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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展 / PARKYONGCHUL / 朴容澈 / sculpture   2010_1013 ▶ 2010_1019

박용철_찰나 刹那_동판, 투명레진, 철_196×150×135cm_2010

초대일시_2010_1013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덕원갤러리_DUKW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5번지 Tel. +82.2.723.7771~2 www.dukwongallery.co.kr

조각, 권력과 욕망의 허상을 말하다 ● 박용철의 청동 갑주들은 구체적 실체의 형상에서 비롯된 것 같으나 사실은 관념이 만들어 낸 알 수 없는, 어떤 동체의 껍질만 남은 허상들이다. 그는 고대 검투사나 권력자의 형상을 발굴, 복원하듯 잘게 썬 동판 조각을 용접하어 갑주의 부분들을 완성하고 연결하였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매우 지난한 일임에 틀림없다. 박물관에 전시된 고대 갑주들처럼(그것은 최고의 보존처리요원들에 의해 수년 동안 복원과정을 거쳐야 전시되기에), 그는 오랜 세월 동안 소멸해 갔을 갑주의 상태를 상상하며 손톱만한 크기의 동판조각을 하나씩 이어 붙여 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부분들의 형상이 완성되면 다시 그 위에 투명 폴리코트를 발라 거칠게 코팅을 한 다음 거의 투명한 상태에 이를 때까지 갈아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갑주들은 하나의 작품이 되어 마치 먼 과거에서 넘어 온 듯 생생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하나 둘 서게 된 것. 그의 조각으로서의 갑주들이 보여주는 갑주 본래의 원형상은 2천 5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은 어느 한 시기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그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장시간동안 인간이 전투적 행위를 하기 위해 혹은 힘의 징표를 보여주기 위해 입었던 도구였다. 여기선 2천 5백 년 전을 상정해 분석해 보기로 하자. 박용철 작가가 제작한 갑주의 형태는 서구적인 것, 특히 지중해 근방의 고대 그리스와 연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그 시기는 대략 제2차 페르시아전쟁이 한창이던 때와 맞물릴 것이다. 정확히 기원전 490년인데, 그 때는 그리스의 아테네 군이 페르시아의 침입에 맞서 마라톤 전투에서 대승했던 해이기도 하다. 그리스의 용사 페이디피데스가 마라톤에서 아테네까지 약 40킬로미터를 달려 승전보를 전했던 바로 그 전쟁과 그 해.

박용철_갑주, 검 09-21_동판, 투명레진, 철_225×150×72cm_2009

그런데 박용철의 갑주와 그리스시기의 갑주가 실제로도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갑주나 투구의 형상이 유사하긴 하나 그 시대의 갑주를 고증한 것이 아니며, 구체적으로 어떤 누구의 갑주를 모방한 것도 아니니까. 다만, 우리는 갑주보다도 머리에 썼던 투구가 너무 닮아있기 때문에 쉽게 그것의 시대인식을 헷갈려 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문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의 갑주와 고대 페르시아나 그리스시기의 갑주가 분명히 어떤 상관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그 의문. 나는 제3차 그리스 원정까지 나서야 했던 페르시아의 저돌적이고 멈출 줄 모르는 전쟁의 욕망을 생각해 본다. 역사가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제1차 원정에서 페르시아 함대는 아토스 곶에서 난파당해 전함 300척과 군사 2만을 잃었다. 제2차 원정에서도 페르시아는 아테네를 공격했으나 6,400여명을 잃고 귀국했다. 전쟁에 패한 뒤, 제국의 왕 다리우스 1세는 다시 전면전인 그리스 원정을 준비했으나 그는 결국 사망했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르가 뒤를 이어 그리스로 진격했다. 그러나 그도 그리스 원정을 성공할 수 없었다. 약 45년에 걸쳐 지속된 이 전쟁은 역설적으로 페르시아에 적극적으로 맞서 승리의 주역으로 급부상한 그리스의 중산층과 가난한 민중들의 정치적 발언이 강화됨으로써 아테네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는 점이다.

