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102_화요일_06:00pm
후원_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형연구소_서울시 창작공간 금천예술공장
관람시간 / 10:30am~06:00pm
서울대학교 우석홀_WOOSUK HALL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번지 서울대학교 종합교육연구단지(220동) B1 Tel. +82.2.880.7480
M의 이야기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습니다. ● 지금 여기엔 한 번도 소원한 적 없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8월은 폭설을 허락하지 않았고 12월의 호랑나비는 날아온 적 없습니다. 사내아이가 되고 싶었던 계집아이는 아름다운 소녀로 자랐고 첫사랑은 아지랑이처럼 사라져버렸습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이유는 오직 하나, 간절히 기다린 탓입니다. 그러므로 기다린 후에 오는 것들은 정말 기다린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기다리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얼룩무늬 기린이었거나 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국 소년의 푸른 눈동자였거나 과묵한 앵무새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교차로에 오던 날부터 나는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세상에서 오직 기다리는 일뿐이었으므로 그 시간이 지루하다고 불평하거나 못 견디는 일은 없었습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기다리지 않아도 다가오는 것들입니다. ● 나무가 꿈꿀 수 있는 사랑은 연리지가 되어 천년을 사는 것입니다. 한 번도 B를 기다린 적은 없습니다. 지구별에 B가 존재하는지도 알지 못했으니까요. 어느 날 B는 수줍은 듯 눈을 맞추고 하얀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습니다. 안녕? 하고 내게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계절이 바뀌도록 우린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폴 세잔에 대해 이야기 할 때 B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습니다. 이어폰을 한 쪽씩 나눠 끼고 함께 모차르트를 들을 때 내 여린 잎들은 파르르 몸을 떨었습니다. B는 내가 깔깔 웃느라 떨어뜨린 꽃잎을 주워 책갈피에 소중히 넣어두기도 했습니다. 아무 말 없이 내게 기대어 한참을 쉬었다 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의 호흡이 느껴지면 내 푸른 잎들은 햇빛을 받을 때보다 더욱 눈부시게 반짝였습니다. 그러나 B가 다녀간 밤이면 나는 잠들지 못하고 오랫동안 뒤척여야 했습니다.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라고,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므로 착한 바람이 잠들 때까지 가만히, 가만히 기다려줘야 할 거라고 나를 다독였습니다. 그럴수록 나의 수액 속에 팽팽하게 차오르는 것은 B가 말해주었던 모든 것, 한 번도 본 적 없는 은하수와 밤바다를 쓰다듬는 하얀 달빛, B가 그리다 만 소년의 까만 눈동자, B가 흥얼거리던 비틀즈였습니다.
당신이 있으므로 오늘 여기, 내가 있습니다. ● 교차로를 돌아 승강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린 B가 보입니다.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B의 뒷모습을 향해 보고 싶다!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은 걸 꾹 참습니다. 나무는 꽃을 피우고 잎이 무성할 때만 나무가 아닙니다. 모두를 떠나보낸 겨울나무, 봄을 준비하며 침묵과 고독 속으로 침잠하는 순간, 나무는 비로소 참된 자신을 만납니다. B에게서 배운 사랑 또한 그랬습니다. 지나간 사랑은 우울과 어둠일 수도 있지만 투명하고 환한 빛이 되어 나를 비출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의 출발선은 있었지만 완료 지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란 상대를 통해 깨달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며 그것을 찾으려는 의지이기 때문입니다. B와 나눈 사랑은 뿌리가 빨아들인 수분처럼 내 안을 흐릅니다. 싹을 틔우고 어둠을 밝히는 등처럼 하얀 꽃으로 피어나 쌀쌀한 4월의 세상을 밝힐 것입니다. 초록 잎이 되어 바람에 흔들리며 무성한 여름을 함께 보낼 것입니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겨울이 찾아와도 우리가 나눈 사랑의 기억은 나와 함께 숨 쉴 것입니다. B는 떠났지만 그가 보았던 파도와 그가 꿈꾸던 별은 내 안에 있습니다. 나는 바다를 안은 목련이 되었습니다. 우주를 품은 목련이 되었습니다. 그를 사랑할 수 없어 물거품으로 사라지는 대신 다음 생을 기다리며 사랑을 나눌 수 있기를 꿈꾸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나의 기다림은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내 사랑은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 김규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연히 한 가로수가 눈에 스치듯 들어왔다. 조금은 감상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오해일지 모르겠지만, 가로수가 나의 하루를 위로해 준다고 느꼈다. 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나에게는 큰 힘이 되었고, 그 날 이후로 길을 지날 때마다 나는 항상 그 가로수를 바라보게 되었다. 무언가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는 사소하지만 때로는 거대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고 생각했다. ■ 이병수
Vol.20101105e | 이병수展 / LEEBYUNGSU / 李秉洙 / photography.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