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그림

A delicious picture展   2010_0805 ▶ 2010_0830 / 백화점 휴무시 휴관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병진_박성민_박종필_박형진_백유일_이용수_유용상_윤병락 윤은정_윤현정_이흠_최경문_최정혁_한운성_황남진_황현승

책임기획_나민환 후원_롯데백화점 안양점

관람시간 / 10:30am~08:00pm / 금~일_10:30am~08:30pm / 백화점 휴무시 휴관

롯데갤러리 안양점 LOTTE GALLERY ANYANG STORE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안양1동 88-1번지 롯데백화점 7층 Tel. +82.31.463.2715~6 www.lotteshopping.com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문명의 이기(利器)에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의식이 약해지고, 사고(思考) 마저 과학기술에 의존하여 규격화, 형식화 되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점차로 생활 수준의 여유가 생김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화나 스포츠, 관광 등과 같은 즉각적으로 즐기는 행위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그 이면(裏面)에는 인간이 큰 공장의 한 부품으로 되어지면서 전체를 우선으로 하고 개인은 무시되어 지는 현상을 수반한다. 이러한 부작용은 심할 경우, 소외감, 우울증, 정신착란 등과 같은 사회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 ● 그렇다면 계속되는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사회현상 속에서 미술의 역할은 무엇인가. 오늘날 미술은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해주고,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 예로 사람은 미술을 통하여 불안, 고통, 기쁨 등 자신의 감정을 표현 할 수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주거 공간 등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하여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할 수 있다는 측면이다. 또한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술작품을 꾸준히 보여주면 해석적 사고, 의문의 형성, 가설의 실험과 같은 논리적 사고와 어휘적 추론 등과 같은 다양한 종류의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미술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반증인 셈이다. 이렇듯 다양한 기능을 수반하는 미술은 정서의 안정, 교감과 소통, 창조적 영감 등을 통한 긍정적 에너지를 제안하고, 이를 통해 기계화되고 규격화되는 사회 속에 인간 회복을 가능케 한다. ● 본 전시는 무더위에 지치고, 만성적인 스트레스,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미술을 통해 전달되는 긍정적 에너지를 제안하고, 미술이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제시하려 한다. 또한 미술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관람객들에게 보다 더 친근한 현대미술로의 접근을 가능케 하는 전시가 될 것이라 기대된다. ■ 나민환

김병진_사과나무_20kg 철용접, 분채도장_100×100×100cm_2008 박성민_icecapsule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9

김병진 ● 원으로 만들어진 철선들이 허공을 뚫고 뻗어가기 시작한다. 조용히 퍼져나간 원들의 움직임은 공간을 장악한다. 그리고 정적이 흐르는 공간을 마치 움직임이란 애초에 없었다는 듯 부동의 상태로 그들만의 형태를 만든다. 이는 나의 작업에 대한 설명이 아닌 작품 속 원으로 만든 철선들에 대한 관찰기록이다. 철선을 사용해 최소한의 선으로 어떠한 형상을 축약 표현하는 나의 작업은 시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태이지만 암시적인 여러 비정형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의 작품을 규정 하려 들자면 드로잉과 조각, 평면과 입체, 회화와 설치의 모든 요소들이 혼재되어 있다. 하지만 막상 나의 작업을 눈앞에서 대면하다 보면 그 어떠한 정의나 개념보다 선의 아름다움이 주는 하나의 공간을 말하는 것이다. 박성민 ● 나의 작품 속 얼음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두를 가두고 또 되살리며 미래로 간다. 과거의 우리는 어떤 즐거움과 어떤 아픔을 가지고 있었는지... 현재의 우리는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 미래의 우리는 어떤 희망을 꿈꾸고 있는지... 이처럼 내 작업에 있어 얼음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이야기하고 있다. 바로 지금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과 같은 착각 속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가슴속 깊은 곳을 드러내어 우리를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있다. 우리의 표면적인 활동은 우리의 내면에서 해명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내 작업 속의 얼음은 나와 우리를 대변해주는 그 어떤 위대한 존재라 할 수 있다.

