艸 ․ 埶 ․ 云

藝-안동 원로작가 초대展   2010_1221 ▶ 2011_0121 / 월요일 휴관

김예순_산사_캔버스에 유채_50×65.1cm 김종영_아! 대한민국_혼합재료_90.9×72.7cm

초대일시_2010_1221_화요일

주최 / 안동시 주관 / 안동문화예술의전당_(사)한국미술협회 안동지부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안동문화예술의전당 ANDONG CULTURE & ART CENTER 경북 안동시 축제장길 66 상설전시장, 1전시실 Tel. +82.54.840.3600 www.andongart.go.kr

지역미술의 모멘텀경북 북부지역의 미술숲을 가꾸는 작가들 안동문화예술의 전당 개관에 때맞추어 경북북부 지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들의 농익은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는 특별전이 마련되었다. 초대작가들은 안동,영주,청송,예천,봉화,문경,상주 등지에서 작품활동을 하면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지역의 미술발전을 이룩한 작가들이다. 전시 타이틀도 이점에 착안하여 '나무를 심는 사람' 혹은 '나무 심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란 뜻을 지닌 '초(艸)•예(埶)•운(云)'으로 정했다고 한다. (전시명은 '예(藝)'의 자형을 음부와 뜻부로 풀어놓은 것이다) 척박한 영토에 뛰어들어 미술문화를 개척하고 미술밭을 조성한 공로를 기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건물의 주춧돌에 비견할만한, 지역의 중추적인 작가 열 한 명이 참여하고 있다. 손쉽게 획득할 수 없는 깊이감과 노련미는 원로작가들의 화관(花冠)이 되고 있는데 지역에 대한 애정이 큰 만큼 이들 작품에는 향토에 대한 자부심과 따듯한 시선이 스며있다. 고향 산천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그들의 작품안에 용해된 조형의 내역은 무엇인지 각각 점검해보자. ● 김예순은 명승지와 설경, 그리고 높은 봉우리의 산을 모티브로 삼는다.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피사체를 카메라 렌즈로 담듯이 마음에 드는 풍경을 펼쳐낸다. 또하나 그의 그림에선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데 이것은 대기의 표현일 수도 있고 바람의 표현일 수도 있다. 그림속에서 한줄기 바람은 내가 가야할 길을 앞질러 가거나 골짜기 깊은 곳, 알 수 없는 또다른 세상으로 내달린다. 바람과 공기에 의해 진동하는 대상을 부드럽고 미세한 붓 터치로 다독거리며 대상의 이미지를 감싸안는다. ● 김종영의 회화는 원색 대비로 뜨겁다. 화면은 빨강과 파랑, 청록의 마찰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생동하는 필선이 눈에 띈다.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에서 받은 감흥을 원색의 칼라와 필선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이렇듯 강렬한 색조와 콘트라스트, 그리고 역동적인 필선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어쩌면 그에게 캔버스는 악기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색언어와 필선이라는 활로 캔버스라는 악기를 연주하여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다. 고운 선율과 강한 선율이 교차하고 고조되었다가 다시 고요해지며 이와 같은 수법을 거듭하면서 감상자를 어떤 환타지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김종한_상리에서_캔버스에 유채_97×162cm

김종한은 고느적하고 한적한 시골 풍경을 화폭에 담는다. 그의 작품에는 논둑이나 산기슭, 들에 핀 야생화, 그리고 겹겹이 둘러싸인 산들이 등장하다. 간간히 농가의 이미지가 등장하지만 인적은 찾아볼 수 없고 나무와 숲, 그리고 전답으로 이뤄진 풍경의 이미지가 눈길을 끈다. 마치 무성한 숲이나 산골에 들어온 것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작가는 구체적 사실의 전달보다는 정취있는 표현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듯하다.

