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근하고 묘한 낯섦

2010_0813 ▶ 2010_0822 / 월요일 휴관

최세진_그네(Swing)_캔버스에 유채_97×130.3cm_2009~10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최세진_이효정_정승호_유안나_허정원_신승주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 15번지_SPACE 15th 서울 종로구 통의동 15번지 Tel. 070.7723.0584 space15th.org

나는 늘 무언가를 바라본다. 내 눈 뒤의 얼룩 같은 그림자가 그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듯 다시 나를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이 존재하고 있다. 누군가 같은 나, 나인 듯 한 무수한 시선들이 엉겨 붙어 흔들리며 웅얼거린다. 누가 누구를 바라봄이며 누구를 향한 외침 일까. 나와 내가 아닌 시선들이 동시적으로 일어나면서 해체 되어진 나는 세계 속으로 뭉그러져 들어간다. 세계는 바라보려 하면 할수록 시선이 닿지 않는 곳으로 멀리 달려 나아 간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존재한다고 이야기 할 수 없을 만큼 확장된 응시의 경계는 내가 지녔던 자취를 머금어 아련함을 남김과 동시에 건조하며 차가워 진다. 또한 낯선 공간, 낯선 상황, 낯선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이는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곳에서 느껴지는 것이며 그런 순간들은 대부분 데자뷰처럼 채 인식하기도 전에 사라지고 끊임없이 다시 생성된다. 때문에 낯섦은 친숙함 속으로 스며들어 자취를 감췄다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일견 평화로운 듯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현듯 꿈 같은 이상이, 기형이, 신비 또는 기괴가 발현 될 때에 우리는 자주 착각으로 치부해버리곤 한다. 하지만 순간 열리고 닫히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좀 더 온전히 살펴보기 위해 기다림을 가질 때에, 어쩌면 그 틈 안에서 우리가 보는 세상에 대한 진의를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기대 속에 낯선 문을 열어 본다. 최세진 ● 얼굴을 살며시 스치는 바람, 살랑살랑 떨어지는 나뭇잎, 찬란한 햇빛에 반사 되어 반짝거리는 모래알들, 커다란 나무 밑에 드리워진 시원한 그늘, 귓가에 울리는 싱그러운 아이들의 웃음소리.. 모든 것이 평온해 보이는 익숙한 장면. 하지만 그곳에는 뭔가 어색한 거북함이 있어. 모든 것이 평화로움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한 이상한 느낌. 사랑스러운 그 모든 존재에게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불안감.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언뜻 떠오르지 않는 낮선 느낌.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온몸에 스며드는 두려움이 모든 것을 불안하게 해. 잃고 싶지 않아. 이 모든 것을.

이효정_경계에서, 물러나는 풍경들_혼합재료_가변설치_2010

이효정 ● 창문을 열면 바로 앞에 큰 벽이 하나 있다. 큰 벽에 붙어있는 계단에는 매일 다른 것들이 버려져있다. 나는 자주 바뀌는 쓰레기들을 구경했다. 이쪽 벽과 저쪽 벽의 사이로 보이는 도로와, 지는 혹은 뜨고 있는 빛, 헛기침.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 시끄럽게 지나가는 버스들. 말없는 자동차들…. 경계에서. 여기는 건조하고 차갑다. 동시에 뜨겁고 물렁하다. 부드럽게 뭉개진 것들이 날카롭게 초점이 맞추어지고 다시 풀어짐을 반복한다. 그리고는 멀어진다. 이 네모난 구멍에 분명히 육면체의 내가 붙어있는데, 밖의 것들이 자꾸만 나는 없다고 말하며 멀어지고 있다. 흔적을 남기면서, 부드럽게 물러나는 풍경들.

정승호_Life in the Universe_혼합재료_150×73×69cm_2010

정승호 ● 그 사람과, 또 나를 마치 바다신에 바쳐진 산 제물을 보듯 바라보던 그의 친구와 앉아있다가 거대한 짐승이 갑자기 우릴 덮쳐 발톱 밑에 깔려 신음을 내뱉었고 그 동안에 나는 그 짐승의 모습에서 세상의 내면에 계획된 것들을 봤다. 그런 다음, 그는 내 목덜미를 물어서 피를 빨아먹었고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잠시 앉아있는 듯 하다가 부러 도망치는 듯이 보이려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귓가에 끊임없이 모든 소리가 달려들고 수만 가지 짐승들이 날아오르며 노래한다. '아무 빛도 없는 어둠도, 공포영화의 테마도, 이불 속에서 흘리는 눈물도, 매일매일 아프고 울면서 견디는 작은 행복들도. 너무나 따뜻하고 깊다. 더할 나위 없이. 부족함 없이.'

유안나_랜덤워크(Random Walk)_캔버스에 유채, 플라스틱 큐브_130.3×97cm_2010

유안나 ●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얼룩진 눈을 가지게 된 나는 이 한 조각의 낯설음을 발견하게 된다. 수 천개의 겹눈으로 바라본 모자이크 세상을 헤치고 지금 나온 듯, 혹은 들어가려는 듯, 묘한 움직임. 쪼개지고 나눠져 과장된 움직임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앞에 둔, 익숙하지 않은 만남이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지만, 얼룩진 시선이 닿은 화면은 그저 바라보는 것이 어려울 만큼 맞추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욕구조차 습관처럼 반사적으로 생겨난다. 물론 맞춰진 화면은 그 의미를 가진 자에게만 해당되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또 알아야 할 것. 그저 바라보는 것과 움직여 거리를 두고 맞춰보는 것은 그래도 다르다. 익숙하지 않은 만남은 살아있는 더 많은 것을 '살아가게' 할 수 있다.

허정원_A strange voyage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10

허정원 ● 늘 따분하고 지루한 일상이지만, 일상이란 것이 없는 새로운 내일은 없다. 새로운 내일...그 어느날, 일상 속에서 친근한 사물들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낯설어 보이는 그 어느 날, 사물들이 관찰하듯 나를 뚫어지게 바라본다. 앗! 나만이 그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니 그들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본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뜻이고, 생각한다는 것은 본다는 뜻인데... 생각한다. 본다...이제 나는 그들과 함께 자유롭고 낯선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상상의 공간속에서 서로들 다른 생각과 다른 곳을 바라보지만, 불안한 시선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딘가에 있을법한 또 다른 일상의 섬을 향해 끝없는 항해를 떠난다. 앞으로 앞으로...

신승주_만져지지 않는 그때_나무박스, 크리스마스트리, 단채널 영상_45×85×40cm_2010

신승주 ● 파티는 끝났다. 아니 사라졌다. 믿음이 변했다. 꿈이 사라졌다. 아름답기만 하던 모든 것들을 잘라내고 잘라낸 흔적 속에 어떤 것들을 채워간다. 언제부터였을까? 행복으로 가득했던 그날이 그저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날로 바뀌었다. 감았던 눈을 뜨면, 지금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란다. 어느 순간, 어느 곳에서 시작된 것인지 모르지만, 이젠 사라지고 아련한 온기만이 남아 있다. 꿈과 추억은, 잔해들만 남겨졌다. 빈 공간속에 시간이 들어차고, 과거는 흔적과 기억만이 남았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것을 바라보기만 한다. 그것을 느낄 수가 없다. 하나의 움직임이 모든 것을 낯설게 만든다. 모든 것이 바뀐 것일까? ■ 친근하고 묘한 낯섦

Vol.20100813g | 친근하고 묘한 낯섦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