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수展 / KIMYOUNSU / 金允洙 / mixed media   2010_0930 ▶ 2010_1006

김윤수_적색시간_혼합재료_162×130cm_1999

초대일시_2010_0930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주말_10:00am~08:00pm

혜원갤러리_HAEWON GALLERY 인천시 남구 주안4동 453-18번지 Tel. +82.32.422.8863 www.hwgallery.co.kr

중첩된 시간성, 분할된 화면에서 길을 찾다. ● 보이지 않는 시간이라는 관념을 가시적인 화면 위에 표현하는 것은 고래(古來)로 많은 작가들의 지향점이었다. 고대의 동양과 서양에서는 그래서 한 화면에 다른 시간대를 표현하는 이시동도법(異時同圖法)이 나타나기도 하였고, 중세의 신적 세계관을 표방한 그림들 역시 같은 기법이 동원되기도 하였다. 합리적ㆍ이성적 세계관이라는 사고체계를 갖춘 르네상스시기를 겪은 서구의 근대는 보다 적극적으로 시간성을 예술의 영역 안으로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저 유명한 미래파(futurism)였으며, 이는 이후 예술에서의 시간, 즉 행위의 기록이라는, 혹은 그 자체의 축적이라는 명제를 달성하는 데 하나의 기틀이 되기에 충분했다. ● 그런데 시간성이라는 개념에는 사실 여러 층위의 지향점 내지는 가치들이 존재한다. 단순하게 보자면 시간성은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인물을 기록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경우 대단히 많은 예술작품들이 소위 시간성을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에서의 시간성이라는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이는 현대미술이 철학을 근거로 형이상학적 사유를 거듭한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는데, 그 시점에는 하이데거가 있다.

김윤수_적그들의 시간_혼합재료_130×182cm_2003
김윤수_적나비의 꿈_혼합재료_79×56cm_2008
김윤수_적시간여행_혼합재료_162×130cm_2008

그는 유명한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1927)에서 존재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자인 인간(현존재)의 존재(실존)가 현상학적·실존론적 분석의 주제가 되고, 현존재의 근본적인 존재규정인 '관심'의 의미가 '시간성'으로서 확정되는 데서 끝맺고 있다. 그는 거기에서 『존재와 시간』의 본래의 주제인 '존재'와 '시간'의 관계로 되돌아가 현존재의 시간성을 실마리로 해서 존재의 의미를 시간에 의하여 밝히는 동시에, 역사적·전통적인 존재개념을 역시 시간적인 지평에서 구명하고자 했던 것이다. 결국 하이데거는 인간이 시간적·역사적 존재라고 하는 '삶의 철학' 이래의 사상을 실존의 시점에서 다시 포착한 것이었다. 덧붙여 말하자면, 그의 현존재 분석의 수법은 정신분석에서 문예론, 더 나아가 신학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하이데거 이후의 현대미술의 창작자는 시간(인간, 현존재)을 기록하는 자로 인식되기에 이른다. ● 김윤수는 이번 전시 '중층(中層)의 시간, 분할된 화면'에서 중첩된 시간성을 실존적 태도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겪어냈던, 혹은 경험했던 지난(至難)한 시간의 쌓임을 특유의 어두운 색채로 증언하는 그의 작업 태도는 매재가 층을 이루도록 반복되는 고된 작업 방식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는 시간성을 기록하는 그만의 적절한 행위로, 역시 오랜 작업 시간에서 보이는 시간의 기록적 성격을 증언하는 방식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는 시간을 기록하는 자라는 실존적 시점에 대한 방식이며, 동시에 현대미술에서 흔히 보이는 시간성에 대한 등가적 개념인 연극성과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는 방식이다.

김윤수_적적화(赤花)_혼합재료_100×100cm_2010
김윤수_적녹화(綠花)_혼합재료_100×100cm_2010
김윤수_적 Time Capsul_혼합재료_190×240×40cm_2000

김윤수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시간에 대한 동양적 사고를 실험하고 있다. 즉 시간 그대로의 시간(positive time)과 대비되는 개념적인 시간(negative time)을 형상화하여 화면을 분할하는 방식을 취한다. 요철(凹凸)로 시간의 양면성을 표현하는 이 방식은 마치 동양의 음양사상을 떠올리게 하는 지점인 바, 시간은 연속적이라는 서구적 사상을 대한 일종의 반전을 시도하는 듯하다. 이러한 그의 작업 방식은 그러나 자칫 일률적인 형식으로 보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간을 기록하고, 그것을 음과 양으로 시각화하고, 어둡고 두툼한 채색을 가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일견 기계적으로 보일 수도 있으며, 따라서 향후 다양한 내용적·형식적 실험이 요구된다고 하겠다. ● 보이지 않는 대상을 그리는 일은 쉬워 보이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이고 궁극적인 세계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대단히 어려운 지적 사유 과정을 동반해야 한다. 더욱이 지극히 관념적인 소재인 시간을 가시적으로 표현하는 일은 별처럼 많은 상상의 가능성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기에 보다 어려울 수 있다. 아인슈타인은 시간을 '속도에서 파생하는 것'이라고 했고, 베르그송은 운동을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속성'으로 보았다. 이렇듯 시간이란 아무런 움직임이 없이는 느낄 수 없다. 또한 그것을 기록하는 자 역시 시간이라는 운동을 가진 개념을 적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지적·현실적 자각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쉴 새 없이 흐르는 시간처럼 김윤수에게 표현 욕구에 대한 멈춤 없는 시도를 기대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 박석태

Vol.20100925j | 김윤수展 / KIMYOUNSU / 金允洙 / mixed media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