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21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토_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am~06:00pm
인사갤러리_INSA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B1 Tel. +82.2.735.2655~6 www.insagallery.net
무용지물과 관계 맺기 ● 김정민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그녀의 작업을 보면서 문득 소설 하나가 떠올랐다. 김중혁의 『무용지물 박물관』이 그것인데, 주인공 디자이너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라디오 방송의 '무용지물 박물관'이라는 코너를 청취하며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 내용으로, 쓸모 없고 낡아 사용가치가 떨어진 사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낸 것이다. 물론 간결한 문체로 쓰인 소설과 김정민의 정돈되지 않은 작업 방식은 거리가 있지만 적어도 쓸모 없고 보잘것없는 오브제들에 대한 관심이라는 소재 자체에 대해서는 어떤 공통분모가 있었다. ● 김정민은 일상의 오브제에 드로잉을 하거나 또 다른 오브제를 묶거나 엮고, 늘어뜨리는 등의 방법으로 부착하여 최대한 사물의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서로 다른 오브제를 서로 연관시켜 나간다. 쓸모 없는 오브제들을 아상블라주하는 부류의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작가의 작업은 낯익지만 생경하기도 하다. 사실 이런 작업을 수행하는 작가의 방식은 그렇게 섬세하거나 치밀해 보이지는 않는다. 작가가 말했듯 즉흥적으로 어떤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작업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가의 작업방식이 오브제를 섬세하게 다루며 그들을 내밀히 조율하는 방식과는 달리, 흩뿌리듯 조합할 뿐 아니라, 움직임의 흔적이 드러나는 드로잉을 부가하기 때문이다. 즉, 작가는 사물들을 늘어놓는 방식에 있어 박물관처럼 가지런하게 모아서 보여주거나 그것들을 돋보이는 주인공으로 화려하고 말끔하게 주목 받도록 만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논리적 연관관계가 전혀 없고 접합에 있어서 어떤 규칙도 찾아볼 수 없는 오브제의 집적 방식은 버려진 것들을 마구 풀어헤쳐놓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이다. 또한 무질서한 오브제 조합은 기념비적이거나 규모가 큰 설치가 아니라, 각각의 오브제들이 널브러져 있다고 할 만큼 소소하고 소박하다.
오브제가 늘어선 그의 작업실에는 방음과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과 계란판 모양의 검정 방음재가 낡은 벽을 둘러싸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설치작업처럼 작품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작가의 작업실 건물이 옥상과 연결된 점을 활용해 건물 위의 환풍기통, 에어컨 실외기, 위성방송 수신기, 알 수 없는 박스들과 안테나를 비롯한 전봇줄이 즐비한 낡은 옥상 벽면에서 작가는 즉흥적인 드로잉과 아상블라주 작업을 펼친다. 우리가 주목해 보지 않지만 평범한 일상을 지탱해주는 삶의 부산물, 파편들이 널려있는 공간에서 작가는 쓸모 없는 오브제 조각들을 조합하고 덧칠하여 새로운 공간으로 만든다. 크고 작은 균열과 금이 가 있는 옥상의 벽면은 오히려 이 같은 삶의 시간과 흔적들을 암시하는 질료들이 된다. 이 같은 질료들에 선을 긋고 물감을 뿌리고, 호스를 늘어뜨리는 행위를 덧붙임으로써 작가는 쓸모 없는 것들이 지탱하는 삶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소한 오브제들의 모임이라 볼 수 있는 이 작은 세계는 그에 덧붙여지는 드로잉에 의해 생기를 부여 받는다. 드로잉은 선 긋기와 같은 큰 움직임에서 끄적거림, 넓은 면으로 칠하기, 아래로 흘러내리게 하기와 같은 작은 움직임을 포함한다. 이 같은 드로잉이 2차원의 평면인 종이 혹은 벽면과 다른 오브제들을 연결시킨다. 산발적 움직임의 결과물인 힘 있게 그은 선들과 흘러내린 물감의 흔적, 그리고 끄적거림이 뒤엉켜 있는 상태는 정돈되지 않은 생생한 것들이다.
오브제를 조합하고 드로잉 하는 이런 방식은 사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작가가 밝히듯, '나란하고' 수평적인 관계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쓸모 없는 사물들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재료가 가진 속성대로 스프링과 실은 늘어뜨리고, 고무줄은 묶거나 엮어내는 등 각자의 물성을 드러내며 무질서하지만, 자신의 성질을 거스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각자의 성질을 죽이지 않고 서로 서로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무질서하지만, 어떤 미세한 감성으로 다가오게 된다. 벽의 균열과 구멍, 쓰레기통, 버려진 호스와 형광등, 젖은 종이상자처럼 각자의 작은 상처를 안고 내버려져 있는 존재들과 만나서 그들을 한데 연결시켜 엮어내는 작가의 작업. 그것은 그들을 뭔가 우월한 위치에서 내려다보고 좌지우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란하게 그들을 마주 대하며 그들과 교우하는" 것이다. ● 이런 일련의 작업은 우연한 만남과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고 소멸되거나 해체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에 즉흥적일 뿐 아니라 일시적이다. 그러므로 작가가 말하듯, '끊임없이 진행되는 어떤 과정의 순간들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장소성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것은 작품이 생성되는 순간부터 장소 자체가 하나의 만남으로서의 과정이 되고, 장소의 성격과 구조에 따라 작업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의 형태를 좌우할 뿐 아니라, 사물과 장소의 만남과 그들의 '관계 맺기'라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지점이다. 이 관계 맺기는 외부세계로 확장되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작업실 바깥의 열린 공간에서 행해지는 드로잉-퍼포먼스로 연결된다. 그것은 작가와 사물, 장소의 관계를 넘어 불특정 다수의 행인들에게로 확장되는 순간이 된다. 작품이 무사히 살아남기에는 다소 위험할 수도 있는 광장과 같은 외부 공간에서 작품을 만들고 드로잉을 하는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은 그 장소를 지나다니거나 머물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그 자체를 증명한다. 물리적으로도 그 장소를 관리하는 사람, 또 그 주변의 상인, 행인의 관심과 협조가 있어야만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이렇듯 유희적인 것처럼 보이는 작가의 행위는 놓아두고 지켜보기에서 한발 나아가 외부세계와 관계 맺기를 통해 완성된다. ● 이제 첫 개인전을 열며 첫발을 내디딘 작가에게 풀어야 할 숙제들은 많다. 하지만 작가의 소소함과 관계 맺기는 정돈되지 않았지만 삶의 이면에서 우리를 지탱해주는 무용지물의 것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일 것을 권유하며 사물, 장소, 사람을 하나의 커뮤니티로 결속시킨다. 작가의 커뮤니티는 아직 정돈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이기에 더 진정성 있게 느껴지며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 김우임
Vol.20101215e | 김정민展 / KIMJUNGMIN / 金貞旼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