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82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대안공간 반디_SPACE BANDEE 부산시 수영구 광안2동 169-44번지 Tel. +82.51.756.3313 www.spacebandee.com
『소녀, 그 혼란한 이야기』전은 사진 속 소녀를 지켜보는 우리를 적잖이 혼란스럽게 만든다. 표상(re-presentation)체계에서 '소녀'라는 단어가, 「소녀시대」를 떠올리면 가장 잘 알 수 있듯, 대개 '순결한', '순수한', '작고 어여쁜', '수줍은' 등의 아직 뭔가 때 묻지 않은 순백색의 아름다운 '소녀'를 불러왔다면, 변진수의 사진 작업은 그러한 표상체계를 교묘하게 뒤흔들어 놓는데서 출발한다. 백인, 황인, 흑인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형형색색의 피부톤하며 무표정한 얼굴, 살상 무기인 총, 소수민족을 연상케하는 의상 등 어느 것 하나 우리가 흔히 보아 온 '소녀'를 불러 오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결과적으로, 별 특이할 것 없는 소녀를 몹시 특이한 소녀병으로 치환해낸 이 작업에서 변진수가 얻고자 했던 건 무엇일까. 그의 말에 따르면, '혼란스러움'이다.
변진수는 의상을 고를 때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고 한다. 소수민족, 왕실처럼 고립된 환경에서 그들만의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는 의상을 쓰는 것이었다. 거기에 축 쳐진 어깨, 웅크리거나 무릎을 굽힌 내향적 자세, 무표정한 얼굴 등 무기력한 포즈가 더해지면서, 사진 속 소녀는 겉은 화려하지만 필경 어딘가에 고립되어 지내고 있을 인상을 지울 수 없게 된다. 형형색색의 피부톤은 이런 느낌을 한층 더해준다. 마치 황인, 흑인 외에 새로운 유색인종을 만들어낸 듯한 극단적 분장은 더 이상 소녀를 소녀로 볼 수 없게 만든다. 우리는 이제 흔히 보아온 그 소녀가 아닌 새로운 소녀를 불러와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총이라는 오브제가 전면으로 등장한다.
다만 총은 앞서 밝혔듯, 소녀가 적극적으로 취하고 있는 오브제는 아니다. 그저 소녀의 몸 어딘가에 은근히 배치되어 있을 뿐이다. 하여, 소녀는 소녀병으로 치환됨에도 불구하고 병사로서의 강인함은 전혀 발산되지 않는다. 우리가 소녀를 보면서도 소녀를 불러오지 못했듯, 병사를 보면서도 병사를 불러오지 못하는 것이다. 변진수는 계속해서 이처럼 소녀(병)를 낯설게 만들면서 우리를 사유의 벽에 부딪히게 만들고, 거기서 의도적인 혼란스러움을 유발한다. 다시 말하자면, 혼란스러움 그 자체로 소녀를 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헌데 작품을 면밀히 살펴보면 그의 권하는 방식이 생각보다 그리 딱딱하지만은 않다. 변진수는 이번 전시에 구성될 총 15점의 작품 속에서 소녀들의 포즈나 표정을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기 다르게 연출했는데, 그 표정들이 어찌나 처연한지 보는 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그녀들이 지녔을 사연을 상상하게끔 만든다. 게다가 제각각 다른 전통 의상들은 그녀들이 가진 사연을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며, 총의 은근한 배치 또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하나의 서사가 등장하니, 『소녀, 그 혼란한 이야기』라는 제목에 왜 굳이 '이야기'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 이해가 될 법도 하다. ● 따라서 『소녀, 그 혼란한 이야기』를 풀어 쓰자면, '소녀(병)들이 들려주는 혼란스러운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보면서 혹자는 소녀들보다 더한 혼돈 속으로 빠질 수도, 혹자는 그녀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도, 혹자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변진수가 던진 혼란스러운 이야기는 이제 비단 소녀의 그것에 국한되지 않고 관객 모두의 이야기로 퍼져 나간다. ● 그리고 『소녀, 그 혼란한 이야기』는 '전통 의상을 입은, 피부색이 남다른 소녀'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젠더, 세대, 종족, 인종학을 버무려 놓은 담론 생산의 가능성을 풍부하게 지닌 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사진은 결국 관람객을 이국에 서 있도록 만들고야 마니, 소녀(병)들을 통해서 사진(photography)의 가능성까지 가늠해본다. ■ 대안공간 반디
Vol.20100821h | 변진수展 / BYUNJINSU / 邊眞秀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