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_2010_1124_수요일_07:00pm
주최_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후원_한국문화예술위원회_경기문화재단_안양시
총괄기획_조두호 연출/진행_강수민_유미 교육/막수저_이도경
참여자 창작_김혜령 / 비평_김누리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보충대리공간 스톤앤워터 supplement space STONE & WATER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석수2동 286-15번지 2층 Tel. +82.31.472.2886 www.stonenwater.org
어느 꿈속의 잔혹동화 ● 몸이 생각대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남들보다 중력이 몇 배는 더 강하게 내 몸을 부여잡는 것처럼 팔다리가 무겁게 느껴진다. 죽은 자의 형상이 눈앞에 나타나고 사람인지, 동물인지 모를 생명체가 하늘을 날아다닌다. 땅은 솟구치고 하늘은 내려 앉는다. 뒤죽박죽 엉켜버린 풍경,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판타지가 펼쳐진다. 마치 가위에 눌려 온몸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처럼 절대 유쾌하지 않은 이 꿈은 쉽게 깨지 않는다. ● 이번 『경계의 숲』展에서 김혜령은 불쾌한 꿈에서 깨어난 직후 잔상처럼 남은 꿈의 기억을 조각조각 모아 재구성한 편집된 산수를 선보인다. 동양적 재료를 베이스로 하는 작가는 조선시대 화가인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연상시키듯 몽환적인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선악이 구별되지 않는 괴이한 사물과 형상들을 중력이 소실된 혹은 뒤죽박죽으로 엉켜버린 공간에 배치한다. 그 공간에는 인물과 동물 그리고 숲이 주로 등장하는데 이 세 가지의 요소가 『경계의 숲』을 이끌어나가는 단서로서 자리한다.
첫 번째 단서로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눈이 소실되었거나 얼굴에 보자기가 씌워지고 붕대가 감겨있다. 이들의 머리는 가끔 뭉개져있기도 한데 일부가 잘려나간 불완전한 육신으로 숲 속에 서있다. 초점이 흐려진 부정확한 인물은 작가 자신의 초상이기도하며 작가가 그리는 세계 속의 불특정한 타자이다. 다음으로 인물과 더불어 서사 구조의 핵심을 차지하는 사슴, 새 등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절대 파괴적이거나 폭력적이지 못한 자연에 순응해 살아가는 나약한 동물의 형상이다. 깊은 산중에 올라 한적한 연못을 찾아 물을 마시는 사슴과 싱그러운 운율을 지저귀는 종달새. 하지만 이들의 가슴은 날카로운 가지에 관통되었고 서로의 잘린 다리를 입에 물고 남은 한 다리로 비틀거리며 위태로이 중심을 잡고 서있다. 또한 머리가 둘이 되어버린 사슴은 서로의 모가지를 좌우상하로 흔들며 각자의 입장과 상이한 가치에 대한 충돌을 이야기한다. 한 몸에 다른 생각을 하는 ‘동상이몽'의 꿈처럼 눈까지 멀어버린 사슴은 점점 괴물이 되어간다. 마지막 단서인 나무는 『경계의 숲』의 배경이자 작가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마치 묵직한 쇠파이프를 연상시키는 곧게 뻗은 몸통에 뾰족이 잘려나간 나뭇가지들이 엉성하게 달려있는 나무는 육중한 몸을 혼자 가누지 못하고 다른 보조물에 기대어 땅에 박혀있다. 이러한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나무들이 모여 김혜령의 숲을 형성한다. 이 같이 현실 속에 존재할 수 없는 경계의 숲은 세상의 거울이며 잘려나가고 튀어나온 가지들은 엉켜버리고 불안정한 현실에 대한 반영이다. 작가의 눈에 비춰진 세상은 그림 속의 사나운 숲처럼 꿈틀거리고 스산하다.