박종필_cake_캔버스에 유채_60×41cm_2010 박형진_대중문화 시리즈-음주문화 No.7_캔버스에 유채_112×162cm_2007

박종필 ● 나의 작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 오브제들은 대부분 버려진 것들과 거짓(모조품)된 것들이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존재들이다. 버려진 자로서의 인간들이 스스로에게 形形色色 띠를 두르거나 사탕 같은 달콤한 것들로 위장(僞裝)을 하거나 진짜들 속에 존재하며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직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상태로 머무른다. 그래서 작품의 이미지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처절한 어떤 그로테스크(grotesque)함들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몇 가지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데 첫째로, 진짜와 가짜에 대한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실제로 가짜이든 진짜이든 화면상에서는 뚜렷이 구별해내지 못한다. 특히 케익 시리즈에 사용된 꽃이나 과일들 중 일부는 모조품을 그린 것으로 주의를 기울여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게 처리되어 있다. 이로써 관람객이 보는 예쁜 꽃은 진정한 꽃이 아니며, 싱싱한 과일들은 그저 건조하기 그지없는 가짜에 불과한 것이다. 둘째로, 아름다움과 추함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동물계에서 아름다운 무늬는 독(獨)에 대한 경고이며 화려한 색을 가진 생명체들은 저마다 강한 독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긍정과 위험을 동시에 나타내는 것이다. 나의 또 다른 cake시리즈에서 이는 극명하게 표현되는데 이 작품들은 cake의 달콤함 속에 과도하게 넘쳐흐르는 붉은 시럽과 그 안에서 과일로 위장한 인간들의 형상들로 인해 식욕과 동시에 구토를 유발하는 작용을 한다. 셋째로, 욕망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내 작업 전반에 분포되어있는 개념으로 이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아이러니(irony)에 빠지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보통 욕망이란 이상에 대한 강력한 욕구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가치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 욕망이 이상을 넘어서는 순간 이것은 욕심이 되고 만다. 박형진 ● 작가 박형진은 한국의 대중문화 전반을 이야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술 문화를 이야기 하고 있다. 이는 다른 나라들과는 차별화되는 한국 속의 독특한 문화들 중 하나인데 이를 통해 한국만의 문화 이야기를 다루려고 하고 있다. 이 시리즈 작품들 중 삼겹살은 대중과의 친밀도가 가장 강한 대상 중 하나인데 작가는 이러한 대상을 상징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표현해 싸구려, 저급함의 이미지에서 고급스럽고 세련된 모습으로 보이도록 노력하고 있다.

백유일_유통기한 2003_혼합재료_81×121cm_2003 유용상_Good evening_캔버스에 유채_116.7×80.3cm_2010

백유일 ●「유통기한」이라는 타이틀로 형상화된 내 작품에서의 주된 화두는 '인간의 욕망'이다. 채우지 못한 대상에 대한 결핍으로서의 내적 불안은 나의 작품의 시발점이 된다. 내 작품에서 주로 다루고자 했던 조형적 측면은 '욕망'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를 무형의 개념적 요소, 은유, 상징적 표현과 오브제(objet)를 통해 어떻게 조형화 하는 것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유기체로 재탄생 되어지고 상징화된 오브제들을 통해 억압된 성적욕망을 상징화하였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앓고 있는 대부분의 히스테리 증상과 신경증이 성적본능에 대한 억압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억압과 억제, 불안, 사회전반의 규범 등은 나의 작품에서는 팽창된 긴장감과 그것을 지탱하는 가느다란 실로 표현 되어졌다.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위기상황을 환영(illusion)이 아닌 실재 오브제를 통해 상징화함으로써 시각적 충격을 주고자 했다. 화면에서 보여지는 찢겨진 천을 이용한 콜라쥬 기법과 유기체의 뒤틀림들의 이미지들은 불안한 자아의 내적 심리상태를 대변해 주고 있다. 유용상 ● 유용상의 작업에는 늘 음료가 담겨 있거나 비워져 있는 흔들리는 와인잔이나 종이컵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흔들림의 이미지 속에서는 정지된 듯 정확한 초점에 물체를 향해 극대화된 이미지가 중첩되어 시점의 융합과 복합이 한 화면 속에서 이루어 진다. 결국 이때의 그 흔들림이라는 것은 시간의 궤적에 따른 실존적 의식의 흐름을 담아 낸 연장의 궤적이며 동시에 일순간만을 포착해내는 작가의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사색의 궤적이며 현대인들의 극도로 순간적이고 일회적인 사회적 행위들에 대한 성찰의 궤적일 것이다. 그러므로 컵에 담겨진 음료수 거품의 정교하게 묘사된 표피에 머물렀던 시선들을 흔들림 사이의 공간으로 가져가고 다시 되돌려 그곳에서 그의 작업 앞에 느린 걸음으로 서성이며 머물러 있어 본다면 그의 작업의 시각적 화려함 이면에 담겨진 이야기 마당에 들어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존재 그리고 삶에 대한 작가의 생각들과 마주앉아 무언의 대화를 나눌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윤병락_탐스러운 상자_한지에 유채_65.6×149.3cm_2008