류윤형_해바라기_캔버스에 유채_45.5×112cm

류윤형은 자연의 실재감을 존중한다. 같은 풍광이라고 해도 눈부신 햇살에 가득한 봄날이나 새싹의 푸르름 등 자연 자체가 주는 기쁨과 환희에 주의를 기울인다는 뜻이다. 화사한 개나리가 피고 벚꽃이 등장하며 여름철의 실록과 눈덮힌 들녘을 통해 자연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옮겨내고 있다. 그가 다루는 모티브는 마네킹처럼 부동의 자태가 아니라 미소짓고 기지개를 켜며 자신을 마음껏 뽐내는, 말하자면 힘찬 몸짓을 하는 생명체이다. 그런 대상을 작가는 싱싱한 순색으로 아우르는 것이다. 전면에 주요 모티브를 강조하고 배경을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주도동기를 한층 돋보이는 구도법을 사용하고 있다.

신상국_은척탄광_캔버스에 유채_97×162cm

신상국은 견고한 형태구축이 특징적이다. 그의 회화는 좁은 골목의 달동네, 드럼통과 돌더미가 나뒹구는 채석장과 같은 모티브를 매우 단단하고 밀도높게 다루고 있다. 마치 벽돌을 쌓아가듯이 화면에 모양을 갖추어가는 과정이 이채롭다. 화면 전체는 단편의 이미지들이 얼개지어진 결정물로 풀이된다. 집채 혹은 돌더미들이 퍼즐처럼 서로 얽혀 커다란 덩어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합은 기계적인 결합이 아닌, 매번 다르게, 다양한 결합의 양식을 보여주면서 전체에 이르고 있다. 두툼한 표면의 질감과 저채도의 색감이 순박하면서도 훈훈한 시골의 정취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이수창_퇴계 오솔길_수채_72.7×90.9cm

이수창은 강이 굽이치거나 소슬한 숲길, 그리고 항구의 아침 등을 수채화의 투명한 색감에 실어낸다. 그의 수채화는 대게 현장의 사생에 의해 완성된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만치 자잘한 묘사보다는 현장감을 살리는 색감과 붓질이 두드러진다. 뚝방 곁의 논밭, 가을의 농촌풍경, 바람에 술렁이는 들풀, 녹음진 수림 등을 놓치지 않고 표현하고 있다. 굵고 힘찬 선이 그림의 중추를 이루고 있거니와 자연의 수려한 풍광만치나 그의 화면에는 여러 색조가 어울린다.

조광래_금오산 기슭에서_수채_70×89cm

조광래는 붓의 맛을 한층 강조한다. 서예가가 글씨를 척척 써가듯이 조광래는 자연을 능숙하게 다루고 있다. 이수창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작품을 현장에서 완성시키므로 대상의 구체성보다는 현장의 풍광을 살려내는 데 주력하는 편이다. 시시각각 바뀌며 갖가지 표정을 짓는 자연의 모습을 낚아채려는 듯 속필로 잡아내고 있다. 색조로 보면, 겨울의 흰색, 여름의 옥색, 봄의 연두색, 가을의 암갈색 등으로 계절의 표정을 잡아내고 있다. 흔히 접하는 풍경이지만 작가의 애정을 듬뿍 보탰다.

홍현기_신화 내재율_먹, 카본블랙_117.5×84cm_2006

홍현기는 집적의 오브제를 선보인다. 한국화의 적묵법처럼 물감을 화면에 쌓아올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나뭇가지를 벽면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하기도, 또 그것들을 끈으로 묶어 몇 다발로 정돈하기도 한다. 평면작품이나 설치작품이나 기본적으로 대상을 자의로 묶는다기보다 먹빛을 주위로 발산하려는 듯 자유로이 풀어놓았다. 이를테면 그것은 주관의 개인을 철저히 배제한 자연의 순리에 맡기려는 발로로 풀이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의미의 개연성이 자리할 수밖에 없다. 평면작품은 우연적 효과에 의해 탄생된 흑백 추상으로, 설치작품은 다양한 표정의 물상을 포개어놓았다.