이번 『경계의 숲』展에 출품되는 작업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형태적, 소재적으로 적지 않은 차이를 갖는다. 과거의 작업은 주로 비이성적 차원의 공간에 스스로의 자화상을 그려나가는 작업이었다. 사각형의 방안에서 홀로 또는 복제된 이미지의 아이들이 수영복을 입고 목적 없는 놀이를 행하는 등의 몽환적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순간의 망상이나 상상력을 통한 작가 개인의 불안한 심리상태와 감정을 표현한 그의 작업은 꿈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것만 같은 지극히 개인적 일상의 번안 작업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경계의 숲』에서 작가는 현실에서 이탈되어 고립된 외톨이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조금 더 집단과 사회적 관점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초점이 상실되고 불확실한 삶을 영유하는 불특정 다수의 세상인 모호한 경계의 숲을 설정해 탁한 눈으로 바라보는 어른들의 잔혹동화를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 잘려나간 얼굴과 그 얼굴을 물어뜯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길 바란다. 이 전시를 바라보는 관자들이 한번쯤 『경계의 숲』안에 가쳐버린 자신을 바라볼 수 있다면 작가의 의도가 정확히 전달된 것이라 생각한다. ■ 조두호
GYA 2010 비평 ● 경계의 숲에서 김혜령의 동양화 작업은 종이 위에 공허하게 내려앉아 있다. 엷은 수묵은 종이에 스며들어 겹겹이 공기를 품고 있는 듯 하다. 이전에 그녀가 그려왔던 수영복을 입은 소녀는 어디에 있는 것인 지, 또 왜 그렇게 서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 소녀의 아리송한 얼굴에 동화되어 작품에서 느껴지는 빈 공간의 공허한 감정을 공유하기만 할 뿐이었다. 쉽게 동화되는 감정은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너무나도 쉽게 감정의 스토리라인을 보여준다. 내가 느껴본 적 있는 것 마냥. ● 이번 『경계의 숲』에서 보여주는 「Repair」(2009)와「이상한 곳」(2010)은 이전의 「Lost」시리즈의 불안감과 방황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붓을 한번 빨아낸 듯 연한 수묵담채는 중첩되어 견고한 밀도를 보여준다. 공간은 나무, 혹은 숲의 이미지가 반복되어 등장한다 마치 고개지의 낙신부도권처럼 여러 번 등장하는 주체는 시선의 이동에 따라 서사성을 띠며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작품 안에서는 시선의 이동이 주체 스스로 움직이듯 느껴지는 모습에서, 어쩌면 다시 곧 떠나버릴 것 같은 일말의 불안함의 여운을 남긴다. 붕대와 부목이 대어진 모습의 「Repair」는 제목이 시사하듯, 방황으로 얻은 불안함을 스스로 ‘치유'하고 있다. 나무들 뒤에 가려서 숨어있듯 보여지는 이미지는 한 쌍의 사람들, 새, 그리고 사슴이며, 역시 중복되어 나타난다. 사람들과 새는 서로 마주보고 있거나, 손을 잡고 있다. 사슴은 물로 목을 축인다. 불안함은 정말로 사라졌을까? 멀어지듯 작아지는 한 쌍의 인물은 점점 우리에게 등을 보여주고 있다. 한쪽에서 화면 밖을 응시하던 사슴도 목을 축이고, 짝이 없던 새도 짝이 생긴다. 수영복을 입은 소녀가 등장하던 이전 작품 「Lost」와 「차가운 놀이」와는 다른 모습으로, 작은 인물과 동물들이 등장한다. 소녀의 아리송한 표정에서 느낄 수 있던 감정은 최근작에서는 공간의 모습과 그 안의 이야기에서 보여주고 있다. 「Lost」에서 보여주었던 창 밖의 기하학적인 풍경에서 보여지던 ‘반복'이 확장되었다.
