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展 / LEEJUNGHEE / 李貞姬 / drawing   2010_0810 ▶ 2010_0831 / 월,공요일 휴관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25×35cm

초대일시_2010_0814_토요일_02:00pm~6:00pm

문화체험비_2,000원(단체동일)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도트_gallery DOT 울산시 남구 무거동 626-6번지 1층 Tel. +82.52.277.9002 www.galleryDOT.co.kr

일본 애니메이션『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보면 주인공 치히로는 기이한 세상에 발을 들이게 되고 영화 전반부에는 요괴 온천의 오너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긴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이름을 찾게 되어 살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그와중에도 꽃미남 남친까지 만든다.) 나는 한동안 이름을 잃은 채로 살았었다. 때로는 이름을 지우기 위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은 그때 내게 있어서 금지된 욕망을 깨우는 일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내가 부리는 몇 가지 재주로 밥을 벌어먹으며 살 줄 알았다. 그때는 짐작도 못했다. 내가 이렇게까지 착할 줄이야.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나는 위로 언니 셋을 둔 막내로 자랐다. 그리고 열일곱 살에는 '살다보면 생길 수 있는 일'로 내 바로 위에 둔 언니를 잃을 뻔하였다. 물론 매우 놀라기는 했다. '살다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라 해도 흔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언니는 그때 일로 건강을 어느 정도 잃었고 아직 회복은 아니 되고 있다.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집안에서 엄마의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가장 큰 희생이 되게 마련이지만 우리 가족은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부재를 겪어야 했다. 이것 또한 '살다보면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언니가 병을 얻게 된 일보다는 좀 흔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언니는 병을 앓고부터 다른 이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 되었고, 이것이 내 인생에 큰 위기를 몰고 온다. 정확하게 위기의 순간을 계산에 넣어 대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던 다른 이유가 있다. 예상했던 것보다 내가 좀 지나치다 싶게 착했던 것이다. 사실 나와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안타깝게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마치 시청률 잘나오는 다큐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을 것이란 생각도 잠깐은 든다.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그렇게 까지 안타까울 일은 잘 없는데 말이다. 언니의 성격은 대다수가 추측하는 것보다 훨씬 긍정적이고,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 보다 인내심이 깊어서 부딪치는 일은 별로 안 된다. 물론 매일을 밝게 웃으며 살기는 몹시 어렵겠지만 우는 날과 웃는 날을 비교하면 감히 깜냥이 안 될 정도로 웃는 날이 더 많고 여기 내놓은 그림은 바로 그날의 보편적인 기록들이다.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나는 내 이름을 잃었던 동안 언니의 이름을 대신해 살았다. 여러 날을 '00씨의 보호자'로. 그러나 얻은 것도 없다할 수 없다. 언니와 함께 있는 동안 만났던 친절한 사람들, 다정한 목소리. 그리고 코란의 경전을 이만 번 읽어도 깨달아지지 않는 삶의 지혜를 수강료 없이 배울 수 있었다.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예술을 말하는 정의 중에 내게 가장 공감을 불러 일으켰던 문장은 '보잘 것 없는 것, 지나쳐 가버리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새롭게 격을 입히는 것.'이라는 정의이다. 언니와 함께 병원에 다니면서 만나게 됐던 사람들은 피치 못하게 오랜 병마와 싸워 왔거나 싸우는 중에 있는 이들이 많았다. 내가 공손하게 표하는 경의가 잘 전달될 수 있다면 그들의 보편적인 하루에 소소한 위로나마 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이정희_보편적인 일상_종이에 펜_35×25cm

나의 바람은 거기에서 한 치의 벗어남이 없다. 정치나 사회문제를 지적하고 문제로 제기하는 작품과 예술학에 입각한 표현주의 작품의 역할이 따로 있듯이 몇몇에게 그늘이 되었다 지기를 바라는 작품도 그 역할은 따로 있다. 오래 잃고 지낸 나의 이름을 꺼내었다. 센은 치히로라는 이름을 찾아 세계로 돌아갔다. 내가 돌아가길 희망하는 곳은 어디였을까. 무엇보다 꽃미남 남친이 간절한 시기이다. 여름의 이파리가 풍성하다. ■ 이정희

Vol.20100810i | 이정희展 / LEEJUNGHEE / 李貞姬 / draw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