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ppelganger in Feminity

2010_1119 ▶ 2010_1201 / 월요일 휴관

김소희_Untitled1_kimsohee_디지털 프린트_100×1500cm_2010

초대일시_2010_1119_금요일_05:00pm

기획_김숙경

참여작가 김소희_난다_노정하_박혜원_인효진

디자인_유주현 / 홍보_최지나

후원/주최 서울문화재단_Metaloge_KunstDoc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쿤스트독_KUNSTDOC 서울 종로구 창성동 122-9번지 Tel. +82.2.722.8897 www.kunstdoc.com

20세기 후반 포스트모던의 문화사회학적 예술현상 이후 '여성주의'에 관한 논의는 정치권력적 제도와 사회소외계층으로서의 여성 그리고 그에 관한 여성성을 넘어 '문학적 담론을 통한 신화적, 개인적 여성성'에 주목하고 있다. 『Doppelganger in Feminity』는 이와 같은 미술사적, 문화사회적 현상과 수평관계를 갖는 것으로, 한국 현대미술현장에서 여성 사진작가들이 생산하는 '사진 속 여성의 이미지'를 관찰한다. 그들의 작업은 -'발언하는 자'로- 여성의 감각적 고유성과 특수성을 분명히 하며, 남성의 반의어로서 여성이 아닌 '사회적 독립 개체로서 여성'과 그 내적 세계를 'Doppelganger'의 표상을 빌어 관찰한다. 작가들이 산출하는 연출된 사진이미지 속 여성성은 차원을 달리하며 존재하는 'Ego', 텍스트로 환원된 여성의 다면성을 인문학적 시점에서 관찰 논의한다. ■ 김숙경

Workshop: Dialogue about "Doppleganger" 하나, 도플갱어의 문화사적 의미 (이경규/ 독문학)     워크샵_2010_1030_토요일_통의동보안여관 □ 도플갱어 개념의 유래: 장 파울(독일) 소설 Siebenkaes(1796) □ 도플갱어: 신화․종교적 차원에서의 인간이해     창세기: 인간(아담) 창조의 원리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 실체와 그림자     이집트 신화: 육체와 Ka □ 낭만주의 문학 속의 도플갱어     샤미소 Chamisso: 페터 쉴레밀 (1813)     호프만 Hoffmann: 악마의 묘약 (1815)     포우 Poe: 윌리암 윌슨 (1839)     cf. 옹고집전 (조선시대) □ 심층심리와 도플갱어: 무의식과 도플갱어 □ 유명인사들의 도플갱어체험: 괴테, 링컨 □ 과학시대의 도플갱어: 매트릭스 □ 사이버 공간의 도플갱어: 아바타 □ 쟁점: 자아 정체성 혹은 주체에 대한 질문            예술과 도플갱어 □ 결어: 같음과 차이의 이중주

두울, 뷰티풀 신데렐라! 현기증(히치콕크)에서 아내의 유혹까지 (정현/조형예술학) 일반적으로 도플갱어는 자신이 보는 또 다른 나, 나의 분신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환영 내지는 문학적으로는 예견된 죽음, 즉 복선으로 등장하곤 한다. 그러나 여성성 안에서 사유하는 혹은 발견되는 도플갱어는 기표화 된 여성의 상투적 이미지일 수 있다는 가설로 본 주제를 펼쳐보고자 한다. 이 가설은 상투화 된 이미지, 소비를 촉진시키는 여성의 이미지, 진부하지만 여전히 수많은 통속 드라마에서 재생되는 신데렐라 이미지를 여성성 안에서의 도플갱어로 확장시켜 해석한다. 히치콕의 「현기증」에서 사라진 자신의 애인을 닮은 여인 주디에게 구애하며 사라진 애인(매들린)과 똑같은 모습을 요구하는 남근적 시선과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남편에서 버림받은 구은재는 매력적인 여성인 민소희로 변신해 악의 심판자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구원자의 모습(매들린)이나 심판자의 모습(민소희)은 남성적 응시가 만들어 낸 허상으로서의 여성이 아닐까? 매들린/주디와 구은재/민소희에서 발견되는 상투적 여성의 이미지를 함께 따져본다.