만화경의 거울이미지처럼 대칭적으로 등장하는 나무와 숲은 “결국엔 찾았다”싶은 감정의 안식처 일까? 라캉 Lacan의 ‘거울단계'이론 에서는, 주체가 거울을 바라보며 투영되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타자)에 적응하고, 자신과 거울이미지를 동일시 하는 과정을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최초로 겪는 소외라고 한다. 즉 거울을 바라보며 비춰진 이미지에 자신을 동일시 하지만, 이미지와 ‘현재' 사이의 ‘갭'에서 느껴지는 소외감 또한 느끼는 것이다. 상상 속 거짓된 이미지와 욕망이 현실과 연결되면서, 그 간극에서 발현되지 못한 욕망은 다소 공격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거울 이미지가 하나의 구처럼 보이는 공간부터, 점점 화면을 가득히 채워가는 공간이 작가 내면의 공간을 뜻 하는 것일 까. 좁고 넓은 화폭 안에서 다양하게 반복되는 이미지는 마치 끝이 없는 미로같이 느껴진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과 가까워지기 위해 끝없이 다가가지만 결코 채워질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과 끝이 불분명한 반복된 이미지 안에서 세밀하게 보여주는 미세한 변화들 -부러진 나무, 혹은 등장인물들의 다양한 모습들-은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미지의 기묘함을 더욱 불안하고 위태롭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내면세계를 어떤 감정으로, 대상으로 표현하기 보다 공간으로 제시한다. 경계의 숲_ 안과 밖, 위, 아래를 가로지르는 ‘경계'선의 숲에서 공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정의 내리기 불분명해진다. 다만 위태로움이 움트고 있음이 느껴질 뿐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등장하는 존재들의 행위가 공간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상상할 수 있다. 감정들이 완벽히 대칭되는 것이 아닌, 계속되는 작은 변화들은 작품 속 세계가 아직도 진행중임을 말한다. ● 김혜령의 작업은 혼자서 오롯이 갖는 감정과 기억에 대한 것 만은 아니다. 개인이 외부와 관계를 맺으며 생기는 감정, 혹은 욕망들의 이야기 인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생겨진 감정들이 내면에서 강압적이고 폭력적으로 어떠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의 경험이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누구나 겪는 관계 속의 경험이다. 수동적으로 표현된 공간과, 강압적인 폭력적인 존재들의 행위들은 결국, 관계 속의 우리의 모습을 가장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감정을 주고 받으며 서로 영향을 주며 받는 모습이다. 그녀의 작업은 장식적이지 않다. 거창한 또 다른 의지가 숨어있지도 않다. 누구나 갖고 있는 마구잡이로 생겨먹은,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과 그 영향들이 드러날 뿐이다. 나약하며, 야만적인 모습이 한껏 발가벗겨진 채. ■ 김누리
현실 너머에 존재하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은 결코 조용하거나 단순하지 않다. 그 곳은 늘 명료하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유기체로 이루어져 있고 외부로부터의 작은 침투에도 파동을 일으키며 불협화음을 낸다. 억눌렸던 기대와 욕망, 행복, 증오, 질투, 수치심 등이 뒤섞인 이 혼란스러운 무엇과 마주 대해야 하는 순간, 어디에도 정박하지 않은 채 모호한 정체성을 띈 자신을 바라보는 일은 고통이 된다. 나의 작업에서 표현된 객체와 공간은 이러한 고통의 순간을 마주할 때 생성되는 찰나의 풍경이자 잠재되어 있는 기억의 거울과 같다. 욕망을 해소하고 외부로부터의 상처들을 치유하고자 하는 행위 조차 무의식적으로 현실의 가치와 규범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이를 작업을 통해 풀어내는 것 자체가 내게는 치유의 시작이자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 김혜령
GYA PROJECT 2010 ● 2010년을 맞이하여 풍부한 예술 인적자원을 보유한 경기지역의 젊은 예술인을 발굴, 지원하여 지역사회와 연계된 시각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기획된 GYA PROJECT 2010 (gyeonggi young artist)의 작가들을 소개한다. 대학을 졸업하였거나, 대학원에 재학중인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젊은 예술 활동가들 중 자신의 작업에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장래 유망한 작가와 비평가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예술 창작활동의 뚜렷한 목적성을 제시하고 이들의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새로운 미술유통 체계를 개발해 나가고자 한다. 이번에 꾸며질 『경계의 숲』展은 GYA 2010의 일곱 번째 전시로 11월 3일부터 한 달여간 개최될 예정이다.
Vol.20101113b | 김혜령展 / KIMHYERYUNG / 金惠領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