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야기를 들어볼래?

나희창展 / NAHUICHANG / 羅禧彰 / sculpture   2010_1117 ▶ 2010_1122

나희창_多多益善_대리석_60×35×35cm_2010

초대일시_2010_111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4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존재의 한 원소로서의 살 ● '내 이야기를 들어볼래?'라는 전시부제로, 잔잔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읊조리는 나희창의 조각전은 자신의 몸이라는 가장 구체적인 조건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매우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다들 말라깽이가 되지 못해서 안달인 다이어트 시대에 남다른 고민과 콤플렉스가 있다. 구상성에 바탕을 둔 대부분의 작품들이 볼 따귀가 터져 나갈 정도로 통통하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희망사항 일 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나 동물들의 표현에도 관철된다. 그에게 보기만 해도 만족스러운 살집 있는 존재들은 대부분 웃음을 머금고 있다. 행복에 겨워 잔뜩 부풀어 오른 상태, 부풀어 오르는 것도 모자라 모두들 날개까지 달고 있다. 개체들이 다들 통통하기 때문에 날개는 실제의 비행이 아니라, 희망사항일 뿐이다. 하트 모양의 기호들도 남발된다. 작품에 있어서나 작가에 있어서나 다소간 과도할 만큼의 행복에 겨운 모습은, 적지 않은 작가들이 조울증에 시달리는 현실을 감안해 볼 때, 혹시 조증의 단계에서 작가를 만난 것은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 정도지만, 그 자체에서 발산되는 행복 바이러스에 자신도 모르게 전염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희창_그들을 위한 시간_대리석_35×26×17cm_2010
나희창_우리들의 축복_대리석_65×20×25cm_2010

그것이 나희창과 그의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아무리 냉소적인 사람도 상대방에게서 쏟아지는 소박함과 솔직함을 쉽게 거부하기는 힘들다. 이러한 경향은 그의 조각을 캐릭터 상품처럼 예쁘장하기만 한 것들로 보이기 쉽게 하지만, 그는 자신이 지금 매우 행복해서 웃으면서 웃는 표정을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사랑과 행복, 편안함과 포만감이 그의 작품의 기조이다. 작품 재료로 하얀 대리석을 많이 쓰는 것도 밝은 것이 좋아서이다. 각이 진 차가운 돌덩어리는 사람과 동물의 몸을 입고 뭉실 거리며, 풍선같이 붕 떠서 터질 것 같은 행복감을 전달하는 따스한 매체로 변모한다. 통통함의 상징이 웃는 돼지라면, 비상의 희망을 상징하는 것은 천사이다. 돼지와 천사 사이에서 사람을 포함한 많은 종들의 동물들이 배열된다. 시골에서 자란 그에게 동물들은 실증적으로 낱낱이 재현되어야 할 이미지가 아니라, 침전된 무의식과 상상 속에서 길어 올려진다. 날개와 뿔은 물론 슈퍼맨 망토까지 두른 유니콘이 되고 싶은 당나귀, 거북이와 친해지기 위해 살을 찌우고 있는 토끼, 배에 사랑이 가득하여 밖으로 자국이 나 있는 보아 뱀, 복쟁이(복어)처럼 뚱뚱한 인어 등이 그것이다.

