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1_0209_수요일_05:00pm
참여작가 김재선_정인영_정원숙_유용상_황제성
관람시간 / 11:30am~07:00pm
줌 갤러리 ZOOM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7번지 상 갤러리 6층 Tel. +82.2.323.3829 www.zoomgallery.co.kr
양화와 한국화의 사이 ● 김재선의 작업 「꿈꾸는 방랑자」 시리즈는 한국화의 조형원리와 서양화의 아쌍블라주의 기법이 조화를 이루면서 탄생한 특수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우선 작가의 근작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한지가 사용 되면서 한국인이 지닐 수 있는 얼을 표현하고 있으며, 한지의 포근함과 물성이 자아낼 수 있는 소박하고 담백한 맛을 간직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순히 그리는 회화의 범주를 넘어, 특수한 오브제를 부착하여 화면에 밀도감과 3차원적인 일루전을 강조하는 회화인데, 여기에 등장하는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고무신들은 한지를 녹여 액화상태로 만든 후에 다시 굳히는 방식을 통해 만들어진다. ■ 김재선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 = 십자가의 길 ● 당신은 진정한 행복을 느껴 본적이 있습니까? 이 세상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이라고 말하는 어떤 만족을 얻기 위해 살아갑니다. 일반적으로 행복이라 함은 풍족한 의식주, 권력, 명예, 부(富) 등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으로 우리의 마음은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요? 많은 돈을 갖고 있고, 높은 학력을 갖췄으며,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을 간접적으로 바라볼 때 그들은 자신이 이룬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 매일 매일을 긴장과 고뇌, 불안 속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는 그 이름 예수 그리스도는 2000년 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핍박과 고난의 길, 가장 낮은 길인 십자가의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와 명예, 권력을 탐하지 않고 오직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서의 짧은 생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좋은 길, 행복한 길을 양보한 체 고난과 희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무거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홀로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행복"이라는 나의 만족만을 위해 살아가는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위대한 희생과 사랑의 길, 십자가의 길을 이번 전시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를 통하여 전하고자 합니다. 작품 중 두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episode #1_Via dolorosa ● 예수님 즉, 신(神)인 존재는 왜 굳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못 박혀 돌아가셨나? 약2000년 전 모든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 그림의 형상을 드롭핑(dropping)기법과 오브제(objet)기법 등을 통해 우연적 요소들을 살려서 구상 비구상적인 면을 동시에 드러나게 함으로써 6시간 동안이나 십자가에 매달리시고 고난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작품입니다. episode #2_엎드림 ● 부활 하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린 시점에서 그린 것인데 못 박히신 자국이 있는 예수님의 발과 땅 위에 눈물 자국, 엎드린 그림자를 함께 표현하였습니다. 힘들고 외로운 십자가의 길을 대신 걸어가시고 다시 부활 하신 그 분의 사랑과 긍휼함을 의지하며 나아가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입니다. He predestined us to be adopted as his sons through Jesus Christ, in accordance with his pleasure and will to the praise of his glorious grace, which he has freely given us in the One he loves. (Ephesians 1:5~6) ■ 정인영
일상의 따스함 ● 인생은 역동적이거나 지나치게 불행하거나 너무 행복하거나 하는 극적인인생만 있는 건 아니다. 가만히 있다가도 길을 가고 있을 때도 누구와 얘기하고 있을 때도 문득 떠오르는 얼토당토 않는 상상들! 이런 온갖 상상들이 인생의 한 면을 재미나게 해주고 있어서 행복하고 그래서 붓을 잡는다. 상상은 사실을 외면하는 저 반대편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을 근거로 하기에 상상의 세계가 좀 더 구체화 되는 건 아닐까? 지구상에서 볼 수 없는 동물을 그리는 일은 쉽지 않듯이 말이다. 순전히 주관적인 재미겠지만 이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과도 같다. 그래야 인생이 조금은 덜 지루할 테니까. 행복하거나, 왜곡 돼있는 자신과 맞닥뜨리는 생소함, 이런 사소함이 생활에 섞여서 모르던 나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한 생각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길 희망하며 언제나 변치 않길 바랄뿐이다. ■ 정원숙
