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화전

동덕창학 100주년·동덕여자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展   2010_0818 ▶ 2010_0824

초대일시_2010_0818_수요일_06:00pm

주최_동덕여자대학교_동덕여자대학교 총동문회 주관_동덕여자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 동문회_동덕아트갤러리

참여작가 강민정_고은주_곽현정_구모경_구지연_권경애_권한수_권혜조_김나윤_김동애 김보경_김보람_김보영_김선애_김수진_김숙경_김영롱_김완진_김인혜_김정수 김정옥-김초희_김혜경_김혜진_남빛_남윤지_노월용_명광수_문혜경_박선진 박슬기_박유미_박정림_박정신_박지은_박채희_박해란_박효선_반경란_방오석 방희성_서수영_서지선_성치영_신승화_신지원_신학_심유림_안미실_안예환 안은정-안종임-양영숙_여동미_오일영_우영숙_유소정_유희승_윤인아_윤향숙강민정_고은주_곽현정_구모경_구지연_권경애_권한수_권혜조_김나윤_김동애 윤형선_이근우_이기선_이명희_이미선_이상미_이선명_이수경_이신숙_이연형 이영희_이우연_이유미_이정_이주선_이지연_이춘선_이한나_인순옥_임진아강민정_고은주_곽현정_구모경_구지연_권경애_권한수_권혜조_김나윤_김동애 장은우-정규옥_정운선_정현주_조윤선_조지원_조태예_주성혜_주은희_천지수 최명희_최순민_최윤정_최정란_최혜원_한경자_한선희_한영주_한윤희_한정은 허연정_허정수_홍순주_홍진희_황경아_황지현_한선희_한영주_한윤희_한정은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THE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관훈동 151-8번지 동덕빌딩 B1 Tel. +82.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동덕 創學 100년, 동덕여자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 동문초대전『목화』전을 생각하면서-일련의 창학 100년 동덕여대 개교 60주년 기념 전시회 ● 경인년(庚寅年) 2010년은 동덕 창학 100년, 동덕여자대학교 개교 60주년입니다. 본교 회화과는 이를 축하하기위해 동덕 아트 갤러리에서 올해 2월에 서울 소재 20개 대학교의『회화과 우수졸업 작품』전(2월 3일〜12일), 4월에 서울소재 8개 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이 컨소시엄 형식으로 참여한『논 플루스 울트라』전(4월 28일〜5월 11일)에 이어, 이번에 회화과 105인의 동문전인『목화』전(8월 18일〜24일),『한중 교류전 -북경중앙미술학원 ․ 국립대만사범대학』(9월 1일〜7일), 『회화과 ․ 디지털공예과 전 ․ 현직 교강사』전(9월 15일-28일) 등의 일련의 전시 기획을 통해 학부생과 박사과정생, 해외 교수들 및 회화과 전 ․ 현직교수들의 작품을 통해 동덕 100년 대학 개교 60주년에 우리 구성원들의 현재의 작품 및 그 경향을 화단에 소개하는 동시에 우리 미술계를 돌아보고, 우리를 자성(自省)하는 동시에 앞으로 동덕인의 새로운 발전을 다짐해 보려고 합니다. 동덕 창학(創學) - 대학 창설의 양면(兩面) ● 올해는 1910년 한일합방이 된지 100년이 되는 해이고, 동덕 창학 100주년이니, 동덕 창학은 사실상 여성교육을 통한 국권회복을 위한 교육의 장(場)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고, 해방 후 대학의 창설은 급변하는 사회의 수요에 맞추어 새로운 산업화 ․ 세계화시대에 맞는 전문여성인력의 배출로 시작되어 현재 발전된 우리 대한민국에 일조를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동덕은 현재 재학생 7000여 명 중 4000여명이 예술 전공학생으로, 그간에 다양한 예술가의 배출로 예술계 및 사회의 예술화에 기여했고, 특히 회화과는 1968년 이래 동서양화 발전에 기여한 바 크다고 하겠습니다. 2008년 40주년 93인의 기념초대전이『자연 ․ 인간 ․ 일상』(7.23〜8.5)으로 나뉜'주제'전이었다면, 이번 대학 창설 60주년 기념 동문초대전은 동문들을 학번으로 70년, 80년, 90년 2000년대로 나누어 그간의 발자취와 변화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는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서의 차이, 새로운 장르 - 세상의 확대 ● 서양이, 독일에서 괴테(Goethe, 1749~1832)와 더불어 계몽주의에서 떨어져 나와 고전주의 문학의 금자탑을 세운 쉴러(Schiller, 1759~ 1805)에 이르러, 이성과 감성이, 다시 말해서 意 와 情이 조화된 인간을 완전한 인간으로 인정한 것과 달리, 우리 동양문화는 일찍부터 사단칠정(四端七情)에서 보듯이, 인간의 감정 내지 감성을 인정해 왔고, 일찍이 당(唐)의 장언원이 "그림에 소화(疎畵)와 밀화(密畫)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바야흐로 그림에 관해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듯이, 표현상에 과감한 소 ․ 밀(疎․密)의 적용으로 표현을 다양화할 수 있었습니다. 