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901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5층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대상과 주체가 따로 없는 존재의 영역으로 건너가기 ● 로캉탱은 방 문 손잡이를 잡는 순간 느닷없이 구토를 일으킨다. 사르트르는 이 우연한 사태를 두고 늘 있었으나 은폐되어 있던 존재(혹은 사물)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수시간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나 자신도, 세계도 이미 존재함을 느끼는 순간 와락 덮치는 구토 같은 것으로 그 모든 관계는 부조리로 귀착된다. 우리는 이런 세계 해석을 실존주의라는 한 입장쯤으로 이해하면서 책을 덮었을 터이다. ● 작가 주원영은 존재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열쇠꾸러미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문득 들어선 골목길 모퉁이, 처마가 겹친 지붕들, 고궁의 중첩된 기둥들, 빛살에 일렁이는 물밑 바닥 모래, 햇볕이 내려와 있는 마당 한쪽, 대청마루의 낡은 나무냄새와 발끝으로 전해지는 삐거덕 소리, 쓰다듬는 손에 닿는 개의 체온……. 그는 늘 이런 '마음에 스미는 것들'의 리스트를 메모한다. 이 미지의 기호들은 어떤 때는 보이는 대상이고 어떤 때는 만져지고 또 어떤 때는 냄새가 되어 매혹처럼 온몸으로 끼쳐온다. ● 그런데 주원영에게서 그것들은 구토를 일으키는 대신 향수를 불러온다. 그는 느닷없이 맞닥뜨려지는 그 순간을 오히려 찾아나선다. 그 아스라한 기억이 열어젖혀주는 깊은 평온의 지경으로 들어서기 위해 차곡차곡 주워모은 열쇠들을 사용하곤 한다. 그는 여행을 떠난다. 그가 좋아하는 곳은 세상의 끝과도 같은 사막이며 산꼭대기이며 오지들이다. 지평선과 자신만이 오롯이 존재하는 순수한 공간. 그것이 작가를 보고, 작가가 그것을 본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섞임의 순간이다. 그는 태곳적부터 존재해온 우주와 소통하고 있는 지금-여기 자신의 익명적 존재감을 체험한다. 모든 시간과 공간과 존재가 압축되고 중첩되어 일으키는 공명의 리듬. ● '세상에의 존재étre-au-monde'라는 개념으로 이런 체험을 철학적 사유로 끌어들인 이는 모리스 메를로-퐁티다. 그에 따르면 몸은 애매성의 논리에 의해 세계 안에 있으면서 세계로 나아가는 존재로서 세계에의 존재의 한 양식이다. 즉자적인 것(보임)에서 대자적인 것(봄)이 나왔다는 것. 그래서 대상과 주체의 구분이 없어져 '풍경이 화가를 통해 생각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이 같이 풍경 자체의 사물성을 포착하는 것이 예술의 존재론일진대, 주원영의 작품은 주제에서도 이런 지점을 다룬다.
목탄 드로잉-선드로잉-에어브러시로 진화되어온 태곳적 기억흔적 ● 주원영은 대학 1학년 시절부터 지금껏 15년이 넘도록 마치 일기를 쓰듯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A4용지에 목탄 드로잉을 해왔다. 이름 붙여지기 전 자연의 모습이라든지, 대지가 하늘을 느낀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으로 그린다고 한다. "네발의 포유류가 걸으며 느끼는 땅의 고요나 마그마의 대류를 발끝과 온몸으로 받아들여서 대지가 투영된 얼굴을 그리고 있는 듯하다. 그 소통의 순간을."(작가노트) ● 그가 목탄 드로잉으로 벼려내는 그 얼굴은 선험적 지평인 자연 풍경에서 익명성의 얼굴로 탈영토화된 형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름 붙일 수 없는 동물의 얼굴처럼 보이는 그의 뭉실한 목탄 드로잉들은 다시 선드로잉 단계를 거치면서 분절되어 일정한 형상을 갖췄다가 에어브러시 작업을 통해 애매한 선으로 뭉쳐지고 그림자가 생기면서 또다시 탈영토화 과정을 밟는다. 어찌 보면 사물의 껍질을 꿰뚫는 작가의 직관이 점점 두터워지는 진화의 과정일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점점 더 깊어지고 그것이 투명하게 중첩되면서 드러나는 기억흔적engram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 작가의 존재 체험은 하나의 주름 혹은 구멍이 되어 그를 다섯 살 무렵의 기억 속으로 빨아들인다. 프루스트에게 마들렌이나 종소리, 바닥의 포석이 그랬던 것처럼. 작가가 어릴 적 살던 일본식 적산가옥의 기둥과 문과 마루의 중첩된 시각, 그리고 아련히 들려오던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음과 습기와 냄새…… 들이 거기에 포개진다. 그의 작품에서 무한공간을 암시하는 형상이 집의 모습을 띠는 것과 관련이 있으리라.