윤병락 ● Shaped Canvas(캔버스의 모양에 변화를 준 변형캔버스)에 그려진 윤병락의 작품은 '작품' 그 자체가 오브제화 되어 있다. 여기에 화면 내부의 빛 방향과 전시장의 조명을 의도적으로 일치시켜 줌으로써 화면 외부의 공간까지도 작품의 일부분으로 인식시키고자 한다. 이는 공간 속으로의 무한한 확장을 의도하여 작품과 그 주변 공간이, 즉 가상의 공간과 실존의 공간이 서로 호흡하는 관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윤은정_delicious_캔버스에 유채_91×72.7cm_2010 윤현정_Strawberry-2_캔버스에 유채_112.1×145.5cm_2010

윤은정 ● 사물은 어떤 물리적인 힘을 가하면 그 자신이 가지고 있던 본연의 모습에서 변화된다. 신선한 과일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되고 상하게 되며 나무는 풍성한 잎들을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된다. 하지만 이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강한 생명력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통해 또다시 신선한 과일, 나무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림 안에서 사물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느낌 그대로를 살리려고 노력했다. 모든 사물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지만 이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Chiaroscuro의 빛을 극대화 시키는 기법(디테일이 상당 부분 삭제된 단색 명암 처리)처럼 빛을 극대화 시키지만 명암의 차이가 아닌 색의 강렬한 대비로 사물 본연의 생명력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또한 사군자의 난초에서 느낄 수 있는 유연함과 선의 정갈함을 모티브로 하여 여성성을 강조하고 현대적으로 재해석 하고자 했다. 윤현정 ●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보관 할 수 있도록 포장하여 저장한다. 그 중에서도 흔히 비닐을 사용하는데, 이는 외부와의 접촉을 막고 공기를 차단시킴으로써 오랫동안 그것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러한 상태는 우리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도,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에서도 꼭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가족, 친구들, 연인과 같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과 그 관계, 그리고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순간들, 아쉽게도, 그 모든 것들은 영원할 수 없다. 항상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던 가족의 의미와 존재마저 퇴색해 버릴 때가 많다. 우리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이 변하지 않도록 지키고, 붙잡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비록 현실 속에서는 가능하지 않더라도. 나는 이러한 바람과 욕구를 캔버스에 담아내고 있다. 그림이 담아낸 순간이나 인물, 풍경은 수 백 년이 지나고 변치 않는 생명력을 얻듯이, 사물을 둘러싸고 있는 비닐은 그 사물이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언젠가는 시들고 썩어버리는 유한한 사물들을 비닐로 둘러싸면서 그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닐은 외부와의 차단을 의미하는 막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곧 보호와 보존을 의미하는 상징물이다. 작품 속에 표현된 투명한 비닐 막은 우리들의 삶에서도 존재하는 것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지만 결코 포기하거나 깨뜨리고 싶지 않아 노력하는 인간관계, 반대로 누구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을 때 나를 둘러싸는 벽,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관계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들이 비닐을 통해 표출된다.