서양이 예술에서 영감을 중시한다면, 동양은 직관을 중시합니다. 동양은 일찍이 직관이 발달해 순간적으로 직관된 내용을 필획수가 적은'疎'로 표현할 수 있고, 그 표현방법에 물이 잘 스며드는 한지와 필묵이 있어 순간적으로 동양화는 그것을 표현할 수 있어, 정신과 감성, 양면의 표현이 일찍부터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그 밑바탕에는 한(漢)과 육조(六朝)시대부터 書가 -따라서 紙筆墨이- 생활화된 고도의 정신상을 가진 문인들에 의해 시 ․ 서 ․ 화 이론이 주도되어, 예술이 학문과 더불어 인간의 수양 방법으로 인간의 완성에 기여한 바가 컸고, 더욱이 회화의 발달에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 인물화에서 시작된 회화 예술에서의 장르의 확대, 예를 들어, 중국 산수화와 화조화의 발달도 이에 기본합니다. 즉, 대산(大山) 전체를 그리도록 요청받은 송대(宋代)의 대관(大觀) 산수화의 완성은 우리의 눈으로는 담을 수 없는 광대한 넓이와 높이, 깊이를 통합적으로 사유하여 표현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인간의 관계를 숙려(熟廬)하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고, 가까운 곳에서의 관찰과 먼데에서의 조망을 통해, 화조화는 섬세한 시각을 가져옴으로써 자연의 양극(兩極)인'큰 것(大)'과 섬세함 양면에서 동양화를 일보 진전하게 했습니다. 겸제 정선의「금강산전도(金剛山全圖)」에 정선의 오랫동안의 근 ․ 원경의 관찰과 조망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금강산의 이미지나 개념을 그리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었을까? 또한 그 속에 우리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거유(居遊)'하는 모습이 없었다면 과연 겸제의 진경(眞景)에서 우리는 여유로움을 찾을 수 있었을까? 하고 자문(自問)하게 되고, 극히 아름다운 채색 화조화와 깊이 있는 수묵화조화의 발달은 화조의 형(形)과 색의 아름다움으로, 그리고 그것을 흑백톤으로 변환함으로서 더 없는 아름다움과 깊이와 상징을 표현했다는 데에서 동양화의 경이로움을 보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큰 것과 작은 것, 순간적인 것과 오랜 시간이 드는 것을 모두 화면에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해방 후 전문화 교육 - 새로운 시작 ● 그러한 한국의 문화배경 속에서 20세기에서, 그리고 특히 21세기 지금에 미술을, 회화를 학문함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의 지난 100년 교육이, 한편으로는 서양의 교육방법이나 제도를 들여와, 서양문화에 기초하여 우리 예술의 범위와 깊이를 넓히고 다양화한 한 세기였다면, 앞으로의 일세기는 그간에 내포된 사유(思惟)와 정보를 기초로 창조의 꽃을 피우는 데에 역량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는 조선조까지 예술교육이 한정된 인간 계급, 즉 문인이나 장인에 한정되던 것이, 해방후 일반 대중 누구나에게로 확대된 결과, 다양한 인간의 다양한 달란트를 발전시켜, 동서문화가 어우러져 미술의 신지평을 여는데 큰 기여를 했고, 앞으로도 그러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동양문화권이 더 발전가능성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 발전의 기조는 예술을 감상하거나 창조하거나간에 우선 감각자료를 받아들이되, 일찍이 플라톤이『향연 Symposium』에서'미'를'사랑(eros)의 대상'으로 규정했듯이, 우리 미술, 회화에 대한 사랑을 기반으로 열린 마음으로, 칸트가 말하듯이,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이, 무관심하게 받아들이는 것일 것입니다. 석도(石濤)가 "먼저 받아들이고 나중에 인식하는 것이다. 