을 기록한다. 당시에는 사물들이 요즘처럼 그렇게 풍부한 때는 아니었지만 개인의 기억을 영속적인 시간 안에 담아 놓았다. 그래서 현재도 우리는 오래된 그림을 보면서 과거를 상상하는 것이다. 그러다 인상파 작가는 시각적 놀이로 변화시켰다. 사물보다는 그림이라는 것을 해석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이다. 그러한 사물에 대한 생각은 물질이 풍요로운 시기가 되면서 물신화(fetishism)의 한 단면으로 나타난다. 팝아트의 경우이다. 주변의 사물들이 대량 생산되어 풍부해지면서 무심해진 관심을 스스로 확인하게된 것이다. 실제 사물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기호까지도 사물화 시키게 된다. 첨단 공업화가 이루어진 현재 우리주변도 물신화가 극단적으로 심해지고 있음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의 물질적 풍요로움에 비해 진정 자신의 욕망에 의해 소유욕이 들어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모두가 타인의 욕망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서 나현신은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고자 시도하고 있다. "푸른방은 현실의 공간이자 판타지의 공간이며 자아의 표현으로서의 기억, 추억, 감정, 그리고 일상의 배경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푸른방은 때론 자화상으로서 꿈이 되고 추억이 되며, 또한 현실에서 부딪히는 사물로 나열된 나의 일상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작가가 언급하는 "꿈과 기억 현실", 그것은 실제에 대한 강박관념이다. 현재 자신의 욕구가 대량생산체제의 사회에서 강요받은 가짜 욕망이 아니라 본질적인 사물의 기억임을 확인하고자한다. 그녀의 그려진 주변의 사물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본의 순환적인 체제아래 강요된 소비의 욕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나현신_푸른바니타스_혼합재료_145.5×112cm_2010

나현신은 「푸른방」에서 주변의 사물들을 묘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보이는 것 모두를 묘사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찻잔, 접시, 인형, 촛대, 옷들과 같이 개인적인 관심을 기억하고 있다. 사적인 세계를 범주화하여 자유로운 자신의 영역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그것은 여성적 관심처럼 보이지만 그러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푸른색으로 덮어씌움으로써 작가 자신의 관점을 주장한다. 푸른색은 청명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쪽에 남아있는 우울함을 지니고 있다. 푸른색조의 화면(畵面)은 단순히 사적인 것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관심을 우울함과 병치시킴으로서 작품으로 승화된다. 화려하기도 하지만 무언가 남아있는 부정적 관점이다. 실제계 사물들에 대한 기억의 잔상일 것이다. 그 잔상은 언어로 언급할 수 없는 변형된 투명성으로 작가의 주관적 관심을 대변한다. 사물들의 이미지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상징은 일상의 언어처럼 서술적이지 않다. 그러면서도 언어로 언급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한다. 우리의 의식에 의존하면서 변덕스럽고 막연하고 불확실한 본능과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 막연함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될 수 있는 심리적인 것들로부터 온다. 주변에 사물들이 흔하게 널려있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지만 현실에서 경험하는 사물은 충족되지 않는 공허함이 있다. 라캉(Lacan)은 이러한 세계를 '실제계(The Real)'라고하면서 사람들이 지닌 '욕망'의 배경이며 결핍의 근원으로 본다. 실제계는 도달할 수 없는 존재로 구성되어있다. 내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있어왔고 생명을 유지하고 생존의 확신을 넘어서 직접 인식하거나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실제계는 암시한다. 이 세계는 부분적으로 우리들과 마주칠 수는 있지만 그 전체, 본디 모습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파악할 수 없는 세계이다. 그것을 파악하게 하는 도구는 상징계의 기호들이다. 상징계에서는 언어로 주변의 대상들을 분리하고 차이를 구분하게 하는 세계이다. 우리는 언어에 의존하여 언어적으로 사물들의 차이를 이해하고 그 관계 속에서 상징적으로 분절화하고 대상화 한다. 상징계의 질서체계 안으로 진입하는 것은 실제계와 분리를 수용하는 일이다. 모든 것을 기호로 제시되고 그것은 기표와 기의의 구성으로서 이해되기 때문이다. 외부 사물과 아무런 연관성 없는 기표는 현실에 존재하는 모든 관계를 끊고 자기 폐쇄적인 영역에 머무르며, 자아를 형성하기 시작한다. 상징계에서 실제 사물을 채워주기 보다는 기호화된 대상을 만들면서 실제로부터 소외와 결핍을 확인하게 한다. 그림에 그려진 사물은 욕망을 제시할 수 있지만 실제 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작품은 현실을 재구성하여 보여줄 뿐 그 자체는 아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스스로 살아가는 것을 느끼는 영역이고, 또한 스스로 존재하면서 심리적으로 다른 환상을 만드는 영역이기도하다. 라캉의 정신분석에서 '상상계'처럼 언어행위와 언어체계, 그림의 이미지 밖에 머물러 있는 일종의 실제계(the reality)의 잔여 영역을 구성한다.

