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_김신일_문경원_박준범_안정주_오용석_최승준_mioon(김민선&최문선)
관람시간 / 10:30am~08:00pm / 8월 2일 휴관
신세계갤러리 본점 SHINSEGAE Gallery 서울 중구 충무로1가 52-1번지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 12층 Tel. +82.2.310.1921~3 department.shinsegae.com
Contemporary Art and Moving Image ● 2000년대 한국현대미술은 영상문화에 익숙한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테크놀로지기반의 미디어아트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현재적 상황은 백남준으로 약칭되는 비디오아트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950년 한국을 떠나 30여년간 유목민의 신분으로 살아온 '문화횡단'의 선구자, 백남준은 1984년 정치적 폭압이 잔잔해질 즈음, 한국인에겐 낯선 타자, 엄청난 속도를 지닌 서구의 테크놀로지, '인공위성'을 타고 당시 TV를 시청하던 한국의 대중에게 '시각적 충격'을 가한다. 당시 한국의 대중이 경험한 이 시각적 충격은 모더니즘시기 발터 벤야민이『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언급한 '영화'라는 당대의 '뉴 미디어', '움직이는 이미지'가 근대인에게 가한 시각적 충격과 다르지 않다. 영화를 관람하는 자의 의지와 상관없이 빠르게 전환하는 영화 이미지는 관객에게 총알과 같은 충격처럼 다가온다고 벤야민은 말한 바 있다. 1930년대 그 충격의 모체가 영화라고 한다면, 1980년대 한국이라는 지형학적 위치에서 경험한 시각적 충격의 모체는 한국미술계에 첫 선을 보인 실험적 예술, 당시 한국의 예술적 환경에서는 범접할 수 없었던 '비디오 아트'라는 낯선 쟝르 그것이었다. 백남준의 비디오설치, 비디오조각을 포함한 비디오아트를 규정하는 제 형식들 즉 그가 추구한 미적 실험들의 표상에는 영화와 같은 '무빙 이미지moving image'가 존재한다. 백남준은 일찍이 60년대 뉴욕 앤솔로지필름아카이브에서 개최하는 제 1회 뉴 시네마 페스티벌에 참가한 바 있고 그의 '무빙이미지'는 비디오아트를 실험한 초기작업에서부터 시작됨을 알수 있다. ● 60년대 독일에서 발아하고 뉴욕을 거점으로 확장된 그의 실험적 예술은 70년대말이후 박현기, 육태진, 육근병이라는 국내파 비디오아트 선구자들을 통해 그 예술적 도전을 실험케했고, 90년대 인터넷과 영상문화에 익숙한 신세대들을 중심으로 뉴미디어아트라는 디지털시대의 새 옷을 덧입게 된다. 국내 비디오아트의 초기작업들이 영상보다는 설치에 경도된 특징이 있다면, 2000년대 디지털세대는 싱글채널비디오와 같은 영상작업에 몰두하는 경향을 고찰할 수 있다. 특히 비디오아트와 영화의 학제적 접근방식을 추구하는 박찬경, 정연두 등의 실험은 영화와 비디오아트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개념인 '무빙이미지'의 실천 그것이다. 이러한 최근 무빙이미지의 국내 경향은 실상은 90년대 더글라스 고든, 샘테일러우드와 같은 영국 yba작가들에서 시작되어 미국의 매튜 바니 등에게로 이어지고 있는 세계 현대미술계의 film and video art의 흐름과 맞닿아있다. 무빙이미지 아카이브와 연구가 활발한 영국의 경우, 테이트모던미술관은 2000년대 이후 최근까지 현대미술영역에서 무빙이미지와 관련한 다양한 기획전을 선보이고 있다.
개입하기(Intervention) ● 이러한 흐름에서 오용석은 영화라는 'found footage'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 이는 전형적인 영상제작방식으로 「미래의 기억」은 고전 SF영화들의 이미지를 작가가 제작한 영상들과 함께 재편집하여 한 화면에 짜깁기하는 것과 같다. 즉 아이젠슈타인의 몽타주이론에서 기인한 몽타주방식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젠슈타인의 몽타주는 변화하는 이미지들의 그 사이의 충돌을 통해 새로운 제 3의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오용석은 SF 영화의 주요 캐릭터인 로봇이 한국의 어느 공원위로 착지하며 인간과 조우하는 순간을 몽타주하고,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이 위치한 강물속에 불시착한 영화속 UFO를 몽타주한다. 「러브레터」 또한 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장면속에 분할화면방식으로 종이비행기모양의 편지를 사랑하는 여인의 아파트안으로 날리는 현실에서 조작한 이미지를 몽타주형식으로 개입시킨다. 이러한 몽타주방식은 관람객에게 시각적 교란을 유도하여 낯선 서사, 제 3의 각색된 시나리오를 상상케한다. 이러한 시각적 교란은 김신일과 뮌의 작업에서도 드러난다. 김신일의 「In Between」에서, 관객이 갤러리의 흰색벽 위의 작품을 관람하는 순간 사각의 프레임속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림이라 착각한 작품속에서 노인은 현실의 관객에겐 보이지 않지만, 분명 갤러리벽에 걸린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는 서사를 상상케 한다. 작가는 벽면을 제외하고 인물만을 화면에 담아내어 미니멀한 공간을 연출한다. 이중액자 방식을 차용하는 김신일은 관객이 관객을 바라보는 이중의 시선을 통해 '보는 것과 보여지는 것' 사이의 유사함을 지적한다.