김소희_Untitled2_Kimsohee_디지털 프린트_100×150cm_2010

"넌 나보다 불행해!" / …그리고 난 말했다. / "당신 말이 맞아요." // 철저하게 혼자이던 시절이 있었다. 아무하고도 말하지도, 말할 수도 없던 그 때 내 마음을 알아준 건 몇 개월 째 집 앞 거리에서 눈만 마주치던 홈리스였다. 나는 그에게 무엇을 보여주었고 그는 나에게 무엇을 읽었던 걸까. 이번 작업의 주제는 내 인생의 목격자 '얼굴'이다. 뱃 속의 태아였을 때부터 똥오줌의 배설까지 목격한 얼굴이 주제가 된다는 것은 마치 나의 벌거벗음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것과 같다. '나의' 얼굴이지만 실제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나의 얼굴을 생산해 내고 관찰하는 과정은 마치 녹음한 나의 목소리가 매우 낯선 목소리로 들리는 것과 흡사한 기분이다. 나는 나의 얼굴을 들고 이리저리 헤맨다. 꽉 막힌 골목에 끼워보기도 하고 깨뜨려보기도 하고 태워보기도 하며 제 3자의 입장에서 나의 얼굴을 바라본다. 도대체 홈리스는 나의 얼굴에서 무엇을 읽었던 것 일까. (중략) 이번 작업은 나의 얼굴에 자유를 찾아주기 위한 과정이다. 일상사물이 되어버린 나의 얼굴은 어떠한 의미도, 권력도 갖지 않은 가벼운 존재이며 좋은 놀이감이다. 하지만 언제쯤 현실에서 나의 얼굴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걸까. ■ 김소희

난다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8×10inch_2006
난다_Untitled_디지털 프린트_8×10inch_2007

● 매일 꿈을 꾼다. 매일 여러 번 꾸는 모든 꿈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기억하려고 애쓴다. 꿈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습을 관찰하는 것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꿈을 통해 '나'를 관찰 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스스로 깨닫지 못한 욕망이나 아픔을 발견하고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생각을 하곤 한다. 꿈 속에 나는 항상 같은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인물을 '나'로 인식하곤 한다. 나는 꿈 속에 등장하는 타인과의 관계와 태도에서 '나'의 다른 면들을 발견한다. 꿈을 꾸고 있을 때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나'는 물리적으로 한 사람이지만 수많은 관계 안에서 상당부분 일관성을 가지기도 하고 약간 다르기도 하다. 그 모든 '나'는 나와 관계를 가진 사람들에게 모두 다른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각각의 모든 것 중에 내가 아닌 것은 없다. 타인의얼굴 ● 그에게서 나와 일치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와 같아!"라고 말한다. 그리고 곧 그가 마치 잠시 나에게서 분리된 한 조각이라도 되듯이 그를 다시 나에게 꼭 끼워 맞추려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나와 같은 과오나 성질을 그에게서 발견했을 때, 나는 죽이고 싶도록 미워하거나 다시는 그 끔찍한 나를 마주치지 않도록 주의 한다. 이렇게 사랑과 미움은 모두 나와 같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 난다

노정하_Red Cutain_미디어_2010
노정하_love feast #1_디지털프린트_50×50cm_2006

자화상(self-portrait)라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자기 자신을 그린 초상화'라고 정의 되어 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그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 사전적 풀이만 가지고는 도저히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표면적 해석일 뿐 오히려 이러한 설명이 단어자체에 부정확한 선입견을 고정화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자화상(self-portrait)이라할 때 작가 자신의 진정성 혹은 정체성을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쉽게 생각해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작가들이 '자기 자신을 그린다.'라고 할 때 순진하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 또는 좀 더 고차원적으로 표현해 본다면 '본연의 자기 자신에 대한 탐구'라는 맥락에서 작업을 할까? 나에게 그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해보라고 한다면 부정적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자화상의 작업은 그보다 더 복잡하고 절실한 무언가를 즐기고 싶어 하는 심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본다. '자화상'이라는 그 진솔해 보이는 듯한 단어를 방패삼아 그들은 관객들과 차원 높은 놀이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중략) 내게 있어서 나의 셀프 포트레이트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진실을 가장한 일종의 '관계 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의미를 갖는 소품과 의상 그리고 내 자신의 의도되고 과장된 몸짓의 연출을 통해 나는 불완전하기만 한 나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내가 진실로 관심 있는 것은 내 자신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 이렇게 나를 마주대하고 서 있는 당신의 마음이다. ■ 노정하

