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4 (무의미를 목표로한 접속)

김윤섭展 / KIMYUNSEOB / 金潤燮 / painting   2010_0723 ▶ 2010_0804 / 월요일 휴관

김윤섭_6.54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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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_2010_0723_금요일_06:00pm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및 충청북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사업입니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 퍼블릭 에어 Artist run space PUBLIC AIR 충북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1가 55번지 Tel. +82.10.7793.6987

6.54 ● 나의 명제들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하나의 주해 작업이다. 즉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만일 그가 나의 명제들을 통해 — 나의 명제들을 딛고 서 — 나의 명제들을 넘어 올라간다면, 그는 결국 나의 명제들을 무의미한 것으 로 인식한다. (그는 말하자면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후에는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그는 이 명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세계를 올바로 본다.

김윤섭_6.54_혼합재료_123×146×128cm_2010

김윤섭의 이번 전시회의 제목은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논리철학 논고(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 등장하는 마지막 부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 구절에서 『논고』의 모든 진술들을 모두 "무의미"라 고백한다. 그 고백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세계는 올바로 보인다. 김윤섭은 이 구절에서 "무의미"란 단어에 주목한다. 이번 「6.54」의 작품들 역시 김윤섭은 무의미하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선언은 비트겐슈타인의 고백과 유비적 방식으로 연결된다. 김윤섭은 자신의 작업의 무의미성을 깨닫는 것이 그의 작품을 올바로 보는 방법이라 주장한다.

김윤섭_6.5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각 117×91cm_2010

자신의 작품들을 무의미하게 받아들이라는 김윤섭의 주장은 아주 단순하고 평범하다. 무의미의 고백 속에는 겸손의 표현 혹은 소수의 관객을 위한 숨겨진 전략 같은 것은 없다. 그가 그린 그림이나 설치한 조형물들은 모두 무의미하다. 회화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관객은 김윤섭의 추상을 마주할 때 분명 특정한 욕망과 의지에 사로잡힌다. 그것은 바로 무언가 의미있게 말하려는 욕망과 의지다. 하지만 그러한 욕망과 의지가 만들어내는 언어적 표현들은 하나같이 무의미하다. 왜냐하면 생성하는 감각들과 그 사건들을 지시하고 설명할만 언어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윤섭_6.5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0
김윤섭_6.5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0

김윤섭의 이번 작업을 지시하고 설명하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화가는 자신이 느끼는 감각의 언어를 만들지 않는다. 다시 말해 화가는 감각을 말하지 않는다. 단지 화가는 자신의 감각들을 추상으로써 보여준다. 표현된 감각들 즉 여러 추상들은 각기 다른 감각들을 다루고 느끼고 있지만 독자가 볼 수 있듯이 공통의 논리, 즉 감각의 논리들을 보여(show)준다. 김윤섭의 이러한 신념은 오로지 감각과 감각의 논리는 보여질 뿐이지 말해질 수 없다는 명제로 압축된다. 김윤섭은 「6.54」 통해서 감각과 감각의 논리를 보여주는 자신의 추상이 이러한 주장의 직접적 예시가 되기를 희망한다. 따라서 김윤섭의 이번 추상은 언어로써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로지 관객들은 하나의 감각 덩어리들을 눈을 통해 체험함으로서 감각이 생성되는 사건들에 마주할 뿐이다.

김윤섭_6.5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0
김윤섭_6.54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0

김윤섭의 설치 미술에 쓰인 오브제는 일상 속에 쉽게 만날 수 있는 오브제들이 쓰였다. 각각의 오브제는 관객들의 일상의 기억과 감각들의 세계에 놓여져 있다. 하지만 그런 각각의 오브제들이 인위적으로 합쳐져 하나의 통일된 구성물이 되었을 때, 각각의 오브제의 종합으로 이루어진 구성물은 더 이상 관객의 일상적 기억과 감각들의 세계에 놓여있지 않다. 그 구성물은 또 다른 감각과 감각의 사건들을 발생시키며 관객들을 일상적 세계와 또 다른 세계의 장에 놓이게 한다. 따라서 각각의 오브제들을 지시했던 언어들 역시 자신의 의미를 상실하며, 언어와 오브제는 떨어져 나간다. 하지만 각각의 오브제는 순수한 물리적 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된 구성물과의 긴장과 리듬을 유지하며, 새로운 감각들과 감각의 논리들과 독자들의 세계 속에 공존한다. 이처럼 관객들은 감각의 새로운 세계와 사건들에 놓이게 된다. 따라서 관객들은 감각을 의미있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들을 말하기 위해서는 감각의 사건과 세계 밖에 독자 자신을 위치시켜야 하는데, 이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 박하늘

Vol.20100723g | 김윤섭展 / KIMYUNSEOB / 金潤燮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