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818_수요일_06:00pm_가가갤러리
가가 갤러리 기획展
1부_빙폭지유(氷瀑之遊) / 2010_0818 ▶ 2010_0824 관람시간 / 10:00am~06:30pm / 주말,공휴일_10:30am~06:00pm
가가 갤러리_GAGA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181-1번지 3층 Tel. +82.2.725.3546 www.gagagallery.net
2부_유갑규와 빙폭타기 / 2010_0825 ▶ 2010_0914
카페 테이크어반_cafe Take Urban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5-4번지 1층 Tel. +82.2.512.7978
氷瀑之遊의 기쁨 ● 1. 빙폭을 그리다. 유갑규는 얼려진 폭포의 위협적인 상황에 주목한다. 광활하고 황량한 폭포의 형상과 그 얼음을 타고 오르는 나약한 등반가의 존재는 자연과 인간, 무한과 유한과 같은 거대와 미세의 존재론적 대비를 환기시킨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흐르는 폭포의 시각적 선(線)과 아래로부터 위로 오르는 고지를 향한 나약한 인간의 희망의 시간들이 서로 교차되는 작가의 화면은 하강과 상승, 근경과 원경, 표면과 깊이를 벗어난 판화와 같은 평면성이 강조되고 부각된다. 다분히 이들의 겨울풍경은 작가의 정신에서부터 재구조화되고 사색의 여과를 거쳐 만들어진 내면의 빙폭이라 하겠다. 즉, 이들은 대자연이라는 거대 세계에 작가의 시선에서 채집된 자연이자 작가의 사고가 함축된 응집된 세계이다. 이 세계는 기하학적인 자연이며 단순하고 명료한 세계로 가시화 된다. 어느 철학자는 웅대함은 외부의 광경에서 오는게 아니라 드넓은 생각의 헤아릴 수 없는 깊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하였듯이, 유갑규의 풍경은 정신에서 만들어진 추상이자, 특정의 시공간이 확대된 구체적이고 아득한 공간이다. 그의 화면에는 얼음의 표면과 만난 섬세한 빛이 비추는데, 이는 실재의 태양빛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에서 만들어낸 밤의 빛이자 근원적인 빛이다. 그것은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 표면과 내부를 동시에 비추는 사색의 빛이자 범 우주적인 빛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은 꿈속의 자연, 몽유도원을 찾아나서는 고사(故事)의 인물처럼 작가는 빙폭을 찾아 나선다. 빙폭을 오르는 풍경은 마치 현상계의 극복의 과정(process)이기도 하며 초월적 존재로 나아가려는 인간의 염원이나 기도, 깨달음을 얻기 위한 지난한 인간의 마음과 닮았다. 빙폭을 오르는 군상은 작가의 자아의 표상이기도 하며, 인간 군집의 대표성을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2. 화가는 왜 '물'에 주목 하는가 물은 원초의 바다에서 생명이 탄생한다는 신화와 더불어 자기정화로 인한 삶과 죽음을 순환시키는 재생을 상징한다. 또한 흐르는 물은 삶의 유동성을 상징하기도 하며 물은 다른 세계로 나아가거나 들어가기도 하는 통로로써 인식되었다. 그래서 물은 신들이 가지는 예지력인 지혜를 나타내기도 한다. 노자(老子)에서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으며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고,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하기를 좋아하므로 도에 가깝다고 했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즉, 물은 무위(無爲)의 표상인 것이다. 사실 물은 생명 기원의 신화에서부터 동양의 지자(智者)의 규범으로서의 모델로써 상징과 의미의 스펙트럼은 실로 넓다 하겠는데, 그 가운데 물을 그리는 행위는 동양 산수의 중요한 주제이자 수행이었다. 이는 자연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자연합일과 같은 자연과 내가 더불어 하나가 되어 자연의 성정을 본받으며 또한 자연을 경영하는 치경(治景)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이는 고래로부터 물이 다른 세계로 나아가거나 오롯하게 몰입하며 세계를 반영하는 거울로 인식되었는데 관수도, 관폭도, 탁족도와 같은 조형은 전통적인 물의 몽상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물을 그리는 작태는 물을 통하여 분명 가시적인 자연으로부터의 내적 변화를 획득해 나가는 형태인데, 유갑규의 빙폭은 무한히 펼쳐진 자연에 관한 외경심의 가시화이자 외로운 등반가를 통하여 흰 종이에서의 화가의 아득한 고독을 추출해낸 것이다. 빙폭은 작가로써 자신이 넘어야할 한계의 설정이며 조형화인 것이다. 물의 본성이 인간이 향한 외부 세계로의 시선을 아득한 내부 세계인 명상으로 끌어들이는데 있다면, 대지를 향한 화가의 천착이나 빙폭을 향한 유갑규의 몰입은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특히 '얼음'은 물의 결정체로 비가시적 추상이 형상으로 변환시킴으로써, 그것은 몰입, 집중, 선정, 명상의 내적 순간으로 함몰해 가는 순간을 연출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또한 밑에서부터 위로의 상승구조로서의 화면은 마치 명상의 순서이자 과정을 형상화 한 듯하다.
3. 고지를 향한 여정: 빙폭지유(氷瀑之遊)의 지극한 기쁨 유갑규의 화면은 우주, 생명, 존재의 유한성을 빙폭으로 드러내 보임으로써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인간 의지의 도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토인비(Toynbee)는 문명발생의 근원을 도전과 응전이라는 테제로 정리하고 있는데, 이는 인류 문명이 자연과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성숙하고 발전해 나아가는 역사적 단계를 설명한 것이다. 이것은 비단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적인 구조로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진실한 인간의 자아를 경험하게 되며, 또한 극복의 과정 속에서 살아있음의 희열과 기쁨을 만끽하게 된다. 작가는 빙폭을 오르는 사람들에게서 인생의 여정을 보았다 한다. 그것은 아이가 좁은 질을 통과하여야만 찬란한 세상과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얼음으로 은유된 인생사를 통과해야 하는 통과의례의 함축인 것이다. 반복적인 빙폭의 변주들은 분명코 대자연 속에서의 뚜렷하게 각인시키는 인간의 한계와 극복에 관한 의지를 환기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다. 사실, 작가의 화면에는 동일하게 간취되는 빙폭 속에 숨겨진 날개를 펼치고 비상하는 새의 형상은 얼음의 다양한 결절들이 혼재된 상황 속에서도 숨겨지거나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유년기의 독수리 환상이 작품에 이입된 것과 같이 하늘에 머리를 둔 태양 새를 타고 하늘을 향해 한발 한발 다가서는 이카루스(Icarus)와 같은 작가의 무의식이 오버랩핑되고 있다. 이는 정신의 고지, 내적인 한계를 설정하고 무한히 노력하는 작가의 내면의 확고한 의지의 표출이자 완성으로 다가서는 삶의 태도를 작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우리에게 들키고 있다. 선인들은 물에 발을 담그고 물의 성정을 닮고 이해하는 탁족지유(濯足之遊)의 기쁨을 맛보았다. 유갑규 작가 또한 빙폭에 빗댄 오르기의 여정에 지극한 기쁨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빙폭지유의 즐거움 말이다. 채집된 겨울산수의 변주는 시작되었다. 변하고 자라나는 것이 생각의 나무, 창작의 나무라면 어떠한 고지의 여정이 다시 시작되고 자라날지는 향후 두고 볼 일이다. ■ 박옥생
Vol.20100818g | 유갑규展 / YUKAPKYU / 柳甲奎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