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_2010_0721_수요일_06:00pm
사이아트갤러리 기획초대展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_01:00pm~07:00pm
사이아트 갤러리_CY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안국동 63-1번지 B1 Tel. +82.2.3141.8842 cyartgallery.com
변형의 형태론에 부쳐 ● 여기에서 언급하는 송영화의 다섯 점의 작품(그림 참조) 에서 그는 각각의 옷을 가지고 작업했다. 그러나 마치 피카소가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을 연결하여 황소의 머리(1942)라는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킨 것과 같은, 오브제 트루베Objet-trouve의 의미로 그가 이런 의류들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황소의 머리"라는 의미 부여가, 선택한 사물들의 자체 특성을 제거하지 않은 채 단지 형태의 유사성에 기인한 반면, 송영화는 그가 작업한 옷이라는 것을 좀더 실존적인 측면으로 풀어가고 있다. ● 그의 이번 작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편물의 짜임새이다. 가공되지 않은 원료인 양털 – 오히려 하나의 무형의 질료덩어리 – 에서 그것을 1차원적이라 할 수 있는 선의 형태로 잡아 늘려 실을 짓는다. 뜨개질이란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 1차원의 선은 고리끼리 엮이며 짜여 2차원인 편물로 연결되고, 나름의 뜨개공정에 따라 이 2차원의 평면은 3차원의 둥근 관모양의 형태로, 스타킹으로, 털망토로, 스웨터로, 어떤 실용적인 형태로 변하게 된다. ● 그러나 세상으로 나온 이 직물들은 아직 그것의 본질적인 측면이 결여되어있다. 상점에 일렬로 진열된 옷들은 그것을 입어줄 소비자와의 협연을 통해서야 이제 의복이 된다: '옷이 날개'라고 하듯이(Kleider macht Leute: 독일의 관용구), 옷이란 사람에게 개성을 부여한다. 그렇다고 옷이 사실상 담당하고 있는 고유한 기능이 그것의 본질을 자명하게 해주는 것은 아직 아니다. 오히려 – 스타킹을 예로 들자면 – "한 젊은이가 옷을 벗을 때, 그의 손에서 바닥으로 내 팽겨쳐진, 흐트러지고 늘어진 채로 아무렇게나 거기에 놓여있는 – 저 뭉치만이 그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롤랑 바르트, 싸이 톰블리, 9쪽)
송영화가 얼마간이나 입었던 까만 터들넥 스웨터, 그의 딸아이의 붉은 포도주 빛 털실로 짠 판초, 혹은 오랫동안 옷장 속 아래서랍에 묵혀있던 겨울 목도리 등, 그가 작업에 끌어온 텍스타일들은 그에게는 추억이 담긴 중요한 물건들이다. 이 벗어 던져진 물건들에는 각각 나름의 사적인 삶의 여정이 기록되어 있다. "사물의 본질은 그것이 폐품Abfall이 된 상태와도 연관이 있다: 사람이 사용하고 남은 물질적인 나머지가 아닌, 사용함으로써 사용가치를 상실해 버려진 그것에 관계한다". (R.B., 참조)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이것이 놀랍게도 작업화 된다.
송영화는 사물들을 이전의 형태로부터 놓여나게 한다. 그는 털옷을 풀어 다시 선의 형태인 실로 되돌린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 이전의 선과 같은 선은 아니다. 그것은 한번 뜨개질되었던 탓으로 원래의 반듯한 선의 형태를 잃었다. 이 물결모양의 구부러진 형태는 이것이 이전에 편직물임을 아직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작가의 손을 통하여 수 놓아진 드로잉 작업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을 지라도 역시 그럴 것이다. 이것은 또한 이것 역시 단지 일시적인 상태일 뿐 임을 그 저변에 드러낸다. 옷은 사라지고 풀어져 해체되어, 그 잔재로부터 한 망울, 한 망울 새순이 돋고, 한 땀 한 땀 식물의 이미지가 자란다. 점점 형태가 확연해짐과 동시에 또한 다시 해체되어 버린다. 변화의 본질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변형의 마술이 드러난다.
애벌레와 나비가 서로 다른 두 형태의 겉 모양새를 갖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DNA구조의 한 존재이다. 애벌레로서의 현존의 형태의 마지막 단계에 애벌레는 실을 짓고 고치를 만든다. 주변 세계와의 결별로 그것은 그것의 구조를 허물기 시작한다. 이제 겪을 변태는 애벌레에게는 파멸일 것이다. 그러나 이 난관 속에는 애벌레와 이미 예견된 나비로의 비상을 이어줄 새순을 내포하고 있다. 변형의 본질이란 해체인 동시에 형성임을, 종말이며 또한 예견된 약속임을 여기서도 또한 드러낸다.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변태가 그들의 생태 본질에 의거한 대신, 송영화의 작업에서는 예술가의 개입을 통하여 그 변형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어떤 대상의 본질에 관한 언급이며, 더 나아가 도리어 작가자신의 존재론적인 거론이다.
사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제2의 피부이기도 한 옷으로부터, 송영화라는 개인이 작가임을 드러내 주는 제3의 피부, 즉 그의 예술작품이 형성된다. 그의 작업 전반에서 드러나는 이것에서 저것으로 전이 라는 개념은 두 문화 속에서 살아온 그의 개인적인 삶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한국적인 그림전통이 서구적인 개념적 사고로 전환되었고, 수공예적인 뜨개질이 예술적인 몸짓으로 치환되었다. 아직 과 이미 를 거듭해온 작가는 그의 작업과정들 속에서 진행되는 변화들을 그의 그림들 속에 고착시켜 놓는다. 그리고 경계를 넘어서는 메타모르포시스는 이렇게 의복들에서 이루어진다. ■ gottfried hafemann
Vol.20100719g | 송영화展 / Young W. Song / 宋玲華 / painting.installation