이용수_untitled_시바크롬에 혼합재료_60×47cm_2006 이흠_show-window story_캔버스에 유채_72×72cm_2008

이용수 ● 작가 이용수의 작품은 사진을 프린트하여 그 위에 석고로 일정 부분 부조화한다. 석고는 물감을 잘 먹지 않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아라비안 고무로 표면을 덮고 세필로 색을 찍어가며 표현한다. 또한 채색이 끝난 후 바니시로 코팅처리 하고 에폭시로 물방울 모양을 그려간다.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보여주는 이용수의 작업은 세련된 마무리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흠 ● 이흠은 달콤하게 유혹하는 케이크의 이미지들로부터 쇼윈도우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흠은 자본주의 시대라는 현대의 삶에서 상품이라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며, 쇼윈도우 같은 인위적인 공간 안에 예쁘게 데코레이션 된 상품이 상업공간이 아닌 미술공간에서 재발견 되어질 때, 상품을 구매하고자 하는 욕구와 미술작품을 향유하고자 하는 욕구 사이에 교차 되어질 수 있는 관객의 시각적 혹은 심리적 상황의 아이러니에 대해 발언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품 혹은 이미지 소비자로서의 관객은 산업생산물과 예술작품의 경계에서 상품 혹은 작품을 감상하거나 구매하는 행위에 대한 어떠한 관념을 갖고 있었는가에 대해 되돌아보게 되며 이러한 상황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이거나 다른 어떠한 사념으로 빠져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 상품 혹은 작품에 대한 시각적이 욕구의 매커니즘이 크게 다르지 않으면서도 무엇이 예술작품이고 예술작품이 아닌가에 대한 작가들의 선택과 판단을 하는 관객들에 대해 이제 전시장에서 오히려 귀 기울여 들어보자는 제안을 작업가운데 은연 중에 던져보고 있는 것이다.

최경문_glassscape 091213_캔버스에 유채_80.3×116.8cm_2009 최정혁_natural-Topia_캔버스에 유채_60.0×91cm_2010

최경문 ● 최경문하면 언뜻 유리병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선 유리병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작가에게 유리병은 각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유년시절 어머님이 모으시던 예쁜 유리병을 바라보며 성장한 탓도 있겠으나 병 하나하나에 담겨진 사연이나 자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예술작품은 심오한 생각에 의해 촉발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이런 사소한 경험에 기초하여 탄생하기도 한다. 작가는 여지껏 보아온, 눈에 익숙한 것을 이제는 예술의 소재로 승화시키고 있다. 각각 담는 내용물에 따라 유리병의 용도가 달라지듯이 작가는 이 유리병에 자신의 시각을 담아 보는 이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그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심미적인 측면이 강한 편이지만 의미의 맥락에서 보면 현대인에 대한 무언의 암시를 담고 있다. 유리병 안의 굴절된 이미지는 사람들이 감추고 꺼리며 다른 무엇으로 덮어버리고 싶은 것을 표상하며, 이외에도 잠시 매달려 있는 물방울, 한철의 영화를 상징하는 장미, 현존하는 것을 예외없이 과거속으로 떠밀어 보내는 시계, 그리고 과시와 허영을 상징하는 향수와 패션 등을 통해 존재의 순간성을 직시하게 만든다. 밤하늘의 폭죽처럼 화려한 표현 뒤에는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 애쓰는 현대인의 심리 또는 욕망의 손길에서 자유롭지 못한 삶을 암시하고 있다. 최정혁 ● 최정혁의 과일 그림을 보고 있자면 실재와 혼동을 일으킨다. 오히려 과수원에서 보는 것보다 더 실감나고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사과의 탐스런 색깔과 탱탱한 감촉, 그리고 이슬을 머금은 모습까지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잡아내고 있다. 사과의 완벽한 재현으로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인데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린 과일들의 외형뿐만 아니라 내적인 생동감까지 잡아내려는 그의 끈질긴 열정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의 그림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사과에 흰 눈이 수북히 쌓여있거나 봄철에나 볼 수 있음직한 연둣빛 이파리를 목격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과가 열리는 계절은 가을이건만 그의 화면에는 겨울과 봄의 풍경이 각각 담겨있어 보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런가 하면 '꽃핀' 사과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사과꽃이 봄철에 피는 것을 탱탱하게 영근 사과와 함께 나타내어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것은 단지 그림 일 뿐 실제와는 괴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이것을 '가상의 실재(實在)'로 부르는데 사과를 충실하게 옮긴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픽션의 세계에 속한다. 모든 사물들은 그의 머리와 손끝에서 재구성된다. 감쪽같은 사과의 이미지는 마젠타 칼라의 '미묘한 버무림'으로 재탄생되며 잎맥의 숨결까지도 포착되는 이파리들도 사실상 과장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어찌보면 예술에서만 느낄 수 있는 즐거운 눈속임이며 이것을 지렛대로 삼아 우리의 상상의 나래를 무한대로 껑충 높여준다.