나현신_푸른사물_혼합재료_72.7×91cm_2010
나현신_푸른사물_아크릴채색_72.7×182cm×2_2011

나현신의 이미지는 사물에 대한 집착 같으면서도 허구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이다. 사물들은 진열대 위에 놓인 상품처럼 수평으로 배열되거나 겹겹이 쌓아놓아 정물화가 아닌 새로운 문법으로 해석해야할 것이다. 사물의 장식적인 구성은 욕망을 반영하지만 그것을 덮고 있는 푸른색은 사람의 경험에 남아있는 현실의 기억들임을 말한다. 푸른 모노톤의 사물들에서 욕망은 절제된 사물의 기억을 찾는다. ■ 조광석

나현신_푸른사물_아크릴채색_90×90cm_2011

푸른 방 - 사물을 이야기하다. ● 푸른방은 몇 해 동안 내 작업의 주제였다. '푸른색'은 나의 복잡하고 무한하여 규정지을 수 없는 내면을 포괄하는 이미지의 색이며, '방'이라는 공간은 이러한 모든 총체적인 요소들을 둘러싼 추상적이고 구체적인 배경이 된다. 푸른방은 현실의 공간이자 판타지의 공간이며 자아의 표현으로서의 기억, 추억, 감정, 그리고 일상의 배경으로도 나타나기도 한다. 푸른방은 때론 자화상으로서 꿈이 되고 추억이 되며, 또한 현실에서 부딪히는 사물로 나열된 나의 일상적 공간이 되기도 한다.

나현신_푸른사물_아크릴채색_60.5×90cm_2010

전시된 사물들은 나의 생활에 가장 가까이서 사용되는 일상의 도구들로서 내게 각각의 역할들을 부여받아 의미를 가지게 되며, 이제는 소유의 의미에서 확장된 '나만의 사물'이 된다. 푸른 방의 사물은 내가 생활하며 드러나는 나 자신의 외적인 모습 뿐 아니라 그 안에 존재된 그러나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자아의 모습까지도 함께 만들어 간다. 그들은 단순한 주변의 사물들로서가 아닌 나의 작업과 삶에 있어 같은 공간에 공존하며 삶을 진행형으로 이끌어나가는 또 하나의 주체가 된다. 이 작업은 일상의 사물을 도구적 존재로서의 제한된 역할에서 벗어나게 하여 나의 삶과 자신의 일부분으로서 그 존재론적 사물로서 재탄생시키는 과정이다. 보여 지는 사물에 대해 규정짓는 역할을 없애면 그 안에는 관람자의 시선 혹은 작가의 시선으로서의 체험, 느낌들이 담겨지게 되며, '도구존재'로서의 사물을 모든 삶의 연관성들 속에서 드러낼 수 있다. 재현된 방의 사물들에서 우리는 분명 재현된 공간을 보지만, 이 재현은 지각으로 고정된 시선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나와 사물과의 관계들을 가시화 시키는 작업으로서의 체험 공간이다. 생활의 공간 안에 배치된 사물들은 본래의 모습에서 내게 의미를 부여받은 모습으로 새롭게 변화하게 된다. 또한 사물과 사물 혹은 공간과 사물사이의 일치되지 않는 결합이나 대립을 통해 사물의 일상성을 벗어나게 하며, 뜻밖의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한 놀라움을 주게 한다. 방이라는 공간 안에 집합된 일상의 사물들을 통해 삶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가고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꾸민다. 공간의 사물들은 현실속의 물건들과 똑같은 사물의 지위를 갖게 되지만 그 앞에 선 관찰자의 '미적가상'을 통해 나와는 또 다른 관찰자의 시선으로 푸른 방을 완성해 나가게 된다. 푸른방의 작업들은 이러한 총체적인 요소들을 일상의 사물, 그 중에서도 특히 나와 가장 가깝게 닿아있는 생활의 공간을 시각적으로 보여줌으로서, 사물을 공간적으로 또 인간적으로 보다 자신에게 가까이 끌어들이고 공간의 복제를 통한 사물의 일회적 성격을 극복하는 동시에 그 안에 내재된 또 다른 역할들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출구가 된다.

나현신_푸른바니타스_아크릴채색_116.7×91cm_2011

"사물은 때때로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아니 언제나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그것을 아주 가끔 혹은 어느 예기치 못한 순간에만 알아채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물을 통해 나는 일상을 보기도 하고 일상을 통해 사물을 인지하기도 한다. 인지되어진 사물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놓여있는 사물이 아니다. 그 사물은 낯익은 일상이며 일상은 나다. 또한 예기치 못한 순간에 발견하게 되는 판타지다. 일상에서 발견한 사물은 나 자신이기도 하다. 이로서 나는 완전하게 사물과 일치하게 된다." ■ 나현신

Vol.20110306g | 나현신展 / NAHYUNSHIN / 羅炫信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