뮌의 2010년작 「Statue Number」는 작가의 세심함과 면밀함이 돋보이는 3채널비디오로 화면의 배경이 되는 풍경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동상의 후면을 전경에 담았다. 언뜻 보기에 다큐형식의 일상적 풍경을 담아냈구나 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 일상적인 듯 보이는 풍경과 동상은 분리되어 배경은 흐릿해지고 동상의 형상에 관객의 시선을 주목시킨다. 더욱이 동상은 미세하게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은 착시현상처럼 실제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기에 관람자의 시각적 집중이 요구되기까지 한다. 이 시각적 교란은 홀바인의 「대사들」에서 해골의 그림을 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상황과 유사하다. 즉 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간극을 통해 사회의 의미체계를 재고하게 하는 것이다. ● 위 작가들의 디지털 편집방식을 이용한 시각적 교란, 즉 '개입'의 양상은 박준범의 작품에서 더욱 뚜렷해진다. 박준범 작업이 늘 그렇듯 작가 손을 등장시키는 일종의 '놀이'영상은 「Hypermarket04」에서도 이어진다. 독일의 바우하우스라는 공구상 건물은 빌딩이름만 표기되있을뿐 아무런 상호가 없는 평범한 건물이다. 하지만 박준범은 건물의 외벽을 스펙터클한 상점건물로 변신시킨다. 박준범은 작가의 손을 작품에 등장시킨 발상적 측면에서 주목할만한 작가로 노골적으로 작가의 손을 개입시키는 방식은 곧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를 은유하는 것이다. 「퍼즐」은 더 나아가, 실제 사람들이 스스로 퍼즐조각이 되어 제한된 공간을 움직이며 나열되는 것이 도구에 불과한 획일화된 인간의 삶임을 비유한다.
안정주의 「Lip Sync」 시리즈는 디지털기술의 개입이 영상이 아닌 사운드 즉 음악에 집중되는 예를 보여준다. 핀란드 헬싱키에서 난생처음 경험한 해외레지던스 기간동안 이국적인 것, 낯설음의 환경을 소재로 삼아 자신의 날 목소리 즉 아날로그라는 형식을 디지털화면에 개입시키는 방식을 차용한다. 즉 「Fishing」의 경우, 읖조리는 의미없는 허밍, 의성어등의 날소리를 채집하여 낚시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붓으로 그린 풍경화가 아닌 음악으로 그린 풍경화인 것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그의 작업은 단연코 사운드아트에 가깝다고 할 지경이다. 이는 1920-30년대 유럽에서 등장한 독일의 추상화가 오스카 피싱어등이 제작한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의 형식을 닮았다. 그의 작업을 감상하는 묘미는 영상이 아닌 음악, '효과음'이라는 말이 더 정확할, 일반적인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사운드'의 몽타쥬방식에 있다. 안정주의 영상은 그러나 신자유주의시대이후 유행과도 같은 작가들의 다양한 해외여행사례가 낳은 다큐멘터리형식의 비디오작업과 맥을 같이 함은 물론이다.
기무사라는 한국의 역사적인 공간을 건축설계도처럼 3D애니메이션화한 문경원의 「A Momentory Silence」는 선이라는 조형의 기본적인 요소만을 재현한 작품으로 대상을 촬영하는 방식이 아닌 프로그래밍 툴을 다루는 다분히 기술적인 재현, 즉 내용보다는 형식을 강조하는 지난 작업들과 다르지 않다. 역사적 건물의 지층을 하나하나 드러내며 속살을 보여주기방식은 디지털기술의 힘에 기댄 역사서술의 편린이다. 문경원의 형식성 강조에서 더 나아가 기술의 적극적 개입을 지향하는 최승준의 「파문을 일으키다」는 관객의 반응에 따라 변화하는 인터랙티브작업이다. 사람들이 벽에 걸린 화면을 지날때마다 파란색물의 형상은 파문을 일으킨다. ● 위 작가들의 형식적 질료로써 사용된 디지털기술의 개입은 단순한 기록촬영에서부터 인터렉티브라는 고도의 테크놀로지 개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그 표층이 드러내고자 하는 바는 사회, 역사, 일상의 삶에 개입하는 작가들의 예술적 창조행위 그것에 다름아니다. 예컨데 이들 작업의 표층이 되는 영상은 백남준 작업의 선례가 보여주듯, 정지된 화면이 아닌, '움직이는 이미지'를 통해 관객의 관람행위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이는 세계 현대미술의 문맥을 들여다볼 수 있는 하나의 지형학적 계보이기도 하다. ■ IAN Art
Vol.20100727b | 립싱크 Lip_sync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