구성_2차원 공간에 그려진 우주와 3차원 공간에 놓인 생명체의 맞닥뜨림 ● 주원영의 작품들은 이런 체험을 표현하며 우리를 순수 시간-공간의 문 앞에 서게 한다. 흰 벽에 검은색 테이프로 그려진 집 같은 공간이 있고, 그 밖 혹은 그 안에 생명체 같아 보이는 형상이 갤러리의 실제 공간에 놓여 있다. 작품들은 조금씩 모양과 위치와 운동감이 달라지긴 하지만, 2차원의 공간인 벽면에 그려진 집과 3차원의 공간인 갤러리 바닥에 놓이거나 매달린 작은 물체로 구성된다. ● 우리가 집이라고 한 벽 위에 테이핑된 그림은 하나같이 계단과 문과 벽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계단은 에셔의 미로공간을 연상시킴으로써 그 너머의 공간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아득한 우주임을 암시한다. 그리고 문 앞에 있는 사람 같아 보이는 작은 물체는 작가 자신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선명하지 않다. 깔끔하게 잘려진 명징한 덩어리인데도 그것들에 이름을 붙이기는 쉽지 않다. 무기를 든 로봇 같기도 하고 아기 곰 같기도 하다. 코끼리나 고래나 공룡 같은 동물을 떠올리는 것들도 있는데, 그것들을 형상화한 아이의 장난감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것들은 제가끔 무기를 들고 있거나 코나 꼬리의 형식으로 하나의 기다란 돌기를 가지고 있다. 공간이 됐든 타자가 됐든 그가 대면하고 있는 대상에게 말을 붙이려는 소통의 기관일 것이다. 그것은 비단 물체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벽 속의 공간그림 또한 제 모습의 일부를 삐죽 돌출된 형태로 드러내고 있다. 마치 그 앞에 있는 존재에게 말을 붙이기라도 하려는 듯. ●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머리 위는 하늘 가득히 별이었고, 바다 가장자리이든 육지 가장자리이든 결코 수평이 아니어서 세계는 분명히 원형태를 지니고, 달은 틀림없이 내 주위를 돌고 있어서 나는 자전하면서 공전하고, 대지의 회전이 만들어내는 시원한 바람이 나를 감싸고, 수 시간 뒤에 떠오를 먼 태양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마루야마 겐지,『밤의 기별』) 작가가 좋아한다는 소설의 한 구절과 같이 작품 속 존재들은 시공의 구분 없이 서로 얽히고 녹아들고 유영한다
왜곡된 형상_시간이 중첩된 작가의 자화상 혹은 익명적 존재의 얼굴 ● 흥미로운 것은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주원영의 일련의 작품들이 조형요소만을 놓고 볼 때 영국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들에 대비된다는 점이다. 베이컨의 회화들 역시 배경이 되는 구조물과 그 안이나 밖에 그려진 인물로 구성된다. 조각작업 경험이 있는 베이컨은 배경 공간을 2차원적인 도형으로 처리하고 그 안에 조각작품 덩어리 같은 사람 형상을 놓는 구도로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알다시피 그 초상들은 심하게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이 그림으로 표현된 분석적 입체주의라면 주원영의 초상들은 조각으로 표현된 종합적 입체주의 방식으로 왜곡된 모습을 보여준다. ● 들뢰즈는 『감각의 논리』란 책에서 자신의 형상철학을 설명하기 위한 예증으로 베이컨의 회화작품을 분석한다. 2차원의 도형을 통해 초상을 고립시킴으로써 탈서사의 현대회화로 나아가고, 왜곡된 초상은 익명성의 존재로 나아가는 '동물-되기'의 전형이며 원본이나 재현(구상figuration)이 없는 형상Figure이라고 설명한다. 형상 개념이 후기구조주의를 대표하는 들뢰즈 철학에서 중요한 지점은 그것이 개념의 매개가 없는 비표상적 사유 모델인 까닭이다. 그것이 예술로 옮겨올 때 베이컨의 심하게 일그러진 고깃덩어리 모습의 초상이 된다. ● 우리가 주원영의 초상에서 만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익명성의 존재, 즉 들뢰즈의 형상Figure이다. 