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1015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8:00pm / 백화점 영업 시간과 동일
롯데갤러리 대전점 LOTTE GALLERY DAEJEON STORE 대전시 서구 괴정동 423-1번지 롯데백화점 8층 Tel. +82.42.601.2827~8 www.lotteshopping.com
壁 - 시간의 무늬를 덧입다 ● 이삼십 년 전, 한 구석에 수도가 있는 작은 마당을 가진 집들은 대부분 시멘트 담을 가지고 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에 시멘트 벽돌이나 블록을 쌓아 지은 허름한 집들도 거의 예외 없이 시멘트로 벽이나 담장을 마감했었다. 그 무채색의 거칠고 단순한 마감을 피하기 위해, 마치 항아리에 무덤덤함을 덜어내려고 휙휙 이파리를 쳤던 것처럼 미장이의 투박한 솜씨로 무늬를 새겨 넣어 모양을 내는 것이 고작이었다. ● 이렇게 슬레이트로 기와를 얹은 지붕, 그리고 시멘트 담장으로 이어진 조그만 골목길로 엮인 동네는, 콘크리트 건물이 늘어선 잿빛도시와는 또 다른 뉘앙스의 잿빛 공간으로서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상징이었다. 그 담장과 벽은 세월과 함께 조금씩 허물어지고 이끼와 곰팡이로 얼룩이 진다. 획일적인 색채와 질감이 시간의 무늬를 입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중년이 넘은 삶들에게는 지나온 어렵고 고단했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마음 속 상흔으로 남아 있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서고 상가나 다세대주택이 겹겹이 늘어선 오늘, 우리가 사는 주변에서 시멘트 모르타르를 입힌 담장을 보기는 그리 쉽지 않다. 조인상은 이번 전시에서 과거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삶의 일부였던 그 낡고 오래된 시멘트 벽들을 보여준다. 그의 카메라에 잡힌 시멘트 벽들은 대부분 '재개발'의 광풍이 휩쓸고 지나가지 않은, 아니 개발이익을 노리는 이들에게는 무가치한, 그래서 버려지다시피 한 서해안 중소도시나 작은 섬들에 남아 있는 것들이다. 적게는 이십 년, 많게는 사십 년이 넘는 세월을 그 자리에 서있었을 그들이다. ● 이렇게 그가 '발견'해내고 뷰파인더를 통해 포착한 이미지들에는 지난 시간의 흔적은 물론이려니와 그 벽에 기대어 살았던 삶들의 숨결이 고스란히 쌓이고 배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다지 견고하지 못한 시멘트 담장은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나면 부스러지고 떨어져 나간 곳을 되 발라야 했고 쉬이 바래버리는 페인트도 다시 칠해야 했던 것처럼… ● 그의 화면 속에서 드러나는 구도들은 단순히 사진으로 인화되어 우리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이미지 외에 밖으로 이어지는 연속된 구조와 주변의 풍경까지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화면 내부에서 완결되는 형식이 아닌, 개방되고 열린 구도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너무나도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벽과 담장의 일부분이나 세부를 보여주는 그의 흑백사진은 그렇게 그 자체로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들의 실재(實在)가 사라지더라도, 사진 속에서 또한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때, 그 시절 시간의 기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그 속에 밴 우리 삶의 무수한 흔적들이 눈에 밟히며 귀에 울리기에.
