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제1부 –표정, 인생을 보다 / 2010_0726 ▶ 2010_0814 참여작가_김혜연_배진영_백지혜_윤지영_이준복_임진혁_정유미_홍승태
제2부 / 2010_0816 ▶ 2010_0913 참여작가_김민주_김정헌_박대규_이상선_이에스더_정도영_조장은_홍상식
주최_코오롱 그룹 책임기획_아트레시피
관람시간 / 10:30am~06:00pm / 8월 15일 휴관
코오롱타워 본관 특별전시장 경기도 과천시 별양동 1-23번지 코오롱 타워 본관 1층 Tel. +82.2.3677.3105 www.kolon.co.kr
얼굴은 '얼을 담는 꼴'이라는 뜻에서 연유했다고 합니다. 요즈음 얼굴에 대한 유난스런 관심-아마도 성형과 미용이겠지요-은 영혼이나 정신과는 무관하니, 얼굴의 의미가 어원에서 점점 거리가 멀어지고 있는 듯합니다. 하긴 '얼'이 아닌 '꼴'에 편향된 관심이라 치면 전연 동떨어진 것도 아니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야말로 기의와 기표로 이루어진 완벽한 기호에 다름없습니다. 때에 따라선 언어보다 더욱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누군가는 사람의 얼굴이 한 권의 책이자 하나의 풍경이라 말했나 봅니다. ● 미술의 오랜 역사에서도 얼굴은 가장 중요한 제재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근대기에 이르러서야 동양에서 산수화가 정립되고 서양에서 풍경화가 나오기 전까지 미술은 인물에 의해 전개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대에 인물화라는 용어 자체가 그다지 독립적인 소용성을 가지진 못하지만, 여전히 인물은 작가들에게 매력적인 제재입니다. 본디 인간에 대한 관심을 떠나 성립할 수 없는 것이 예술인진데, 굳이 미술사까지 장황하게 들출 필요도 없었겠습니다. 그 관심이 따뜻하건, 비판적이건, 냉소적이건, 사람을 그리는 작가들의 시선은 인간에의 애정을 머금은 채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 이번 『얼굴을 부탁해』展은 사람과 세상에 대해 얼굴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갑니다. 얼굴 이야기의 단서는 바로 표정과 시선입니다. 자기 동일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하는 지문이나 홍채와 달리, 얼굴은 표정과 시선에 따라 무쌍하게 변화합니다. 제1부 '표정, 인생을 보다' 에서는 다양한 표정을 통해 들여다 본 우리네 삶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집니다. 마치 그림 일기장이나 사진첩을 넘기다 발견하는 삶의 순간순간이 표정을 통해 흥미롭게 포착되지요. 제2부 '시선, 인간을 읽다' 에서는 시선과 응시를 통해 인간의 속내와 시각의 심리학을 엿봅니다. 작품 속 인물의 시선과 여기에 녹아 든 작가의 시선, 그리고 이를 관조하는 관람객의 시선이 교차하는 가운데 다양한 층위의 함의 읽기를 시도합니다. ● 열여섯 명의 작가에게 이번 전시가 부탁한 얼굴 그림은 그저 초상화라기보다 '얼굴이 있는 풍경화'라 부르면 좋겠습니다. 얼굴 주인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배경으로 세상을 향해 표정과 시선을 던집니다. 물론 아무리 극적인 타인의 삶이라도 내 작은 인생의 소사만큼 스펙터클하진 못하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얼굴에서 내 모습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서 내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게 됩니다. 그와 그녀, 그리고 그들의 얼굴. 인칭을 달리한다면 곧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얼굴로 다가올 것입니다.
