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

박채희展 / PARKCHAEHEE / 朴寀希 / painting   2010_0818 ▶ 2010_0831

초대일시_2010_0818_수요일_05:30pm

미술공간현 2010 기획전시 작가공모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주말_11:00am~06:00pm

미술공간현 ARTSPACE HYUN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6번지 창조빌딩 B1 Tel. +82.2.732.5556 www.artspace-hyun.co.kr

소소한 일상의 기록과 현대와의 소통 ● 작가 박채희의 작업은 '장보기'라는 극히 일상적인 내용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에 함몰되거나 지나치게 관념적인 것에 빠져 경직된 조형을 남발하는 일단의 청년작가들의 경우와 비교하여 볼 때 극히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건강한 것이라 여겨진다. 일상의 작고 소소한 부분들에 대한 진지한 관찰과 정돈된 표현은 담백하고 재치 있는 표현으로 표출되어 일상적이지만 상투적이지 않은 작가만의 독특한 화면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일상적인 현상과 상황을 대상으로 삼았기에 작가의 화면은 낯설지 않다. 더불어 그것을 임의적으로 해석하여 가공하거나 억지로 이념이나 상황을 설정하지 않았기에 별반 거부감 없이 다가온다. 그것은 그저 작가의 주관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여 공감의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는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키워드와도 같은 것이다. 대형마트에 산적한 상품들은 제각기 다른 의미와 표정으로 현대를 반영한다. 이들은 때로는 물질문명의 개가를 드러내는 휘황한 훈장과도 같은 것이며, 때로는 지나친 인간의 탐욕을 상징하는 욕망의 덩어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상품들을 대단히 침착하고 차분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것은 특정한 의미나 가치를 발견하기 위한 도발적인 시선이 아니라, 대상이 되는 상품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관조적 시각이다. 그의 작업은 구체적인 내용을 적시하거나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열하고 드러냄으로써 보는 이의 시각과 감성에 작용하게 된다. 이는 일종의 우회적이고 상징적인 작업방식이라 할 것이다. 물론 작가가 이러한 상품들, 그리고 진열된 매장의 상태를 통해 무엇을 드러내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적어도 이미 익숙한 상황의 표현과 적절한 수식의 설명적 화면은 그것이 그저 상품의 유미적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님을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어쩌면 극히 일상적인 '장보기'라는 객관적 화두를 자신의 주관으로 구현함으로써 객관과 주관 사이에 존재하는 자신만의 내밀한 기억과 감정을 표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즉 작가는 '장보기'라는 주제를 통해 자신이 속한 현대라는 시공을 반영하고, 이의 주관적 해석을 통해 자신의 사유를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

박채희_rest_장지에 채색_53×45cm_2010
박채희_refrigerator_장지에 채색_162.2×260.6cm_2009

표현에 있어 흥미로운 것은 화면 전반을 관류하고 있는 독특한 선묘의 운용이다. 그것은 전통적인 모필에서 비롯되는 유려한 서예적인 선이 아니라 둔탁하고 강한 특질을 지닌 독특한 선묘이다. 일견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분방한 필선들은 사물의 형태를 개괄하여 표현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을 배제한 것이다. 농담이 배제된 강한 먹색과 빠른 속도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선은 모필에 의한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특수한 조형 방법을 통해 구현된 것임이 여실하다. 분방하고 자유로우며 개성 있는 이러한 선묘의 운용과 구사는 작가 개인의 독특한 것이 아니라 근자에 들어 나타나기 시작한 새로운 조형방법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굳이 모필의 부드럽고 유려한 필선 대신 이러한 선들을 구사하는 것은 바로 한국화가 당면한 현실적 고민과도 연계되어 있는 것이라 풀이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중봉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 운필방식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필선의 표정을 통해 새로운 미감을 표출해 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필선 자체의 변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형 전반에 걸쳐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조형실험의 한 양태라 할 것이다. 작가는 현대라는 시공을 '장보기'라는 일상적인 주제를 통해 구체화하고, 이를 전통적인 필선과는 뚜렷이 다른 성질을 지닌 독특한 운필로 표현함으로써 현대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박채희_mine_장지에 채색_162.2×260.6cm_2009
박채희_basket_장지에 채색_72.5×65cm_2010

