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s of Innocent

임서령展 / LIMSEORYUNG / 林瑞令 / painting   2010_0825 ▶ 2010_0830

임서령_날아 올라_장지, 수간채색_136×140cm_2010

초대일시_2010_08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00pm

인사아트센터 INSA ART CENTER 서울 종로구 관훈동 188번지 Tel. +82.2.736.1020 www.insaartcenter.com

시적 감수성과 회화적 상상력 ● 전통과 현대의 접점은 다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중 핵심적인 내용 중 하나는 바로 전통회화가 지니고 있는 문학적 서정성과 현대회화의 조형성을 여하히 융합해 낼 것인가에 있다 할 것이다. 이른바 문학적 서정성은 공성(共性)을 전제로 한 보편적 가치를 주장하는 것이라면, 현대회화에서의 조형이란 주관적인 개성(個性)에 무게를 두는 것이다. 공성의 강조는 특정한 법칙과 규율로 이어져 일정한 틀과 꼴을 강조하지만, 개성의 중시는 무한한 개별적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를 담보해 준다. 서구미술에서 고전회화와 현대미술의 구분에 있어 순수미술(Fine Art)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문학에 종속되어 있던 회화를 순수한 조형으로 해방시킨 것을 구분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작가 임서령의 작업은 바로 이러한 미묘한 접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진지한 모색이라 할 것이다. 인물을 주제로 한 작가의 작업들은 해부학적인 엄격함과 합리적인 형태미로 정연한 형식을 지니고 있지만 이를 객관에 충실한 재현 작업으로 치부하기에는 무엇인가 미진한 점이 있다. 단정한 필선들에 의한 엄정한 형태미는 분명 인물의 객관적 표현을 담보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지향하는 것은 오히려 객관을 벗어난 또 다른 것임이 여실하다. 탈색된 듯 정제된 색채의 구사와 독특한 공간의 운용, 그리고 극히 정적인 인물의 투명한 표현은 작가가 주목하는 것이 인물 자체가 아닌 또 다른 것임을 말해주고 있다. 서술하고 설명하며 상황과 내용들을 나열하고 수식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에 대한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방식을 통해 구축되어진 작가의 화면은 그 자체가 일종의 사변적인 사유와 그 사유를 담고 있는 문학적 서정성이 여실하다.

임서령_아침인사_장지, 수간채색_136×140cm_2010
임서령_The Days of Innocent_장지, 수묵_200×560cm_2010
임서령_청혼가_비단, 석채_118×84cm_2010

작가의 작업은 단순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인물과 단순한 경물 몇 개, 그리고 독특한 공간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단정하고 조용하며 침착하다. 지나치게 육감적이거나 도시적 세련미를 강조한 장식적인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인물들은 단아하고 우아하며 단정한 감성으로 전해진다. 이는 어쩌면 이상적인 현대여성상의 한 전형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형상을 통해 전해지는 시각적 자극이 아니라 은연중 인식하게 되는 감성적인 동화이다. 부연설명 없이 단정한 자태는 대단히 함축적이다. 더불어 등장하는 항아리나 서탁, 창살, 발과 같은 경물들은 인물에 대한 일종의 설명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사물들이 전통적인 한국적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특징적인 사물들이라는 점이다. 더불어 이에 더해지는 꽃들 역시 진달래나 매화, 목련과 같은 특정한 것들이다. 만약 이러한 소소한 경물들이 인물에 대한 부차적인 수식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작가는 분명 이러한 사물들을 통해 이른바 한국적인 특정한 내용을 표출하고자 함이 여실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물 속에 비친 달처럼 형상은 보이지만 손으로 만지려 든다면 이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함축적인 표현과 시적 상상력의 연계는 전통과 현대라는 접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시공을 확인하는 방편인 셈이다.