제1부 표정, 인생을 보다 김혜연 ● 언젠가 마감하게 될 생이기에 우리는 삶을 긍정해야 한다고 김혜연은 말합니다. 삶에 대해 사변을 버리고 사랑을 택한 그녀의 인물 탐구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기록하는 그림일기처럼 전개됩니다. 전철이나 미용실 같은 평범한 삶의 무대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중심은 단연 인물입니다. 특정 사건이나 상황에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우리의 모습을 마치 스냅사진으로 찍은 그녀의 작품은 풍속화를 닮았습니다. 당황과 난감, 때로는 의뭉스러움이 교차하는 표정과 과장된 몸짓에서, 우리는 어쩌면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우리의 삶을 이루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백지혜 ● 정적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정적이 있는 인물의 표정과 몸짓. 백지혜는 종이 아닌 비단 위에 천연안료를 겹겹이 올려 인물의 정중동(靜中動)을 조심조심 담습니다. 그녀는 오늘날 명맥만 남은 고려 불화와 조선 인물화의 전통 기법을 되살리는 작업에 몰두하면서 그 현대적 변용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국화는 그림을 그린다기 보다는 색을 올린다고들 합니다. 전통 기법의 지난한 작업 과정이 요하는 시간의 퇴적이 백지혜의 인물에 고스란히 옮겨져 더할 수 없는 깊이를 부여하지요. 그 깊이만큼 작품 속 소녀들은 어린 시절 의 소소한 일상사에 대한 아련한 여운을 남깁니다.
배진영 ● 세상에 대한 소통은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배진영은 직접 거리로 나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남자들의 얼굴을 포착합니다. 우연히 마주치는 거리의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가치관만큼이나 독특한 생김새와 표정, 행동 양식을 보입니다. 작가는 여기에 나름의 상상을 가미해 이야기를 만들며 인물의 형상을 가다듬고 윤색합니다. 한 사람의 여성으로 그리고 작가로 그녀가 펼치는 이른바 남자 대탐구는 여성의 전유물인 퀼트 형식으로 전시됩니다. 조각 천처럼 각기 다른 형상과 색채의 얼굴 이미지들을 서로 꿰맨 듯 붙여 이은 작품에서 여전히 궁금한 것이 많은 신세대 작가의 건강한 시선이 느껴집니다. 정유미 ● 우리나라 아저씨들의 몸에 배이지 않은 친절한 자세와 어정쩡한 미소. 산업 사회의 구조와 가부장의 전통적 가치가 충돌하는 곳에 정유미의 미소 시리즈가 있습니다. 아저씨들의 미소 짓기 프로젝트는 초등학생에게 부여된 오늘의 학습목표만큼 영 쉽지 않습니다. 무표정이나 차라리 버럭 성을 내는 것이 더 어울릴 성 싶은 그들의 미소는 그 목적을 암시하는 제복이 없었다면 음흉하게 다가올 정도입니다. 하지만 더욱 슬픈 사실은 산업 사회의 부속으로 그들이 거할 자리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변화된 사회 속에 피고용인으로 나서게 된 그들의 우스꽝스런 초상은 아마도 먼 훗날 누구도 기억하지 않을, 시대의 사소한 단면으로 남을지 모릅니다.
윤지영 ● 옛말에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했거늘, 윤지영의 작품은 어르신들의 현명한 가르침을 하나같이 거스르면서 불행의 길을 자초합니다. 섬뜩할 정도로 극사실적인 수법이 빛나는 열망의 표정에는 이미 절망이 예고되어 있습니다. 각자만의 억압된 욕망을 평생의 숙제처럼 안고 사는 우리건만, 현대사회의 구조와 문화는 본디 관심도 없었던 다른 욕망까지 넘보도록 부추기며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더욱 넓힙니다. 하지만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보는 것은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우리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준복 ● 이 세상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줌마로 이루어져있다고 합니다. 제3의 성(性)이라 부를 만한 우리나라 억척 아줌마들의 미학, 그 과도함에 대해 이준복은 이야기합니다. 집안의 벽지처럼 주인공일 수 없는 아줌마들. 어쩌면 그들의 존재감 없음이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취향에 집착하게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이 같은 미감을 상징하듯 망막을 자극하는 옷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한 여인들은 모두 의류 제조업체 숙련공입니다. 재단과 재봉질로 손에서 떠날 날 없는 옷들을 정작 본인은 입어본 적이 없는 지, 급조된 표정과 몸짓에는 자부심 한켠으로 욕망의 불완전한 해소감이 비칩니다. 실제 동대문시장에서 의류사업에 종사해온 작가 어머니에 대한 오마쥬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뛰어난 극사실적인 수법만으로는 획득될 수 없는 애정이 묻어납니다.
