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의 기호 : 익명적 자아의 얼굴들

장양희展 / CHANGYANGHEE / 張樣熙 / printmaking.installation   2010_1227 ▶ 2011_0105 / 공휴일 휴관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판_107×36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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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공휴일 휴관

갤러리 이드_GALLERY ID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 2가 80-4번지 충북빌딩1층 Tel. +82.10.5645.2199 cafe.naver.com/storyart21

(전략) ...장양희는 이미지를 정착시키는 매체로서 PVC 필름을 사용하여, 그 위에 아크릴로 그리거나 에칭이나 다른 판화적 기법을 활용하곤 하였다. 현재는 빛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편을 택하는데, 라이트 패널을 만들거나, 더 나아가 LED를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매체를 사용하건 간에 작가가 형성하는 이미지는 얼굴이다. 그것도 전체의 윤곽이나 특징적인 부분을 교묘하게 제외하거나 생략하거나 아니면 흐린 상태로 보여준다. 또한 하나의 이미지는 여러 겹의 레이어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마치 현대의 디지털 이미지가 3개의 색원소나 이진법적인 신호체계에 의해 구성되는 것을 응용하여 그 형상의 겹을 분할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순되게도 디지털의 이미지가 적분에 의해 실현되는 이미지라면, 장양희의 이미지는 미분에 의해 해체과정에 진입하는 이미지라는 것이 올바른 평가일 것이다. 즉 그의 얼굴들은 생성이 아니라 이미지가 소멸하는 과정 속에서 출현하는 양태를 보여준다. 그러므로 장양희의 이미지는 Modus vivend라는 사회나 삶이 추구하는 욕망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가버린 후에 엄습하는 Memento mori를 극화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 채색, LED 조명_126×78×10cm_2010

익명적 이미지 ●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매일 매일 수없이 많은 얼굴들을 보고 산다. 그 중에 낯익은 얼굴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얼굴들은 모르는 존재들의 것들이다. 즉 익명의 기호들이다. 현실이 구성하는 사회의 이미지는 이러한 익명의 기호들이 종합된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러한 익명성은 통념화된 대중성이나 사회성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이것이 전형 혹은 정형화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작가의 방법론에 기인한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판_72×72×6cm_2010

얼굴은 한 인격(persona)를 표시하거나 읽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많은 미술가들이 얼마나 오래 동안 그리고 표현해 왔는지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장양희는 과거 수많은 시도의 연장선 속에서 작업을 수행한 것일까? 그가 연구한 얼굴은 어떻게 그것들과 변별력을 갖출 것인가? 단견에 장양희가 그리는 얼굴이미지는 초상화라는 장르가 지닌 모든 개념에 상반되는 외형을 지닌다. 즉 정확한 미메시스를 통한 재현을 포기할 뿐만 아니라 그 재현을 해체하기로 결심한 듯 하다. 그래서 주목되는 것이 익명성인데, 작가는 또한 이것을 마치 사회학자처럼 일반화하지도 않는다. 그의 익명성은 범죄학(criminology)에서 사용되는 부분적 가리기를 차용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작품의 전체적인 해석을 위해서는 턱없이 부족한 이슈만을 제공한다. 만약 거기서부터 출발하자면, 작품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방식은 그런 식의 익명성에 상응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얼굴은 전체의 윤곽이나 인상을 확인할 중요한 단서를 숨기거나 화면 밖으로 잘려나간 상태로 보인다. 여기까지가 학문적인 이론이 설명할 수 있는 한계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_29×60×8cm_2010

정작 정체성(identity)을 지웠을 때 이미지는 그대로 정물이거나 풍경이 된다. 무식하게 연관하자면, 들뢰즈의『기관 없는 신체』쯤 될 것 같다. 여기서부터가 장양희 고유한 조형사고가 형성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얼굴의 윤곽이나 굴곡 그리고 표정이 조성하는 얼굴의 풍경을 읽게 된다. 즉 편견이나 선입견을 완전히 제거한 상태로 신체의 일부를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즉 얼굴은 순수한 기호로서 빛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 순수성이 무아적인 것은 아니다. 관객은 여러 다양한 얼굴 속에서 종합되는 어떤 것을 감지하게 될 것이다. 즉 자기 자신이다. 작가에게도 이미지들은 나로 환원되는 얼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가변설치_210×200cm_2010 장양희_ANONYMOUS FACE_투명필름에 디지털 프린트, 아크릴판_177×68cm_2010
장양희展_갤러리 이드_2010

기술을 읽은 서정적 자세 ● 장양희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정서는 대체로 가벼운 비극성과 함께 애수가 찬 서정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서는 그가 활용하는 판화적 기법이나 디지털의 인상을 풍기는 이미지 투영과는 대조적인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만남이 이룬 기법상의 혼재가 그의 작품을 독창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게 만든다. 다시 말해 첨단의 매체를 활용하면서도 감각적으로 가장 아날로그에 가까운 태도를 보여준다는 뜻이다. 또한 이러한 기술이 묘하게 제의적인 호소력을 갖추게 되면서 발생시키는 서정성이 빠르고 스펙터클에 치중하는 현대의 디지털 시각문화의 속성과는 다르게 고요하고 관조적으로 감지된다는 것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후략) ■ 김정락

Vol.20101227d | 장양희展 / CHANGYANGHEE / 張樣熙 / printmaking.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