베이컨의 형상이 고기의 모습을 띠고 있는 것에서, 즉 손상을 냄으로써 인간 이전으로 돌아가는 동물-되기를 보여주고 있다면, 주원영의 형상은 분화되기 이전의 모습을 손상 없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성이 아직 분화되지 않은, 모든 연령이 중첩되어 있는 다섯 살 박이 아이 같은 모습이다. 그 아이는 코끼리가 되었다가 고래가 되었다가 새가 되었다가 나무가 되었다가 하며 그야말로 들뢰즈식 되기devenir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현상학적 색과 미니멀한 조형과 배치_모든 차이나는 존재들에 대한 긍정 ● 작품의 색채 면을 보자. 베이컨에서는 그 손상된 고깃덩어리 형상을 통해 존재의 실존을 맞닥뜨리게 함으로 일으키는 구토 혹은 불안의 감각을 아름답다고 할 만큼의 선명한 색채를 사용함으로써 희석시키고, 실눈을 뜨고 보면 아름다운 회화작품이라고 말할 수준의 미학적인 지평으로 끌어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서양 근대의 인간중심주의적 파시즘 현상에 대한 비판의 시선을 담겨 있기도 하다. 반면에 주원영의 작품에는 색이 전혀 없다. 벽 안에 갇힌 공간은 겨우 검은색 테이프로 암시하는 수준으로 떠내어지고, 그 앞에 놓인 생명체 역시 벽에서 한 옹큼 떼어낸 덩어리인 양 하얀 석회질 그대로다. 현상학에서는 색은 없고 빛만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볼 때 주원영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중첩된-시공간'과 '중첩된-생명체'의 맞닥뜨림은 주체와 객체의 위치가 얽혀 있는 상호주관적인 지점을 담지하고 있음이 한 번 더 드러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주원영에서는 사회의식이라는 인식론이 여백으로 남아 있는 채 명시적이지 않다. ● 그런데 때로 생명체는 몸뚱이의 3분의 1 가량이 황금색으로 뒤덮인 채 공간 앞에 나가자빠져 있기도 하다. 전사처럼 무기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공간 앞에 서 있을 때와 비교하면 무언가에 짓눌린 패잔병 같아 보인다. 생명체를 뒤덮은 것을 황금마스크라는 가정을 해볼 때 그것을 우리는 '불안'이라는 용어로 바꾸어 읽어볼 수 있겠다. 보링거가 예술적 창조의 근원이라고 한 불안은 생명체의 일상 도처에 곰팡이 꽃처럼 피어 있다. 이 불안은 이를테면 생활의 노동을 감당하는 동안 작가적 자의식을 어쩔 수 없이 방치해야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대한 작가의 무력감 혹은 좌절 같은 것일 터이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생명체가 삶의 조건으로 끌어안고 긍정해내야 할 국면이기도 하다. ● 우리가 미니멀한 선과 덩어리로 이루어진 주원영의 작품들에서 목도하는 것도 이런 긍정성이다. 그의 선이나 덩어리는 우리가 지켜보고 있는 중에도 속절없이 다른 모습으로 변신될 것만 같이 경쾌하다. 하이쿠 작가의 맑은 직관의 울림처럼. 갤러리는 어린아이의 상상공간이기라도 한 양 이렇게 저렇게 생성의 한 바탕 서커스를 보여줄 것만 같다. 이런 생성이 진행되고 있는 표면을 일러 들뢰즈는 여러 낯선 용어들을 만들어가며 강조했다. 다시 말해 디아그람이니 추상기계니 기관 없는 신체니 하는 용어로 차이의 모든 존재들을 긍정했다. ● 앞에서 나는 작가 주원영이 우리를 '문 앞'에 서게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의 작품 앞에서 그 문고리를 돌려 우주의 리듬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경험을 한다. 속俗의 공간에서 성聖의 공간으로 넘어가는 의식ritual 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를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매개하여 내밀한 존재의 비밀을 보여주는 주술사라고 하지 않았던가. ■ 채미애
Vol.20100910c | 주원영展 / JOOWONYOUNG / 朱原永 / sculp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