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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1_030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7:00pm
갤러리 빔 GALLERY BIIM 서울 종로구 화동 39번지 Tel. +82.(0)2.723.8574 www.biim.net
겉 으 로 읽 으 면 / 누 이 오 래 비 생 각 / 안 으 로 읽 으 면 /깨 달 음 이 생 겨 나 날 아 오 니 / 새 끼 토 끼 두 마 리 가 깨 닫 다 / 울 엄 니 / 그 게 말 이 되 는거 냐 며 / 깔 깔 웃 으 시 니 / 떡 국 먹 고 / 방 금 네 살 된 조 카 도 / 능 글 웃 음 을 보 태 네 / 애~ 이~ 할 머 니 / 농~ 담~ 한~ 거~ 죠~ / 뭐 시 라... 하 하 하... /임 계 점 을 넘 은 웃 음 은 / 배 꼽 빠 지 고 / 웃 다 가 빠 진 배꼽 은 / 박 완 서 님 의 말 씀 이 / 꿰 매 주 었 네 / 실 없 는 농 담 말 고 / 후 대에 남 길 행 적 이 / 뭐 가 있 겠 나 ■ 홍인숙
홍인숙의 회화-내가 누이였을 때, 슬프고, 찡하고, 아름다웠던 시절 ● 홍인숙의 그림의 원천은 가족사와 개인사에서 시작된다. 그 원천에 의하면 작가는 집안에서 큰딸이며 큰누나로 통한다. 예로부터 큰딸은 살림밑천으로 여겨졌었다. 자기 몫의 삶을 살기보다는 가족을 위해서 희생하는 삶을 살기 마련이다. 그래서 큰딸은 울 일도 많다. 그 울음은 드러내놓고 우는 것이기보다는 속으로 삼키면서 운다. 이런 속울음이 간만에 겉울음으로 터질 때가 있다. 아버지가 죽었을 때 큰딸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울었다. 눈물방울이 흰 국화꽃잎이 되어 큰딸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고, 아버지가 가신 하늘 위로 길을 내며 하늘거렸다. 그렇게 홀로 된 어머니는 한쪽 사슴뿔을 잃었다. 그 어머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자개농의 일부를 가져다가 그림을 위한 액자로 삼았다. 액자를 만들고 남은 나머지를 이용해서는 아예 별도의 가구를 만들었다. 그래서 그 자개액자 속에, 자개가구 속에 어머니의 채취가 오롯이 담겨졌다. 더러 자개농의 출처가 다를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의미가 별반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 작가는 그림을 통해서 가족사와 개인사를 담아낸다. 그래서 우리는 본의 아니게(?) 작가의 살림살이를 엿보게 된다. 그 엿보기는 때로 시시콜콜한, 더러는 아픈 살림살이의 속살(속사정)에 가닿기도 한다(예술 특히 시각예술은 관음증과 관련이 깊다. 회화의 기원으로 알려진 나르시스 신화는 자기관음증의 한 경우로 볼 수 있고, 공감과 감정이입도 알고 보면 관음증의 한 기술인 것). 그 살림살이는 비록 작가의 가족사와 개인사에 속한 것이지만, 그러나 살림살이란 것이 알고 보면 어슷비슷한 것이어서 작가의 그림은 작가의 경계를 넘어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주고 공감하게 한다. 저마다의 가족사와 개인사를 곱씹게 하고 되새김질하게 한다. 되새김질은 작가의 그림으로 하여금 과거를 향하게 하고, 그렇게 과거에 맞춰진 초점이 향수를 자극한다. 그래서 그림의 형식 또한 조상들이 삶의 질감을 담아냈던 민화를 닮았고, 유년시절 보곤 했던 만화를 닮았다.