홍승태 ● 홍승태는 생명의 존엄성 수호에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작품에 임합니다. 직업 작가의 길에 들기 전 잠시 몸담았던 영화계에서의 특수 분장 경험은 자연주의적 재현 기술을 단련시키면서 그의 휴머니즘적 작가관을 탄탄하게 뒷받침합니다. 실리콘과 FRP로 성형한 인물들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마치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지는데, 이 같은 극사실성은 되려 현실감을 떨어뜨리며 묘한 공상의 세계를 연출합니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인간 표현을 통해 우리의 특권 의식에 대한 어리석음을 할(喝)하기도, 때로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적인 존재로서 영아들을 현대인의 정신을 치유하는 신비의 영약으로 신성화합니다. 임진혁 ● 임진혁은 유명인사의 얼굴을 거울에 선각한 초상 시리즈를 선보입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사회적 얼굴인 페르소나(persona)를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정치인 같은 권력자들. 다만 이 초상은 그들의 진실된 정체성과는 무관합니다. 대중 매체를 통해 증명사진처럼 고착된-그들 자신이 정치적으로 의도한-페르소나를 피상적으로 보여줄 뿐이지요. 작가는 마치 불멸의 존재로 각인된 이들의 이미지를 일부러 불안하게 겹겹의 선각으로 형상을 긁어내어 존재의 유한성을 말합니다. 급기야 관람객들이 작품 앞에 서서 자신의 얼굴과 그들의 얼굴을 오버랩하면, 그 유한성은 그들에게서 나에게로 옮겨지면서 우리가 들추어내고 싶지 않은 진실인 '죽음'에 맞닥들이게 됩니다.
제2부 시선, 인간을 읽다 조장은 ● 이른바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이들에 대한 기성세대의 선입견은 시대를 초월하여 존재합니다. 조장은의 작품은 '어린 어른'으로 취급받곤 하는 20대 청춘에 대한 발랄한 보고서입니다. 속어가 남발하는 촌철살인의 텍스트가 곁들여진 만평 같은 그림은 요즘 젊은이들의 솔직 도발한 삶의 태도를 노골적으로 보여줍니다. 더구나 시간이 한참 흐른 후 회고조를 써내려가는 자서전이 아니라, 지금과 여기를 살아가는 작가 자신의 일기라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이 느껴집니다. 한때 청춘이었고, 지금 청춘으로 살아가는, 그리고 앞으로 청춘으로 살아갈 우리 모두에게 그녀의 작품은 과거, 현재, 미래의 초상인 셈입니다. 김정헌 ● 때로는 세상이 떠들썩하게 말하는 사랑이란 너무도 지고지순하여 우리의 머릿속을 그저 관념적으로 맴돌 때가 있습니다. 하여 낮은 곳, 바로 우리 주변에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일이 더러 있지요. 김정헌은 주위의 사람들을 향한 관심에서 사랑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그의 인물들은 마치 유행가 가사처럼 '별일 없이 사는' 평범한 모습이지만, 달군 인두로 종이를 지져 만든 형상이라니 왠지 편치가 않네요. 인두가 남기는 것은 흉터일진데, 그 흉터로 만든 형상에서 주인공의 말할 수 없는 아픔이나 작가 자신이 감수해야할 창작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작가가 작품 제목마다 덧붙인 "그래요"라는 멘트는 묻거나 따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최선의 사랑 표현으로 들립니다.