壁 The Wall ● 내가 사진을 정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87년 대학원에 입학하여 사진을 전공하면서이다. 대학원을 졸업 할 때쯤 난 흥미 삼아 몇 번 발표해 본 사진이 이유가 되어 포토 몽타쥬(Photo Montage) 기법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표출하는 만드는 사진을 하는 사진가가 되어 있었다. ● 나에게 있어 사진에 관한 모든 정신적 지주가 되어주신 육명심 선생님께서는 그런 사진 작업을 하는 나를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으셨지만 사진의 특성을 살리는 기계적 기록성에 충실한 사진을 하는 사진가가 되기를 원하셨다. 처음엔 그런 선생님의 뜻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머리가 앞서는 이미지 창조사진작업을 계속 하면서 내 변명을 했다. 순수하게 찍어낸 사진은 왠지 멋져 보이지도 않고 기계적 기록성에 의한 사진은 남들에게 그다지 충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그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2001년부터 매달 1회 이상 선생님의 나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된 사진교육은 7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 후 나의 사진세계를 완전히 뒤 바꾸어 놓으셨다. 그 첫 번째 결과가 이번 나의 전시이다. ● 사진교육을 받기 시작하여 꽤 시간이 지난 후 언제부터인가 나는 사진을 찍으며 머릿속으로 그 이미지를 어떤 내용으로 몽타쥬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는 어떤 새로운 표현으로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인가 하고 머리 아픈 생각을 하는 일도 없어졌다. ● 그 자리에…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느낌에,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가에 충실해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면서 발표한 사진이 "그곳에 서서..."란 제목으로 발표된,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모습을 미화하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 기록해 보겠다는 사진전 이었다. 두 차례의 연속된 전시를 하고 나서 난 "그곳에 서서…1과 2"란 제목을 곱게 접어 다락 속에 숨겨 놓았다. 내가 가지고 놀기에는 지구본 속에 아주 작게 표시된 우리나라는 너무 넓었다. 지금의 내 정신세계가 우리의 땅에 그대로 녹아 들어 공감하면서 사진으로 표출시키기에 "땅"은 나에게 너무 크고 벅찬 테마였다. ● 그러던 중에 난 내가 "벽"이라는 소재를 카메라에 자주 즐겨 담고 있다는 자각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벽 보다 훨씬 조형적으로나 질감과 색채 면에서 사진적 미학을 갖고 있는 많은다른 나라의 벽들 앞에서 나는 촬영 하고픈 흥미를 갖지 못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찍고 있는 벽에는 분명 방금 매를 맞으며 꾸중 들었지만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웃으며 다시 부를 수 있는 친어머니와 같은 정서가 배어있었다. 다른 나라의 벽들은 편안한 생활은 얻을 수 있어도 마음으로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부자 집 양 어머니와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나는 그런 느낌들이 벽을 통해 내가 찍고 싶어 했던 "우리 땅"이라는 큰 테마가 내 몸에 맞는 옷이 되어 돌아온 것이라고 지금도 굳게 믿고 있다. ●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나라는 새마을 운동이 한창 이었다. 동네 어디를 가나 담장이나 벽들이 시멘트로 새로 보수되거나 만들어지고 있었고, 그런 벽에 못하나 들고 시멘트가 굳기 전에 낙서하는 일이 그때 우리또래에게는 최고의 스릴 있는 놀이였다. 지금 현대사회에서 과학적이고 너무 기계적인 방법으로 시멘트를 사용하는 것과는 다르게 그 당시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공급된 시멘트 사용법은 단지 소재가 진흙에서 시멘트로 바뀌었을 뿐 그 전에 사용하던 진흙과 똑 같은 방법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반죽하고, 사람의 손으로 바르고…내가 보고 있는 것은 기계적이고 도시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시멘트 벽이 아니라 이제는 점차 모두 사라져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시멘트 벽을 찾아내어 나만의 감성 법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 난 참으로 많은 국내외의 유명한 작가들의 사진을 보고 공부 하고 있다. 그것은 나의 사진공부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아류에 휩쓸리기 싫은 나의 고집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내 사진이 다른 사람에게 멋지거나 감동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내 사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평가에서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사진은 분명 내가 느끼는 내 방식대로의 이 땅에 대한 기록사진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싶다. ● 나는 이번 전시를 준비 하면서 여러 장르의 예술적 표현 중에서 유일하게 가감 없이 기록된 이미지가 사각 틀 안에 담겨진 내용 외에 감상자에게 또 다른 것을 느끼고 볼 수 있게 하는 사진만이 갖는 시각적 본질을 이해하는 사진가로 새로이 출발하는 느낌이다. ● 道 나 仙 을 위한 행위는 아니지만 난 오늘도 벽을 본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느끼는 느낌대로… ■ 조인상
Vol.20101014i | 조인상展 / CHOINSANG / 趙仁相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