지금은 어른이 된 여자들이 소녀였을 때, 아니 유년이었을 때 아이들은 종이인형을 가지고 놀았다. 평면적인 색면과 가장자리 선으로 구획된, 나지막한 뾰족구두와 화사한 원피스를 입은, 노랑머리와 외부의 빛에 반응하는 서너 개의 광점을 포함하는 큰 눈의 소녀그림은 아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접한 이미지며 미술교과서였다. 그리고 선으로만 구획된 빈 화면을 색칠해 메우는 색칠공부가 보조교재로서 주어졌다. 어릴 때는 대개 그렇듯 창의적인 아이들은 그 교재를 모본 삼아 자기식의 그림으로 변형하곤 했는데, 홍인숙 역시 그랬다. 교재그림이 천편일률적인 스탠더드라고 한다면, 저마다의 형편에 맞춰 각색한 아이들의 그림이 오히려 독창적이었다. ●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작가는 아버지의 해묵은 책을 정리하다가 책갈피에 끼워진 그 그림들 중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자신마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자신의 유년시절로 되돌려지는 경험이었고, 딸을 향한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씨와 새삼 만나지는 사건이었다. 그 사건은 작가에게 일종의 사무침으로 와 닿았고, 자신의 원형의식과 맞닥트리는 무의식적 각성으로 와 닿았다(잊었으니까 원형이고 무의식이니까 원형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원형 말고 또 다른 원형이 있을지도 모른다. 원형에 관한한 그것이 무엇인지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융은 원형이라고 부르고, 라캉은 오브제 a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원형과 대면하는 낯 설은 경험을 실재계로 명명한다). 아버지의 마음씨가 작가의 원형의식을 일깨워준 것이다. 그리고 그 일깨움 그대로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되었고, 그림이 되었다. 원형의식을 파고드는 것, 가족과 집, 혈연과 지연의 의미를 재확인하는 것, 그 의미를 매개 삼아 사람간의 관계와 소통의 계기를 터는 것, 자기반성적인 계기를 맴돌면서 개별성을 보편성으로까지 밀고 나가는 것이 그림의 정박지가 되었다.
작가는 자신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또래 여자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특정 시절(종이인형을 가지고 놀던 시절)에 머물러있다는 점에서 한 시대적 초상일 수도 있는(한 시대를 코멘트 한다는 점에서) 이 원형소녀를 종이에 판화로 그리기도 하고, 결이 고운 광목천에 회화로 그리거나 한다. ● 선을 얻기 위해서 종이에다 먹지를 대고 연필로 눌러서 그린다. 그리고 색면을 얻기 위해서 원하는 색면 수만큼 종이판을 만들어 색을 칠하고 선묘 위에 중첩시켜 찍어낸다. 그 과정에서 미세하지만 종이에 요철이 생기는데, 평면적인 회화와는 비교되는, 판화만의 덕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 위에 가필하거나 다른 이미지를 추가해 그려 넣는데, 판화 고유의 맛을 살리면서 회화의 질감 내지는 생리와도 어우러지게 한다. 그 공정을 보면 이후 점차 판법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회화과정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고, 광목천 위에 그림을 그리는 근작에 와서는 아예 회화가 판법을 대체하기에 이르고, 덩달아 그림의 질감도 일정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더욱이 형태를 가두던 선마저 없어지면서 좀 더 열려진 화면으로, 좀 더 암시적인 화면으로 진화해가고 있는 느낌이다(여기서 진화를 꼭 발전의 경우로 볼 필요는 없다). 그림을 가두고 있던 가장자리 선이 없어지면서 색채가 더 밝고 화사해진 느낌이고, 소지 이면에까지 밴 색채로 인해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하고 우호적인 느낌이 배가되는 느낌이다.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기계적인 적용으로서보다는 그때그때 형편에 맞춰 판법이 도입되기도 하고 덧그리기도 하는, 판화와 회화가 그 경계를 허물고 상호 간섭되는 유기적인 과정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림은 곧잘 화면에 머물지 않는다. 화면에서 따로 떼 내어진 부분 이미지가 스티커 형식으로 재생산돼 유포되기도 하고, 사진의 일부로서 세팅되거나 한다. 이처럼 작가의 그림은 판화와 회화와 사진의 경계를 넘나들고, 그 넘나들기는 자수와 오브제의 차용에까지 미친다. 