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0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일,공휴일_10:30~06:00pm
제이에이치갤러리_JH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29-23번지 인사갤러리빌딩 3층 Tel. +82.2.730.4854 blog.naver.com/kjhgallery
자연과 예술의 사이에서 ● 김종한의 조각은 자연과 예술 사이를 오가다 작가가 느낀 세계 현상에 대한 고민과 성찰에 관한 것이다. 특히나 김종한의 작품은 순박한 순수주의(purism)를 지향한다. 그런데 그 순수주의는 서구미술에서 말하는 것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서구미술에서 말하는 순수주의란 당연히 모더니즘을 가리킨다. 모더니즘이란 첫째로 사회위계에서 기독교의 위상이 감소한 이후의 시대, 즉 신이 과학으로 대체된 이후 시대의 미술로 크게 볼 수 있다. 둘째, 외부세계의 사회 경제 정치적 요소들을 배제시킨 순수 매체 안에서의 미적 형식의 탐구를 말한다. 더 깊이 말하면 장르간의 침범을 불허하면서 특정 매체가 갖는 본질(essence)의 철학적 탐구에 있다. 이에 반해 김종한이 추구하는 순수주의는 자연과 대아, 혹은 자아를 대립시키는 서구적 이분법을 떠나 부즉불리(不卽不離)한 동양적 세계관의 재발견에 있다. 여기서 부즉불리란 용어는 초월계와 세속계, 가령 신의 왕국이니 인간계니 관념적으로 세계를 나누는 방식이 아니라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여기에 성스러움과 속됨이 다 있으며 사실 성스러움과 속됨은 종이 한 장만도 못할만치 차이가 없다는 동양적 사유방식이다. 즉 부즉불리는 성속구유(聖俗具有), 비승비속(非僧非俗)과 같은 말일 것이다.
동양에서 자연스러운, 자연과 친화된 삶을 산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서구는 수백 년 동안 자연을 마치 기계로 바라보았다. 정밀하게 설계되어있는 기계의 설계자는 인격신 기독의 신이었을 것이다. 동양의 신은 인격신이 아니라 주희에 따르면 현현묘묘(玄玄妙妙)라거나 십십일일지공(十十一一之空), 혹은 무극(無極)이라고 표현한다. 따라서 현묘한 자연과 자연 천지의 거주자인 인간은 불리되지 않은 하나며,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 요소일 뿐이다. 이러한 세계관을 이미 상정(想定)했기 때문에 김종한은 자연과 인위 그 자체인 예술을 조화시키려 하는 것이다. 김종한의 예술은 자연을 거스르는 바에 대해 철저하게 최소화시킨다. 튀어나오면 나온 그대로 움푹 파였으면 그런대로 나둔다는 의미에서 최소화시킨다는 말이 아니다. 자연적 재료, 즉 돌과 마주치는 최초의 순간, 그 석재가 가지고 잇는 최초의 형상에서 테마를 얻고 자기가 살고 있는 현재 일상의 일기도, 그 편린의 감정들을 그대로 싣는다. 더욱이 자기 생활주변의 자연요소들에서 채집한 천연염료들, 고추, 쑥, 복분자, 선인장 같은 식물들로부터 자기 감수성의 테마를 주입시킨다. 살면서 당연하게 따라붙는 희로애락들, 보람과 걱정, 과거의 시간과 미래에 대한 나의 마음들이 고스란히 주입된다. 당연히 반려(伴侶)로부터 서운한 감정이 들었을 때는 작품에 고추를 으깨 얻은 즙이 가미되었을 것이며, 에로틱한 환상이 내 현실이 되었을 때는 붉은 복분자의 과즙이 채색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치 앞도 내다볼 수가 없다. 내다볼 수 없기 때문에 걱정이 든다. 하루의 일기를 살펴보자면 정오의 태양이 가장 뜨겁다. 2시의 태양도 뜨겁다. 너무나 강해서 그 광휘를 우리는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석양의 빛은 만만하다. 아름답다. 예뻐 보인다. 숭고해 보인다. 석양은 가장 화려한 순간이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사라져 새까만 암흑으로 뒤바뀐다. 우리말 중에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곧 멸망하지만 멸망하기 전 그 기세가 가장 왕성하다는 불교적 깨달음이다. 우리는 바로 회광반조, 석양에 끌린다. 현대미술의 요소는 모두 석양의 불빛이다. 석양의 불빛은 허무하다. 서양미술의 주제가 그토록 오랫동안 메멘토모리(memento mori)나 바니타스(vanitas)인 것, 허무함과 덧없음(transient), 죽음으로의 열망인 타나토스 등이 주제가 되는 것은 그 자체 서양미술과 미의 원칙이 석양을 쫓는 올빼미이기 때문이다.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는 진정으로 한낮의 뜨거운 진실을 결코 보지 못한다. 한낮의 뜨겁고 눈부신 진리는 너무 소중해서 우리가 지나쳐버리는 그런 진리다. 일상의 소소하지만 맛깔진, 지나쳐버리기 일쑤인 것들, 너무나 눈부셔서 볼 수 없는 것, 오래 가는 것, 질리지 않는 것, 투박하지만 지혜로운 것, 그런 것들이 정오의 눈부심이다. 서양에 미네르바의 올빼미가 있다면 우리에겐 소박한 진리의 수많은 소쩍새, 박새, 참새 등의 무수한 텃새들이 노래를 운다. 흔한 텃새의 즐거움과 애환의 울음 소리, 노랫소리가 바로 김종한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예술세계다. ■ 이진명
Vol.20101022f | 김종한展 / KIMJONGHAN / 金鍾韓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