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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009_목요일_06:00pm
후원_경기문화재단
관람시간 / 10:30am~07:00pm / 월요일 휴관
UNC 갤러리 UNC gallery 서울 종로구 사간동 126-1번지 Tel. +82.2.733.2798 www.uncgallery.com
언제나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공간이 있었다. 밤늦은 귀가길 일산방향 버스를 타고 철길 건널목을 건너 그곳을 지날 때면 암흑 속에 가려져 있어도 뚫어져라 쳐다보게 만들던 그 장소는 지도 위에도 아무런 글씨도 없는 녹색 사각형에 불과하다. 물론 그곳에도 주인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지금은 뉴타운 개발의 요충지로서 지역 토박이 노인들이 수십 년간 농사를 짓는 동안은 무관심했던 그곳에 새로운 도시 이주민들이 들어와 비닐하우스를 곳곳에 짓고 (가끔씩) 사는 곳이 되었다. 비닐하우스는 분명히 창고나 거주지 같은 집의 역할을 하고 있으면서도 완전히 그곳에 정착하지 않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가장 손쉽고 빠르게, 싼 값으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의 거처. 이것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는 경의선 능곡역 앞 들녘의 모습은 실체가 무뎌진 현재의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 안의 사람들 또한 그만큼 불안함 속에 경계의 날카로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논농사라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산행위는 자연적 생태계와 더불어 도시 근교에서 풍요롭고 안정적인 잠시나마 숨 쉴 수 있는 자연적 공간을 제공하는데, 그런 고요한 자연의 침묵 속에 이 모든 불안한 감정과 지역개발이라는 파괴의 목적이 함께 숨쉬고 있음을 생각하면 안정과 불안정, 인공과 자연과 같은 대립하는 단어들은 그저 언어로만 구분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특히 확장되는 도시 안에서 영구적이고 안정적인 장소는 없으며, 실체라는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빠른 변화 속에 스쳐가는 풍경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런 현상과는 별개로 실재적이고 영원한 존재라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문제로서 기억되고, 상상하고, 각인하는 동안 생겨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신조차 매일매일 생명을 소진하고 있음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임을 알 때, 마음속에 각인된 어떤 장면들, 가치들은 더욱 빛을 발한다. ● "축적과 낭비…… 어느 한순간을 깊이 경험할수록 경험은 더 많이 축적된다. 그런 순간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 경우 낭비로서의 시간의 흐름은 저지된다. 살아있는 시간은 길이의 문제가 아니라 깊이와 밀도의 문제다." (John Burger. 「And our face, my heart, brief as photos」)
들녘은 나에게 유년시절 대부분의 기억을 차지할 만큼 정서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 장소다. 「남겨진 장소」는 이곳이 개발논리에 의해 사유재산화 되고, 분할되어 점차 사라져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아치형 나무구조물의 내벽에 그린 작업이다. 해체되어가는 장소와 시간에 대한 그림이지만 관객은 이를 하나의 독립된 장소로써 걸어 들어가 통과할 수 있다. 나는 언제나 건축가인 아버지의 설계도면과 목수였던 할아버지의 노동적 작업 방식을 생각하곤 하는데, 이것은 2차원에 미리 미래의 가상공간을 그려내는 행위, 그리고 실재 삶의 공간을 채우고, 구분 짓고, 보수하는 수공적 노력을 각각 대변한다. 이런 생각들은 나에게 평면회화를 다루면서도 3차원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하며 구축적인 화면구성을 하는 데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또다시 입체적 구조물들과 연결되어 매체를 확장하도록 만드는 것 같다.
「남겨진 장소」는 그림의 소재가 된 실재 들판에 약 한달 간 놓여져 단순히 회화도, 조각도, 집도, 전시공간도 아니면서 때때로 그것들의 역할을 하는 '어떤 것'이 되었다. 완결된 작업으로서 전시되었던 작업이지만, 들판이라는 공간에 들어서고 특정 시간을 겪게 되면서 그것은 또 다른 변화와 의미를 파생시키는 대상이 된다. 이것은 점차 집구조의 가건물 형태로 만들어졌고, 나는 이곳을 주변 장소를 새롭게 탐색하고, 경험하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작업공간으로 45일간 사용했다. 이곳을 기점으로 해서 들판을 매일같이 드나들며 단절되었던 기억 속 장소에 대한 시간들을 다시 이어가는 듯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바라본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반드시 간극이 자리한다. 비집고 들어갈 길 없이 온기 가득한 유년의 기억 속 들녘의 모습과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 현재의 방황하는 이방인으로서 찾아간 들녘 사이의 간극은 아마도 채워질 수 없을 것 같다.
허용되지 않은 가(假)건물, 주소 없음의 빈자리. ● 대신에 나는 그 간극, 뚫린 '구멍'을 응시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들판을 헤매고 있는 나 자신이 그 구멍이 되었음을, 경제적 가치를 획득하느냐 마느냐의 가능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경계의 각축장이 된 빈 들판에 근거 없는 - 존재할 근거가 없는, 특정역할도, 경제적으로 환원될 가치도, 미래적 담보도 없는- 빈 주소의 집이라는 구멍 하나를 만들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안에서 생산된 것이라고는 손바닥만한 그림 몇 개와 글들, 내뿜는 숨소리, 나와 몇몇 찾아온 지인들이 증인으로서 두 눈으로 그곳이 있었음을 담아간 기억 정도일 뿐이다. 그리고 가끔씩 벌판에 '미 술 계'라는 글씨의 입간판(?)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가 바람에 쓰러지면 세워놓고, 또 쓰러지면 세워놓고 하는 일을 반복하거나 집을 만들 때 쓰고 남은 알루미늄 판을 잘라서 얼기설기 끼워 만든 것을 논바닥에 굴려 거기에 반사된 하늘의 색과 빛을 관찰하는 일 따위. 매일의 온도와 날씨를 체크하고, 추위에 얼마만큼 버틸 수 있을까를 체감하기, 침묵, 30분 마다 한번씩 지나가는 기차소리와 해질녘 돌아오는 새들의 울음을 듣기. 장소가 스스로 내는 목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였다.
들판은 매일 찾아오는 나를 받아주는 듯 하면서도 침묵으로 내치고, 정착할 수 없는 댓가로 아름다움을 보게 해주었으며, 수많은 질문들을 생각하게 했다. 그곳을 드나든 두 달 간 - 추수가 시작되던 때부터 완전히 비워진 채 겨울을 맞이하는 지금까지- 섬세하게 변해가는 들판의 빛, 공기의 색, 냄새, 소리, 온도와 같은 것들을 나는 새로운 경험으로 기억을 축적하며 투명한 공기와 같은 것을 추수해 간다. ● 생각해보니 빈 구멍은 나의 그림들에 그 동안 자주 나타나며 암흑으로 시각화된 형태가 그림들을 서로 이어주는 통로가 되고 있었다. 붓질, 시간을 쌓아 올려 무언가를 그리면서도 특정한 무언가를 그리지 않기, 실재하지 않는 기억의 공간을 그리기, 유기되어가는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밀어내는 비가시적인 힘들을 그림으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해체되어가는 세계의 모든 것들에 대한 나의 그리기는 그림의 껍질과 이미지로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시공간과 만나면서 이를 바라봐주는 개인들에게 다시 살아있는 경험으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 이혜인
Vol.20101210h | 이혜인展 / LEEHYEIN / 李惠忍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