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007_목요일_05:00pm
참여작가 닥터디_문재일_박승예_이승아_임지연_정은유_형다미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쉼박물관_MUSEE SHUIM 서울 종로구 홍지동 36-20번지 Tel. +82.2.396.9277 www.shuim.org
쉼 박물관은 전통 상례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철학적인 과제를 의미 있게 풀기 위한 공간이며,현대와 전통, 동양과 서양 예술의 융화를 통한 새로운 복합 전시 공간입니다. 2008년 세계적인 빛 예술가 James Turrell 전, 2009년 임선옥 패션 디자이너의 fashion performance, 그리고 올 해 2010년 [일곱 이방인의 방문] 전시를 참신한 현대 조형 예술가 7인과 현대 시인 7인의 퍼포먼스로 구성하여 미술, 디자인, 문학, 음악 등의 다양한 예술분야가 어우러진 다원화 된 문화예술 공간으로 꾸며 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본 전시에 참여한 7인의 현대 미술작가들은 쉼 박물관의 기획 공모전을 통해 발탁 된다양한 쟝르의 예술가들로, 앞으로 한국 현대 미술을 이끌어 갈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향기의 풍요로움과 함께 본 전시를 통해 여유로운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 박기옥
닥터디 ● 치유의 느낌이 나는 그림 치유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그림 맑고 투명하고 아름다운 그림 밝은 기운을 가진 그림 그런 그림이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의 피로와 일상의 아픔 상처같은것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그림으로 자리하기를 바래 봅니다. 문재일 ● 문명구조는 현시존재 이전에 만들어졌으며, 그것에 의해 나의 존재는 이름이 붙여지고 의미를 갖게 되며, 살아가게 되는 방향성을 제시받는다. 그 체계화된 구조 안에서 보고, 먹고, 언어를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에서 남들과 같은 인생길을 걷게 되는 규칙적 모순에 빠지고 있는 건 아닌가? 눈에 보이지 않게 지배하고 있는 근본적인 규칙성과 상대방에 의해 나의 존재는 나의 시아에 드러나고 있다. 시공간 속에 존재자로써 남아 있는 한에서는 그 시대의 사유체계 범위 내에서만이 나의 사유세계가 펼쳐질 수밖에 없는가? ● 나는 형이상학적 꿈을 꾼다. 바깥으로의 사유, 빠져나갈 수조차 없이 꽉 짜인 그물망을 벗어나 보고자, 나는 가상현실을 그려본다. 현실이지만 문명이 사라진, 미래이지만 과거가 예측 가능한 모호한 자연과 문명과의 경계, 한 생명체로써의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에서의 시간, 알 수 없었던 일련의 사건들의 발생 등등 존재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사유 속으로 들어가 본다. 화려한 색채로써 살아남기를 갈구했던 형상들은 형상으로써, 언어로써, 의미로써, 얽히고설킨 짧은 이야기들만이 남아 뒷이야기를 전해준다.
박승예 ● 본 작가의 작품은 크게 평면 회화와 조형/설치로 나뉜다. 평면의 회화 작품들은 타성에 젖어가며 길들여진 의식이 갖는 공포를 전달한다. 인간의 얼굴과 결합된 개들은 도사견, 아메리칸 핏불, 도베르만 등의 투견, 경비견들이다. 교배를 통하여 가장 호전적이고, 자기 방어적이며 주인에 대한 충성심을 가진 종류의 개들이다. 이는 "주인"의 필요에 의하여 완전히 만들어진 성질의 종자들이다. 그들의 공격성과 호전성은 '공포'에 기인한다.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인지되는 상대에 대하여 방어적이며 공격성을 들어내는 것은 그들의 공포에서 시작된다. 다른 존재를 공포로 인지하여 적으로 간주하며 말살키 위하여 공격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스템 속에서 길들여진 인간군상의 모습을 전달한다. 일괄된 도덕과 성향을 유지하지 못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근거하여 자신에 대한 방어기재로서 타인을 공격하며, 경계하고, 편견 속에 배타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그 속에 담고 있다. "우리" 속에 존재할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은 길들여진 개와 같은 존재로서 뭉쳐진 결속 속에서의 방어와 공격 그리고 분노를 들어낸다. 중첩되고 일그러진 얼굴들의 작품들은 그러한 외부적인 길들여짐의 존재로서의 "나"와, 태초적 본능의 열망과 불변적 윤리를 지닌 또 다른 "내"가 하나의 지점에서 서로를 마주하게 되며, 그 순간 떨림과 공포로 서로를 견제하며, 서로를 괴물로 간주하게 되는 순간을 이야기 한다. 작가가 이를 통하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한 공포는 회피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면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이다. 길들여지고 교배된 개로서가 아니라, '내안과 밖의 괴물들'의 마주침에 흔들려 두려움에 질려버리는 도망자로서가 아니라 직면을 통하여 극복되어져야할 인간으로서의 자존의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승아 ● 아무 의미 없이 내뱉어지고, 그 말에 상처를 받는 사람들의 모습들을 표현하는 것에서부터 본인의 작업은 시작된다. 현실세계는 수많은 인구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소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타인에게 영향을 준다. 배경의 칼자국은 이러한 본인의 생각을 바탕으로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흐름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음을 의미하며, 동시에 혼돈의 이미지를 강조한다. 절단된 신체의 조각들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재조합하여 새로운 에피소드들을 만든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은 사적인 경험에서 오는 감정이나, 특정한 상황에 부딪혔을 때 신체의 움직임, 타인과 만나면서 느껴지는 인간관계의 특징들을 나타낸다. 완전하지 않은 신체는 언제나 완벽할 수 없는 인간관계를 보여주고,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 흥미를 유도한다.