색색의 실로 정성스럽게 바느질된 화면을 보면 전통적인 규방문화(일정한 고립과 단절이 만들어준 인내와 기다림의 문화, 그래서 일정정도 내향적이고 내면적인 경향성의 문화, 그 경향성이 섬세한 장식으로 투사된 문화)에 젖줄을 대고 있는 여성 고유의 미적 감수성이 느껴지고, 기왕의 판화를 통한 요철에 대한 관심을 질감(그 자체가 삶의 질감에도 연동된)으로까지 승화시키는 심의적 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오브제의 차용과 관련해서는 전통적인 족자의 형식을 도입한다든지, 옛 기물 중 자개 틀로 액자를 대용한다든지(작가의 그림에서 액자는 형식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서로 분리되지 않는다. 액자는 말하자면 그림의 의미공간을 확장하는 계기로서 작용하는 것), 나아가 아예 자개 틀을 부분적으로 차용해 일종의 가구를 만든다든지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더욱이 그 가구에는 어머니에 대한 작가의 애틋한 감정마저 실려 있다. 오브제가 그저 형식실험을 위해서만 차용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오브제 자체가 이미 의미인, 혹은 어떤 의미가 덧입혀진 형태로서만 차용된다. ● 더불어 평자들의 의견이 일치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그림은 한눈에도 한국화를 떠올리게 한다. 여백이 그렇고, 화제가 그렇고, 때에 따라선 낙관이 도입되는 경우도 있다. 작가의 그림에는 모티브보다 더 넓은 표면적을 차지하는 여백이 있다. 여기서 여백은 그저 빈 공간이 아니라 의미로 충만 된 공간이며 암시적인 공간이다. 단순한 배경으로서보다는 그려진 부분을 대리하고 보충하는, 그려진 부분과 상호작용하는, 그려진 부분이 파생하는 의미들과 상호 간섭되는 일종의 암시적인 의미들을 생성시키는 공간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마다의 사정에 맞춰 그림의 의미를 읽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열려진 공간이다.
이렇듯 그 열려진 공간에는 남다른 의미가 숨어있다. 그리고 그 숨겨진 의미를 화제가 보충하고 강화한다. 작가는 화제를 위해서 한자를 도입한다. 주지하다시피 한자는 뜻글자며, 음절 하나하나가 사실상 단어에 해당한다. 그런가하면 동음이의어 즉 소리는 같지만 그 의미가 다른 글자도 많다. 이런 연유로 한자는 조어 즉 글자 만들기가 용이하다. 예컨대 작가는 그 품에 두 마리 새끼 토끼를 안고 있는 누이가 뜰에 핀 봉선화를 보면서 오라비를 생각하는 그림에다 少免(사실은 少와 免를 결합해 한 글자로 만든 조어)二悟來飛生覺이라고 한자로 화제를 적어 넣었다. 이 화제를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대략 누이 오래비 생각이 되고, 그 뜻을 헤아리면 깨달음이 생겨나 날아오니 새끼 토끼 두 마리가 깨닫는다는 뜻이 된다. 조어가 임의로 만든 말인 만큼 여기서 그 논리 여부를 따질 일은 아닌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겉 읽기와 속 읽기, 겉 의미와 속 의미의 상호작용을 살필 일이다. 이로써 그림의 겉 의미로는 누이가 오라비를 생각하는 그림이 되고, 그 속뜻으로는 동생들(새끼 토끼 두 마리)을 생각하는 누이의 애틋한 마음씨가 숨어있다. ● 속사정(속 말?)이라는 말이 있다. 속사정을 누가 알랴. 속사정은 미처 말로써 다 전달되지가 않는다(나는 언제나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더 많은 말을 한다. 무의식이 동시에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말은 상대에게 들리지가 않는다고 라캉은 적고 있다). 말은 불완전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불완전한 말은 불완전언어를 도구로 사용하는 예술을 통해서만 보충되고 전달되고 완전해질 수가 있다. 화제의 형태로 나타난 작가의 조어놀이는 놀이를 도구로 하여 불완전한 논리를 넘어서고, 이로써 말 못할(말로써 미처 전달되어지지가 않는) 속사정(속 말, 속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해주는 일종의 의미론적 장치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다.
작가의 그림을 판환지, 만환지, 자순지, 한국환지, 설친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작가는 그때그때 사정에 맞춰 그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고, 아우른다. 그렇게 장르가 허물어지는 경계 밖에서 작가는 격언 같고 경구 같은, 문학적이고 서사적인 그림을 그린다. 나와 이웃들의 살림살이를, 그리고 마음살이를 그린 그 그림들에선 표면적인 의미와는 다른 속뜻이 새록새록 파생돼 나올 것 같고, 뭔가 따뜻한 웃음이 묻어날 것만 같다. ■ 고충환
Vol.20110303g | 홍인숙展 / HONGINSOOK / 洪仁淑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