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걷는다 Walk Through Time

구름수展 / GUREUMSU / 雲水 / photography   2010_1027 ▶ 2010_1102

구름수_시간을 걷는다_디지털 프린트_110×137cm_2008~10

●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구름수 홈페이지로 갑니다.

초대일시_2010_10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나우_GALLERY NOW 서울 종로구 관훈동 192-13번지 성지빌딩 3층 Tel. +82.2.725.2930 www.gallery-now.com

'철학과 사유' 외형에서 내면으로의 전치(前置)-작가 구름수의 연작 「시간을 걷는다」를 중심으로 ● 1. 작가 구름수는 사진을 단순한 재현의 가치를 넘어 하나의 관념적 공간, 공감 가능한 인식공간으로의 전환 매개(媒介)로 인식한다. 그리고 그 위에 풍경과 인물을 비롯한 종교적 도상 등, 다양한 상징을 투각해 자신만의 언어를 창출하고 그 언어를 통한 메시지의 송출에 주안점을 둔다. 그렇게 해서 거둘 수 있는 긍정성이란 작가 구름수만의 미학적 견지이며, 이를 완성케 하는 세분화된 원자의 역할은 기호와 상징 등이다. 즉 작은 퍼즐들이 집합을 이뤄 하나의 도상을 만들어 내듯 그의 사진작품들은 파편적인 심벌, 그리고 그 표면에 부유하는 표현형식의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그의 사진을 매제로 한 고유한 철학적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의 여러 연작 사진에서 획득 가능한 것은 일차적으론 정적이고 가끔은 지나치게 고요하여 역동성과는 거리를 두는 형식적인 부분이다. 정지된 듯 순간적 지연에 몰입된 인물들, 스냅처럼 멈춰서 있는 경관들, 화면 곳곳에 도포되어 있는 물질들에서 움직임이나 그침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이면엔 일정한 흐름이 놓여 있다. 읽기 쉽지 않음이 사실이나 느린 유속의 순환이 놓여 있음엔 분명하다. 그것의 정체는 궁극적으론 우리의 잃어버린 사유요, 내면에 투영되어 빚어진 삶의 단상들 혹은 존재론적 고찰, 그 자체이다.

구름수_시간을 걷는다_디지털 프린트_110×137cm_2008~10

2. 작가 구름수의 작품에는 다분히 수동적인 겉과는 다른 내면의 성찰이 지류처럼 흐르고 있으며 이 지류는 지각하는 인간만이 깨달을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개념과 이성, 판단과 가치관을 함축한 '사유'라는 대하로 귀결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알고리즘(algorism)의 집합이 바로 「모두가 하나다(All is United)」연작들을 비롯한 「내면의 여행(The inside travel)」, 「시간을 걷는다(Walk Through Time)」 등의 시리즈라고 할 수 있다. 작금의 작품들을 포함한 수없이 많은 사진들이 그의 조형언어를 창출시키는 규칙의 집합인 셈이다. 구름수 작품의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파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이는 그가 지난해 4인 그룹전을 통해 발표한 대표적인 작품인 「모두가 하나다(All is United)」연작들과 이번 전시에 선보이는 「시간을 걷는다(Walk Through Time)」 시리즈에서 유추할 수 있다. 물론 여행이란 외부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닌, 내 안에 들어서 있는 마음의 본질을 찾아 걸을 때 비로소 참다울 수 있다는 「내면의 여행(The inside travel)」시리즈와도 맞닿는 측면이 있다. 이중 메이크(make)와 테이크(take)의 접점(接點)에서 도출된 「모두가 하나다(All is United)」는 자연과 인간 삶과 연결된 각종 사물들을 하나의 조화로 들여다보고 이를 균질한 존재로 해석하는 평등 ․ 평화주의가 녹아 있는 작품들이다. 아무리 많은 여행을 해도 언제나 본류는 내게서 비롯되고 그 자리에 머물고 있다는 전작(前作) 「내면의 여행(The inside travel)」에 비해 침묵과 고독의 시간을 살짝 이탈해 거시적 차원에서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하지만 「내면의 여행」과 이번 작품전에 선보이는 「시간을 걷는다」는 시간성에 관한 탐구, 회귀와 근본에 대한 탐색이 관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내면의 자신에게 은연중 묵언(默言), 묵행(默行)을 강조하던 「내면의 여행」과는 달리 「시간을 걷는다」는 보다 관념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자체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에서 양자 간 변별을 유지시킨다. 이를 포괄적 카테고리화 하면, 「모두가 하나다」나 「내면의 여행」, 「시간을 걷는다」 모두 철학적이며 존재성에 관한 명상적인 울림이 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번 전시 출품작인 「시간을 걷는다」 시리즈는 유독 자기 철학적이며 사유적이고, 동시에 작가가 지닌 예술에 대한 가치관을 자연스럽게 표출시킬 수 있도록 한 시원(始原)이었다는 점에서 구분이 내재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구름수_시간을 걷는다_디지털 프린트_110×137cm_2008~10

