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026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유나이티드 갤러리_United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동 616-12번지 Tel. +82.2.539.0692 www.unitedgallery.co.kr
경계 위에서의 대화 ● 죽음에 대한 제의는 많은 경우 죽음을 달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이는 삶과 죽음의 극단적 세계를 상정하고, 주체가 삶의 세계에서 이탈해 죽음의 세계로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무(꽃)는 삶과 죽음 사이를 순환한다. 죽음에 서서히 다가가는 그들의 삶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생명을 예고한다. 그러기에 나무(꽃)는 우주적인 생명원리의 중심을 상징하는 기호로 자주 인용된다. 김석영의 회화에는 '나무(꽃)'가 자주 등장한다. 이 '나무(꽃)'는 풍경의 이미지로 고착화된 나무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을 수용하며 '생명-죽음-생명'으로 변하는 유기체이다. 그러기에 김석영의 나무는 생명의 찬란함을 자랑하는 시기를 담아낼 때에도 죽음의 그림자가, 죽음의 처연한 순간을 담아낼 때에도 생명에 대한 부푼 기대가 서려 있다. 즉, 이러한 극단의 교차와 이동을 통해 그의 회화는 시간과 죽음(삶)에 관한 연구를 한다.
「Dry Flower」는 표면적으로는 죽음의 힘에 의해 뒤틀린 '생명'을 다룬다. 화면 중심에는 찬란하면서도 어두운 색들로 채색된 꽃이 있다. 거칠게 비틀어진 그들의 형태는 머리를 조아리는 꽃의 형태를 고려하면 죽음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뒤틀린 형태는 배경에 놓인 수많은 꽃들의 모습처럼 결국 자신의 색을 잃고 줄기가 꺾일 운명을 예고한다. 여기에서 방점은 '생명'이다. 죽음에 이르는 그들을 다루는 김석영의 회화적 방식은 죽음이 아닌 '생명'을 지향한다. 그는 나이프(혹은 다른 물체)를 이용해 표면을 긁거나 지우면서 붓이 가지지 못하는 속도와 긴장감을 자아낸다. 꽃을 '그리기' 위해 사용된 물질은 김석영의 손에 의해 뭉개지고 벗겨지면서 화면 전체로 확장된다. 무채색 배경의 곳곳에 자연스럽게 침투한 색의 파편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공간에서 발견된 삶의 기운이다. 즉, 이러한 파편은 캔버스 위에 안착한 꽃의 이미지가 아닌 유기체로서 지금도 숨 쉬고 움직이는 꽃의 움직임을 담아낸다. 「Forest」 연작은 김석영의 긁고 지우는 회화적 기법의 방향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Forest」는 숲을 그리고 있다. 그가 포착한 나무는 정적으로 고착된 이미지가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듯 역동적이다. 미적거리를 유지하고 그의 작업을 보면 그의 회화는 시각적 환영을 만든다. 그러나 근접해서 그의 작품을 그는 캔버스에 물질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지우는 방식을 취한다. 이것은 그의 회화적 행위가 시각적 환영 제작 방식에 동참하면서도 그것을 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캔버스의 물질을 지워가면서 형태를 구축하는 그의 방식은 그가 캔버스의 위에서 완성되는 '환영' 대신에 캔버스 자체에 여백을 만들어내면서 캔버스의 '평면'에 다가간다. 이것은 물질의 본질에 접근하려는 그의 행위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물의 고착된 형태가 아닌 사물에 내재된 기운을 캔버스의 여백에 가득 채운다.
회화의 '재현'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수면으로 이어진다. 거울, 수면, 그리고 회화는 허상을 실재처럼 보이게 한다는 측면에서 유사관계이다. 그러나 거울은 내부를 차단하고 외부의 대상을 오롯이 반사만하는 반면, 수면은 외부를 명증하게 반사를 하지는 못하지만 내부를 유지한다. 그렇다면 회화는 외부의 대상을 명증하게 반사하면서도 내부를 유지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회화는 대상의 정체성을 포착함에 용이하다. 타자의 개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주체의 정체성을 인정받는다. 「Secret Garden」 연작은 내부와 외부의 묘한 교차를 이루는 수면을 다루면서 대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메타포로 사용된다. 「밤손님」은 이러한 의미에서 「Secret Garden」 연작과 닮았다. 벽이 내부와 외부를 굳건하게 나눈다면, 문은 벽의 기능을 유지하면서 열려 있는 경우 내부와 외부의 교류를 인정한다. 「밤손님」의 문은 열려 있고, 그 내부와 외부의 교류의 장에 말이 있다. 이것은 회화를 통해 무엇인가에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교류의 장에 서고자 하는 작가 자신의 초상화이다.
김석영은 회화를 통해 대화를 하고자 한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그곳에서 작가 자신만의 답을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별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개입을 배제 혹은 제거하지 않고 수용함으로 대화를 한다. 이것은 경계를 인정하는 자에게 허락된다. 불안과 우아, 매혹과 혐오, 냉정과 열정, 유머와 공포 등 모든 양 극단을 제거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 김석영은 지금 그 대화의 장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 이대범
Vol.20101029e | 김석영展 / KIMSEOKYOUNG / 金錫英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