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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 왜 새삼스럽게 '실낙원'인가? ● 오늘날 미술을 둘러싼 가치들의 지평이 흔들리고 있다. '모든 것이 예술'이 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지나면서, '미적 가치'는 일종의 신용팽창과 흡사하게 거품이 심하게 낀 것이 되었다. 미적 경험과 소통은 속도와 무(無)장소성에 의해 무산되어갔고, 그 자리는 예컨대 고수익률 담보 같은 '시장적 교환'의 논리들로 채워졌다. 원거리통신망으로 재구축된 글로벌화된 세계에선 공공미술관, 아틀리에, 강의실 같은 장소적 기제가 탈장소화되고 지역으로부터 유리된다. 전시는 외곽없는 공간에서 다만 시간에의 종속을 입증한다. 공공영역, 이웃과의 소통과 연대감, 인간성, 에토스의 지평이 급속하게 허물어져내린다. 체계화된 환경 안에서 예컨대 학위취득에 대한 열의처럼 창작과 사회적 소비 사이에도 어떤 차이의 공간도 더 이상 생성되지 못하고 있다. ● 삶은 소용돌이, 폭풍, 이탈들로 이루어지건만, 정작 오늘날의 예술은 현재의 '평화로운'(?) 반복을 완결편으로 정의하려고 아예 작정을 한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지속 안에서 자신이 수혜자일 수만 있다면, 어떤 부정음의 발신처도 되지 않으리라는 주체들이 모여들어 인산인해를 이룬다. 황홀할만큼 잘 정비된 제도장치들 아래서 예술은"너무나 절대적이어서 평온하게 쉬고 있는 호수의 표면"과 같은 시간, 티에리 파코의 말을 빌자면 '멈추어진 유토피아의 시간', 대리석 속에 고정된 시간, 곧 권태로워지는 시간을 맘껏 누리고 있다. ● 그러므로, 실낙원이 이번 호의 표제어가 되는 것은 역설적이다. 지금 이곳이야말로 유토피아라고 아우성을 쳐대는 담론들이 빗발치는 한 가운데서 왠 새삼스러운 '실낙원인가 말이다. 하지만, 실낙원의 가장 뚜렷한 증거는 '지금, 이곳'을 유토피아로 여기는 바로 그것이다. 변화란 필요치 않으며, 주어진 경주에서 남보다 앞서는 것, 우리도 한시 바삐 미술계의 박지성과 김연아를 만들어내자는 선동들, 반면 질문들에 대한 사전 봉쇄, '믿고 따릅시다'의 남발… 바로 이러한 담화들의 홍수가 확인시켜주는 것은 오직 한 가지, 우리가 실낙원의 주민들이라는 사실이다.
정형탁은 실낙원의 묘사를 "창조적 개인이 꽃 피울 수 있었던 텃밭이 사라진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경제 체제가 실현해가고 있는 '비경제적 관계 즉 가족애나 우정, 사랑과 같은 가치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이 예술창작의 장에도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는 것의 그의 문제의식이다. 특히 한국사회와 미술장은 순응(accommodation), 체념(resignation), 자기위안(consolation)의 정서가 팽배한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는 타인이 아닌 마로 우리들의 이야기인 것이다. ● 김장언은 미술이 사회에 접근해 들어갈 때 그것이 어떤 상상의 공간을 허용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미술이 '아직 도래하지 않은 것으로부터 전해오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말이다. 하지만, 정작 사회는 점점 더 이러한 공간, 또는 공간 만들기에 부적절한 곳이 되어가고 있다. 이는 그러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게릴라 같은 작가들에게 더 좋은 환경인지는 불확실하다. 이 불확실성은 예술이 정치적 전선을 형성할 때 근본적으로 제기되는 불확실성의 연장이다. ● 심상용은 개념미술, 더 나아가 개념주의 미술의 시대를 문제 삼으면서, 현대미술의 경향에서 참된 미적 공감과 소통의 근원인 에토스의 부재를 언급하고 있다. 그는 개념주의의 유산을 물려받은 미술이 과도하게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가정법에 매몰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예술의 진정한 개념은 생각과 사물, 사유와 실존, 영혼과 신체, 개념과 손의 사이에서 부단히 긴장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것, 분리가 아니라, 분리되었던 것들을 통합하는 것으로 믿고 있다.
이완은 관점을 달리 해 비평을 문제삼는다. 그의 질문은 오리엔탈리즘과 역오리엔탈리즘에 관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것이다 :"한국 팝아트 작품들의 의미체계를 해석 혹은 분석해야할 때, '비서양에서 살고 있는 비평가'는 어떤 논리로 대응해야 하는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 전망에 편승해 스스로를 그러한 시각으로 읽는 역오리엔탈리즘화, 곧 내면화된 식민지화 인 듯 하다. 결국 '우리의 독해와 관점이 구조와 편견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가 비평을 비평해야 하는 의미일 것이다.
현지연은 보는 방식의 광범위한 조직에 관여하는 현대미술의 접점들을 문제삼는다. 보는 방식을 조직하는 것은 객관적 세계를 재현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그것이 '사회적 기준과 흐름'을 재현함으로써 미적경험의 표준화나 획일화 같은 '역설의 정치학'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지연은 예술을 실행하는 기제로서 디스플레이, 공간배치, 연출기법들과 무대효과 같은 미적 감각을 배증시키는 도구들에 의해 정작 경험이 소실되고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마는, 곧 '장면 안으로 사라지고 마는' 문제를 다룸으로서, 오히려 '다소 기울어진 의사소통의 상호관계'가 약효를 발휘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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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순서
Editorial 눈먼자들의 도시 _심상용
People 이제는 세대를 넘어냐 할 시점-박래경
Special Feature 실낙원 1. 다시, 예술은 무엇인가 _정형탁 2. 개념미술의 백일몽을 넘어 _심상용 3. 젊어진 한국 현대미술, 그 표층의 힘 ; 코리안 팝 바라보기 _이안 4. 단상들 - 미술이 사회와 대면할 때 _김장언 5. 언제 예술이 존재하는가? _현지연 6. 좌담: 실낙원의 징후들-미술시장, 글로벌리즘, 비평
Artist 시선의 정치-김옥선 _정형탁 배영환, 삶의 고통을 인식하기-배영환 _임국화
Review 통로 또는 전장(戰場)으로서의 몸 _박시영 미술관에서 쇼퍼홀릭을 만나다 _김노암
Curator's note 활주로와 잠수함 _현시원
Vol.20100901g | CONTEMPORARY ART JOURNAL 2010년 여름 / 3호 / 실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