박대규 ● 박대규가 작품화하는 인물은 그 군(群)이 어렵지 않아 좋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닌 동네 사람이라고 할까요. 평범한 동네 사람이 겪는 평범한 사건과 평범한 페이소스의 드라마. 울자니 우습고 웃자니 슬픈, 박대규 연출과 제작의 이 드라마는 비극도 희극도 아닙니다. 때로는 현대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좌절하기도 하지만 저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덫에 빠지는 모습에서, 우리는 괜한 연민을 가지거나 혀를 찰 필요가 없겠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 옆집 아저씨는 우리의 화신일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역시 삶의 편린들을 찬찬히 모아보면 타인의 인생과 세상사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닌 듯합니다. 홍상식 ● 예부터 견물생심이라 했거늘, 욕망의 내밀화는 눈에서 비롯되곤 합니다. 순백의 조각품처럼 빼어나게 깎아 놓은 듯 보이는 홍상식의 설치작품을 조금 가까이 들여다보니 하찮은 빨대들의 모음이네요. 작가는 빨대의 구순적 흡착 행위가 연상시키는 원초성과 플라스틱이라는 재료의 일회적인 속성에서 영원히 소진되지 않을 우리의 욕망을 보여줍니다. 빨대로 엮은 거대한 눈은 관람객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며 주의를 집중시킵니다. 이 앞에서 관람객들은 보는 행위의 능동/피동적 층위-보기/보여지기-를 경험하면서, 눈으로 봄으로써 마음이 동하는 인간의 욕망 기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상선 ● 이상선의 인물화를 보노라면 '맨 것 그대로의 아름다움'이라는 조어(造語) 외엔 마땅히 규정할 한 단어가 없으니, 새삼 서양의 미적 범주란 참으로 단조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표정과 제스처에는 숨김이나 모양내기가 전연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맨 것 그대로의 표현은 다른 대상보다 어린 아이들에서 유난히 빛을 발합니다. 아마도 여기에는 이상선의 남다른 선의 운용이 힘을 발휘하겠지요. 간결하되 힘이 느껴지는 선획은 아크릴화가 아닌 한국화의 그것을 더 닮아있습니다. 무결의 순수를 전제하기보다는 땅을 짚고 피어오르는 서정성은 보는 이에게 애틋함을 전하는데, 혹자는 이 대목에서 민중미술의 일면을 감지하기도 합니다. 김민주 ● 김민주는 인간의 얼굴에서 유독 눈과 시선에 집중합니다. 마치 영화의 와이드 스크린을 연상시키는 긴 화폭은 시선에 대한 주목성을 높이며, 눈을 영혼의 창이라 일컫는 이유를 웅변합니다. 그의 연작 「thou」는 오페라처럼 극적인 표정을 포기한 대신 미묘한 눈짓의 변화를 포착하여 흡인력 있는 변주를 전개합니다. 변주는 눈짓의 다양성에 따라 단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시점을 통해 복합성을 띱니다. 작품 속 주인공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은 관람객의 눈이지만, 이들의 눈동자에 비친 또 하나의 초상은 우리가 아닌 작가 자신입니다. 작품 속 모델과 작가, 그리고 관람객은 눈빛으로 서로를 2인칭으로 호칭합니다. 영어로 '당신'을 뜻하는 옛 단어가 바로 작품의 제목 아니던가요.
이에스더 ●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범인(凡人)의 인생에도 이따금 드라마처럼 극적인 장면이 연출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소중한 이와의 이별과 재회가 이루어지는 곳이라면, 그 안타까움과 환희의 감정을 드러내는 실례를 범한들 눈총 줄 이 누가 있을까요. 이에스더는 공항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위한 설치작품에서 그 사랑을 마음껏 나누라고 권합니다. 일러스트레이터다운 감각이 엿보이는 그녀의 얼굴들은 소중한 사람에게 마음을 표하는 곳임을 알리는 일종의 안내사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이, 포옹이 어색하다면 애잔한 시선이라도 던지세요. 재회가 보장되지 않는 이별의 순간이 오기 전에. 정도영 ● 현대사회는 인간에게 자유를 추구할 권리를 부여하면서 개인을 탄생시켰습니다. 그러나 개인에게 주어진 이 전대미문의 자유가 사실상 명목에 불과하다고 정도영은 말합니다. 대중이라는 개념을 동원하여 개인을 요리하기 편하도록 손질하고 있을 뿐 사실상 사적 공간을 끊임없이 침해하면서 이름뿐인 개성을 쥐어주곤 합니다. 작가는 언론매체를 통해 부풀려지고 왜곡된 정보와 이를 바라보는 군중들의 시선을 표현하여 현대인의 폐쇄적 자아를 해학적으로 보여줍니다. 번드르르한 유약 아래로 자아의 색깔을 선명하게 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순간의 충격에 산산이 부서지는 자기(磁器)는 폐쇄된 자아를 상징합니다. 요란한 축제에 열광하는 군중들의 시선에서 정체성은 시종일관 지배당하게 됩니다. ■ 김의경
Vol.20100726b | 2010 코오롱여름문화축제-얼굴을 부탁해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