3. 이를 지난해 전시작인 「모두가 하나다」와 대조하면 색깔은 더욱 짙어진다. 당시 선보인 「모두가 하나다」에서 숙지할 수 있었던 표피적 여운(餘韻)은 모두가 하나이고 모두가 평등한 것을 철학적으로 그리려는 작가의 주제의식에 집중되는 구조의 엿보임이었다. 고하의 가치를 희석시키고 좌우 간극에 대해 덧없음을 평등으로 다루고 분포하려는 의지(그것이 비록 비자발적이라도)가 의도내지는 비의도적인 차원 아래 깃들어 있었다는 게 맞다. 반면 순차적으로 볼 때 「모두가 하나다」를 잉태할 수 있었던 모체(母體)가 된 「시간을 걷는다」 연작은 자신이 만들어가는 삶에 대한 사유와 고찰, 진정성을 향한 자문이 보다 진하게 이입되어 있다는 면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그 자문의 틀에 갇힌 형상은 비시와 같은 인간 삶의 여정에 반드시 이입되곤 하는 욕망, 욕구를 비롯한 다양한 현실적 개념들, 이상화되곤 해도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되는 조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이를 제의(祭衣)적 인물들과 낯설고도 친숙한 풍경이라는 상징을 통해 역설적으로 전환시켜 놓고 있다.(구름수의 작품을 관심 있게 대면한 이들은 알 수 있다. 일예로 「모두가 하나다」에서도 그 인물들은 등장한다) 비록 강요는 하지 않지만 관객들로 하여금 약간의 주지는 가능한 서사를 함유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흐름(읽기 쉽지 않음이 사실이나 느린 유속의 순환의 체감)이 녹아 있음엔 분명하다. 그의 작품에서 필자를 흥미롭게 만든 또 다른 것은 연작들의 형식과 언어들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상징체와 기호체계의 적절한 운용이다. 또한 구름수의 작업이 지닌 지속성의 이유가 어떻게 생성되었고 확장하게 되었는지 몇 개의 힌트로 솎을 수 있는 기회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하나의 매력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두가 하나다」의 경우 동일한 개념을 지닌 인간일지라도 성인과 일반인의 차이 또한 없고, 하다못해 인간과 동물조차 단일하며,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또한 일체로 구조화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때 등장한 상징체는 나비와 길게 늘어진 천, 후광, 새, 구름, 호랑이 등이었다. 나비는 영혼을 상징하고, 머리에 쓴 천은 인간 전생의 업을 표현한 것이었으며, 바위와 구름 등은 갑자의 세월을 은유하는 알레고리(allegory)였다. 즉 어떤 추상적 관념을 드러내기 위하여 구체적인 사물에 비유하여 표현하는 방법, 특정한 관념적 주제를 말하기 위해 구체적인 보조 관념을 사용하여 그 유사성을 적절히 암시하는 대체물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징들로 지루한 설명을 대신한바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기호체계는 사실상 「시간을 걷는다」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그르지 않다. 원래 이 기호들이 탄생한 배경이 실은 「시간을 걷는다」 연작에서부터였다는 것이다. 밀양강변 야외에서 「시간을 걷는다」를 화면에 담은 후 작품의 주제의식을 더욱 강조할 수 있는 실내로 옮겨진 것이 「모두가 하나다」 시리즈인 셈인데, 균등과 평화의 법칙 아래 상징적인 언어들로 가득하고 작가 자신의 미적 가치관을 대변하는 동시에 그게 무엇이든 거죽은 다르더라도 본질엔 차이가 없음을 시각화하며, 더불어 사진이라는 한정성을 벗어나 지극히 회화적인 관점에서 풀어지고 동시에 단순히 찍는 게 아니라 만드는 결과를 이끌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결국은 「시간을 걷는다」를 기초로 했다는 것이다.