한운성_은쟁반_캔버스에 유채_75×75cm_2010 황남진_만들어진 수박_스테인레스 스틸_153×104×100cm_2006

한운성 ● 작가 한운성의 그림은 중심 가득 사물, 대상을 단독으로 설정하고 주변을 과감하게 밀어 젖혀 버리는 수법, 혹은 좌우 대칭의 강한 구도감 및 중심을 집중해서 손을 보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생략해 버리는 강약의 극한적인 대비감 등에서 비롯된다. 그로 인해 대상의 실존성이 강하게 다가온다. 붓질이 아니라 한 인간의 육체, 손으로 대변해서 나오는 모든 신경 체계의 지극히 미세한 떨림과 진동 아래 수 놓아진 화면이다. 진부한 구상 혹은 냉랭한 극사실주의, 공허한 추상이라는 틀을 비껴나 그 사이 어디선가에서 그러니까 구상과 추상, 미니멀리즘과 표현주의, 팝과 극사실주의, 형식주의와 내용주의, 모더니즘과 리얼리즘 그 사이 어디선가 진동한다. 한 운성의 그림에서 보이는 구상과 추상의 대립과 절충, 극사실주의와 미니멀리즘간의 충돌과 융합은 한국모더니즘미술의 그 삶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영하면서 살아남아온 자욱 그 자체다. 그가 재현한 과일들은 생명체임을 증거한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확산되는 붓질을 통해 그 존재가 보다 확실하게 묘사 되다가 가장자리 선에서 급격히 뭉개지는 터치를 통해 온전하게 돌아가는 입체감을 멈추어 버린다. 붓질의 과한 떨림, 터치에 의해 느닷없이 어둠 속으로 잠겨버린 형국이다. 그것은 이미지이면서 개념적인 기호이기도 하고 다시 회화로 돌아오는 사이에서 진동한다. 그 그림 안에서 구체적인 물질의 세계에서 현대의 리얼리티를 잡아내려는 충동 혹은 문명비판적 시각 또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황남진 ● 현대사회에 살면서 우리는 인공적인 물질과 쉽게 접촉 할 수 있다. 그러한 인공적인 물질 중에서 stainless steel 이라는 소재는 차가움, 현대적, 세련됨, 도시적 내음을 닮아 있는 소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인이 선택한 현대적인 소재로 자연을 닮은 물질들을 택함으로써 자연의 향수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먼저, stainless steel 판을 조각내는 것은 인위적인 물질을 조각내는 행위로서 인위적인 것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이다. 이렇게 조각난 stainless steel 판들은 이제 하나의 자연물로 다시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다. 절단되고 다시 용접하는 모습은 마치 현대 속에서 살고 있는 도시인의 삶을 반영하듯이 본인의 삶 속에서 그리워하는 향수를 자연물의 모습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황현승_sweet_캔버스에 유채_72.7×116.8cm_2010

황현승 ● 내가 관심을 갖고 있고 또한 표현하고 싶은 것은 형이상학적 관념세계가 아니라 실존적 물질세계이다. 그것은 몸으로 부딪혀 느껴지는 세계이다. 내 그리기의 일차적 목표는 구성, 색상, 형태라는 세 가지 기초를 사용해 실재하는 물질이 갖고 있는 투박한 힘을 드러내고 시각적 즐거움을 창조하는 것이다. 예술은 예술가로부터 시작하지만 관람자에게서 완성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족이나 자기성찰에 그치는 예술,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이해되는 예술은 나와 거리가 멀다. 나는 어린아이도 내 작품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나는 모든 이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즐거운 놀이와 같은 그림을 그리고 싶다. 삶이든 예술이든 그 문턱을 내 스스로 낮추어 좀 더 많은 이들과 공감하는 일은 나에게 행복이다. 삶이 '관계'의 문제라면 삶의 범주 안에 있는 예술행위 또한 '관계'의 문제라고 믿는다. 난 인간애를 바탕으로 그 '관계'의 폭을 확장하기 위해 가장 기초적이고 쉬운 그림의 언어를 탐구하고 있는 중이다. ■

Vol.20100805c | 맛있는 그림 A delicious picture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