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820_금요일_05:00pm
오프닝 퍼포먼스_이윰 『레베카의 구두 Gen 24:58』
참여작가 강영민_고낙범_김기용_김두섭_김준_김형태_낸시랭_마광수 박혜성_배준성_YP_윤향숙_이윰_조문기_현태준_홍성철
주최_현대백화점 신촌점 주관_신촌 뉴 제네레이션 프로젝트팀 책임기획_박윤영 협력기획_김노암_강영민 디자인_nooNdesign
특별부대행사 콘서트 『신촌블루스와 인디밴드』 2010_0820_금요일_07:00pm / 장소 : 유플렉스관 12F 제이드홀 신촌블루스 + 3호선버터플라이,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강연 및 토론회 『신촌과 젊은이 문화; 88만원세대까지』 2010_0828_토요일_04:00pm / 장소 : 유플렉스관 12F 제이드홀 마광수(연세대학교 교수)_김노암(상상마당 디렉터)_강영민(팝아티스트)
관람석 한정_블로그에 선착순 참여예약접수 blog.naver.com/uplexgallery
관람시간 / 11:00am~10:00pm
현대백화점 신촌점 U-PLEX 갤러리 HYUNDAI DEPARTMENT STORE U-PLEX GALLERY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30-33번지 현대백화점 U-PLEX 11층 Tel. +82.2.3145.2233 blog.naver.com/uplexgallery www.ehyundai.com
좋은 시절은 '신촌 빨간구두 아가씨'의 종아리를 타고 온다? 주위에서 빨간 구두의 아가씨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빨간 구두와 뾰족 구두, 하이힐과 킬힐은 가족유사성을 지닌다고 느꼈다. 여기서 '생각했다는 것'이 아닌 '느꼈다는 것'에 방점을 찍자. 이 느낌(필)을 살리고자 『신촌의 빨간구두 아가씨』전시는 신촌을 그토록 달콤하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던 이들을 초대해 한국사회에서 신촌의 문화적 의미를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신촌의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아이콘 가운데 마광수교수와 신촌블루스를 초대하였고 지금도 신촌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예술가 15명과 함께 작은 축제를 열었다.
물 좋은 거리 ● 도시, 삶의 공간은 단순한 장소의 의미를 넘어선다. 그것은 지성과 감성과 의사소통과 교감의 총체적인 것으로서 기억, 사건으로 펄펄 끓는 도가니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신촌을 떠올렸다. 신촌은 조선시대에서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크게 변모한 도시공간과 소비, 놀이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서울 사대문 밖 도회지문화에서 60년대 이후 서울의 도심지 문화로 변모했다. 신촌은 5개 종합대학이 몰려 있어 우리나라 젊은이 문화의 중심이었다. 현재 현대백화점이 있는 자리는 90년대 낙후한 건물을 밀고 백화점을 만들었다. 70-80년대 민주화세대의 가투문화와 90년대 신세대 소비와 유희의 문화로 이동하면서 젊은이들은 신촌을 경유하고 향유하며 마음껏 젊음과 자유를 탐닉했다. 교복을 벗은 대학신입생들에게 연세대, 홍익대, 이화여대로 거미줄같이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넓게 확산되던 시기는 행복했다. 신났다. 이 거리는 황혼을 지나 어둠이 내리면 이글거리는 욕망의 전차들이 굉음을 내며 질주하였다. 네온등과 자동차의 전조등이 마치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를 연출하며 골목마다, 술집과 클럽과 모텔이 잡초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렸다. 선한 사마리아인이자 진보적인 미녀를 찾는 독신자들과 놀 줄 아는 지적인 히피나 댄디를 찾는 멋진 아가씨들이 신촌의 거리를 활보했다. 블랙홀처럼 모든 상권, 놀이시설, 예술문화 활동이 홍대 앞으로 빨려들기 전, 신촌은 말 그대로 새롭고 신선한 거리였다. 신촌역은 백마로 떠나는 기차들로 수선스러웠고 '독다방'으로 불렸던 독수리다방은 만남과 헤어짐의 명소였다. 이제는 중년이 된 이들에게 신촌은 '보스'와 '올루올루'와 '스페이스'로 이어지는 물 좋은 거리로 기억된다. 신촌의 물이 좋았던 것은 단지 선남선녀와 좋은 술집과 댄스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신촌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이 만나는 모범적인 교차로였다. 에꼴드 신촌이라고 불러도 하등 이상하지 않은 문화특구였던 셈이다. 흔히 예술이나 문화의 지형을 주류와 비주류로 나누는데, 거기에 덧붙여 양아치류를 덧붙일 수 있다. 양아치는 주류에도 있고 비주류에도 있다. 신촌블루스와 마광수는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드는 창작 양아치라고 할 수 있다. 안정된 문화의 거주지에 머물지 못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보헤미안이라고도 격상할 수 있다. 요절한 문화평론가 이성욱이 일찍이 간파한 양아치들의 미학과 문화적 의미심장함은 오늘날 스펙타클과 엔터테인먼트 사회에서는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양아치의 미학은 우선 선악의 이분법을 간단히 폐기한다. 정신과 신체의 경계 또한 허물어뜨린다. 분단과 6.25의 민족문제와 경제자립과 성장의 세대가 평가절하했던 감각적이며 유희적인 것들이, 소모적인 것들이 양아치들에 의해 분화되고 진화되어 높은 수준의 문화로 거듭났다. 현대성과 국제성, 수입문화의 내면화에 성공적인 주역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신촌에서 놀던 양아치들은 원조 모더니스트 보들레르가 설파했던 현대문화의 퇴폐성과 악마성의 미학의 성공적인 계승자이기도 했다.
