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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215_수요일_06:00pm
2010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창작지원사업 선정展
관람시간 / 10:00am~06:00pm
이즈낫갤러리_Is Not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48번지 2,3층 Tel. +82.2.725.6751
구체적 형상에서 심부적 형상으로 향하는 물고기의 상징 ● 경수미 작가의 작품에서 ‘물고기’는 작은 테마 가운데 하나이다. 오랫동안 그는 작품 속에 물고기를 새기고, 만들어왔으니까. 그가 물고기 형상에 매료된 것은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고, 인류 보편적 상징에 기초 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예컨대,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떼의 귀환이나 무수한 치어들에서 확인하는 생명성, 다산성 등이 그런 것일 게다. 그러니 그는 그 이상의 의미와 상징보다는 물고기 형상 자체에서 어떤 조형적인 심미성을 발견하고, 그것에 집중해 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의 작품들은 먹빛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일 때 또는 빛을 투과하는 스테인리스 조각의 물고기일 때조차 심미적인 시각성에 집중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한 형상들은 물고기를 닮긴 했으나 재료와 내용면에서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새로운 미학적 통로로 향하는 전환점의 그 무엇을 발산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사실적인 형상을 벗고 하나의 길쭉한 덩어리에 가까운 상태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 물고기의 실체가 아니라 물고기라는 형상의 원형, 심부적 형상이라고 해야 할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그 형상은 기존에 제작해 왔던 둥근 평면위의 먹빛, 실, 그 사이를 유영하는 물고기들이 아니라 닥나무의 속껍질에서 추출한 백피 섬유질을 물에 부풀려 석고 거푸집에 찍어낸 것들이다. 충분히 삶고 불려서 얻어낸 순수한 섬유질과 그것의 원형상들…. 물고기가 물고기의 형상을 벗은 '탈피脫皮'의 의미와 상징이 결국 고치의 형상으로 변환된 그런 원형상이다. 더군다나 그는 수백 수천의 고치 형상을 이어 붙여 회오리 떼로 몰려가는 거대하고 둥근 빛 무리를 구축하고 있다. 그 회오리 떼와 빛 무리는 전시장 내부를 뒤흔들며 아래에서 위로, 옆으로 확장선을 탄다. 그것들은 가만히 있지 않고 빛과 그림자를 출렁이며, 관객의 시점과 시점 사이를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의 이런 변화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이번 전시의 첫 구상은 그가 오래전에 해 두었던 채색 드로잉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수천 마리 물고기 떼가 무리를 이루며 위로 상승하는 그림이다. 전시장에 설치된 조각 작품과 달리 이 그림에선 상승이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고 아득하다. 그는 바다로 갔던 연어가 새끼를 낳기 위해 강물의 본류를 타고 제 고향에 이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설명에 따르면, '자궁', '근원', '최초의 생명' 등과 같은 키워드가 그림의 밑 개념으로 깔려 있다. 그러니까 그림은 물고기라는 어떤 생명의 실체가 근원을 향해 헤엄쳐 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고, 조각은 바로 그림의 밑개념을 충실히 따르되 설치라는 보다 입체적 상황을 연출한 것이라는 얘기다. 물고기의 상징은 12성좌에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그의 아들 에로스가 물고기로 변한 신화에서부터 찾아진다. 그 신화의 물고기자리는 두 물고기가 꼬리를 서로 잇고 있는 형국인데, 현실과 이상을 뜻한다. 바빌로니아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살던 유목민 칼데아 인들의 상상에서 비롯된 성좌의 신화는 BC 3000년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유목적 삶의 현실과 밤하늘의 별이라는 이상이 두 물고기에 깃들어 있는 셈이다. 신화를 직접 다루진 않았으나 그것의 심미성을 보여주는 작품은 2007년과 2009년 『꿈꾸는 물고기의 자유로운 유영展』이었다. 그는 먹빛이라는 어둠과 환한 여백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심미성을 투영시켰으니까. 물고기는 물론 그 사이를 유영했고….
불교에서는 수행자의 수행정신을 상징하고, 유교에서는 질서와 수호신을 상징하며, 기독교에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을 상징한다. 전통적인 민화에서 물고기는 부와 환희, 다산을 상징했다. 특히 민화에서 물고기는 '어룡(魚龍)'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어변성룡(魚變成龍)으로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 "기운찬 잉어처럼 성공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입신출세의 의미인 것이다. 이렇듯 예부터 물고기는 다양한 상징의 기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모든 상징이 경수미의 작품과 상관하는 것도 아니고, 분석의 긴요한 방법론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상징들은 문화적 편차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연결되고 이어진다. 그리고 그런 의미들이 새로운 질료로 선택된 닥나무의 흰 섬유질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뒤나미스(dynamis)는 가능태가 현실태가 되는 개념이다. 나무의 씨앗이 나무가 되는 그 것. 넓게 편 섬유질로 만든 경수미의 형상들은 그물이면서 동시에 물고기이다. 그 물고기는 또한 무수한 나무들의 환영이다. 그러니 무수한 물고기 떼와 이를 비추는 빛의 무리는 생의 씨알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의 작업은 이렇듯 하나의 가능태를 향해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중이다. ■ 김종길
Vol.20101216d | 경수미展 / KYUNGSUMI / 慶秀美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