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verlap of Gazes 시선의 중첩

이후창展 / LEEHOOCHANG / 李厚昌 / glass sculpture   2010_1110 ▶ 2010_1115

이후창_Overlap of Gaze I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72×41×14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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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1110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1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이후창의 유리조형작업 - 나를 보고 싶은 욕망, 그 불가능한 기획에 대해 ●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덩어리. 대개 덩어리는 불투명해서 그 속이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만약 그 속이 보이는 덩어리가 있다면? 유리와 조각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인 이후창은 그 접점 가능성을 실험한다. 그리고 그 실험의 와중에서 나와진 유리조형작업의 투명한 덩어리는 대개 조각의 불투명한 덩어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게다가 투명한 덩어리는 지금까지 상징적으로나 추상적으로나 암시적으로 표현하곤 했던 비가시적인 부분을 가시적인 표층 위로 불러낼 수 있게 해주고, 그것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준다. 더욱이 그 투명한 덩어리가 인간이란 소재와 만나지면 인간의 허다한 비가시적인 영역과 범주들, 이를테면 내면적인 심리와 무의식적인 욕망, 이중성과 다중성, 다중인격과 자기분열, 그리고 트라우마 등등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조건과 실존적 자의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이후창의 주제의식이 바로 이렇듯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조건과 실존적 자의식을 밝히는데 맞춰져 있고, 따라서 그의 유리조형작업은 그 주제의식을 보다 직접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전달한다. 그동안 매번 전시 때마다 주제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어느 경우이건 인간 일반의 존재론적 조건이라는 큰 틀을 전제하고 있는 것인 만큼 서로 상이하다기보다는 상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형식 내지는 방법 역시 대개는 유리 캐스팅과 열 성형 기법에 의한 인체표현이라는 틀을 견지하고 있고, 따라서 그 유기적인 관계를 개괄하면서 근작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무리가 없어 보이고 또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이후창_Overlap of Gaze 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67×35×13cm_2010

상실의 시대 ● 신을 상실하고(니체), 중심을 상실하고(한스 제들마이어), 자기를 상실하고(리어왕), 정체성을 상실하고, 자연을 상실한, 온통 상실의 시대에 현대인은 살고 있다. 상실은 그가 다름 아닌 현대인임을 보증해주는 무슨 고유의 질병 같다. 자크 라캉 이후에 결여는 인간의 실존적 자의식이 되었고, 마침내 토마스 만은 결핍의식 없이는 예술도 없다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이 도저한 상실감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연유한 것일까. 이후창은 그 상실감의 원인을 자본주의 시대 이후 보편화된 인간조건, 이를테면 상품화된 인간, 물화된 인간, 페티시로 전락한 인간조건에서 찾는다. 모든 것으로 하여금 상품이 되게 하라는 자본주의의 지상명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심지어는 비물질적인 것, 비가시적인 것, 무형의 것, 그리고 사사로운 무의식의 영역마저도. 플라스틱 모형 장난감 중에 프라모델이 있다. 장난감 부속을 주조해놓은 틀에서 각 부속을 떼 내어 조립하면 하나의 완성된 장난감이 된다. 작가는 그 틀에다 장난감 부속 대신 인간의 개별 신체 부분들을 주조해놓았다. 그래서 팔이 고장 나면 다른 팔로 교체할 수가 있고, 눈이 탈이 나면 다른 눈으로 갈아 끼울 수가 있다. 페트병과 같은 각종 일상용기 속에 갇힌 사람들도 있다. 이 일련의 작업들이 상품화된 인간을 고발하는 한편, 다르게는 유전자공학의 무분별한 인간복제를 경고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듯 상품으로 다 내어주고 난 나머지, 나는 마침내 껍질 밖에 남겨진 게 없다. 무슨 해부학 교재를 위한 모형 같은 느낌의, 헐벗은 사람이 내민 껍질이 더 이상의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인간의 최후를 보는 것 같다. 자본주의 시대에 상품적 가치를 상실한 인간은 이처럼 폐기처분된다. 거세불안, 즉 나는 언제든 이 사회로부터 거세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불안이 그림자처럼 어른거린다.