임서령_5월의 꿈_장지, 수간채색_74×38cm_2009
임서령_The blue bird_장지, 수간채색_74×38cm_2009

작가의 화면은 극히 섬세하고 정치하다. 단정한 인물들과 경물들이 이루어내는 정연한 질서는 작가의 작업에서 일관되게 적용되고 잇는 기본적인 얼게이다. 화면 속의 인물들은 대부분 한 쪽으로 치우쳐 있거나 중심에서 빗겨나 있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뒷모습을 표현하거나 신체의 일부분이 화면 밖에 자리하여 절단된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인물 표현은 다분히 공간을 의식한 의도적인 설정이라 여겨진다. 즉 인물이나 작은 경물들은 그 자체로 특정한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지만, 여백으로 자리하는 공간 역시 이들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 조형적 요소라는 것이 작가의 인식인 셈이다. 이렇게 확보되어진 공간들은 대부분 직선의 과감하고 단호한 양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인물을 통해 해석해 볼 수 있는 공간의 성격은 창문이거나 마루와 같은 안과 밖을 구분하는 의도적인 설정임이 여실하다. 이러한 공간의 설정과 운용은 전통적인 여백의 그것과는 달리 공간을 조형의 한 요소로 적극 차용하여 운용하는 것이다. 이는 물리적으로는 여백의 확보이지만, 그 실질은 시선의 확장이자 감성을 그 확장된 공간 속에서 증폭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 역시 전통과 현대라는 접점에서 작가가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고 인식하는 한 방편의 결과라 할 것이다.

임서령_첫사랑_장지, 수간채색_100×67cm_2009

인물을 비롯한 화면 전반의 표현은 극히 정치한 수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묵은 물론이거니와 채색 역시 금욕적일 정도로 절제되고 있다. 이러한 수묵과 색채의 운용은 무수히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시간을 집적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수묵과 채색을 사용하고 있지만, 작가의 화면에서 발현되는 투명한 신비감은 바로 이러한 결과를 통해 획득되어진 독특한 감각이라 여겨진다. 이는 물에 대한 민감하고 섬세한 감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 작가가 재료와 표현을 통해 추구하는 핵심적인 가치라 여겨진다. 이렇게 구축되어진 인물과 사물들은 마치 색채는 탈색되고 형상은 윤곽만 남아 현실의 그것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는 또 다른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마치 거울에 비친 모양처럼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 자체가 실질이 아닌 것처럼 아스라한 곳에 자리한다. 여백에 대한 독특한 해석과 운용, 그리고 색채에 대한 섬세한 표현은 결국 작가의 화면을 객관의 현실에서 주관의 공간, 즉 관념의 가상공간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이는 마치 달을 그리지 않고 달을 표현하는 것처럼,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바로 표현되어진 형상들 이면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색채는 물론 인물, 혹은 작은 경물과 공간의 표현에 있어서도 대단히 함축적이고 절제 있는 표현으로 이루어진 작가의 화면은 분명 현실의 객관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이러한 사물들을 통해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그것을 공감케 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굳이 구체적인 객관성을 강조하지도 않고, 자신이 설정한 공간을 납득시키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육안을 떠나 마음에 작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이는 마치 시의 표현에 있어서 강조되는 흥취와도 같은 것이다. 그것은 굳이 특정한 것을 꼭 꼬집어 강조하지 않지만 보는 이로 하여금 스스로 느끼고 감응케 하는 것이다. 만약 시를 감상함에 있어 지나치게 언어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언어라는 그물에 스스로 걸려 죽은 말들만을 씹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작가의 작업 역시 그러하다. 그것은 함축과 절제로 다듬어진 시적 감수성을 전제로 이루어진 상징세계이자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말은 다하였지만 그 그윽한 정취는 한이 없다는 말로 시의 감흥을 이야기한다. 작가는 비록 인물을 그렸지만 우리 앞에 제시된 것은 그 형상의 정치함이나 재료 운용의 빼어남에 그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작가가 진정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구름 속에 든 산봉우리처럼 아득한 구름 속에 감추어져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읽어 내는 것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몫일 것이다. 문학적 서정성, 특히 시적 감수성의 회화적 표현은 전통회화가 지니고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작가가 굳이 이를 자신의 작업에 도입하여 표출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전통과 현대라는 민감한 화두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편이라 여겨진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온건하고 안정적인 것이지만, 전통과 현대라는 상이한 가치를 아울러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현대미술의 격랑 속에서 한국적, 혹은 한국화의 정체성마저 회의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가 추구하고 있는 작업의 전개방향은 사뭇 의의가 있다 할 것이다. 그것은 그저 전통의 계승이나 발전이라는 상투적인 관용어가 아닌 주관이라는 개별성을 통해 재발견된 전통의 현대성이기 때문이다. ■ 김상철

Vol.20100824d | 임서령展 / LIMSEORYUNG / 林瑞令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