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보민_김지민_노동식_박선기_우혜민_이동재_이상미 장영진_장준석_정혜련_최윤정_한기창_홍상식_황혜선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30am~09:00pm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 SHINSEGAE GALLERY CENTUMCITY 부산시 해운대구 우동 1495번지 신세계 센텀시티 6층 Tel. +82.51.745.1508 centumcity.shinsegae.com
(Try, Reach, Show) Beyond Limits ● 생각해 보면, 그림을 그리고 미술이란 것을 하는데 이용되는 것이 연필, 붓, 물감으로 국한된 기점은 중, 고등학교 시기인 것 같습니다. 연필도 그냥 연필이 아니라 4B 연필, 물감도 수채화 물감으로. 초등학교 시절 풍경을 그려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하얀 크레파스로 도화지를 가득 메워 눈 내린 풍경을 표현한 한 친구가 장난친다고 야단 맞고 난 후로 미술에 흥미를 잃었다고 이야기를 했을 때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남들과 다르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에 대해서 말입니다. 같은 이야기도 시로 쓰는지, 소설로 쓰는지, 극으로 쓰는지, 영화로 만드는지에 따라 전해지는 이야기가 갖는 감동의 크기가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영향력이 달라지는데, 왜 유독 미술에서만은 정해진 테두리 안에서 얌전하게 늘 사용하던 것들만으로 이야기해 온 걸까요? 여기, 14인의 작가가 있습니다. 그 테두리를 훌쩍 뛰어 넘어 새로운 언어, 새로운 통로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들입니다. 먼저 그들이 사용하는 독특한 재료가 눈길을 끌 것입니다. 그것이 시작일지는 모르지만, 이야기의 끝은 분명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사연을, 남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물질과 비물질이 이들 작품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 이야기를 간략하게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김보민의 작품에는 환상과 현실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가 존재합니다. 모시, 삼베, 그 아래에서 비쳐 나오는 은은한 색과 수묵담채가 주는 따스함은 직선으로만 표현되는 서울의 빌딩, 그리고 그것을 표현한 라인 테이핑이 주는 딱딱함과 대비됩니다. 테이핑의 비현실성, 차가움, 그리고 수묵담채가 주는 친밀한 과거로의 회귀. 이런 반전과 대비가 작품에 묘한 환상성을 가져다 줍니다. 김지민의 작품 속 끝없이 이어지는 상표, 라벨의 군상은 앞으로 나아가는 듯 이어지고, 이어지지만 돌고 돌아, 꼬리를 물고 도로 돌아옵니다. 상업성의 상징일 수도, 그것에 대한 비판과 숭배의식이 공존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상관없다고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족쇄, 멍에, 덫. 그것을 상징하는 상표와 라벨이 작품의 중심에 있습니다. 노동식 작가에게 솜은 기억 그 자체의 일부이자 외부에서 유입되어 변형된 기억과 이미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업은 개인적인 기억에서 시작된 솜이라는 물질로 자신과 타인의 기억, 그리고 환영의 이미지를 재현하는 과정입니다. 박선기의 드로잉은 공간 속에 나일론줄로 매달린 숯 조각이 모여 이루어냅니다. 그의 작품에서는 공간도 작품의 재료가 됩니다. 눈 앞에 존재하지만 작은 덩어리들이 부유하고 있어 환영처럼 느껴지는 공간을 통해 조용한 긴장감을 갖게 됩니다.
우혜민은 인치(inch) 단위의 색색의 지퍼로 동화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을 표현합니다. 현대 사회라면 누구나 옷, 가방, 신발 등에 하나씩은 달고 있을 지퍼가 작품들 속에서 모이니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픽셀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작가는 수작업으로 조합된 이미지의 표면을 "내 감성과 기억의 껍데기"에 비유하며 관객을 아련한 향수의 공간으로 이끕니다. 쌀과 콩으로 이야기를 전하던 이동재는 이제 레진 조각과 크리스탈 조각을 캔버스로 불렀습니다. 레진 조각으로 만든 작은 노란 별과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탈 조각을 이용해 우리 시대의 스타, 아이콘(icon)을 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용되는 재료와 표현된 대상의 유기적인 관계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단면'에 대한 고민을 이상미는 작품 속에 실로 풀어 놓았습니다. 일상의 장소와 사물들이 평면으로 옮겨지면서 한 올 한 올의 실이 쌓아 올려진 드로잉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방사 형태로 퍼져 나오듯 빽빽하게 배열된 비비탄알은 장영진의 작품 속 인물에게 생기와 폭발적인 에너지를 느껴지게 합니다. 표현되지 않고 느낌으로만 전달되는 에너지의 파동을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힐 것 같은 성질의 것으로 바꾸는 역할을 비비탄알이 해주고 있습니다. 장준석의 작품 속 '꽃'이라는 작은 모양의 폴리에틸렌 조각들은 우리들입니다. 우리 하나 하나의 객체가 모여 군집을 이루고, 사회를 형성하고, 정해진 약속과 규범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작가의 작품 속 이야기입니다.
가죽은 한 때 생명을 갖고 살아 있었던, 하지만 지금은 죽은 물질입니다. 정혜련은 그런 가죽으로 환상의 이야기, 이야기 속 주인공, 그리고 그 공간과 배경을 만들어 냅니다. 시간의 흔적을 상기시키는 가죽이라는 재료로 작가의 머릿속에 저장된 기억들이 변형된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최윤정은 흙의 다른 모습을 찾아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는 작가입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흙은 뾰족하고 날카롭게도, 구름처럼 만지면 녹아버릴 듯한 느낌으로도 탄생합니다. 한기창의 작품에서는 뼈의 모습이 담긴 엑스선 필름이 조각조각 잘려 식물이 되기도 하고 동물이 되기도 합니다. 차갑고 인공적인 엑스선 필름으로 생명을 지닌 대상이 표현되면서 그의 작품에선 탄생과 죽음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홍상식은 빨대라는 액체를 빨아들이는 도구로 가슴, 입술, 그리고 일상의 사물들을 부조의 형태로 표현합니다. 작가는 빨대를 욕망하는 주체와 객체를 이어주는 매개체로 봅니다. 가늘고 길고 속이 비어있는 빨대가 갖는 가벼움이 부드러운 섹슈얼리티가 느껴지는 인체 부위와 일상적 사물로 표현되면서 관람객이 갖고 있는 욕망이 작품을 통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황혜선의 작업은 액자 속의 드로잉이 밖으로 나와 평면의 조각으로 일상에 자리한 것입니다. 얇은 알루미늄 선으로 표현된 드로잉 같은 조각, 조각 같은 드로잉은 차갑고 조용하고 정돈된 느낌이지만 그 속에는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드는 울림이 있습니다.
이 14인의 작가들이 모두 만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그건 새로운 것을 사용하고 새로운 것을 표현하는데 두려움을 갖지 않았다는 점, 재료와 내가 전하려는 이야기가 불편함 없이, 때로는 의도적으로 불편한 관계로 만나 하나의 합을 이루었다는 점, 처음 시작한 곳에서 더 먼 곳으로 나아가 편안한 것, 쉬운 것의 경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는 점일 것입니다. 새해 첫 전시로 신세계갤러리에서 마련한 『Beyond Limits』展을 통해 2011년 한 해 여러분들이 어려운 문턱을 넘어 예술에, 전시에, 전시장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실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신애
Vol.20110118d | Beyond Limits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