양아치는 가라? ● 욕망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뻗쳐오르는 젊음의 욕망과 그 자유는 더더욱 그렇다. 그런 지경에 있는 이들에게 신촌은 가슴 설레는 자유와 방종의 경연장이었고 그 주민은 양아치 같은 젊음이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참 쉽지 않다. 여전히 타자는 배제되고, 청춘은 누구나 양아치이거나 타자로 간주된다. 엄숙하고 금욕적인 세대에게 이들은 불온하고 발칙한 존재였다. 어른 또는 기성세대라는 모호하면서도 명쾌한 주체에 의해. 그런데 그 좋은 미국의 헐리웃영화산업이 60년대 쇠퇴일로에 있을 때 영화산업을 살린 이들은 마약쟁이와 오입쟁이와 동성애자들과 이들이 다 합쳐진 불한당들이었단다. 우리 사회에서 한때 양아치는 영원한 양아치인가? 오늘 우리는 몸 뿐 아니라 감정과 영혼마저 정량화되고 통제되는 경찰국가주의로 나아가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인터넷이 정착된 선진한국에서 20대-30대는 백수이거나 양아치이고 심지어 엄격하게 관리되는 청소년문화가 적용되기도 한다. 아이처럼 대우한다. 주위의 그 많던 기인과 괴짜와 광인, 광대들은 더 이상 살아 숨 쉬는 삶의 공간에서 보기 어렵게 되었다. '스타킹'과 같은 연출된 텔레비전 속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모조와 박제들의 전람회가 열린다. 쇼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데, 누구를 위한 쇼인가? 좀비의 도시와 삶이 우리의 일상이 된 것인가? 기성의 기득권사회는 점점 더 카프카의 성처럼 기괴한 철옹성이 된 듯하다. 그러나 밀레니엄을 지나며 김용철변호사에 의해 지갑 속을 열어보였고 마광수교수에 의해서는 팬티 속을 노출하기도 했다. 그 둘은 엄정한 단죄를 받았다. 한국 사회는 검사출신 변호사는 물론 예술가와 교수마저 투사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지루한 천국보다는 즐거운 지옥이 좋지만 말이다. 한때 신촌의 거리에서 '자유'는 방탕과 번민, 권태와 변태, 창조와 타락의 사이를 파랑새처럼 날아다녔다. 거기에 대중문화의 첨병이었고 해외 팝음악에 경도되었던 대중의 귀를 토종 음악에 돌려놓았던 신촌블루스가 있었다. 그런 신촌블루스의 멤버들도 어느새 중년을 지나 인생의 황혼을 향해 나아간다. 샤우팅의 대가 김현식은 일찍이 요절했고 이정선은 교수님이 되었다. 엄인호와 한영애는 무대보다는 주로 방송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이들이 떠난 신촌은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을까? 어떤 감성과 얼굴들이 이 거리의 주역이 되었을까?
여전히 신촌은 물 좋은 거리일까? ● '독수리 다방'은 폐업했고, 신촌역은 거대한 쇼핑타운으로 변해버렸다. 젊은이들은 신촌을 떠나 홍대 앞으로 이동했다. 신촌은 자유를 향유하는 다양성의 거리에서 소비의 거리로 균일화되었다. 사람들에게 신촌은 머물기보다는 재빨리 이동하는 통로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홍대 앞은 민간 주도의 자생적인 예술축제가 매년 5-6개가 넘지만 신촌은 구청에서 주최하는 행사가 하나 있을 뿐이다. 또 그 비중도 형편없다. 흑백 텔레비전에서 칼라 텔레비전시대로, 첨단영상시대에 들어서도 신촌은 여전히 신촌이다. 그러나 신촌의 옛 지명이 '새터'였던 것처럼 오늘의 신촌은 이름 물 좋았던 시절 그대로 이지만 또 다른 무엇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마치 오래 전 번영과 활기를 상실해가는 변두리로 변해가는 것처럼 보인다. 야만적이며 동시에 생명과 욕망의 열기 대신 세련된 산술과 시장가치의 소비의 가판대들이 거리를 메운다. 어떤 이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으로는 민주화에 다가갔지만, 문화예술적으로는 오히려 더 멀어졌다고 평하기도 한다. 마광수교수의 '즐거운 사라'로 보여준 사례는 많은 이들이 이에 동의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뻑하면 법원으로 달려가야 하는 문화도 문화라고 할 수 있지만, 통이 큰 사회 또는 열린사회의 문화라고 할 수 는 없지 않은가? 장소나 공간은 정치경제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그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그 형식과 내용이 바뀐다. 우리는 장소를 점유하거나 이동한다. 그리고 그 장소는 어떤 색깔과 분위기를 띄게 된다. 도시의 거리는 단지 물질적인 것에 머물지 않는다. 감성이 덧칠되고 기억이 되고 인생의 재료가 된다. 생각해보면 신촌블루스가 한국의 대중음악을 지상에서 천국으로 높이 고양시킨 반면 마광수교수는 몸과 성의 상상으로 구름 위를 놀던 고답적 관념과 허위의식의 세계를 지상으로 하강시켰다. 이 두 양극의 운동은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러니 이 행사가 신촌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개점 1주년을 기념해서 출발했으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신촌블루스와 마광수교수의 오마쥬로 나아갔다고 봐도 무방하다. 참여하는 15명의 작가들 또한 이런 내막을 흔쾌히 동의한다. 『신촌의 빨간구두 아가씨』가 활기 있고 매력적인 거리로 부활하는 신촌을 꿈꾸는 것은 썩 괜찮은 발상이다. 나는 신촌이 단지 물 좋은 거리가 아니라 창조와 소비가 함께 공존하는 젊고 새로운 거리이길 꿈꾼다. ■ 김노암
Vol.20100820g | 신촌의 빨간구두 아가씨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