이후창_Overlap of Gaze II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240×50×40cm_2010

타자의 시선 ● 나는 나를 볼 수가 없다. 나는 너에게 보여진다. 나는 언제나 너에게 보여진 나를 경유해서만 나를 인식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나는 너에 의해 보여지고, 너에 의해 판단된 개연성 없는 조각들, 이질적인 편린들의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너(타자들)의 우연하고 무분별한 집합에 지나지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나에 대한 너의 인식을 내재화하고, 기정사실로서 받아들인다. 그렇게 마침내 나를 인식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공허하다. 내가 인식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는 결코 나 자신을 인식할 수가 없다는 이 딜레마로부터 나는 결코 달아날 수가 없다. 이렇게 내재화된 너(나에 대한 너의 인식)는 내 속에 똬리를 튼다. 바로 내 속에 타자(너)의 시선이 심겨진 것이다. 타자의 시선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내 속에서 나와 더불어 나 스스로를 억압하고 간섭하고 통어하는, 나의 시선이다. 타자의 시선은 곧 나의 시선인 것. 이렇게 나는 나와 나(타자)로 소외되고(자기소외), 분열된다(자기분열). 어쩌면 자기소외와 자기분열은 피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소외된 너의 질책이 두렵고, 분열된 너의 책망이 무섭다. 이렇게 타자(너)의 시선(감시의 눈초리)을 내재화한 나는 도플갱어가 된다. 얼굴을 소재로 한 이후창의 작업은 유리의 투명한 성질 탓에 이처럼 내 속에 내재화된 너(타자)의 시선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내가 너로 소외되고 분열되는 양상을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광택 마감한 경우가 아니라면(광택 마감도 미세연마의 한 과정이지만), 흔히 유리를 연마하면 스크래치로 인해 불투명해진다. 그럼에도 유리 속엔 여전히 투명한 상태가 유지된다. 작가는 이렇게 한 덩어리(한 몸)의 유리 속에다가 두 개의 얼굴을 중첩시킨다. 형태 바깥에 새겨진 얼굴과 유리 속에 들어있는 얼굴. 불투명한 얼굴과 투명한 얼굴. 양각된 얼굴과 음각된 얼굴. 이 두 얼굴이 하나의 덩어리 속에 머물고 있다. 그렇게 나는 나의 분신, 나의 아바타, 나의 도플갱어와 만나지고 있다. 또 다른 작업에서, 나와 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심연이 가로 놓여 있다. 각각 유리 속에 음각된 두 얼굴이 사이를 두고 서로 쳐다보고 있는 작업에서, 유리를 성형하는 과정에서 생긴 기포들로 인해 무슨 물방울 같고 물속 정경 같은 사이공간이 심연을 효과적으로 표상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내 속에 내재화된 너, 의식적인 나와 무의식적인 나 사이에 바다와도 같은 깊이를 설정해놓고, 심연과도 같은 거리를 떼어놓고 있어서 자기소외와 자기분열을 재확인시켜준다.

이후창_Unconscious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100×51×12cm_2010