순간의 영원성(The eternity of an instant) ● 유용상은 최근의 작업에서 와인이나 음료 등의 물과 같은 유동적인 물질의 상태에 대한 상징적 속성과 그것을 담고 있는 컨텍스트로서의 유리잔이나 종이컵의 여러 가지 상황을 그려가는 것을 통해 작가의 삶과 인생에 대한 사색적 담론들을 사실적 이미지 속에 녹여내고 담아내는 작업을 해 나가고 있다. 유용상이 만들어 내거나 포착한 상황은 「인스턴트 러브(Instant love)」라는 작품 명제에서 보여주듯 순간적이고 찰라적인 사랑에 대한 담론이며 그 복선의 장치로 일회용 종이컵이나 거품, 그리고 립스틱의 흔적을 전면에 그려내고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작가가 지속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현대인의 일회성의 사랑에 대한 감상이나 판단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순간 혹은 영원성의 문제이거나 시간성과 공간성 속에 던져진 인간의 실존적 질문이며 그에 대한 고민들로 보여진다. ● 왜냐하면 그의 작업에서 흰 여백 위에 흔들리며 동시에 정지 되어진 복합 화면과 접안(接眼)화 된 시각 표면의 극한까지 물질에 근접된 듯한 시점의 시각적 장치는 표면적으로 나타난 작품명제와 연관되어 등장하는 상징적 소재의 지시적인 언어적 연결고리 이상으로 여러 겹의 의미층을 만들어내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기에 그 전제 위에 형성된 알레고리는 이미지가 갖는 상징의 지표적 범위 너머의 해석을 모색하도록 만든다. 특히 종이컵을 소재로 한 작업에서는 한번 쓰고 버리는 일회용 용기가 정지되거나 흔들리고 있고, 거기에 담긴 음료수는 과장된 거품으로 부풀려있으며, 컵에 묻은 립스틱은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인간의 순간적이고 포장되어진 욕망의 미묘한 느낌을 환기시키는 의미 수준에서 그 표면적 층위를 형성하지만 조금 더 다가가서 화면 전체의 조형적 구조를 살펴보면 립스틱이나 종이컵 형상의 경계면은 흘러가듯, 흔들리듯 흐려져 있으며 정지된 이미지를 확산시키거나 산란케 만든다. ● 현실이나 포착된 순간들은 흔들리거나 연장된 현실의 한 파편이고 일회적 속성을 가진 흔한 것들이지만 동시에 지속되는 시간의 좌표 축에 현실로 매 순간 나타나는 시간성의 한 단면일 수 있음을 유용상의 작업에서 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마치 작가의 "매일 살아가는 우리네 삶에서의 갈증처럼 순간순간 떠오르는 욕망의 한 단편들을 시원하게 해소시켜 줄 듯한 화려한 색의 음료를 일회용품에 담아 매 순간 해소시켜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허무하게 반복되는 일상과 같은 패턴화된 삶이라는 것은 일 순간의 만족이지만 곧바로 공허함을 느끼게 한다"는 평소 말에서처럼 부풀려 있고 화려해 보이는 순간순간의 욕망의 만족이라는 것이 짧고 덧없다는 것과 그러나 동시에 이 순간들이 영원을 함축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는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인간과 현대사회, 그리고 욕망과 존재에 대한 철학적 질문과 전통적이고 동양적인 사색의 사이 공간을 오가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다. 텅 비워져 있는 백색의 여백과 강렬한 색채로 충만한 컵 안의 음료수 그리고 과장되게 부풀려 있는 거품들과 붉은 색 짙게 드리워진 립스틱 등은 인간의 욕망과 존재 그리고 색(色)과 공(空)의 사념 속으로 이끌어 들이게 하는 정교한 시각적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진동처럼 흔들려 보이고 중첩된 이미지의 반복 혹은 연장은 종이컵 안 음료의 색채가 지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현전의 욕망들이 미끄러지고 흐트러지게 되어 욕망이란 결코 충족되지 못하는 것일 수 밖에 없음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며 동시에 이미지의 기표적 한계성마저 들춰내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 유용상의 작업에는 늘 음료가 담겨 있거나 비워져 있는 흔들리는 와인잔이나 종이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이미지 속에서는 정지된 듯 정확한 초점에 물체를 향해 극대화된 이미지가 중첩되어 시점의 융합과 복합이 한 화면 속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이때의 그 흔들림이라는 것은 시간의 궤적에 따른 실존적 의식의 흐름을 담아 낸 연장의 궤적이며 동시에 일순간만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사색의 궤적이며 현대인들의 극도로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사회적 행위들에 대한 성찰의 궤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컵에 담겨진 음료수 거품의 정교하게 묘사된 표피에 머물렀던 시선들을 흔들림 사이의 공간으로 가져가고 다시 되돌려 그곳에서 그의 작업 앞에 느린 걸음으로 서성이며 머물러 있어 본다면 그의 작업의 시각적 화려함 이면에 담겨진 이야기 마당에 들어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존재 그리고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과 마주앉아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 이승훈
생명의 순환을 노래하는 메타포의 시공간 ● 황제성의 또 다른 특징은 '문인화(文人畵)적 격조의 공간구성'이다. 물론 공간구성에 대한 문제는 이전의 작업에서도 꾸준히 보여준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는 다소 평면적인 여러 공간이 겹친 '층별 공간구성'이었다면, 지금은 한 화면에서 기운생동을 자아내는 '문인화적 공간구성'이란 점이 차별되고 있다. 전통 문인화는 작가의 사의(寫意)를 품은 사군자(四君子)를 빈 공간에 배치함으로써 명상적인 공간인 여백(餘白)을 완성한다면, 황제성 역시 이미 채워진 공간에서 그 문인화적 공간구성법을 새롭게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출현하는 형상은 같은 꽃이지만, 그 꽃은 배치되는 형식에 따라 대나무가 되고 국화가 되며 난초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여백의 공간을 자유롭게 유영(遊泳)하고 있는 물고기나 곤충들은 바로 쉼 없이 고민하고 번뇌하는 작가의 모습이며, 그것은 곧 '살아있음'이다. 황제성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한 가지 테마 즉, '생명의 순환'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느 경우엔 사실적인 표현으로, 단순화된 기하학적 표현으로, 중성적인 색감으로, 화려한 색조로…. 표현하는 외면의 형식이 아무리 제 모습을 바꿔나가더라도 그 내면의 주제의식에 변함이 없다면, 결국 그 모두는 하나의 언어일 것이다. ■ 김윤섭
Vol.20110203d | 신진작가와 중견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