박혜원_Siren-she loved my doll_디지털 프린트_2007
박혜원_Siren-she loved my doll_디지털 프린트_2007

내가 Maxime 을 만난 건 런던 첼시 미술대학 학교 카페에서 였다.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의상과 걸음걸이, 강인한 인상은 내가 아닌 어떤 이들에게도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게 하고, 아주 작은 일까지도 도와주는 정말 착한 마음을 지녀 나쁜 행동은 안할 것만 같은데 약물에 중독, 한마디로 찌들어 있던 모습, 자신의 가발, 옷 행동에 따라 맥심은 천의 모습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난 그 모습 하나하나가 모두맥심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맥심은 남들보다 자신이 가진 수많은 모습, 수많은 연결고리들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나는 사람들이 수많은 보이지 않는 끈들을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든 무의식 적으로든 )가지고 산다고 생각한다. 단지 맥심은 남들과 그 연결고리가 조금 더 많은 삶의 끈들을 가졌는지도 혹은 누구보다 더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중략) 여성의 도플갱어는 남성에 시선에 의해 나온 것, 성적 소수자에게서 나온 것이라고 본다면 더 나아가 젠더의 문제는 현대의 성적소수자를 말하고 Maxime 이 몸은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늘 She라고 표현한 것처럼 이미 여성성과 남성성의 문제는 단순히 육체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도플갱어는 분열된 자아가 아니라 한 인간.. 누구나 될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한 인간이 가진 수많은 모습, 우린 어쩌면 그 많은 자아들을 누르며 가장 부각되어 보이는 걸 한 인간이라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 박혜원

인효진_High School Lovers-stletto#04_디지털 프린트_66×100cm_2006
인효진_High School Lovers-stletto#06_디지털 프린트_66×100cm_2007

'High School Lovers'라는 작업은 고등학생 커플들을 촬영한 것이다. 명동 거리를 서로 끌어안고 지나가는 고등학생 커플을 바라보며, 나는 그들의 연애와 사랑에 숨어있는'반항의 코드'를 생각했다. 인간에게 가장 본능적이며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욕구가 극히 불온한 것으로 치부되어야 하는 시기. 그들에게 연애는 위험한 놀이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지는 훈육과 제도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성에 대한 금기를 받아들여야 한다. 공부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모와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시스템. 결국 아이들의 내부에 억압된 감정들은 폭발하고, 결국 사랑이란 감정조차 제도에 대한 일탈과 쾌감 넘치는 스릴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들의 사랑에 반항의 코드가 생겨나는 지점이다. 그들에게 이성은 가보지 못한 세계, 가서는 안 되는 금기의 세계다. 따라서 그들이 남학생 혹은 여학생과 서로 사랑하고 연애를 하는 행위는 단순히 둘이 좋아서 만나는 것 이상의 다분히 함축적인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표출하고, 사랑에 대한 감정을 느끼며, 숨 막히는 현실에 대한 반항과 금기된 것을 깨뜨리는, 묘한 쾌감과 일탈에 대한 욕구를 모두 숨기고 있는 다층적 행위인 것이다. (중략) 스틸레토는 굽이 아주 높고 뾰족한, 한마디로 너무나 매력적이고 섹시한 하이힐을 지칭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굽이 뾰족하고 높아서 걷기에 매우 불편하고 불안정한 구두다. 즉, 구두 자체가 모순덩어리인 셈이다. 나는 이 구두의 속성을 여고생들의 모순된 속성과 욕망의 상징으로 차용했다. (생략) ■ 인효진

Vol.20101123c | Doppelganger in Feminity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