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iff Hanger

정용국展 / JEONGYONGKOOK / 鄭容國 / painting   2010_1222 ▶ 2010_1230

정용국_Cliff Hanger展_이브갤러리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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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222_월요일_05:00pm

이브갤러리는 ㈜ 이브자리에서 운영합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0:00am~06:00pm

이브갤러리_EVE GALLERY 서울 강남구 삼성동 91-25번지 이브자리 코디센 빌딩 5층 Tel. +82.2.540.5695 www.evegallery.co.kr blog.naver.com/codisenss

정용국, 변환의 시대를 모색하다 ● 미술사를 공부하고 현대미술사를 강의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지난 20~30여년을 설명하지 못하여 난감할 때가 자주 있다. 현대미술사 교재와 참고문헌을 둘러보아도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만한 것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미술운동 혹은 미술사조라 할 만한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것은 지난 세기가 대규모 성장과 변혁으로 시작되어 자조적인 반성과 비판의 반작용으로 마무리된 이후, 21세기는 실제로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도 기대해서도 안되는 불능의 시기처럼 펼쳐지고 있다는 반증이라 할 것이다. 물론 예술의 영역에서 시대적 역사의식을 앞세운 굵직한 미술운동이나 비판적 저항을 기대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발상일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적 진단이 불가능한 가운데 상업 미술계의 팽창과 그 속에서 대중스타처럼 유명세를 구가하는 개별 작가들의 눈부신 약진을 목도하고, 문화산업과 예술경영을 내세운 공공기관이나 기업 주도의 문화예술 행사와 사업이 다채롭게 펼쳐지는 현실을 눈앞에 둘 때, 문화예술 본연의 토대와 취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 일반의 제도와 체제가 기성의 구조와 틀을 전제로 할 때, 예술은 그 경계를 넘는 비판적 인식과 자발적 선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비판적 인식을 일깨우고 기성의 관념에 도전하는 예술의 빛을 기대하는 것은 지나간 시대의 미몽이자 낭만적 회한에 불과한 것인가.

정용국_Cliff Hanger展_이브갤러리_2010

20세기 말에 태어나 21세기에 청장년 기를 보내는 세대는 이런 굴절의 시대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서구와 시차를 인정한다 해도, 한국의 20세기는 후발주자로서 눈부신 산업성장과 근대화 과정을 압축적으로 이룩했으며 20세기 말 이후에는 그 시차의 의미가 무색할 정도로 발 빠른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청장년 세대는 그 성장의 당사자인 부모 세대의 삶을 고스란히 지켜보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 영향권 아래에 있지만 스스로 부모가 된 21세기에 그들의 갈 길은 혼미하기만 하다. 부모 세대에 비해 현격하게 개선된 삶의 조건을 누리고 있지만 어려움 속에서 성장을 이룩한 부모세대의 벅찬 보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고 상대적으로 윤택한 현실은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누리지만 허허로운 현실, 큰 탈 없이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 감지되는 미세하지만 예리한 위기의 국면들은 그것을 토로하고 해결할 무대와 기회마저 박탈당한 것처럼 보인다. 벼랑 앞에 내던져진 것 같던 부모 세대 이후 많은 것을 이룬 것 같지만 실상 그 벼랑 앞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기도 하다. ● 시대적 흐름 속에서 작가를 읽고 그 필연적 연결고리를 발견하려는 것은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의 업보라고 할 것이다. 2010년 연말 정용국이 『클리프 행어 cliff hanger』라는 제목으로 개최한 여섯 번째 개인전은 작가로서 조심스런 변화의 제스처를 모색하고 있다. 2000년대 한지에 미세한 수묵의 필치로 자가증식적 이미지를 그리던 작가는 2010년 들어 매체와 소재, 주제의 모든 면에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브갤러리의 그리 크지 않은 전시 공간을 작가가 생활하는 일상의 공간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해석했다는 점에서 느슨하지만 장소 특정적인 설치의 형식을 갖췄으며, 기법과 매체 면에서도 회화와 설치의 방식을 동시에 시도하고 있다. 유리로 된 벽면에는 합성수지로 만든 작은 인물들을 줄줄이 이어 플라스틱 발처럼 늘어뜨렸다. 주형으로 떠낸 익명의 작은 인물들은 그야말로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있는데 가까이 들여다보면 모두 동일한 그 인물들이 각자 바로 위 인물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낭떠러지 끝에 매달린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이 만화처럼 희화화되는 순간이자 익명성 속에 매몰된 현대인들의 일상화된 위기의 순간이 매우 직접적인 방식으로 결정화되는 순간이다.