시선의 중첩 ● 그리고 근작에서 작가는 또 다시 시선의 문제를 건드린다. 그 문제의식이 전작에서의 타자의 시선과 겹치면서 일정정도 심화시키고 있는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바라보는 시선과 보여지는 시선과의 엇갈림, 그 교차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엄밀하게는 바라보는 시선이 시선인 반면, 보여지는 시선은 응시로서 시선과는 구별된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시선과 응시의 교차는 사르트르에 연유한 것으로서, 시선이 바라보는 주체에게 속한 것인 반면, 응시는 그 주체에 의해 보여지는 객체의 반응이다. 핵심은 내가 동시에 시선의 주체이면서 응시하는 객체이기도 한 것. 나는 동시에 너를 보면서, 또 다른 너에 의해 보여지는 것. 그리고 그렇게 너에 의해 보여지고 있다는, 나의 인식은 너의 유무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 너(타자)의 시선은 이미 내 속에 내재화되어져 있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이든 시선의 중첩이든 작가는 이 시선의 엇갈림과 교차를 이야기하기 위해 일종의 메타포를 끌어들이는데, 그것이 바로 집이다. 주지하다시피 집은 정체성의 전형적인 메타포다. 정체성의 역사는 바로 그 집안에서 일어나고 서술된다. 이를테면 사각형태의 입방체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과 그들을 응시하는 또 다른 사람의 시선을 통해 시선과 응시의 교차를 표현한다. 두 개의 얼굴이 하나로 포개진 작업에서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과도 같은 이중분열이, 그리고 집 형상 속에 세 개의 얼굴이 등장하는 작업에서 다중분열이 표상된다. 집 속에 얼굴이 들어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 속에 집이 들어있는 경우도 있다. 프로필 형태의 얼굴 위로 계단이 이어지고, 그 층계가 끝나는 자리에 문틀(아마도 작가의 내면으로 연이어질)이 나 있는 형상이 꿈꾸는 얼굴을, 그 얼굴의 몽상가적 기질을 떠올리게 한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집은 이중적이다. 집은 나를 세상으로부터 보호해주면서 동시에 단절시킨다. 그 이중성은 그대로 정체성의 이중성과도 통한다. 나는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 싶고 동시에 거세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나는 보면서 동시에 보여진다. 이 욕망과 현실의 거리감, 이 관음증과 자기검열 사이 어디쯤엔가 나는 서성거리고 있다.

이후창_The Otrher's Gaze 2010-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235×50×40cm_2010

이상으로 이후창의 유리조형작업은 유리를 일종의 덩어리로, 매스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통적인 조각과의 친근성을 예시해준다. 그러면서도 조각의 경계를 넘어서는데, 이를테면 투명성을 통해서 유리 속에 유리가, 덩어리 속에 덩어리가, 형상 속에 형상이 담겨진 이중구조를 실현해 보인다. 이런 이중구조는 자기반성적인 주제의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주는데, 이를테면 바깥 얼굴과 속 얼굴이 대비되고, 자기와 내면의 자아가 대면하고, 보는 나와 보여지는 내가 분열되는 양상을 손에 잡힐 듯 실감나게 전해준다. ■ 고충환

이후창_Island 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93×70×14cm_2010
이후창_Inside of Me I_Cast glass 열성형한 유리_62×70×15cm_2010

