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090927h | 성민우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팝아트팩토리 초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팝아트 팩토리 POP-ART FACTORY 서울 서초구 서초동 1582-17번지 Tel. +82.(0)2.588.9876 www.pop-art.co.kr
The Love of Life Lightly 가벼운 사랑-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 ● 화면에는 여름과 가을을 거쳐 가는 풀들이 등장한다. 뜨거웠던 여름, 어느새 지나가버린 가을, 스산한 겨울 문턱에까지 나는 풀들과 만나고 있다. 질경이와 달개비, 강아지풀과 바랭이가 여름풀로 등장하고 어느 순간 마른 가지의 그령과 여뀌가 화면을 메워간다. 일찍 찾아온 추위에 땅바닥 넓게 순을 뻗어버린 겨울달맞이꽃과 소리쟁이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여치, 메뚜기, 섬서구메뚜기, 베짱이, 풀무치, 땅강아지, 귀뚜라미 등등 이제는 풀만큼이나 다양한 벌레들이 날아다니고 뛰어다닌다. 풀들을 치장한 것처럼 벌레들 또한 금빛으로 치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조용히 아주 가볍게 풀잎과 가지와 씨앗사이로 움직인다.
검은 배경에 풀로 뒤덮인 부케와 인물군상들을 그려내던 강렬한 인상 대신 붉은 빛이 도는 황금빛 바탕에 화려한 채색의 풀들 사이로 작은 풀벌레들이 모여들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가 사유의 공간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장식적인 민화풍의 색감이 등장하기도 하고 부케형식의 풀다발이 공간을 차지하기도 한다. 지난 작업들을 통하여 삶과 죽음의 문제 앞에서 풀이 그리움과 연민의 대상으로 승화되었다. 이에 반하여 이번 작업들은 그에 비해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 대한 가벼운 찬사라고 할 수 있다. 죽음보다 더 어려운 것이 삶일 수 있음을 조금 알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죽음은 선택일 수 있지만 삶은 의무이기 때문이다. 삶의 모습은 들여다볼수록 치열하다. 너무 가까이, 너무 깊게 바라보면 그 사랑은 고통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는 일상의 삶은 아름답기도 하다. 아주 가볍게 스쳐 지나가듯 보면, 그 모습은 쉽게 사랑할 수 있다. 삶의 근처에서 바라보기, 삶을 가볍게 사랑하기, 그것은 삶을 선택한 이들이 짊어져야 하는 삶의 무게를 덜어주는 방법이다. 무한한 감정의 원천이 되는 우리의 사랑은 현실 안에서 그리 뜨겁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부모 자식 간의 애끓는 사랑이든, 인류를 대상으로 한 유토피아적 사랑이든, 사랑이 일상을 마주하면 쉽게 힘겨워 진다. 죽음 앞에서는 초월하고 숭고해지는 것이 사랑인데 일상의 지리함과 갈등 앞에서는 쉽게 고통이 된다. 그래서 이러한 삶을 지탱하는 이들은 위대하다.
그냥 스쳐 지나는 장면처럼 자신의 삶을 바라보고 만족하면 좋겠다. 가볍게 풀잎 사이를 뛰어다니는 풀벌레들의 삶을 바라보듯 말이다. 우리가 풀과 풀벌레의 삶이 고단하지는 않을 지 고민하고 대신 힘들어 하지 않듯이 말이다. 그들의 삶이 가볍고 경쾌해 보인다면 그렇게 생각하면 그만이다. 고통을 수반하지 않는 다른 이의 삶을 바라보는 것은 괜찮은 경험이다. 고통 없는 현실이 비록 비현실적이더라고 그렇게 보이는 것도 바로 현실이다. 그들의 삶의 한 모습은 다분히 현실적인 것이다.
그들의 삶을 아무리 재현해 내려 애써도 그것은 사실적일 수 없다. 나의 재현은 그래서 비현실적인 재현일 뿐이다. 그러므로 나의 그림은 사실적이지 않다. 그냥의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고 그 순간의 기억들과 함께 나의 눈과 손으로 담아낸 것 뿐 이다. 그렇게라도 삶이 가벼울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나를 포함한 살아있는 모두에 대한 연민이다. 살아있는 이들이 삶을 가볍게 사랑했으면, 나의 삶도 저토록 가벼웠으면 하는 바람이다. 비록 그것이 현실이 아니더라고 그렇게 보인다면 좋겠다. 너무 깊이 알지 않기, 너무 깊숙이 파고들지 않기. 그래서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고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다.
초월과 숭고를 포기하고 시간을 버텨내는 이들의 의미 없어 보이는 시간들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차피 살아가야 한다면 그들의 삶이 가끔은 아름답게 포장되어도 좋지 않은가. 나의 작업에서 꽃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나비를 찾아볼 수도 없다. 꽃처럼 나비처럼 보이는 삶도 사실은 풀과 벌레다. 꽃과 나비가 아니어도 충분하다. 꽃도 나비도 풀과 벌레도 모두 가까이 보면 치열하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누가 더 아름답다고 여겨지는가 보다 누가 더 가볍게 가볍게 이 풀에서 저 풀로 경쾌하게 옮겨 다니는가가 중요하지 않은가. 풀과 벌레의 삶의 형상이 가볍다고 여겨진다면 스스로의 삶도 그렇게 바라보기를, 나의 삶이 풀과 벌레 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작업들이 어떤 결과이기보다는 한 과정임을 고백한다. 풀에 대한 나의 집착이며, 애정의 한 방식임은 틀림없다. 난 이번 작업들을 통해 내 삶의 모습에 연민을 느끼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이제 나를 위로하며 풀을 그리고 있다. ■ 성민우
Vol.20101207g | 성민우展 / SUNGMINWOO / 成民友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