정용국_Cliff Hanger_합성수지_가변설치_2010

이 녹색 인물들을 사이에 두고 전시장은 작가와 작가의 공적 공간, 그리고 작가의 가족과 가정의 사적 공간을 상징하는 회화 작품들이 마주 보도록 배치되었다. 얼굴 없이 목과 어깨 상반신 부분을 그린 네 인물들이 마주하고 있다. 한쪽에는 재킷을 입은 작가의 모습이, 그 맞은편에는 작가의 아내와 두 아이의 모습이 있다. 아내는 양 옆에 아이들을 챙기며 식사 중인 것으로 보인다. 작가의 모습 옆에는 회의 시작 5분전 회의실의 모습을 그린 장면이 있고, 가족들의 그림 옆에는 식사준비로 분주했던 부엌의 장면을 볼 수 있다. 빈 회의 테이블을 감도는 긴장된 공기와 분주하게 음식을 준비하던 주인이 갑작스럽게 떠나버린 것 같은 빈 부엌은 직전의 열띤 움직임과 어수선한 흔적들을 그대로 담고 있다. 유리 절벽에 줄줄이 매달린 녹색 인간들을 사이에 두고 전시장은 작가의 일상과 삶에 대한 우의적인 두 공간으로 바뀌었다. 한쪽 어깨가 처진 남자는 오늘도 위기의 절벽에 매달린 인물처럼 주어진 임무를 헤쳐 나갈 것이다. 얼굴 없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아내와 두 아이도 전쟁처럼 음식을 준비하고 치열하게 식사를 마칠 것이다. 각자의 영역에서 네 가족은 본인의 역할을 클리프 행어처럼 가열차게 수행하고 있다. 얼굴이 없어 표정과 감정을 읽을 수 없는 네 인물들은 합성수지 주형의 작은 인물들처럼 익명의 모습이지만 매우 많은 사연과 풍부한 정서적 요소들을 담고 있다.

정용국_5minutes ago_나무패널에 피그먼트_60×60cm 2010
정용국_after 5minutes_나무패널에 피그먼트_60×60cm_2010

이번 개인전에서 합판 위에 과슈, 흑연 등으로 그린 형상은 이전 정용국의 특기였던 미세한 세밀묘사에서 벗어나 있다. 동물과 식물의 형상을 결합하여 자가증식적으로 발전하는 가상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그리던 정용국은 주제와 형식면에서 모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지독한 그리기로 내적 침잠에 일관하던 그가 세상 밖으로 눈을 돌린 것 같다. 작가로서 개인으로서 회화를 대하던 방식에서 어쩔 수 없이 그의 생활에 직업에 예술에 개입해 들어오는 가족과 아이들, 학교와 직장의 일들이 그를 변화시킨 것이다. 외연적 관계로 그의 작업이 시선을 옮겨갔으며, 그에 따라 회화적 실천의 방법도 변화를 맞았다. 얼굴 없는 인물과 일상의 공간, 익명의 작은 인간군상들은 사회와 가정,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을 오가며 오늘도 허허롭게 위태롭게 가열차게 삶을 이어가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자 평범한 현대인의 모습이다.

정용국_untitle_나무패널에 피그먼트_60×60cm×3 2010
정용국_untitle2_나무패널에 피그먼트_60×60cm_2010

지난 10여년 집요한 회화적 터치로 정밀한 완성도를 보여주었던 정용국이다. 그가 그 시기를 지나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글 서두에서 언급한 시대적 과제와 작가적 실천이 어느 정도 싱크로율을 보여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그러나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청년기를 넘어 중장년기로 이행하는 삶의 국면을 인식하여 그에 따르는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내밀한 자폐의 공간에서 그리기에 몰입하던 작가가 자전적 삶을 바탕으로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 시작이자 전주곡이라 할 수 있다. 이후 펼쳐질 그의 작업이 어떤 것이 될지 아직은 가늠하기 어렵지만, 일상적이고 사소하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삶의 편린들에서 시작될 것을 희미하게 읽을 수 있다. 그의 다음 작업을 기다려보자. ■ 권영진

Vol.20101222f | 정용국展 / JEONGYONGKOOK / 鄭容國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