Lee Hoo-chang's Glass Modeling - Desire to See Myself; Concerning This Impracticable Plan ● Mass is usually opaque, the inside thus invisible. If a mass is transparent, we can see inside. Lee Hoo-chang - who majored in glass and sculpture - experiments with the point between transparency and opaqueness. A mass of transparent glass has for him an atmosphere different to a sculptural lump. It enables him to express invisible things represented in symbolic, abstract, or implicative ways. If this transparent mass meets the subject matter of man, he can represent human ontological conditions, and existential identity; a human's invisible spheres, categories, psychology, unconscious desire, duplicity, multiple personalities, self-disruptions, and trauma, directly and efficiently. Lee's work highlights man's ontological conditions, and existential sense of identity, directly and effectively. These are slightly different themes addressed in previous shows by Lee, which also correspond to each other, within the context of the human ontological condition. And so, Lee represents the body continually, through glass casting and thermal glass forming. The Age of Loss ● Contemporary people live in an age of suffering loss: loss of God (Nietzsche), loss of the center (Hans Sedlmayr), loss of self (King Lear), loss of identity, loss of nature. Jacques Lacan also defines human existence as a state of loss, or lack. Thomas Mann too, announced art does not exist without a sense of lack. Where does this sense of loss originate? Lee Hoo-chang discovers the cause of loss in human conditions suffering capitalism: commercialization, reification, objectification, and the fetish. Nothing is free from the commodity-logic of capitalism. Even the invisible, intangible, non-material, and unconscious have become commercialized. In his pramodels (plastic models) each part is assembled to complete a perfect plaything, incorporating human body parts. If an arm breaks, it can be replaced with another; if an eye gets sick, it can be replaced also. Some people are stuck in containers like plastic bottles. This series of works criticizes the commercialization, objectification, and cloning of humans. The people in his work are skin, void of all their human values. In capitalist society, those without a commodity value are abandoned and removed. The Others' Gaze ● I cannot see myself. I am shown to you. I always recognize myself through 'I' shown to you. I am the composition of improbable, heterogeneous fragments, shown to and judged by you. I am thus an accidental, indiscreet congregation of others. I at last internalize your recognition of me, and accept this as an established fact. I come to recognize myself, but still feel vacant. This is not what I recognized. I can never escape this dilemma - I am unable to recognize me for myself. Likewise, the internalized 'you' - your recognition of 'I' - settles within me. Your gaze enters me. The others' gaze is not outside, but inside, oppressing, governing, and interfering with me, within my self. The others' gaze is mine. I am alienated from myself (self-alienation); split from myself (self-disruption). Self-alienation and self-disruption is inevitable. What I fear is not myself but 'you' within me, your reprimands and criticism. You are a doppelganger within me. Lee's glass work, addressing the face as a primary subject matter, features the gaze of 'you' internalized within me, alienation, and disruption. Lee overlaps two faces in a glass mass. The face engraved on the surface, and the face within it, are opaque and transparent faces, a face engraved in relief and a face engraved in intaglio. As this, I meet my avatar and doppelganger. Signified in his another work is an untraversable abyss between conscious 'I' and unconscious 'I'. In the work featuring the two faces engraved in intaglio, the inter-space between the two faces showing vapors like waterdrops or an underwater scene is symbolic of such an abyss. In this series of works Lee reconfirms self-alienation and self-disruption, placing a deep sea or an abyss between 'I' and internalized 'you', conscious 'I' and unconscious 'I'. The Overlap of Gazes ● Lee addresses the gaze in his recent work. Overlapping with the others' gaze in his previous work, it has become deep. He alludes to the crossing of gazes - of seeing and being seen: the gaze being seen distinguished from the gaze seeing. This cross of the gazes comes from Jean Paul Sartre. The gaze being seen belongs to the subject seeing, while the gaze seeing is the object's response to being seen by the subject. The core is I am the subject of the gaze being seen, and the object of the gaze seeing. I am seeing you, and simultaneously being seen by another - 'you'. My recognition of I am being shown by you, has nothing to do with your existence or non-existence, since your gaze is already internalized within me. The artist uses the house as metaphor to address the overlap of gazes. The house is a typical metaphor for identity. He represents the crossing of gazes through the gazes of a person confined to a cube and another person staring at him. A dual-split is sensed in the work, overlapping two faces as Janus; a multiple disruption is felt in three faces. In some pieces a house is in a face. A profile of a face is linked to steps above it, linked to a doorframe, perhaps connected to his inner self. This series of work is ambivalent. The house protects and simultaneously severs me from the world. This duplicity mirrors the duplicity in one's identity. I desire to break free from the world, suffering a castration complex. I am seeing and being shown at the same time. I wander between desire and reality, voyeurism and self-censorship. Lee's glass modeling is close to conventional sculpture in that he sees glass as a lump or mass. Transcending the boundary of sculpture, he realizes a dual structure, where a glass mass is contained in another glass mass; a lump in another lump; a form in another form. This dual structure is effective in conveying his themes of self-reflection. He vividly represents aspects of contrast and disruption between the inner and outer face, the self and other, the seeing 'I' and shown 'I'. ■ Kho, Chung-Hwan

Vol.20101116b | 이후창展 / LEEHOOCHANG / 李厚昌 / glass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