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_류미현_송수영_이민선_이철승
방치된 건물_Abandoned Building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56-1번지 Tel. +82.10.4737.2910 abandoned_.blog.me
전시공간의 문제 ● 미술계에 속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인정된 전시 공간에 들어가려고, 그리고 작업공간을 장만하려고 아등바등하지만 쉽지 않고, 한계도 많다. 지원을 받으면 그만큼 눈치를 봐야하고 지원을 받지 않고 하기엔 우리-젊은 예술가-는 너무 가난하다. 대안적 공간, 대안적 전시 ● 같은 실기실을 쓰는 이제 막 작가, 혹은 작가 지망생들이 모여서 방치된 건물에서 전시를 하기로 했다. 제도적 틀에서 벗어나 우리가 스스로 공간을 점유하고, 기획하고, 작품을 제작해 전시하는 것이다. 우리는 정해진 전시 공간을 벗어난 만큼, 선택한 공간의 특성을 탐구·해석하는 데 작업의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 방치된 건물 ● 전시 공간은 서울대 내 천체관측소 부근에 위치한, 풀숲에 방치된 지 수 년 된 건물이다. 서울의 어느 곳이 안 그렇겠냐만 서울대 내에도 매년 새로 짓고 다시 짓는 건물이 여러 개다. 인간은 원래 산이고, 계곡이었던 곳을 밀어서 골프장도 만들었다가 대학교도 만들었는데, 그 안에서도 계속해서 새로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고 있다. 자연에서 나는 재료로, 땅 위에 지어지지만, 중력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맞서 하늘을 향해 높게 솟은 건물들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승리로 해석되어 왔다. 갸우뚱하게 공중에 떠있는 듯이 지어진 MOA 건물을 보면 중력을 거스르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가 느껴진다. 이와 대조적으로 중력에 눌려 붕괴하고 있는 건축물은 모든 것은 땅으로 되돌아간다는 자연의 섭리 속에 인간이 귀속되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우리가 선택한 건물은 바로 이러한 지점에 있다. 이 건물은 벽이 허물어지고 풀과 벌레에 뒤덮인 상태이다. 인간이 관리를 조금만 소홀히 하더라도, 자연은 물과 중력과 풀, 벌레로 건물을 점거하기 시작한다. 이 틈에 우리도 이곳을 점거해보려고 한다.
인간이 떠난 후 - 인간의 흔적조차 제 삶을 산다. ● 류미현은 인간의 흔적으로 인간의 부재와 인간 아닌 존재의 생을 드러낸다. 인간신체의 일부이자 인간의 흔적인 머리카락들이 엉키고 뭉쳐져 벌레집이 된다. 부서져 내리고 있는 천정과 벽 여기저기에 지어진 불길해 보이는 검은 벌레집은 인간의 부재를 증명하는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것의 성분-인간의 머리카락-은 인간이 예전에 이곳에 살았음을 증명한다. 인간의 흔적은 인간 아닌 존재로 인해 증식되고, 조직되고, 움직인다. 인간이 떠난 후에는 인간의 흔적조차도 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떠난 후 - 제품이 되었던 생명이 제 삶을 되찾는다. ● 송수영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제품들이 인간이 떠난 후 제 각자의 삶으로 부활하는 풍경을 연출한다. 베어지고 깎여나간 나무 '제품'에서 다시 싹이 돋고, 양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에서 다시 양의 얼굴이 드러난다. 나무제품이 나무가 되고 가죽제품이 동물이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나무로 제품을 만들고, 동물로 제품을 만드는 과정-을 역행하는 것이다. 또한 익숙한 만남-우리는 살아있는 소와 만나기보다는 소로 만든 제품(가죽제품, 소고기)과 만난다-이 아닌 낯선 만남, 낯선 경험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는 우리 삶에서 그동안 탈락, 단절되었던 살아있던 나무와 양의 삶, 그들의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떠난 후 - 공간은 인간과의 조우를 준비한다. ● 이민선은 '인간이 떠난 후 After human's gone'에서, '다시 인간이 돌아온 순간 When human's back'을 본다. 작품이란 보여줌으로써 완성되는 것이기에, 방치된 공간 속의 작품 또한 누군가 그 것을 보게 되는 순간에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오래도록 인간이 찾지 않았던 폐허 속의 오브제를 이용하여 '당신'이라는 말을 새긴다. 인간이 떠난 후 증식된 오브제들-먼지, 이끼 등-이 인간을 맞닥뜨리는 순간, '당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부재한 환경이 인간을 부르고 있는 것으로, 또는 그것을 보는 인간이 생각하기에 자신을 부르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인간이 떠난 후 - 사물들은 제 목소리를 낸다. ● 유독 인간이 만든 것은 자연과 어우러지지 않는다. 많은 동물들의 건축은 자연과 조화롭게 자연의 일부로서 존재하지만 인간의 것은 자연과 이질적인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가 방치된 건물은 다시 자연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게 되는 순간부터 그것은 사람을 위해 만들어 졌을 때와는 다른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방치된 건물의 흉물스런 외관이나 그 안의 못쓰게 된 여러 인위적인 사물들은 더 이상 인간에게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순간 사물 자체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 송수영
Vol.20100812f | After Human's Gon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