박용철_공허한 갑주_동판, 투명레진_68×39×40cm_2007

우리는 여기서 박용철의 갑주가 역사성을 담보하는 구체적인 증거로서의 갑주는 아니더라도 전쟁의 욕망 혹은 권력의 욕망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두 국가 간의 치열했던 전쟁의 역사는 그런 상상의 현실인식과 상징을 위한 부수적 자료에 불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권력의 실체 또는 욕망의 실체는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그가 제시하고 있는 갑주 조각의 세 가지 형상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갑주와 투구가 드러난 것만을 묶어서 해석할 수 있는 「공허한 갑주」, 「갑주, 검-0921」, 「사라진 정원」인데, 통합적으로는 갑주와 투구의 복원(?)이 가장 잘 되어 있는 「갑주, 검-0921」에서 가장 많은 것을 해석할 수 있다. 핵심은 그 갑주가 인간의 육체를 본 뜻 것으로 마치 근육질의 단단한 고대병사의 갑옷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갑옷도 아니고 그렇다고 몸도 아닌 빈껍데기와 같은 ‘공허한 갑주’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흥미롭게도 작가는 마치 이것이 진짜 갑옷인양 참으로 리얼하게 유물이나 유품처럼 설치해 놓았다는 점. 아마도 그런 전시연출로서의 시각적 트릭이 어떤 긴박감을 형성하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섬세한 조형인식과 '권력', '욕망'따위를 드러내려는 작가적 치열함이 조화롭게 드러난 상태일 것이다. 그러나 당당하고 그래서 압도적이며 두렵기까지 한 동판 갑주와 투구, 큰 칼은 우리 앞에 있는 바로 그 모습 그대로 어떠한 본질도, 존재도 상실한 단지 하나의 쇠일 뿐이다. 한마디로 공허한 갑주란 권력의 공허, 욕망의 공허를 상징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용철_안락의자_동판, 투명레진, 철_152×113×78cm_2010

둘째, 「안락의자」이다. 대체로 의자는 인간의 부재로서의 '실존'과 더불어 풀이되는 경우가 많으나 이 의자는 첫째에서 살펴보았던 갑주와 같이 권력자와 상응하여 어떤 '권좌'의 개념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즉, 의자는 그 자체로 권력의 또 다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박용철의 「안락의자」는 그 스스로 독립된 하나의 형상으로 완고하며 고집스럽고, 뿐만 아니라 육중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런 「안락의자」가 지상으로부터 가볍게 떠올라 불안한 기울기를 엿보이는 것은 '안락함'의 그 자리가 실제로는 어딘가 위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공에 떠 있는 저 빈 권좌야 말로 권력의 무상함을 보여주는 조각적 장치가 아닐까. 셋째는 「찰나(刹那)」를 표현한 작품. 「찰나(刹那)」는 투명인간이 큰 천을 뒤집어 쓴 채 어딘가를 향해 빠르게 돌아서다가 일순간 정지한, 굳어 버린 형상이라고 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터. 그게 아니더라도 우리는 선과 악을 다룬 무수히 많은 SF영화에서 이런 유의 형상을 많이 보아왔다. 예컨대 「반지의 제왕」에서 을씨년스럽게 등장하는 악의 제왕들처럼. 그러나 박용철이 표현하고자 한 것은 그런 악의 형상이나 투명인간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어떤 형상이라기보다는 제목이 말해주듯 '찰나' 즉 순간으로서의 아주 짧은 시간이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권력이나 욕망 따위는 다만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 또한 권력이나 욕망은 실체가 없는 것이라는 것. 마치 우리 눈에는 제왕처럼 보이고 두려운 무엇으로 보이기도 하고, 가려져 있기까지 하나 실상은 아무것도 없는 '虛'일뿐이라는 것.

박용철_The box_동판, 투명레진_40×38×29cm_2008
박용철_자소상_동판, 투명레진_49×38×27cm_2009

이렇게 살펴보면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이 무언인지 확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최근 두 대통령의 죽음에 굴하지 않고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과 맞물린다. 우리는 과거 군부독재 정권을 '제왕적 권력'이라 불렀으나 민주적 절차로 등장한 현 정권도 그에 못지않아 보인다. 그러나 권력은 유한한 것이다. 그들은 권좌에 있을 때 권력의 막강함에 도취되지만 결국 사라질 것이다. 거대한 바위가 모래알이 되듯 그 힘도 한순간에 흩어질 것이다. 아테네의 시민들처럼 우리도 제왕적 권력과 맞선 민중들에 의해 민주주의를 꽃피우지 않았던가! 박용철은 그렇게 흩어졌던 권력의 허상, 욕망의 허상을 재현해 놓은 것이다. ■ 김종길

Vol.20101017f | 박용철展 / PARKYONGCHUL / 朴容澈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