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0 이랜드문화재단 사옥공모 작가展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주말 휴관
이랜드 갤러리 E-LAND GALLERY 서울 금천구 가산동 371-12번지 이랜드빌딩 Tel. +82.2.2029.9885
'길(道)'- 사색의 풍경 ● 강복근은 자연을 그리는 화가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경상도 주변의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데, 20년 넘게 그 작업을 묵묵히 지속해오고 있다. 그의 고향 마산 일대에는 자연습지인 우포(牛浦)늪과 황매산(黃梅山), 화왕산(火旺山) 등 이름난 자연경관이 둘러싸고 있다. 이런 자연환경이 작품의 주된 소재이다. 오랜 기간의 여행과 사생을 통해 완성된 그의 작품에는 강렬하지 않은 자연의 잔잔한 생명력이 녹아 들어가 있다. 강복근의 작품은 한국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연상시키는 단일한 모노톤의 색채로 형상화되어 있다. 이를테면 연둣빛으로 뒤덮힌 우포(牛浦)늪이나 화왕산(火旺山)의 풍경은 봄의 빛깔이며, 진한 녹색의 황매산, 그리고 숲의 풍경은 여름을 상징한다. 또한 갈대와 억새로 뒤덮힌 갈색 풍경은 한국 가을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의 작품은 이렇듯 한 화면에 하나의 주조색을 근간으로 완성된다. 이는 한 화면에 이질적인 색이 아닌 하나의 색톤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자연의 모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화왕산(火旺山)이나 황매산(黃梅山)의 주능선은 대체로 큰 나무가 없어 조망이 막히지 않은 상태로 산행을 즐길 수 있는데, 키 작은 관목이나 억새가 주를 이루고 있어 시선을 먼 곳에 두고 산행할 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작가는 화면에 담아내고 있다.
작품의 또 다른 큰 특징은 '스크래치(scratch)기법'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캔버스에 유화안료로 발라진 곳과, 그 위를 예리한 것으로 긁어낸 자국이 조화를 이루며 완성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회화라는 것은 캔버스라는 납작하고 평평한 2차원의 공간에 물감을 발라 3차원의 공간을 재현함으로써 시각적인 환영(illusion)을 주는 것이다. 강복근의 회화는 물감의 붓질을 통해 재현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물감을 긁어내어 다른 이미지를 완성해나감으로써 기존의 재현방식에서 탈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작품 전체가 이 '긁어내기'를 통해 완성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서 나타나는 이 기법은 붓질로 보여줄 수 없는 또 다른 회화적인 깊이감과 자연스러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의 작품에 나타난 한국의 산, 숲, 늪 등은 익숙한 풍경이지만, 산시리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길'은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다. '길'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길'이 우리가 일상에서 걷고 만나는 공간적인 개념이라면, 전통적인 동양문화권에서는 인간이 마땅히 따라야 할 기준이나 원칙의 의미로도 통용되었다. 즉, '길'을 한자로 표기하자면 '道'로 사용되는데, 여기에는 단순히 물리적인 의미의 '걷는 길'이라는 의미뿐만 아니라, 동양의 도덕이나 예술에서 그 중심에 흐르는 것으로 생각되어온 가장 근원적인 원리 원칙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본래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글자가 추상적인 의미로도 통용되며, 인간 행위의 기본적인 기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게 된 것이다. 이렇듯 강복근은 그의 작품 안에 '길'을 자연스럽게 그려 넣음으로써 바르고 담담하게 살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작업을 통해 '道'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작가는 캔버스에 거대한 자연풍경을 그리고 그 안에 선을 그음으로써 '길'을 만든 것이다. 다소 나른하고 평온해 보일 수 있는 익숙한 자연풍경에 산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나있음으로써 작품의 생명력은 더해지고, 감상의 묘는 한층 더 증폭되고 있다. 그의 풍경에 나타나는 구불구불한 '길'은 어찌 보면 세파에 의해 휘청거리기는 하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자신만의 정상에 오르고 싶어하는 우리네 삶의 과정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다. ● 사람들은 지치고 힘이 들 때, 자연으로 회귀한다. 산을 오르며 숲의 식물과 마주하기도 하고, 호숫가나 강가에 앉아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한다. 이처럼 드넓은 자연과 사람이 마주하게 되면 그 자체로 치유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강복근의 작품에 나타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이 주는 정화작용으로 스스로가 고요해지는 체험을 하게되고, 잔잔한 사색의 시간으로도 빠져들게 된다. 화려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강복근의 작품은 그의 심성과도 닮아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자연을 화폭에 담아내는 것이 천성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행복이 그대로 전해진 까닭일까? ■ 고경옥
Vol.20100903d | 강복근展 / KANGBOKGEUN / 姜福根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