나희창_나에게도 꿈은 있다_대리석_20×30×30cm_2009
나희창_복쟁이_대리석_27×25×35cm_2009

그러나 그중에서도 가장 감정이입이 잘되는 것은 여성--대부분 온화한 미소를 띠고 있는 풍만한 체형의 여성--과 그녀와의 관계에 대한 표현이다. 작품 「그들에게 주고 싶은 시간」는 지(地)와 천(天)이 새겨진 남녀 대장군들이 앉아있다. 통통한 여자와 활짝 웃는 마른 남자는 그녀와 나를 표현한다. 작가는 멀찍이 떨어져 서 있기만 하는 그들을 바짝 붙이고 함께 쉬게 해준다. 살찐 암탉이 층층이 쌓인 알을 품고 있는 작품 「다다익선」이나 막 태어난 천사 같은 아이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 「우리의 축복」은 아주 가까이에 다가온 사랑의 결실을 표현한다. 지상의 구체적 삶에 대한 긍정에서 발원한 강한 낙관주의는 몸에서 시작되어 몸으로 귀결된다. 나희창의 조각은 관념으로 틀 지워진 시각성이 아니라, 몸의 가장 원초적인 감각인 촉각성에 호소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관객이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실제로 만져 보는 것을 매우 좋아하며, 조각은 실제 몸으로 부딪히고 돌로 몸이 들어가야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 그의 작품 또한 에너지가 가득 충전되어 있으며, 언제든 밖으로 방출될 기회를 찾는다. 알폰소 링기스는 『낯선 육체』에서 살아있는 하나의 유기체, 즉 생명체란 본질적으로 자기를 보존하면서 에너지를 발휘하는 복잡한 체계라고 말한다. 또한 생명체는 평형상태나 마비상태에 이르고자 하기 보다는, 그것이 속한 종에 적합한 전형적인 긴장의 수준을 유지하려는 경향을 지닌 유기적인 실체이다. 생명체는 자신의 힘들을 방출하기 위한 힘들을 찾아 나선다. 생명체의 감수성은 단순히 환경의 강제력에 노출된 표면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넘치는 힘들이 낳는 행동을 통해서 솟아나는 이 과도한 감정은 강하고 능동적인 감수성의 형식이다. 절망과 환희, 고통과 희열은 낯선 힘들과 조우하는 외부 세계를 향해 인간을 밀어붙인다. 나희창의 작품 또한 세계와 타자들에 자신들의 표면을 노출시키는 생명력이 팽배하다. 잔잔한 미소부터 파안대소에 이르는, 몸 표면에 흐르는 유동 에너지는 결코 붙들어 매거나 회수 할 수 없으며, 대가 없는 지출로 사라져 간다.

나희창_거북이를 사랑한 토끼_대리석_38×28×30cm_2010

그가 헌신하는 사랑의 대상은 그가 바라는 이상적인 육체로 변모한다. 에로틱한 갈망과 구별할 수 없는 이러한 감정은 '타자를 향한 자신의 투사'(레비나스)를 보여준다. 작가는 실제로든 가상으로든 타인의 위치에 자신을 대입시킨다. 나의 육체는 타인이 비운 자리를 차지한다. 링기스에 의하면, 서로에게 배타적으로 몰두하고 있는 육체들의 동공들과 구멍들 속으로 사라져가는 손의 온기 속에는, 아무런 보답도 요구하지 않는 이 혹성의 화산재 위에서 번창하는 생명에게 온기를 선사하는 햇살 속에 내재된 정언명령이, 그리고 생명에게 햇살의 온기가 주는 선물을 붙들라는 정언명령이 전율하고 있다. 이러한 지구의 정언명령에 응답하는 것은 공포와 경이로움, 그리고 현기증 나는 체념이 어우러지면서 서로 침투하고 배려하는 육체들의 지상적인 물질성이다. 그러나 눈물 없는 웃음, 저주 없는 축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랑과 행복의 감정으로 빵빵하게 충전되어 금새라도 툭 터질 것 같은 나희창의 작품 속 캐릭터들은 그 이면의 진실을 드러낸다. ● 그의 작품의 출발이자 귀결점인 몸은 쾌락과 고통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고통과 연결된 쾌락, 쾌락과 연결된 고통이 있다. 현대적인 삶의 조건에 의해 고독해진 주체는 타자를 적극 환대함으로서 공동의 친밀함을 회복하고자 한다. 얼굴로만 웃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웃는 나희창의 작품 속 캐릭터는 전신적 기쁨(jouissance)의 장이 되며, 세계를 온통 축제화 한다. 정화열은 『몸 철학』에서 카니발은 라틴어의 어원인 '흥겨운 몸'(canne/vale)의 구체화라고 한다. 이렇게 '세계를 축제화 하는 것'은 곧 '세계와 대화하는 것'(바흐친)이다. 나희창의 작품에서 이러한 세계와의 대화는 '살을 매개한 열림'(메를로 퐁티)을 전제한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그의 작품 속 풍요로운 살덩어리는 메를로 퐁티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서 말하듯이, 물질이나 정신으로 환원되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원소와도 같은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 살은 물, 공기, 흙, 불같은 존재의 한 원소로, 육화된 원리나 유에 속하는 사물이 된다. 차가운 돌덩이들을 내부로부터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 원소는 다름아닌 살인 것이다. ■ 이선영

Vol.20101117c | 나희창展 / NAHUICHANG / 羅禧彰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