임지연 정신 비만의 신체적 표출은 미화된 것처럼 우리 주변 곳곳에 독버섯처럼 퍼진다. 21C의 풍요함을 비판한다. 정신적 비만은 신체의 고통을 쾌락으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정신 비만의 소화 세계에서는 내면에 머물고 있는 불만을 신체의 고통적인 변형을 통해 표출한다. 정신 비만은 사회 때문에 복용과 소화상태의 반복되는 자기 자신만의 고통을 만들어 낸다. 자학을 반복처럼 하면서 성취감을 가진다. 나는 사회 현상의 주기적인 증후군을 정신 비만 현상과 비교한다. 산업사회의 고통, 개인적인 비대(과대한 발달)은 자연스런 정신신체상이 된다. 과대 정신신체는 정신적 압박감의 통합된 생성은 자기 자신의 고통 시스템이다. 이렇게 내면의 고통을 육체라는 개체를 통하여 과잉으로 통역된다. 사회와 육체에서 나오는 과잉은 현대 사회의 영향을 받아 내면과는 다르게 미적으로 포장(표출) 된다. 미화된 나의 작품들을 관객들이 보면서 만지고 느끼고 미적으로 표현된 형태와 색에 속아들게 된다.
정은유 ● '흡수'를 주제로 한 근작은 크게 두 경향으로 구별된다. 서양미술사를 차용한 패러디 연작과 작가의 개인사와 관련된 일련의 설치작업들이다. 패러디의 경우는, 작가가 현재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발견되는 각종 기물들을 마티스나 세잔의 정물화에 나타난 이미지 그대로 재배열하고 재구성해 그린 것이다. 이로써 거장과 자신이 정신적으로 만나고 과거와 현재가 중첩되는 현상, 즉 일종의 지평융합 현상이나 상호영향사의 개념을 반영하고 실천한 것이다. 이는 현재 나에게 흡수된, 나의 회화적 아이덴티티를 형성시켜준 원전에 대한 오마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작가는 이 일련의 그림들을 타블로가 아닌 원형 캔버스에다가, 그것도 그 캔버스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그렸다. 이 작화방식은 일종의 전방위적 시점을 적용한 것으로서, 고정된 시점을 전제한 전통적인 원근법을 수정한 것이며, 그 고정된 시점의 주인인 전능한 주체를 의문시한 것이다. 시점이 사통팔방으로 열려 있듯 세계도 열려있고, 시점이 움직이듯 주체도 다양한 층위나 전망을 갖는다고 본 것이다. 고정된 실체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이중성과 양면성, 상대성과 다중성의 차이 나는 연쇄가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작업에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에게 이어진 끈끈한 혈연을 주제화한다. 어머니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치마와 저고리 등 옷가지들(외할머니가 손수 만든)을 설치형식을 빌려 재구성하고, 그 오브제들이 상기시켜주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재현해서 설치된 오브제와 대비시킨 것이다. 삼대(三代)를 거쳐 현재의 자신에게로 이어진 혈연을 침묵으로 증언해주고 있는 오브제들, 나아가 시간과 공간, 세월과 역사, 존재와 부재, 상처와 흔적을 자기 내부에 흡수해 들이는 오브제들에게서 차후 작가의 작업의 변화를 예감케 한다. (고충환,「인체와 풍경, 존재론적 메타포」 중 부분발췌)
형다미 ● 곤충의 날개는 얇고 투명하고 빛을 통과시키는 장신구이며 방어구이다. 날개를 덮고 있는 화려한 색과 무늬는 허세를 부리는 가녀린 생명의 몸부림이다. 곤충이 화려하고 장식적으로 방어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장식하는 모습과 겹쳐 보인다. 이 같은 공통된 모습은 곤충과 사람, 지구상에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간의 유대감마저 불러일으킨다. 곤충의 생존에 없어서는 안 될 날개는 그 중요성에 비하면 너무나도 약해 보인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한 방패가 찢어지지 않도록 기워주었다. 그리고 누군가 다가오면 방패를 펼친다. 얇고 투명하고 빛을 통과시키는. (당일 하게 될 퍼포먼스)입는 작업으로의 진행 ● 잎맥처럼 얽힌 이 작업은 멀리서 바라보는 작업에서 좀 더 직접적인 방식을 추구하게 되었다. 이것은 내가 작품에게 유기적인 세계관을 드러내는 것 뿐 아니라 감정 자체를 일종의 아우라(aura)처럼 발산하는 역할을 좀 더 부여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시작되었다. 직접 몸에 걸친다는 행위에 더하여 그 안에서 그 얽혀있는 선들과 색 점들을 바라보게 하려는 의도 또한 유기적 세계관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Vol.20101015a | 일곱이방인의 방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