인식한 후에 받아들이는 것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석도화어록(石濤畵語錄)』「尊受章」第四)고 말했듯이, 우리는 인식한 후에 감각재료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인식의 내용이 무의식으로 깔려 감성의 기반이 폭넓게 형성된 다음에 순수하게,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예술은 시작된다, 즉 그 후에야 개인이나 민족의 달란트에 맞게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가능해지리라 여겨집니다. 기획과 영감-호학(好學) ● 예술은, 회화는 창조요 상상력의 산물입니다. 창조란 새로운 기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感而動'한 상태에서의 새로운 시각과 대상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고, 상상력은 이미지를 산출시키는 능력이므로, 상상력의 발휘에는 그 저변에 오성개념이 풍부하게 깔려 있어야 하고, 상상력의 발휘에는 모험적인 실험정신이 요구됩니다. 9세기의 장언원이 오도자를 산수화의'變'의 작가로 지칭한 것도'創'에서 그만큼 실험정신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동양에서 문인화가 장인들의 그림보다 더 질적으로 우수한 것도 그 원인일 것입니다. ● 그러나 창조는 인식의 산물이기도 하고 영감의 산물이라고도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영감을'신의 은총'이라 보았습니다. 그러나 신의 은총인 영감 외에는 어느 예술도 대부분은 기획의 산물이므로 영감에 의한 창조도 오랜 시간 노력의 결과 어느 순간 이루진다고 생각됩니다. 말하자면, 어느 순간 초월이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플로티누스는 이것은 자신이 초월한 다음 사다리를 치우는 것 같아, 누구도 좇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오직 자신의 평생에 걸친 노력만이 초월을 가져올 것이데, 그러나 노력한다고 초월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인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 일찍이 五代 末 北宋 初 형호(荊浩)가 "生을 해치는 기욕(嗜慾)을 제거하기위하여 거문고, 서(書), 도화(圖畵)를 즐기려 한다"고 하면서 그 단서를'호학(好學)해야 그것을 끝내 이룰 수 있다'고 했듯이, 우리는 예술을'좋아서(好)' 해야 합니다. 20세기 현대는'새로움'의 추구에서 시작했으면서도 현대인은 아직도, 아니 오히려 더 기욕은 끝이 없으니, 그것을 자제하기 위해서도, 이제 회화는'좋아서 평생해야 하는' 학문이 되었습니다. 동아시아에서 문인화가 기(技)에서는 장인보다 떨어지지만 그림의 질(質)이 우수한 그림이 더 많은 이유요, 서양화와 다른 이유입니다. ● 현재 우리 사회는 쉽게 무엇을 이루려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얻은 것은 쉽게 버려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것에 대한 사랑, 글로벌화된 세계에서 우리만의 미를 찾으려는 노력 속에서 우리의 시각을 심화(深化)하여 우리회화의 미를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데, 우리의 옛 사유와 기술이'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 될 때 비로소, 우리 고유의, 우리만의 새로운 미술, 회화가 창출되고, 한국회화, 개개 화가들의 그림은 꽃을 피우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동덕인들도 우리 것에 대한 사랑과, 대학에서 받은 풍부하고 다양한 감성과 이성교육, 즉 受와 識을 바탕으로 이 새로운 길에 동참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전시 출품작들이 여성의 아름다운 색, 세밀한 묘사는 뛰어나나 시각이나 장르의 협소함은, 회화과가 이제 40년, 인간으로 보면 불혹(不惑)의 나이를 지났으니, 동문들 각자의 역사에의 소양의 꾸준한 축적과 시각의 확대 등 꾸준한 자신의 정진으로 극복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 이번 전시를 준비하느라 수고하신 회화과 교수님들, 그리고 동창회 회장단과 이번 전시에 작품을 출품해 우리 동덕 100주년, 대학 창설 60주년을 축하하며 앞으로도 동덕의 발전에 무언의 후원을 해주신 동문들께도 고마움의 마음을 전하면서, 앞으로도 동문들의 畵業에의 정진(精進)과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 김기주

Vol.20100818i | 목화전-동덕창학 100주년·동덕여자대학교 개교 60주년 기념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