구름수_시간을 걷는다_디지털 프린트_110×137cm_2008~10
구름수_시간을 걷는다_디지털 프린트_110×137cm_2008~10

4. 다만 「시간을 걷는다」는 「모두가 하나다」에 비해 시각적 기호는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강한 색감도 없다. 인물과 풍경, 행위적인 표현에서 동질한 언어와 관념이 내재되어 있음을 화인할 수는 있지만 콕 집어서 '이것이 무엇이다'라는 지시어는 목도하기 어렵다. 그건 작가 내면의 지향점을 관념적 풍경이라는 소실점으로 거둬들이고 있는 탓이 크다. 이미지라는 목적물에 앞서 그것의 속에 주목하고, 내면에서 일렁이는 공명에 주안점을 둔 경향이 적지 않다. 그렇지만 작가의 주제의식과 개연성이 높으면서도 해석을 풍부하게 만드는 여백은 「시간을 걷는다」가 훨씬 크다. 정렬되어 있거나 엄중한 질서를 내보이지는 않으나, 아니 어쩌면 자유로운 측면이 더욱 강하지만 소재를 통한 사색과 해석의 유동성은 보다 내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이런 점은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해 사진이 지닌 근본적 속성인 사실성을 더욱 명징하게 표출케 하고 인위적으로 구분된 온갖 구속과 경계를 무력화시킴으로서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의 문을 한껏 열어 놓는 기능을 한다. 그리고 적어도 이는 조리개의 표적이 된 피사체를 철저하게 묘사하는 사진이 그 재현을 넘어 또 다른 해석으로 연결되는 창구로 쓰임 됨을 틀림없도록 한다. 이처럼 이후 작업들에 적잖이 영향을 준 「시간을 걷는다」 시리즈는 작가의 주제적 관점이나 지향성의 발원지, 또는 구름수 작업의 전반적인 서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그 외에도 정신적이고 철학적인 내면세계를 추구하려는 의지의 발원지요, 여타 시리즈들의 역사성과 차후 작품들의 예고를 알리는 복선이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아무튼 이번 전시에 내걸리는 그의 작업 「시간을 걷는다」는 사진에 관한 작가의 시선과, 그 시선에 포박된 감수성이 시적으로 조화롭게 공존하는 현재의 작업 방향을 일러주는 조타로 아쉬움이 없다. 그것들은 피사체를 중심으로 한 재현의 개념을 넘어 철학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핵심 언어로 작용한다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가치를 심어준다. 특히 있는 그대로의 재현하는 사진으로 남기 보다는 사진을 매개로, 상징과 기호를 희석제로 정신적인 결과로 나아가는 그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단순한 시선의 고정과 평가 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특히 삶이란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의미 이상의 일정한 가치를 구동시키는 에너지의 환류, 이것이 구름수의 작품들에서 생성되는 큰 울림의 원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 홍경한

Vol.20101027b | 구름수展 / GUREUMSU / 雲水 / photography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