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속을 거닐다

김종희展 / KIMJONGHEE / 金鍾希 / sculpture   2010_1103 ▶ 2010_1109

김종희_시간 속을 거닐다 Wandering Through the Ages_철_2010

초대일시_2010_1103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2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가족주의적 구성의 조각 ● 나는 70년대에 통의동의 한 목조 건물 2층에 작은 작업실을 가지고 있었다. 조각가 김종희는 그 시절 그 통의동 화실에 드나들며 입시준비를 하던 여고생이었다. 통의동 화실은 서양화가 이마동 선생이 젊은 시절 한때 쓰기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었는데 내가 그곳에 우거하고 있는 동안 시인이나 사진가, 연극인 친구들이 들락거리기도 했다. 이 속에서 김종희를 비롯한 몇몇 여고생들이 입시 준비를 했는데, 열악한 환경이었는데도 열심히들 해서 모두들 대학에 잘 들어가 주었다. 제대를 한 후 통의동을 떠나 모래내라고 부르는 남가좌동의 한 2층에 다시 세내어 작업장을 정했는데 통의동 화실의 제자들 중 김종희는 집이 가까워 대학생이 된 뒤에도 가끔씩 들르곤 했다. 내 작업실에 오면 그녀는 사회적 이슈나 거대담론보다는 가족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다. 부모님 이야기, 동생의 근황 그리고 자신의 일상등을 아주 중요한 화제처럼 꺼내놓곤 하여 슬며시 미소 짓기도 했는데, 오랜 세월이 지나고 다시 만나보니 그녀의 주제는 역시 가족이어서 나는 김종희야말로 "가족주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만 가족 구성원의 주체가 부모님이나 동생에서 남편과 아이들로 바뀌었을 뿐이다. 오랜만에 조각가 김종희의 작업을 보면서 나는 그런 명칭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다시 한 번 그녀야 말로 "가족주의 조각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김종희_고성 가도 Streets of Ancient Castles_청동_45×30×45cm_2010
김종희_시간 속으로-베니스 Through Time-Venice_Pink Orora, 트래버틴_44×51×26cm_2010

대체로 작가란 존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자기중심의 생각에 사로잡혀 지내기 일쑤인데, 그녀는 조선조의 여인처럼 늘 자신은 와중에서 한 발짝 비켜선 채 일상의 주제를 가족으로 내세웠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조각가 김종희를 만나기는 오 년에 한 번, 십 년에 한 번 꼴인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녀 가족구성원의 동선을 훤히 알게 될 정도라는 점이다. 그녀는 애틋하게 늘 가족을 떠올리고 이런 혈연공동체적 의식은 몇 발짝만 나서면 학교, 혹은 동문이나 함께하는 조각 그룹 등으로 확산되기도 한다. 그녀 조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런 점에서 자의식이 반영된 자소상적 형상이거나 가족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다만 배면에 희랍이나 중세건축과 같은 구조물들이 가끔 등장하는 것은 그녀가 서울집을 떠나 십년이 넘도록 이태리에 머무르면서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솟을 대문이 달린 우리네 옛 기와집에서 함께 삶을 영위하는 가족 구성원 대신 고대와 중세의 아우라를 지닌 구조물속에서 안식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내가 아는 조각가 김종희는 일견 의지적이고 강인한 듯싶지만 한편으로는 나약하고 따뜻한 심성의 소유자이기도 해서 혈연, 혹은 사회적 공동체 안에 있는 자신을 자주 떠올리는듯하고 이것이 조각의 주제로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예컨대 개별자적이고 분리되지 않는 조각, 오브제와 배경이 더불어 있는 조각, 그래서 이야기가 있고 생활의 냄새가 나는 조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김종희_천년의 사랑Ⅱ Love of AntiquityⅡ_청동_77×60×55cm_2008
김종희_시간 속으로-로마 Through Time-Rome_대리석_43×52×31cm_2010

얼마 전 남한강변의 작은 한옥 함양당(含陽堂)에 머무르고 있는데 김종희와 그녀의 친구들이 그곳을 방문했다. 그 옛날 통의동 화실에서 허구헌날 건방진 책줄이나 읽으며 지낼 때 한아름 햇살을 안고 "선생니임" 하면서 폴짝 들어오던 그 소녀는 어느덧 오십줄의 아낙이 되어 섬돌에 신발을 벗고 있었다. 가을날의 양광(陽光)이 부서지는 그 섬돌을 바라보며 문득 40년 가까운 세월이 한줌햇살처럼 흘러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 세월은 가고 인연만이 남는다. 인연 중에서도 가장 질기게 가장 나중까지 남아 있는 인연이 바로 가족일 터이었다. ■ 김병종

김종희_천년의 기억Ⅲ Memory of AntiquityⅢ_청동_35×34×35cm_2008
김종희_천년의 사랑Ⅰ Love of AntiquityⅠ_Black Marchina, 청동_38×43×35cm_2010

시간 속을 거닐다. ● 옛것이 시간의 흔적으로 보존되는 역사는 귀중하다. 시간의 쌓임으로 깊은 두께를 갖는 땅 위에서 수많은 크고 작은 건축물과 공간이 만나 어우러진다. 그것은 길을 만들고 마을과 도시를 이룬다. 창과 문은 닫힘과 열림으로, 내다봄과 보여짐의 이중성을 가진다. 건축물들은 길과 이웃하여 있고, 그 길 위에 밝고 어두운 곳에서 짧고 긴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러한 반복과 아름다운 조화가 나를 사로잡는다. 여행은 건축물과 공간의 관계를 기억하게 한다. 마침내, 먼 옛날의 추억이 시간을 뚫고 다가와 과거로 들어가는 시간의 문을 열어준다. 또한 도시의 기억은 물리적인 건축물과 그곳에 살았을 사람의 이미지를 중첩시켜준다. 이렇듯 시간여행은 시간의 집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조화롭게 공존시키며 또 미래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에게 그 이야기를 건넨다. ■ 김종희

Vol.20101108f | 김종희展 / KIMJONGHEE / 金鍾希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