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BREATH

조창환展 / CHOCHANGHWAN / 曺昌渙 / painting   2010_1020 ▶ 2010_1026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0

초대일시_2010_1020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3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끊임없이 들고 나는 생명의 음률-『숨』 ● 생명체는 숨을 쉰다. 숨이 있다는 것은 생명체로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된다. 생명체는 숨을 쉬면서 산소를 흡입하고 생명활동으로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숨쉬기 위해서 사용하는 신체기관은 생명체의 종류에 따라 각기 틀리지만 이 두 물질이 교환되는 생리 활동이 자연 속에서 생명으로서 존재 가능한 순환의 고리가 된다. '숨'을 시각적 이미지로 연상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의 신체에서 '숨'에 대한 인식정보를 받아들이는 주된 감각기관은 시각이 아니다. "숨소리" 나 '따뜻한 숨"등으로 표현 되는 예에서와 같이 '숨'은 오히려 청각적이거나 촉각적인 감각에 가깝다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숨'이 시각적으로 인식되기 위해선 청각이나 촉각을 시각화 시켜 반응하는 공감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같은 공감각적인 형태의 시각정보를 화면으로 나타낸다는 것은 그 성공 여부를 떠나 일반관객에게는 시작부터 감상의 난관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면 조창환의 '숨'은 청각적이고 촉각적인 영역을 시각적으로 전환하는데 상당부분 성공하고 있다. 부정형의 원모양이 반복되는 화면에서는 초겨울 뽀얀 입김이 유리창에 서렸다 사라지려는 찰나의 순간을 잡아 놓은 듯 하고, 식물의 잎이나 씨앗 주머니와 같은 유기체적인 형상들에서는 생명체의 맥박이 뿜어내는 가쁜 숨이 응결되어 생명력을 느끼게도 하기 때문이다. 회화에서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수단은 분명 이미지일 것이다. 회화의 존재 방식이 본질적으로 시각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 표현 언어 역시 시각적인 것이 회화에서 사용하기 편한 것도 사실이다. 이미지의 창조나 차용은 현대 회화작가들에게 있어서 강력한 표현수단 가운데 하나이다. 관객의 입장에서도 회화 작품을 볼 때 이미지는 감상의 키워드가 되며, 이런 편의성이 생산자인 작가와 소비자인 관객의 소통을 열어 주는 수단이 된다. 이런 관점에서 조창환의 회화는 이미지를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미술적 경향이나 표현적 유행에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화면에서 보여주는 원형이나 타원형, 그리고 어떤 유기체형, 식물의 잎이나 줄기, 또는 씨방과 같은 단순한 모양에서 사실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간혹 형태를 인지할 정도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 형상으로 인해서 전달되는 메시지를 읽어 내기란 역시 만만하지 않다. 결국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작가의 미적태도나 화면에 드러나는 표현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된다는 얘기가 된다.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0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1×116cm_2009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97cm_2009

작가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신이 물질인 작품과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본질적으로 작품과 자신이 하나 되는 물아일체에 대한 미학적 심미관을 얘기한다. "한 올 한 올 물감 방울이 단세포 유기체의 생명력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이 단세포 유기체들이 모여서 어떤 형태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숨'이 보인다. 그리고 이 '숨'을 느끼면서 생명체로서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체험한다." 사물과 이를 다루는 인간 정신과의 관계가 객과 주의 단계에서 승화되어 일체가 되는 경지가 되어야 미가 완성된다는 생각은 오래된 동양의 전통적 사고이기도 하지만 현대에서도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양미술사에서는 잭슨 폴록이 오토마티즘을 통해서 이런 미학적 가치에 다가가기도 했다. 조창환의 작품에서도 일정 부분 이런 면을 발견할 수 있지만 과도한 액션과 넘치는 물량이 제거되었다는데서 또 다른 차이가 있다. 좀 더 내면적이고 좀 더 내밀하고 좀 더 사색적이라고 할까. 작가는"작업이 진행되는 중에 원에 가까운 형태가 만들어 지는 과정에서 스스로 화면과 같이 호흡하고 있음을 느꼈다" 고 한다. 화가의 작업과정에서 화면과 호흡한다는 느낌은 지극히 표현적이지만 작가에게서 그 경계는 항시 절제되어 있다. 표현주의자들이 거친 호흡으로 긴장감과 불협화음을 양산하는데 치중했다면 작가는 정제되고 고른 호흡으로 내면의 수련을 추구하는 명상가들의 '숨'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런 호흡법으로 탄생한 화면 또한 지극히 명상적이다.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0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0×50cm_2010
조창환_breath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3×73cm_2009

작가의 작품 제작과정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일상에서 사용하는 갈대 빗자루의 가닥을 뽑아서 만든 낭창거리는 붓끝을 가볍게 춤추듯이 화면을 간질이 듯 그리는데 있다. 이를 반복함으로써 가늘고 다소 긴 모양의 점을 중첩해서 쌓아 올린다. 이 방법은 일정한 크기의 점이 마치 화면에 흩뿌려지는 모습으로 그려낸다. 하나의 점 같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점이 어떤 힘에 끌려간 듯한... 오히려 점의 궤적과도 같은 흔적이 겹겹이 쌓여서 만들어 진다. 한 점, 한 가닥 이 겹쳐 올린 희미할 수 밖 에 없는 존재감, 희미한 존재감은 수십 겹을 쌓아 올려서야 비로소 실재감이 드러난다. 이런 미약함을 다루기 위해서는 부드러움이 필요하다. 작고 연약한 움직임의 반복은 '숨'의 본질을 상징하고 그를 통해서 얻어진 결정은 생명체를 의미한다. 생명체의 실체는 '숨'이 있어야 가능하며, 이 '숨'은 생명체의 존재를 위해서 끊임없이 작동하는 순환 매카니즘의 고리가 된다. 하나의 점과 하나의 생명과 하나의 자연과 하나의 우주로 이어지는 생성과 순환의 시스템 속에서 작동하는 '숨'의 의미를 작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들숨과 날숨의 가지런한 음률을 통해서 화면에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들고 나는 숨결을 느끼듯 작업과정에서 숨결을 화면에 불어 넣을 수 있다는 생각은 무모해 보이기도 하지만 미술가로서 충분히 아름다운 시도이다. 오랜 침묵을 깨고 미술가로서 자신만의 표현 영역에 도전하는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다. 우리는 생명체로서 '숨'을 당연하게 달고 살아 가 듯이 미술가가 화면에서서 느끼는 '숨'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이 전시를 통해서 얻은 작가의 작은 성과가 더 큰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조동균

Vol.20101020b | 조창환展 / CHOCHANGHWAN / 曺昌渙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