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222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1월1일~2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쿨'하게 표현하는 그의 쿨하지 못한 이야기 ● 88만원 세대. '꿈 많은 20대'라 쓰고, '허무주의'라 읽는다. 그가 붓을 들기 시작한 이래로 내가 경험한 그의 작품은 늘 차갑고, 어두웠다. 어디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함으로 드넓은 꿈과 이상을 품어야 할 20대의 작품은 분명 아니다. 그가 바라보는 이 시대가 이토록 차갑고 싸늘하기만 한 것이었을까. 몇 년 전 그에게서 처음 선물 받은 작품은 황량한 벌판위에 쓸쓸한 나무 한 그루가 그려진 모습의 작품이었다. 혼자 사는 방에 떡하니 걸려 있는 그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켠에 나도 모를 쓸쓸함이 묻어난다. 그런데 얼마전 그의 청구전의 주제는 쓸쓸함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버려진 풍경'이었다. 작품들은 도심 한 가운데 부서지고 버려진 건물들을 차갑게 보여준다. 앙상한 나무 가지와 차가운 콘크리트. 분명 어딘가로부터 '버려진 풍경'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들 뒤에 숨겨진 '사람'을 보았다. 버림받고, 소외받는 우리 사회의 '힘 없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공감', 즉 '함께 아파하기'가 그토록 차갑게 표현되었다. 마치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한 여인의 춥고 외로운 모습이 연상되는, 있는 그대로의 '사람' 이야기다. 바로 큰 꿈을 품고 당당하게 성인이 된 20대가 경험하고 있는 불확실한 미래와 냉담한 현실 속의 '나와 너'의 모습을 그토록 차갑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왜 그는 열정과 아름다움이 가득한 20대의 눈으로 아픔과 허무를 이야기할까.
덩치 값 하는 덩치 큰 소년. ● 창밖으로 부산항과 영도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산 위에 위치한 전형적인 부산의 한 남자중학교. 까까머리 중학교1학년 내 친구 해진이는 어려서부터 사람을 '우르르' 몰고 다니는 친구였다. 내가 학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이 친구가 끌어다 준 표로 후보 3명 중 80%의 득표율에 육박하는 당선을 일궈낼 정도였으니 말이다. 나의 모교는 당시 유독 빈부격차가 심했던 학교라 시셈 어린 다툼과 주먹다짐은 빈번했고,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들이 참 많았다. 상대적으로 덩치가 크고 싸움을 잘하는 친구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키 작고 힘 없는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혔다. 해진이는 그 때나 지금이나 덩치가 비슷했다. 중학교 이후로 성장이 멈추었으니, 당시에는 꽤나 덩치가 나가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해진이는 달랐다. 마음이 고왔다. 그리고 여렸다. 자기보다 덩치가 작고 힘이 없는 친구를 감싸주는 친구였다. 싸움 못하는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그냥 보고 있지 못했다. 자기보다 더 싸움 잘하는 녀석에게 큰 소리로 대들고, 싸움을 말릴 줄도 아는 '평화주의자'(?)였다. 그렇다고 해진이가 대단히 싸움을 잘하는 녀석도 아니었다. 그래서 종종 대신 맞기도 했다. 그러니 주위에 사람이 많을 수 밖에. 나는 당시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친구의 도시락을 대신 싸갖고 다녔다. 물론 우리 어머니의 수고와 마음이었다. 그런 모습을 본 우리는 서로를 통해 '사람'을 향하고, '사람'을 위하고, '사람'의 '사람됨'을 존중해 줄줄 아는 마음을 배우며, 더욱 친해질 수 있었다. 억울함, 소외감, 아픔을 진심 가득 담아 가슴으로 같이 울어주고, 공감할 줄 아는 그가 '붓'을 들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우리의 머리가 크면 클수록 학교라는 작은 사회보다 더 큰 사회는 힘 없는 이들을 향한 배려와 사랑보다는 무형의 폭력을 휘두르며, 사회로부터 더욱 소외시키고, 격리시키며 심지어 숨통을 죄이기까지 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경험하게 되었다. 결국 흰 캔버스 위 아래로 휘젓는 그의 붓은 다름 아닌 그가 어려서부터 온 몸으로 보호하고자 했던 이들을 대신한 '소리없는 아우성'이다. 그래서 때로는 애절함과 쓸쓸함이, 때로는 분노와 허무가 묻어나는, 차갑기 그지 없는, 그야말로 '사람'을 향한 그 만의 사랑의 '몸 짓'이 그려지는 것이다.
춥다, 그러니까 사랑하자. ● 20대는 생기발랄하다. 역동적이다. 20대가 담아내는 정서만큼 다채로운 색깔은 없다. 하지만 주위의 수많은 우리 세대에게서 나는 오히려 회색 빛깔의 20대를 종종 경험한다. 이들은 '유행'이라는 탈을 쓰고, '주류'와 '대세'에 편승한 직업 세계를 쫓는다. 이들은 대세를 조장하는 이른바 '미디어'가 제공하는 감성만을 수동적으로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쿨함'을 강요하는 미디어는 '서로' 보다는 '개인'에게 더 집중할 것을 주장한다. 오히려 '쿨하지 못해 미안해'하기 까지 한다. 서로 부대끼고 아파하면서 서로의 분명한 색깔 위에 서로의 색깔이 덧입혀짐으로써 생기는 새롭고 다양한 감정들을 이야기하기 꺼려한다. 하지만 해진이는 '지금' 그리고 '여기서' 느끼는 다양한 20대의 감정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낸다. 20대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별의 아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한 분노, 관계의 단절과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쓸쓸함, 잊혀진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함, 그리고 버려진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공감; 이 모든 감정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 그러니 그닥 '쿨'하지 못하다. 하지만 나는 그의 작품들의 저변에 흐르는 단 하나의 공통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다. 바로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그의 진실된 사랑의 언어가 그의 붓으로 차갑고, 무덤덤하게, 이른바 '쿨'하게 표현된 것이다. 차갑고 어두워 보이는 색감과 구도 속에 표현된 것은 다름아닌 따뜻함이며, 인간애다. 어쩌면 그가 담아내는 무미건조한 풍경은 우리가 발딛고 사는 왜곡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다. 외면할 수도 없는, '쿨'하게 받아들여야만 하는 '불편한 진실'인 셈이다. 결국에는 차갑고 어두운 현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더욱 부등켜 안고, 함께 울고 또 웃으며,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과제'를 가슴으로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쿨하지는 못한' 2010년의 그가 나는 참 좋다. ■ 이영준
Vol.20101224b | 김해진展 / KIMHAEJIN / 金海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