송기석_삶(珠)_스테인리스 스틸_80×42×32m

송기석은 용접의 예술을 선보인다. 전체의 흐름에 부분적인 단절이 눈에 띄어도 완전한 고립이나 단절을 허용치 않는다. 설사 단절이 있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도약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단계로서 존재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통일과 질서를 존중하는 원칙주의자이다. 작품도 조화와 균형의 조형원리에 뒷받침되어 있다. 거칠음이 있으면 부드러움이 있고, 투박함이 있으면 유연함이 있고, 균열이 있다면 봉합이 있다. 이러저러한 변주를 거쳐 그의 철조는 종국에는 '어우러짐'으로 나간다. 단절이 있어도 다시 재회의 관계 안으로 돌아오고, 항구적인 상호연관의 틀을 깨지 않는 것이 그의 작품이 지닌 일관된 특성이다.

이원좌_주남저수지_45.5×282cm_2003

이원좌는 산하를 정치한 묘사로 술술 풀어간다. 그가 그리는 소재는 모두 한국의 명산에서 얻어진 것들로 주왕산과 청량산, 화양계곡 등이 담겨있다. 하나의 봉우리가 자락을 뻗으며 또다른 봉우리로 이어지거나 아래로 달음질치며 자신보다 낮은 봉우리들을 세우기도 한다. 위풍당당한 소나무와 힘찬 폭포, 운무가 드리운 고산, 몸을 비틀고 용솟음치는 듯한 바위를 담채로 옮겨내고 있다. 그는 자연에 인공의 맛을 가하지 않고 자연을 그대로 두고 일체의 간섭없이 섬세하고 밀도높게 그려간다. 실경산수에 정통한 화가답게 그의 산수화를 보고 있자면 청량한 공기와 산의 정기를 느낄 수 있을 것같다.

이민자_틀_봉채, 쪽염료, 수간, 한지 합지_89.4×59cm_2010

마지막으로 이민자는 한글의 자모를 조형화하는 작가이다. 전통적인 그리기에서 벗어나 오리기라는 수법을 통해 한글의 자모를 화면에 재구성하는데 형태만 놓고 본다면 그것이 한글인지 추상인지 식별하기 어렵다. 그가 특별히 한글을 택한 것은 모국어에 대한 애착심도 작용했지만 특별히 그것의 조형성, 말하자면 네모,세모,동그라미, 수평과 수직 등 갖가지 조형요소들을 모두 갖춘 특별한 문자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작가는 종이를 오리고 뜯고 붙이고 덧대어 모양을 만들면서 거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붓이 아닌 가위질에 의해 탄생하는 그의 작품은 어릴 적의 색종이 접기처럼 마냥 즐겁고 유쾌한 기분을 선사한다. 이상에서 우리는 경북 북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들의 헌신으로 오늘과 같은 경북미술의 밑바탕이 조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 흔한 화랑이나 미술관도 없는 열악한 환경에서 예술을 한다는 것은 먼지가 풀풀 날리는 사막에서 울창한 삼림을 찾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가운데 얼마전에 문을 연 안동문화예술의 전당 건립은 지역의 미술가들 사이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킨다. 부족하나마 미술가들의 발표무대가 갖추어지고 미술저변을 넓힐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경북지역의 미술이 활성화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술에 있어 '시설'은 최소조건이지 최종목표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미술은 꾸준히 지원과 관심을 기울일 때 융성하는 법이다. 그런 점에서 안동문화예술의 전당의 개막행사의 하나로 경북북부 지역의 주역들을 초청한 것은 퍽 의미가 있다. 앞으로도 계속적인 기획전시를 통해 지역 예술에 전기를 마련하는 모멘텀이 되기를 바란다. 끝으로 일생을 예술에 바친 집념의 작가들이 있기에 경북의 미술이 이만치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미술애호가도 부족하고 미술인프라도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의 예술세계와 입지를 지키기도 힘들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 미술 발전에 애써온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이것은 그들 인생 뒤에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초대작가들은 비록 백발이 되었어도 활활 타오르는 예술에 대한 열정을 동력으로 삼아 이러한 도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의 분투가 가슴 한켠에 무겁게 와 닿는 이유다. ■ 서성록

Vol.20101221b | 艸 ․ 埶 ․ 云-藝-안동 원로작가 초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