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_2010_0731_토요일_07:00pm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작은공간 이소 대구 남구 대명3동 1891-3번지 B1 Tel. +82.10.2232.4674 cafe.naver.com/withiso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주로 곰팡이를 마주하게 될 때는 습기 찬 벽, 오래된 음식물, 죽은 생물체 등 오랜 시간 방치된 '것'이나 '곳'에서이다. 시각적으로 보나 후각적으로 보나 반갑지 않은 풍경들이다. 단순히 반갑지 않은 게 아니라 물질적인 피해는 물론 인체에 해를 끼치기까지 한다. 또 단일 개체가 아닌,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미생물인 탓에 생겨나는 때나 장소를 쉽게 예상할 수 없어서 곰팡이와의 불편한 만남은 대부분 예기치 못하게 이루어진다. 이 같이 곰팡이는 생활 속에서 부패, 방치, 악취, 파괴, 질병, 죽음, 충격 등 주로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곰팡이의 이러한 부정적인 모습들은 실제로는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곰팡이는 음식을 부패시키기도 하지만 발효시키기도 하고, 질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질병을 치료하기도 하는. 해로움과 이로움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인간생활의 관점을 떠나서 혹은 그 관점 이전에도 이미 곰팡이의 활동 자체는 소멸되는 과정임과 동시에 생성되는 과정이기도 한 이중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곰팡이의 활동이 이중적이라는 것, 즉 생성과 소멸이 상반된 과정이라는 것은 둘 사이에 결과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과라는 경계에 의해서 둘은 전혀 다른 극과 극의 과정이 된다. 하지만 '결과'라는 것을 들여다보면 어느 시점 혹은 상황, 상태를 결과로 봐야할지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결과라는 것은 임의적으로 설정된 상황 안에서, 의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일종의 허구적인 관념이자, 인식의 편리함을 위해 쪼개놓은 일시적이고 언어적인 설정이다. 모든 현상에서 생성은 소멸을 내재하고 있고 소멸 또한 생성을 내재하고 있다. 둘은 이분화 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연스런 과정으로써 끊임없이 연결되는 순환의 과정이다. 곰팡이가 이중성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곰팡이의 활동이 그 과정을 드러낼 만큼 극적일 뿐이다.
곰팡이를 소재로 다루는 두 작가는 곰팡이의 부정적 측면을 기반으로 반성과 비판을 드러내고 있다. 미술 작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꺼림직한 소재는 반성과 비판에 충격적인 요소를 더하면서 힘을 싣는다. 하지만 곰팡이는 단순히 부정적, 충격적, 시각적 요소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과 좀 더 복잡한 접점을 이루고 있다. 먼저 두 작가는 실제 곰팡이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함으로써 작품이라는 결과가 완성되는 지점을 끊임없이 지연되게 만든다. 즉 작가의 작품은 곰팡이가 생겼을 때 작가가 의도한 의미와 메시지가 형성되는 것인데, 곰팡이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결과를 예상할 수 없고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므로 어느 시점을 작품의 완성으로 봐야할지 모르는, 끊임없는 과정만이 남게 된다. 이는 완성이라는 허구를 들어냄과 동시에 지금까지 진행되어왔고 앞으로도 진행될 거라는 과정에 주목하게 하고, 과정 안에서 의미와 메시지를 찾도록 한다. 자신의 모습에 곰팡이를 대입시키면서 자신의 나태함과 정체됨을 드러내는 김민지 작가는, 이번 설치 작업에서 삶과 미술에 대한 고민과 고백들을 벽면에 텍스트로 쓴 뒤 그 위에 곰팡이를 피우고 있다. 여기서 곰팡이는 부정적 상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의문, 질문, 고민이라는 어떠한 혼란이 스스로의 방향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드러내는데, 이는 미술적 행위 자체를 자기갱신의 과정으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준용 작가는 곰팡이의 부정적 의미를 기반으로 사회 혹은 세계에 대한 비판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데, 사진과 영상을 통해 곰팡이가 피는 과정을 기록하고 그 과정을 적극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비판에 힘을 싣는다. 즉 진행됨을 보여주는 것. 그것은 단순히 결과적인 측면의 이야기보다도 어떠한 문제점과 비판을 깊이 인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 곰팡이의 이중성은 작품에 중요한 요소로써 역설적인 측면을 갖게 한다. 김민지 작가는 곰팡이를 통해서 죽음을 자기 자신에게 대입시킴으로써 죽음을 인식하는 과정으로 삼는다. 죽음을 인식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곱씹게 하고, 삶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준용 작가는 해골이 곰팡이로 덥혀 가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아름다운 지구'라는 제목에 의해 해골은 인간을 상징함과 동시에 지구를 상징하는 이중적인 의미로 작동한다. 해골이 곰팡이로 덥혀가는 것은 인간이 소멸되어감을 상징하지만 그 과정은 지구가 초록빛으로 무성해지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인간의 이기적인 위치에 대한 역설적인 비꼬움과 비판을 드러낸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지게 되는 수많은 가치와 목적들이 죽음을 전제로 했을 때 전혀 의미 없는 욕망이 되듯이, 정의롭고 위대한 인간의 역사가 자연을 전제로 했을 때 한낱 이기적인 동물의 영역이 되듯이, 작가가 보여주는 역설은 우리의 삶에 의문을 재기한다. 하지만 이중성을 통해 드러나고 있는 이러한 역설은 결국 설정된 상황 안에서, 제한된 맥락 안에서 작동하는 것이다. 역설은 기존의 관점에서 반대의 관점을 제공하는 것일 뿐, 그 또한 한정되고 일시적인 관점일 뿐이다. 곰팡이의 이중성이 사실은 하나의 순환과정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더 큰 맥락에서 두 작가의 작품을 삶과 죽음, 인간과 자연, 생성과 소멸을 이분화 하지 않고 하나의 과정으로써, 관점을 넘어 관계로써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과정, 관계, 순환을 깨닫는 것은 '그냥 그렇게 흘러간다.'는 허무를 조장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평생을 살듯이, 허구적인 가치와 착각에 목매지 않을 수는 있을 것이다. ■ 작은공간 이소
'작은공간 이소'는 지하에 위치한 허름하고 작은 공간이다. 여름이 되면 전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시장의 습기와 곰팡이가 심한데, 이번 전시는 곰팡이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이러한 열악한 환경을 오히려 미술적 가능성으로 탈바꿈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다. 미술전시라는 맥락 안에서 '공간'은 작품을 전시하는 단순한 배경만은 아니다. 작품이 공간과의 긴밀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졌을 때에 작품은 '품'이라는 물질적 인식을 넘어서 실질적인 메시지로써, 의미 있는 체험으로써 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곰팡이는 파괴를 알리는 신호이자 주로 인체에 해로운 작용을 한다. 하지만 전혀 이로울 것 없을법한 이러한 곰팡이도 발효라는 과정을 통해 문화적 이로움으로 탈바꿈한다. 곰팡이가 가지는 이러한 이중성은 이번 전시에서 의도한 공간성의 반전과 맥을 같이 하며, 작가가 보여주는 곰팡이는 삶의 메시지로써, 또 다른 반전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 김민지_이준용
Vol.20100731f | 곰팡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