다양한 사물들을 나열하고 있는 작가의 화면은 동일한 사물의 반복적 나열이 특징이다. 그것은 속도감 있는 운필을 통해 일정한 리듬과 운율을 생성하며 화면에 동적인 질서를 구축한다. 모든 대상들이 선으로 개괄되게 표현되고 있기에, 작가의 화면은 전적으로 평면성을 지향한다. 이는 대상이 되는 사물들의 객관적 상태의 묘사나 재현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님을 반영하는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사물들을 차용하여 독특한 선묘의 분방하고 다양한 표정들을 거리낌 없이 발산하고 있다. 그것들은 사물의 형태를 규정하기도하지만, 상호 어우러져 독특한 운동감을 형성함으로써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고 있다. 설명적이고 장식적인 요소들은 약화되었지만, 이러한 필선들의 유기적인 조화는 상투적인 묘사의 그것보다 훨씬 폭넓은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에 더해지는 파스텔 톤의 부드럽고 따뜻한 색조의 운용은 단조로울 수 있는 화면의 질서를 돌연 밝고 명랑하며 쾌활한 것으로 변환시키고 있다. 이러한 색조에서 비롯되는 장식성과 조형적 기능성은 선과 면, 수묵과 색채라는 대비와 조화를 통해 화면을 보다 풍요롭게 하고 있다. 이는 작가의 섬세한 감성과 조형적 감각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결과일 것이다.

박채희_lovely plates_장지에 채색_50×110cm_2010

선에 의한 조형은 동양회화가 지니고 있는 오랜 전통성의 한 요소이며 그 구체적인 내용은 평면성이다. 이는 서구의 현대미술과 우연한 일치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발전이라는 해묵은 화두는 어쩌면 이러한 부분에서 접점을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작가의 작업이 두드러지는 것은 그 필선의 독특함이나 소재의 참신함 같은 일차적인 것에 의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소박하고 일상적인 것을 통해 전통과 현대의 민감한 접점에 접근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현재의 작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필선의 기능적 요소를 배가하고 그 표정을 더욱 풍부히 할 수 있게 된다면 작가의 작업은 분명 또 다른 지경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작가에게 필요한 것은 작업의 핵심이자 요체가 되고 있는 필선의 다양한 운용과 소재의 다양화일 것이다. 이는 따로 독립되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긴밀한 연계성을 지닌 것으로 장차 작가의 작업 지평을 확대함에 있어 관건이 될 수 있는 내용들이라 여겨진다. 특정한 경향과 장르가 범람하며 유행과 시류를 형성하고 있는 현실에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주변의 일상적 삶의 주관적 해석과 이의 감성적 소통은 풋풋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간 작가가 보여주었던 작업에 대한 진지함과 집착을 상기하며, 분발과 다음 성과를 기대해 본다. ■ 김상철

박채희_subdivision_장지에 채색_각 142×74cm_2010

장보기 ● 우리의 일상은 매우 다양하다. 그 다양한 삶 속에서 늘상 마주치게 되는 어떠한 사물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한다. 현실에서의 경험으로 자리 잡은 기억과 내적 감정들이 쌓인다. 나는 이러한 나만의 기억과 내적 감정을 표현한다. 지극히 나만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들이다. 나만의 시점을 통해 표현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동안 절대적은 아니지만 우리에게 필요하고, 모두가 하는 행위인 장을 본다는 의미의 'shopping'을 나의 시점에서 바라보았다. ● 나의 그림에는 장을 볼 때에 내가 느낀 감정과, 그 행위로 인하여 생긴 내면의 어떤 기억으로부터의 사물들의 현상을 화면 안에 표현한다. ■ 박채희

Vol.20100818b | 박채희展 / PARKCHAEHEE / 朴寀希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